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8)
달이 별로 없는 밤이다. 이름도 모르는 건물 옥상에서 월이는 기지개를 켰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월이는 저 멀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월이는 남몰래 보영을 관찰하고 있었다. 나쁜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혹시 투명인간이 보영이를 노린다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후, 별일 없는 건 다행이긴 한데… 이거 근데 꽤 피곤하네.”
항상 몸을 긴장시킨 채 있는 것은 몸도 몸이지만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자신이나, 혹은 설이를 노리는 건 상관없다.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보영이를 노린다면 보영은 절대로 대처할 수 없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까다로운 거구나.”
지금까지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적이라고 생각하고 대처하려고 보니 꽤 부담스럽다.
상대가 보이는 녀석이라면 그냥 싸우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반 이상은 해결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과 싸울 수는 없다.
애초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기습을 염두에 두고 몸을 긴장시키는 게 부담이 적을 리 없다.
다행히도 월이가 그렇게 대기하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말은 투명인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고, 월이는 헛고생을 했다는 말이다.
분명 나타나기를 바랐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 없는 고생이었다는 건 조금 아쉽다. 그런 묘한 감정을 삼키며 월이는 난간에 기대섰다.
“지금까지 안 나타났으면 나타날 생각이 없는 거겠지….”
혹시 자신이 이렇게 붙어서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 월이가 한 것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는 종류의 미행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보영이는 완전히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고, 누군가 습격하려고 했다면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다.
나타나지 않은 것이든, 못한 것이든 이 시간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투명인간은 오지 않을 거라 판단해도 될 것이다.
월이는 보영이 집에 들어갈 때까지만 지켜보겠다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보영이는 이 늦은 시간까지 집에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그렇기에 월이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했다.
“지금 이게 마지막이겠지? 설마 더 돌아다니지는 않겠지?”
다행히 월이의 생각대로 그게 마지막이긴 했던 모양이다. 보영은 마지막으로 어느 집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게 보영이의 집인 것처럼 보였다.
월이는 드디어 끝났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 이제야 집에 들어간다고? 쟤는 진짜 뭐지?”
월이가 지켜보고 있는 동안, 보영이는 참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어느 가게에 들르기도 했고 또 누군가를 돕기도 했다. 가끔은 뭔가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아 내기도 했다.
단순한 봉사활동 같아 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게 다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흥신소… 비슷한 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으나 겉보기에는 그래 보인다. 월이는 방과 후 보영이 뭘 하는지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내 생각보다도 더 대단하네….”
그렇게 거의 굴러가듯 계단을 뛰어간 이유가 있기는 있었다. 시간 낭비 없이, 발에 모터라도 단 듯 돌아다녔다. 학교를 나서고 나서 저녁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진짜 이렇게 오래 걸릴지는 몰랐는데.”
월이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봤다. 이미 시간은 열한 시가 넘은 지 오래다. 방과 후 지금 이 시각까지 계속해서 보영은 바깥을 돌아다닌 것이다.
-띠리리릭-
월이가 핸드폰을 집어넣으려는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전화가 울렸다. 월이는 자신도 모르게 바로 전화를 받았다.
“깜짝 놀랐잖아요.”
월이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하고 있네]
소장은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노리고 했죠?”
분명 소장이라면 자신이 깜짝 놀랄 타이밍을 골라서 전화를 했을 것이다.
[당연히 노린 거지, 너 하던 끝나는 거 맞춰서 한 거니까.]
소장의 솔직한 답에 할 말이 없어진 월이는 입을 삐쭉거렸다.
“으음…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뭐 시킬 일이라도 있어요?”
그 부분을 더 물어도 의미는 없겠다 싶어 월이는 곧바로 본론을 물었다.
“저한테 직접 전화하는 거, 처음 아니에요?”
그렇기에 월이는 조금 긴장한 채 물었다. 항상 월이가 해야 할 일은 태주나 시아에게 들었지, 소장에게 들어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처음이지. 돌아오는 길에 학교 앞에 보면 이거저거 팔고 계신 할머니 한 분 계신데, 그분한테 핫도그 좀 사 와라.]
핫도그? 내가 아는 그 핫도그인가? 월이는 순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왜 하필 핫도그지? 그게 다예요?”
월이는 설마 그거 하나 때문에 전화를 한 건가 싶어 당황했다. 하지만 소장은 웃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응. 그게 다야. 거기 핫도그 맛있거든. 주머니에 오천 원 있는 거 알아. 그거면 딱 맞춰서 사 올 수 있을 거야.]
월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봤다. 진짜로 오천 원이 있긴 했다.
“진짜 그게 다예요?”
[어. 진짜 그게 다야. 할머니께 안부 전해 드리고.]
소장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늘 적응이 안 되는 스타일이다.
“갑자기 무슨 핫도그를 사 오라는 거야?”
월이는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뜬금없을 뿐이지 나쁠 건 없다.
갑작스럽게 새로 어려운 일이 주어지는 것보다 그냥 핫도그나 몇 개 사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대체 장사하는 할머니가 어디 계신다는 거야?”
* * *
월이는 옥상에서 옥상을 뛰어넘으며 학교 근처까지 갔다. 소장이 있다고 말했으면 있기는 할 테니 길을 위주로 유심히 살폈다.
월이는 그렇게 금방 포장마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월이는 남들 안 보는 곳에서 슬쩍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처음에는 소리 나지 않게 떨어지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몇 번 해보니 이 짓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흙먼지가 조금 날렸다. 월이는 옷에 묻은 먼지들을 조금 털어낸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포장마차 앞으로 향했다.
