7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11)
“이거 꽤 맛있네.”
태주는 핫도그를 하나 더 집어 먹으며 말했다. 사실 핫도그를 자기들끼리 먹었다고 했을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이 정도로 맛있다면 조금 뒤늦게 서운해진다.
“너희 학교 앞에서 파는 거라고? 단순히 노점이나 할 맛이 아닌데 이거.”
조금 식었는데도 이 정도 맛이라면, 갓 튀겼을 때는 얼마나 맛있었을까. 태주는 아쉬워서 한입 더 베어 물었다. 맛있는 음식이 이미 식었다면 더 식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한다.
“잘 먹네….”
먹으라고 가져오긴 했지만, 이렇게 잘 먹을 줄은 몰랐다. 월이는 조금 놀란 눈으로 태주를 봤다.
“아니, 내가 이런 거 잘 안 먹는 사람인데 이건 맛있네.”
“아무렴, 그러시겠지.”
태주는 재빨리 나머지 부분을 마무리 짓고는 말했다.
“후우, 그래서? 뭘 알려달라는 거야? 듣자 하니 순조롭게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듣고 있긴 하셨던 거죠? 열심히 핫도그만 드시고 계시던데.”
설이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솔직히 열심히 먹고 있는 거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대답이 왔고, 우연히 정체를 알아내서, 즉흥적으로 직접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는 이야기까지 했잖아.”
그동안 먹고 있기만 하던 게 아니라는 듯 태주는 정확히 대답했다.
“내가 말없이 먹기만 한 이유는 딱히 말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야.”
“그래도 듣고 있으면 듣는 척은 하셔야죠!”
“내가 더 할 말이 있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없는 거 같은데.”
굳이 지적할 부분이라 하면 조금 급하게 만나러 가는 선택을 했다는 정도지만, 그것도 즉흥적일지언정 생각 없이 들어가기로 한 것은 아니라 하니 더 해줄 말이 딱히 없다.
“굳이 나한테 이걸 왜 설명해 준 거야?”
“확인 좀 부탁드리려고요.”
설이는 조금 비장한 눈으로 말했다.
“확인?”
“네. 아무래도 제가 확신이 잘 안 서서요.”
“무슨 확신?”
“투명인간이 왜 투명한지에 대한 확신이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런 확신은 늘 가지기 어려운 법이다.
“꽤 어려운 이야기를 하네.”
그런 질문을 하는 시점에서, 이미 잘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태주는 속으로 칭찬했다.
“그, 투명하다는 방식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렇지.”
보영의 말을 듣고, 그리고 쪽지의 말투를 보고서 설이 역시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아무도 그 사람을 봐 주지 않았다는 말이니까요. 그러니까 분명 그 사람은 분명 학교생활이 괴로웠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혹시 그 사람은 따돌림을 당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설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설이는 아직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기에 집단 따돌림 같은 것이 왜 일어나는지, 어째서 그러는지는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게 있다는 사실과 그런 상황에서 겪을 괴로움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잘 인식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 그렇다는 말이잖아요.”
태주는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럼 왜 학교에 계속 있는 걸까요?”
그게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보영이가 그랬어요. 이건 학교괴담이라고. 그런데 학교가 괴로우면, 보통 학교 바깥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왜 억지로 계속 학교의 투명인간으로 남은 것일까. 차라리 나가면 될 텐데.
“잘 모르겠어요. 왜 굳이 학교에 남아있는 건지. 학교가 너무 좋으면 차라리 보영이처럼… 그건 좀 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졸업하고도 학교에서 지박령처럼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졸업까지 하고도 학교를 벗어나지 않고 그렇게 있는 사람이라니. 설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 가시는 게 있으세요?”
“아니 전혀 없는데. 애초에 그거야 나도 모르지.”
태주 역시 그런 건 잘 알 수 없기에 어깨만 한번 으쓱할 뿐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할 거야. 왜 굳이 잘 지내지도 못하는 학교에서 투명인간이 되어서 남아있느냐고?”
태주는 잠시 고민했다.
“어쩌면, 그냥 학교가 더 편했던 걸 수도 있지.”
“그게 편하다고요?”
“그래. 물론 아닐 수도 있고.”
설이는 김이 샌 듯 말했다.
“결국은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네요.”
“그래. 그러니까 오늘… 아닌가 내일인가? 자정은 넘어서 들어갈 테니까.”
태주는 거기까지 말한 뒤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거기서 이야기를 한번 해 봐야겠지.”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좋냐니?”
“그러니까, 갑자기 막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너 학교생활 힘들었지? 같은 그런 이야기 말이에요.”
“그야 그렇지. 그게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상처를 후벼 파는 짓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가끔은 심지어 그게 상처라는 것을 알면서도 후벼야만 할 때가 있을 때도 있다.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태주 자신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역시도 해 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그래도 잘 할 거야, 너라면.”
“…저도 기대에 부응하고 싶기는 한데요.”
설이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더는 안 도와주신다는 거죠?”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래. 핫도그는 잘 먹었어. 다음에 또 사오면 좋겠는데.”
태주는 실실 웃었다. 일종의 먹튀다. 설이는 괜히 억울해서 말했다.
“…다음엔 안 드릴 거에요.”
“어?”
태주는 조금 실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괜찮다. 어디서 파는지 알면 살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어른의 방식이다.
“어디서 파는지도 안 알려드릴 거에요. 월이한테도 알려주지 말라고 말할 거구요.”
“야! 치사하게!”
