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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75화 (75/269)

7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10)

보영은 잠시 할머니께 양해를 구한 뒤 뒤로 와 두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말이야.”

“왜?”

“그 투명인간이라는 사람… 이 사람 아냐?”

보영의 말에 두 사람은 말을 잃었다.

“응? 갑자기…?”

“아니, 생각해봐.”

보영은 차근차근 근거를 짚었다.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사람이고, 넥타이 색이 같으니 무슨 행사 같은 걸 할 때 중간에 껴 있으면 의심할 수 없을 거라는 점, 학교에 있을 리 없는데 있다는 점 같은 걸 생각해보면 조금 맞아떨어지지 않아?”

보영은 말하면서도 점점 생각이 구체적으로 변하는지 말투에 점점 묘한 확신이 붙었다.

“그러면 말이 되는 거 아닐까? 있을 리 없는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시스템상으로는 확실히 없는 것도 그러면 말이 되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아.”

설이는 영 납득이 안 가는 말투로 말했다.

“그럼 그… 졸업생은 졸업하고 나서 이 년 정도를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는 말이야?”

“나갔다 들어왔다 했겠지.”

보영은 그렇게 말한 뒤 잠시 생각하다가 이어 말했다.

“어쩌면 나갔다 들어왔다 하지 않고 계속 살았을 수도 있겠네. 어디서 안 들키고 잠에 들 수만 있다면, 밥도 나오고, 샤워실도 있고… 물론 실제로 그렇게 사는 건 꽤 힘든 일이겠지만.”

보영은 어떠냐는 듯 물었다.

“어떻게 그랬는지 그 방법이야 잘 모르겠지만, 그럼 말 되지 않아?”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한다. 일반적인 이야기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상대가 투명인간이기에 말이 될지도 모른다. 괴담 속의 존재들은 원래 불합리한 존재들이니까. 설이는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 한구석에서 납득하고 말았다.

월이 역시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말이… 되나…?”

생각해보면 이 핫도그를 사와 달라 부탁했던 것은 소장이었다. 과연 소장은 아무 의미 없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일까?

정말로 이 할머니가 말하는 그 돈을 돌려주지 않은 학생은 이번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걸까?

“물론 이게 좀 빈약한 이야기라는 건 알아. 아직은 증거도 없으니까.”

“…아직은 확실히.”

“그러니까….”

보영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할머니께 향했다.

“저기, 저 생각난 방법이 하나 있는데요!”

“응? 방법이 있어?”

할머니는 갑자기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온 보영을 보고는 놀랐다.

“꾀죄죄하고, 머리가 길었던 남학생, 맞죠!”

“으, 응? 그렇지?”

그걸 확인한 보영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외쳤다.

“조금 알아보고 올게요—!”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뛰쳐나가면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보영은 그렇게 폭풍처럼 사라졌다.

“…돈은 냈네.”

월이는 허공에 나풀거리는 천 원짜리 두 장을 잡았다.

“핫도그는 언제 챙겼대?”

할머니가 어느새 꺼내 놓은 핫도그도 하나 사라져 있다. 제 발로 걸어가지는 않았을 테니, 보영이 들고 간 것이리라.

어쨌든 잔돈 정도는 따로 돌려주지 않아도 될 거다. 월이는 주머니에서 삼천 원을 꺼내서 같이 냈다.

“엥? 아니 도와준다길래 그냥 준 건데 돈을 주면 어떡하나.”

“저희도 쟤가 돈 주고 사라져서 안 드릴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돈을 제가 가질 수도 없잖아요.”

할머니는 결국 못 이기는 척 돈을 받았다. 대신 핫도그를 몇 개 더 싸 주셨다. 어제보다도 많다. 월이는 당황한 채 말했다.

“이게 더 늘어버렸네.”

“마, 맛있겠다.”

설이는 침을 살짝 삼켰다. 어제 별 기대 없이 시아언니랑 함께 하나씩 먹었을 때 둘이 꽤 놀라면서 먹었던 기억이 났다.

“소장이 괜히 사 오라고 한 건 아닌 거야. 정작 본인은 못 드시긴 했는데….”

월이는 하품을 했다.

“어우, 조금 졸리네. 이만 돌아갈까?”

설이는 학교 쪽을 한번 봤다.

“아니.”

거절의 말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월이는 조금 당황했다.

“뭐?”

“아니, 혹시나 싶어서. 지금이라면 답변이 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네. 정 궁금하면 한번 보고 가지 뭐.”

“…고마워.”