“어서 와, 학생.”
주인할머니는 나이가 조금 있어 보였다. 월이는 힐끗 핫도그를 살폈다. 핫도그는 딱 다섯 개 남아 있었다. 확실히 소장 말대로 인원수에 맞춰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핫도그?”
할머니는 핫도그를 보고 생각에 잠긴 월이를 보고는 물었다.
“네! 다섯 개 다 주세요.”
“그래, 원래는 하나에 천오백 원인데, 학생 덕에 깔끔하게 다 끝내고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냥 오천 원만 받을게.”
“앗, 네. 감사합니다…!”
이게 원래 오천 원에 다섯 개가 아니구나. 월이는 살짝 당황했다.
“거기다, 마지막 손님이기도 하니 조금 서비스도 줄까? 시간은 괜찮지?”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더 튀기면 이게 또 맛있거든.”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주 얇게 반죽을 다시 입힌 후 기름에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학생은 지금까지 학교에 있었던 거야? 야자인지 뭔지도 이 시간까지 하지는 않을 텐데?”
기다리는 동안 심심했는지 할머니는 월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학생이 아닌가? 아닌데, 교복 입고 있는 것 보면 학생은 학생인데….”
“아, 아뇨. 그건 아닌데…. 그냥 근처에서 볼일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장사하시는 거세요?”
피차 늦은 시간에 우연히 만난 건 다름없다.
“그러네, 학생 늦게 돌아다니는 걸 신기해할 때가 아니었어.”
할머니는 멋쩍은 듯 웃었다.
“그래도 어쨌든 조심해. 이 늙은이는 죽어도 괜찮지만 젊은 사람이 다치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월이는 조금 당황했다. 그러고 보면 소장은 할머니께 안부를 전하라 했다. 그러나 알던 사이도 아닌데 무슨 인사를 하면 좋을까. 월이는 적당히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런데 진짜 늦게까지 장사하고 계시네요. 저는 사실 이 시간에 하는 포장마차 별로 본 적이 없어요.”
“그거야 학생이 어려서 그렇지.”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고, 월이는 당황했다.
“원래 술 팔던 포장마차 하는 버릇이 남아서 그래. 그런 포장마차는 원래 새벽 늦게까지 하거든.”
“엉… 그런가요? 그래도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별로 없긴 하지. 그래도 학생처럼 가끔은 있거든…”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핫도그를 기름에서 건져냈다. 바삭하게 튀겨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넥타이 색깔별로 학년이 같나?”
“네?”
월이는 자기 가슴팍을 내려다보고는 대답했다. 그곳에는 약간 노란 빛이 도는 넥타이가 있었다.
“네, 그렇죠?”
“응, 역시 그랬구만. 그럼 혹시 학생 하나만 찾아줄 수 있나? 돈 때문에 그런데.”
“어, 누가 도망갔나요?”
이 학교 학생이 먹고 도망갔다면 이야기 정도는 전해볼 만했다.
“아니, 돈 안 내고 도망간 건 아니고 돈을 안 받고 도망을 가더라고.”
월이는 예상과는 다른 말이 돌아오자 당황했다.
“네?”
“이 시간에 핫도그 사 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텐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말이야.”
할머니는 말하는 도중에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전에 누가 오만 원 한 장 주고 핫도그를 사 갔거든. 학생이랑 같은 학교 학생인데 잔돈이 없다고 핫도그 하나 사고 오만 원을 내더라고.”
“그래서요?”
“그런데 마침 나도 잔돈이 부족했지. 아무리 그래도 오만 원짜리니까 말이야. 이걸 어째야 하나 하고 있는데 그 학생이 말하더라고. 남은 돈은 다음에 와서 받겠다고. 그래서 다음에 오면 돈 돌려주려고 하고 있는데 그 학생이 오질 않네.”
나름 미담이다. 나중에 돌려받겠다 말한 그 학생이나, 어떻게든 그 돈을 돌려주고 싶은 할머니. 두 쪽 다 분명 의도가 참 좋다.
“혹시 그 학생 이름 아세요?”
그렇기에 월이는 무심코 질문했다. 혹시 그 학생이 누군지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모르지. 그 학교 남학생이라는 거밖에 몰라. 학생은 내 이름 알아?”
“모르죠.”
월이가 당황해서 말하자 할머니는 낄낄 웃었다. 할머니 나름의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기억하긴 해. 학생이랑 같은 노란 색의 넥타이였어.”
“아, 그래요?”
넥타이의 색이 같다면 같은 학년이었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의 넥타이로 이 학교는 학년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월이는 그 사람을 찾는 일이 어렵지는 않겠다 싶어 말했다.
“제가 한 사람을 아는데요.”
“어떤 사람?”
“우리 학교 학생인데 엄청 발이 넓거든요. 혹시 걔라면 그게 누군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발이 넓다고?”
할머니는 별 기대는 없어 보이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번 데리고 와주면 좋겠네.”
“네, 그럼 내일 올게요.”
월이는 그렇게 말한 뒤 핫도그 봉투를 받아 들었다. 핫도그의 맛은 확실히 뛰어났다.
무심코 두 개씩 먹어버린 사람들이 나온 탓에 태주와 소장은 핫도그를 전혀 먹을 수 없다는 사소한 문제는 있었지만, 정말로 사소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