* * *
“이렇게 쉽게 들어와도 되는 거야?”
설이가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안 들키고 학교에 들어오는 건 쉬웠다.
“아니, 나도 저번엔 이렇게 쉽게 들어오지는 않았어.”
월이 역시 당혹스러울 정도다. 긴장한 게 바보 같을 정도다. 이게 다 보영이 덕분이었다.
다음에 들어갈 일 있으면 저번처럼 위험한 짓 하지 말고 이런 식으로 들어가라며 알려준 방법인데, 너무 쉬워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학교 보안 해제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단순히 어떤 학생의 전화번호, 생일 같은 것을 알아내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걔 맘만 먹으면 학교 교장실도 털겠는데.”
월이는 보영이 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지 묻지 않기로 했다. 혹시라도 들었다가는 조금 무서운 것의 편린을 맛볼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
설이 역시 이게 평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월이와는 체감이 달랐다. 다른 학생들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괜히 너 고생시키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그렇…기는 한데.”
고생은 고생이라고는 하지만 월이 입장에서 그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과연 이걸 알아내는 데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사람 한둘 업고 학교에 침투하는 게 훨씬 쉬워 보인다.
“보통은 이런 걸 알아내는 것보다 벽을 타는 게 차라리 쉬울걸?”
“그런가.”
어쨌든 이미 들어왔으니 그런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제 보영에 대한 감탄은 잠시 미뤄둘 때다.
설이는 어두운 복도를 지켜봤다.
“여긴 좀 신기한 기분이야.”
설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복도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그곳에 있었다.
“이런 어둠은 처음 봐.”
설이는 밤의 산과 밤의 도시를 보았다. 산은 은은한 빛이 있었고 도시는 화려한 불빛이 있었다.
그러나 밤의 학교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학교의 밤은 완전한 적막이었다. 이것은 또 완전히 생경한 느낌이었다.
어둠에는 익숙하고, 장소에도 익숙하지만, 너무나도 낯설다. 설이는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이런 곳이니까 사람이 숨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숨어 산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이곳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모순적인 생각에 설이는 잠시 넋을 잃었다. 그렇게 설이는 잠시 은은하게 빛나는 초록 불빛을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본 월이가 어깨를 툭 짚었다.
“들어오기 전에 뭐라고 했지?”
“…미안.”
설이는 순순히 사과했다. 더 앞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내디딘 건 사실이었다.
“내 앞으로 가지 마. 혹시 모르는 거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월이는 살짝 앞으로 걸어나갔다.
“주의사항은 기억하지?”
월이는 작게 속삭였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사항이라 해봐야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응, 혹시 당직 서시는 분이 깨 계시면 말소리 크게 내지 말라는 거랑 네 앞으로 나가지 말라는 거, 그리고 오늘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지 말기.”
설이는 그렇게 말한 뒤 물었다.
“그런데 그분은 깨 계셔?”
“아니. 주무시고 계신 것 같은데.”
오늘도 멀리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너무 나태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굳이 깨서 지켜야 할 만한 것이 이 학교에 있지는 않다. 이렇게 학교에 들어오는 사람이 지금까지 있었을 리가 없다.
특별한 시험날을 제외하면 그리 열심히 경비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너무 큰 소리를 내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소리를 줄일 필요는 없겠어.”
“다행이다.”
“다행일 것까지야….”
애초에 깨어 있다고 해서 열심히 순찰하지도 않을 거다. 소리를 조심해야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다.
“하지만, 들어오는 건 들어왔다 치더라도, 그 뒤를 어떻게 해야 하지?”
월이는 의문을 표했다.
“그, 투명인간 나와라! 하고 소리칠 수는 없는 거잖아.”
“나도 생각은 좀 해봤는데….”
설이 역시 별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다. 직접 대화하기로 결정한 건 꽤 즉흥적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돌아다니다 보면 그냥 알아서 나타나지 않을까?”
상대는 월이를 보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월이가 학교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냥 대자보만 붙이고 철수했을 뿐이다.
“자기 사는 곳에 누군가 나타나면 당연히 보러 올 거야!”
“하긴,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월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천천히 따라와. 혹시 모르니까 가끔 뒤를 살피는 걸 잊지 말고.”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걸었다.
“계세요?”
걸으면서 설이는 작게 외쳤다. 실상 소리는 아주 작았다. 아무래도 불안한 것 같았다. 월이는 조금 웃었다.
“그거 보단 크게 말해도 될걸?”
“아, 진짜? 계세요—!?”
“야! 그건 좀 큰데!”
아무리 잔다지만 그건 좀 소리가 너무 크다. 정말로 큰 소리로 외치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막한 복도에 울릴 정도는 된다.
“조금만 줄이자.”
아직 저 멀리서 일어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그 수준으로 소리를 낸다면 분명 일어날 것이 뻔하다.
“…생각보다 적절한 소리크기 찾기가 어렵네.”
설이는 조금 시무룩한 채 말했다. 월이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 사실 어쩌면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더 낫다고?”
“지금 이거, 분명히 들었을 거야. 그 투명인간.”
월이는 말했다.
“모른 척하고 근처에 숨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해. 이 근처에 있어.”
“근처에 있어도 지금 이렇게 있다는 건 안 나오겠다는 뜻 아냐?”
“뭐 어때? 그냥 말하면 되지. 나올 때까지 우리가 찾아다닐 거니까.”
어차피 밤은 길다. 해가 뜨기 전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나오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들쑤시면 된다.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한다.
“태주가 그러더라? 가끔은 무식한 방법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