두 사람은 천천히 학교로 돌아갔다. 이제 야자를 시작하는 학생들도 슬슬 있으니 시끄럽게 굴 수는 없지만, 신발장 정도라면 다시 돌아가도 괜찮다.

“후딱 확인하고 오자. 핫도그 식겠다.”

* * *

“진짜 있네?”

별 기대 없이 신발장을 열었는데 쪽지가 있었다.

월이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정말로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런 식으로 쪽지를 줄 거면 아까 주면 되지 않았나. 월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종이를 펼쳤다.

‘꽃 같은 건 몰라 제발 그냥 날 내버려 둬’

“이번 건 뭐랄까…. 좀 더 속상해 보이네.”

월이는 짧게 말했다. 사실 평소 말투에 비하면 이것도 좋게 말한 편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비굴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정도다. 월이는 별생각 없는 눈으로 글씨를 훑었다.

반면 같은 내용을 읽은 설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안 좋은 것 같은데.”

“응? 누가? 보영이가?”

“아니, 이 편지를 쓴 사람 말이야.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린 설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직접 대화를 해 봐야겠어.”

“대화? 대화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반면 월이는 어처구니없는 말투로 물었다.

“직접 학교에 들어가 보기라도 하겠다는 말이야?”

“응, 그런데?”

보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월이 말대로 소장이 아무 의미 없이 핫도그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도 분명히 학교 안에는 그 투명인간이 있다.

“쪽지 같은 거로 이렇게 대화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너무 느리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여는 데는 한 세월이 걸릴 거다. 설이 생각에 이건 빠르게 해결할수록 좋은 일이다.

“직접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절대 안 돼.”

하지만 월이는 드물게도 차갑게 말했다. 당연히 도와줄 거라 생각했던 설이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와 눈을 깜빡였다.

“왜…? 도와준다며?”

“그래, 위험하지 않으면 그런다고 했지. 하지만 이번 일은 위험할 수도 있어.”

월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괜히 어제 그렇게 돌아다닌 줄 알아?”

보이지 않는 상대가 악의를 품었을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 내가 만난 일도 있고 하니, 저녁에도 투명인간은 학교에 있을 거야. 그리고 꽤 긴 시간을 계속해서 그 안에 숨어있었고, 그동안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어. 만약 악의를 품고 숨어있다 공격한다면 나도 솔직히 막아낼 자신이 없어.”

“하지만 그거 말고 방법이 있어?”

설이는 월이에게 되물었다.

“오빠 하는 말 들어보면 시간은 적게 들일수록 좋다잖아. 게다가 결국 괴담을 설명하지 않으면서 빨리 끝내려면 그 수밖엔 없지 않을까?”

“별수 없으면 별 수를 안 내면 되잖아. 처음 계획대로 느리지만 차곡차곡 해결하면 되는 거 아냐. 이게 그렇게 급한 일일까? 위험까지 감수할 필요는 전혀 없어.”

두 사람은 마주 봤다. 의견 차이였다.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지금 당장 해결을 하고 싶은 쪽과, 안전을 우선하고 싶은 쪽의 의견차이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에 우리는 의뢰를 받은 게 아니야. 그냥 어쩌다 뭔가를 보고, 마주쳤을 뿐이라고.”

월이의 태도는 완고했다.

“태주나 언니가 그런 말을 했다면, 뭐 내키지는 않아도 어쨌든 알겠다고 했을 거야. 자기 한 몸 지킬 여력은 충분한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설이는 달랐다. 설이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 두 사람과 설이는 다르다.

“너는 그럴 자신이 있어? 갑작스럽게 자신을 죽이려 드는 사람한테서 멀쩡하게 도망칠 수 있어? 자신을 제발 내버려 두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을 굳이 건드리겠다고? 얼마나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단순한 동정심만으로 사람을 도울 수는 없어.”

“나를 지킬 자신은 없지만….”

“없지만 뭐?”

설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어느 정도 생각해둔 건 있어.”

설이는 조금 불안한 눈으로 말했다. 월이는 그 눈을 보고 물었다.

“그럼 말해봐. 뭘 믿고 대화를 하겠다는 거야?”

“글을 쓰는 태도도 그렇고,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냥 숨어다니기만 했다는 게….”

설이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조금 지나칠 정도로 방어적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그 사람은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러워. 그렇게까지 조심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숨어있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저자세이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나올 필요가 있을까.

“협박할 수도 있었구, 다치기 싫으면 신경 끄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었어. 그런데 이 분은 계속 부탁만 하잖아.”

두 번째 쪽지는 아예 애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발 자신을 내버려 두라는 그 말은 어떻게 봐도 협박은 아니다.

