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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74화 (74/269)

7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9)

“너 대체 하루종일 뭐 하는 거야?”

보영은 질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고 있잖아. 대체 뭐 하는 거냐고 지금.”

참는 것도 한두 번이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보영은 월이에게 따졌다.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보니 옆에 설이도 함께이긴 하지만, 이전의 모든 쉬는 시간에 보영은 월이를 목격했다.

“...알고 있었어?”

“그걸 어떻게 몰라? 심지어 시선이 뭔가 뜨뜻미지근해서 기분 나빠. 내가 뭐 잘못이라도 한 거야?”

온종일 그러는 꼴을 보고 있자니 조금 견디기 힘들다. 여전히 대답이 없는 월이에게 보영은 팔짱을 끼고는 물었다.

“왜 온 거야?”

보영은 월이를 추궁했다. 안 그러던 사람이 이러고 있으니 이유가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 이유를 말하지도 않고 이러는 건 좀 곤란하다.

하지만 월이 입장에서도 별다른 뾰족한 수는 없었다.

월이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보영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으니까.

문제는 상대방에게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학교 안에 보이지 않는 적이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보영은 지금 투명인간을 찾는 동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투명인간을 믿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월이는 대충 얼버무렸다.

“음…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자신이 말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소리지만, 월이는 뻔뻔하게 말했다.

“아침부터 찾아오더니 계속 헛소리하네, 이거.”

보영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너, 친구가 나밖에 없어서 돌아버렸냐?”

“말이 심하시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설이가 난처한 듯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보영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말했다.

“그래, 나밖에 없지는 않네. 어쨌든 소름 돋는 소리 하지 말고 말이나 좀 해봐, 무슨 말 하려고 계속 이러는 거야?”

“어… 그러니까….”

월이는 결국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사실 이런 게 내 신발장 안에 들어있었거든.”

그게 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보영이 너무나도 기다리던 물건이었으니까.

“뭐야, 답장 온 거야!? 어디 있었는데?”

“말했잖아. 내 신발장 안쪽에 있었다고. 너 달려가고 나서 바로 다음에 발견한 거야.”

“신발장 안?”

보영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월이에게 답장이 왔다는 건 의미가 명백했다.

“누가 붙였는지 알고 있다는 말인데.”

“그렇지.”

그렇기에 월이는 조금 과민할 정도로 반응했었다.

“내가 붙이는 장면을 봤다는 말이니까.”

보영조차 직접 듣기 전까지는 정확히 어떻게 붙인 것인지 몰랐다.

다른 사람이 월이가 그걸 붙였다는 짐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교사도 모르고, 학생들도 모른다. 누가 붙였는지는 말 그대로 모를 일이며 추측해볼 만한 증거도 없다.

“…그러네. 그렇게 생각해야겠어.”

월이는 평범하게 그럴듯한 방법으로 대자보를 붙인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쪽지가 월이에게 왔다는 것은 상대는 정확히 누가 이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말했잖아. 그 날 학교에 분명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었다고.”

“…아닐 거라 말하고 싶은데 다른 부정할 증거가 지금은 없네.”

보영은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실제로 그랬다. 월이는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았고 의심조차 받고 있지 않았다.

물론 그 대자보를 붙인 사람을 굳이 찾아내려는 시도 자체를 하고 있지는 않다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알 길은 막막하다.

그런 상황에서 대상을 정확하게 책정할 방법은 오직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뿐이다.

“그래. 우리가 찾는 대상이 학교 안에 있었단 말이지…. 그 시간에….”

보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학교에 숨어 사는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 되는데.”

앞선 사실을 긍정한다면, 남는 사실은 그 정도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다른 일들보다는 말이 된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건 참….”

보영은 씩 웃었다.

“어렵네.”

“너 전혀 안 곤란한 표정인데?”

월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그렇지. 이번 일이 잘못된다 쳐도 별문제는 없으니까.”

그러니 조금 더 복잡해지더라도 재미있는 일일 뿐이다. 곤란하지는 않다.

의욕이 생긴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상대의 존재가 확실하다면 좀 더 다양한 수단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대방은 메시지를 이해한 상태라는 말이기도 하고.”

상대는 메시지를 이해했다. 그렇기에 상대방은 월이에게 답장을 한 것일 테니까.