오히려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네가 말했잖아. 비굴해 보일 정도라고.”

그래서 오히려 확신이 든다. 상대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봐. 소문으로 도는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별거 아닌 선행들이었어.”

잘못한 것도 없다. 학교 안에 숨어있는 것이 죄라고 하면 죄겠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크고 명확한 잘못을 직접 저지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솔직히 말해서, 괴담이라 말하기에는 하찮은 수준이다.

“단 한 번 인식 당했다는 것만으로 이 분은 지나칠 정도로 비굴하게 굴고 있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그 지나칠 정도의 조심성을 고려하면, 설령 들어가더라도 상대는 자신을 해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고 설이는 말했다.

“상대방이 왜 보이지 않는지는 아직 몰라.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이 노린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를 해칠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되어 있을 거야.”

어느 정도의 설득력은 있다. 월이는 잠시 생각했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럼?”

설이는 밝은 표정으로 월이를 봤지만 월이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도 안 돼.”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경계해야 할 만한 것이다.

그건 마음만 먹는다면 한 번에 확실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다.

“만약 네가 크게 다친다면? 그도 아니라면 보영이가 다친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설이의 말문이 막혔다.

“위축되어 있다고? 그렇기야 하겠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나는 몰라. 조금 도와줄 수 있다면 도움을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나도 그건 좋아.”

월이라고 동정심이 없는 게 아니다. 월이의 목표는 단 하나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보호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치는 꼴은 못 봐.”

“그래서, 내버려 두자고? 그 사람을 그대로? 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아예 내버려 두자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결국은 생각이 다른 원인은 하나뿐이다.

“안전이 우선이야.”

“…난 그래도 그 사람을 돕고 싶어.”

이렇게 되면 의견차를 좁히기란 어렵다. 설이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말이야, 그 대자보 내용을 진심으로 쓴 거야. 물론 맨 앞 단어들만 떼서 봤을 때 우리가 원하는 내용이 되게 하려고 고민을 좀 하기는 했지만, 따로 떼서 읽을 때도 나는 내 생각과 같게 되도록 전달하고 싶었단 말이야.”

“그건…”

월이는 조금 흔들렸다. 그 글의 진심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 생각 그대로야.”

상대를 이해하자는 내용은 그래서 넣었다. 설이가 처음으로 한 후회가 바로 상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좀 더 옥분을 알고자 했다면, 그저 자신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좀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노력을 했다면, 그래서 지네를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자신들은 바깥에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나는 사실 아직도 후회해. 먼저 알았더라면. 언니가 사람이 아니고, 나는 사람이고. 언니가 왜 그렇게 나를 어디 먼 곳에 떨어트려 두고 자라게 했는지 미리 알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준비 과정을 가지고 다 함께 바깥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매일은 아니라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그리고 언니가 나한테 남긴 물건을 손에 꼭 쥐고 잠들어.”

물론 지네도 언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심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로 그저 비녀 속에 잠들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둘은 어쩌면 그렇지 않은 상태로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막을 수도 있긴 했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게을렀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잘 알지 못했던 거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는 싫어.”

그렇기에 설이는 상대를 이해하고자 했다. 물론 알고는 있었다. 상대를 이해한다 해도 당장에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나 동시에 알고 있었다. 이해하지 않고는 결코 상대방을 제대로 돕지 않을 수 없음을.

“그게 위험을 감수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야?”

“나한테는 그래.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한테도 그렇고.”

월이는 한숨을 한번 푹 쉬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무조건 안 된다고 말리는 것도 의미가 없지 싶었다.

설이는 월이가 처음 예상한 것보다 더 의지가 확고했다. 월이는 이게 말릴 수 없는 종류의 고집이라는 걸 알았다.

“…밤에 준비해 둬. 한번 그 대화라는 걸 시도해 볼 거면 그 시간 말고는 안 될 거 아냐.”

월이는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이렇게나 걱정하는 데도 꼭 해야만 한다고 고집부리는 게 조금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표현하면, 조금 삐진 것이다.

“정말?”

하지만 설이는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밝게 웃었다.

“고마워. 너 아니면 시도도 못 해봤을 거야.”

갑자기 천진한 모습으로 돌아온 설이에게 월이는 더 화를 낼 수 없었다.

결국, 월이는 그저 당부만을 몇 번 했다.

“절대, 절대로 먼저 앞서 나가면 안 돼.”

“그럼, 물론이지! 조심할게.”

“일단, 자세한 건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월이는 핫도그 한 봉지를 흔들며 말했다.

“이거, 다 식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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