“그렇지.”

“그럼 어떤 의미로는 편하지.”

어쨌든 이쪽의 말을 알아듣기도 한다는 말이고, 쪽지를 사용했다는 것은 이쪽의 의도에 어느 정도 맞춰 주었다는 뜻이다.

“다른 방법을 더 고민할 필요 같은 건 없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설이는 난처한 듯 말했다. 월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는 뭐라고 쓰면 되는데? 상대가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하잖아?”

“일단 하나 물어보자. 너희 그만둘 거야?”

보영은 두 사람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만둘 거라면 시작하지 않았다. 그것은 보영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원치 않는 접촉을 계속 시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만두지는 않을 거야.”

이유는 다 다르다.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중간에 그만두는 것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혹은 그냥 재미로.

하지만 결론은 같다.

“그럼 뭐, 하던 대로 해야지. 기분을 덜 해치고 접촉하는 방향으로 가자. 확실히 조금 갑작스럽게 접촉한 느낌은 있으니까.”

보영의 결론에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건 어때?”

설이는 빈 편지지 하나를 꺼내 이렇게 적었다.

[좋아하는 꽃이 뭔가요?]

“아무 내용도 없는 거잖아 이거.”

문장을 본 월이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미심쩍어 했다. 반면 보영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나는 좋다고 생각해. 오히려 아무 내용도 없으니까 더 좋을 수도 있겠어.”

경계하는 사람을 상대로 맥빠지는 수준의 이야기를 하는 건 나쁘지 않다. 친밀감을 쌓는데 필요한 건 원래가 이런 쓸모없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것도 나름 하나의 메시지라고. 우리한테는 적의가 없다는.”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으나 듣다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여 월이는 알아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알아서 해. 어련히 잘 하겠지.”

어차피 그쪽 방면의 판단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 몇 배는 나을 것이다. 어설프게 자극하는 것보다 확실히 그런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오케이 그럼 일단 이건 이대로 가자.”

세 사람은 대자보에 관심이 줄어든 타이밍을 타 작은 종이 하나를 대자보의 구석에 붙였다.

“이 정도면 알아보겠지?”

“숨겨진 메시지도 알아보는 사람인… 사람이겠지?”

“사람이긴 하겠지.”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나니 시간이 좀 비었다. 그 김에 월이는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아 맞다. 나 어제저녁에 학교 앞에서 핫도그 샀는데.”

“어, 그 학교 앞 할머니? 저녁 꽤 늦게까지 하시지.”

“설명을 안 해도 아는구나.”

보영은 당연하다는 듯 그 할머니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어쨌든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기는 했다.

“어쨌든 그 할머니께서 사람 좀 찾아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우리 학교 학생인데 돌려줄 게 있으시대.”

“응? 그래? 별일이네. 어쨌든 몇 학년인데?”

“우리랑 같은 넥타이 색이라니 같은 학년이겠지. 이름은 당연히 모르시는 거 같고. 생긴 것도 사실 좀 가물가물하신 모양이던데 좀 있다 같이 가서 그게 누구일지 좀 알려주라. 너라면 누구인지 알 것 같거든.”

보영은 별다른 불만 없이 흔쾌히 승낙했다.

“응,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으니까 금방 하겠지 뭐. 조금 있다 같이 가자. 가는 김에 오랜만에 하나 먹어볼까. 거기 핫도그 맛있는데.”

* * *

할머니의 포장마차에는 사람이 없었다.

“왜 사람이 없지?”

맛이 없는 것도 아닌데 사람이 없는 게 의아하다. 그 대답은 보영이 알고 있었다.

“여긴 원래 야자 끝난 애들이 많이 찾아.”

“아하.”

그렇다면 그렇게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것도 말이 된다. 월이는 납득하고는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월이가 먼저 인사했다. 할머니는 바로 알아봤는지 반갑게 맞았다.

“아이고, 진짜 왔네. 오늘은 일찍 왔어?”

“어제 약속했잖아요! 이 애가 그 애예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아시죠?”

보영은 씩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는 저게 누군가 잠시 가물가물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챘다.

“어디서 봤다 했더니 옛날에 자주 보던 그 친구 아냐? 아이고, 반갑네. 왜 요즘은 안 왔어?”

“아유, 요즘 좀 바쁘게 살아서요.”

보영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역시 더 말하지 않고 하지 않고 핫도그 세 개를 기름 속에 던졌다.

“그래, 뭐 학생이라면 말이 되네. 성격으로 보나 뭘로 보나 아주 딱이야 딱!”

할머니는 그 학생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금 생겼는지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보영 역시 쾌활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보영은 알아서 대화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뒤에서 핫도그 냄새나 맡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아유, 제가 그런 데는 최고죠. 그 학생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으세요?”

“응, 그래, 내 정신 좀 봐. 그 이야기부터 해 줘야지. 일단 머리가 좀 길었어. 거의 눈까지 덮을 정도였지. 그리고 음…. 기억이 잘 안 나네…. 옷을 그렇게 깨끗하게 입지는 않았던 기억만 좀 나네.”

“아이고, 할머니 그 정도로 제가 어떻게 찾아요.”

보영은 머리를 탁 짚으며 말했다. 할머니 역시 무안했는지 조금 더 천천히 고민했다.

“응,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래, 그 이야기부터 해야지.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이에요?”

“그게 언제더라? 일 년 전인가 이년 전인가?”

“네?”

보영은 황당함을 느꼈다.

“그래, 일 년 된 거 같구만. 작년 겨울에 사 갔어.”

“어, 할머니. 죄송하지만 작년 겨울 일이면 좀 너무 옛날 아닌가요? 저희 일 학년 때 이야기인데.”

보영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론 못 찾아요.”

할머니의 외양 묘사로는 찾을 가망이 없기에 물었던 일인데, 듣고 보니 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만 들었을 뿐이다.

“그냥 포기하시는 게 어때요?”

할머니는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돈 문제는 몇 년이 지나도 제대로 갚아야 하는 거야. 은행 말고 다른 데서 빚지고 제대로 사는 놈 하나도 못 봤네, 난.”

“아니, 뭐 그건 알겠는데요.”

문제는 일 년 전 머리가 길었던, 그리고 교복이 더러운 남학생이라는 점을 가지고 어떻게 찾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전교생을 다 한 번씩 데리고 오면 알 수도 있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가만히 뒤에서 듣고 있던 설이가 물었다.

“작년 겨울이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거지?”

“응? 무슨 말이야?”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이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게, 1월도 겨울이고 12월도 겨울이잖아. 둘 다 작년이지만 우리가 지금 2학년이니까, 같은 학년이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냐? 작년 1월이면 입학을 안 했을 테니까.”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셈을 좀 하더니 말했다.

“응, 생각났네, 생각났어. 그거 작년 1월이야.”

“그럼 입학하기 전이잖아. 졸업생 같은데요?”

아무리 발이 넓다지만 졸업생까지는 어렵다며, 보영은 양손을 들었다.

“그러면 못 찾나?”

“네, 아마 이미 졸업했을 거예요. 할머니.”

보영의 말에 할머니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돌려줘야 하는데 그러는 모습이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고, 가지 않을 것도 같았다.

“음, 작년 1월이면 그런데 왜 학교에 왔을까?”

“글쎄. 졸업식 때문에 온 거 아냐?”

설이는 궁금했는지 월이에게 물었다. 그러나 월이 역시 뚜렷한 답을 낼 수는 없었기에 두루뭉술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영은 뒤에서 하는 그런 대화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질문했다.

“그게 시간이 언제였어요?”

“모르지 나야. 그냥 많이 늦었다는 것만 알지. 장사 끝날 때쯤 왔으니 저녁 늦게 기는 한데 그게 몇 시인지는 매일 달라져서 난 몰라.”

할머니의 말을 들은 보영은 그 교복을 입은 졸업생이 왜 저녁에 학교에 왔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조금, 이상하긴 하네요.”

졸업생이 학교에 낮에 방문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서류를 떼거나 뭔가 다른 용무가 있으면 올 수도 있다. 재학생이 학교에 밤에 나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1월에 교복을 입은 졸업생이 밤에 학교로 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보영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혹시… 혹시 말이에요.”

“응?”

할머니는 낙심한 듯한 표정으로 보영을 쳐다봤다. 반면 보영은 뭔가 한 가지 떠올린 것이 있는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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