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7)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1층을 시아가 보고 있었다. 오늘처럼 태주가 다른 일을 하러 가는 날이면 시아가 대신 앉아있곤 했다.
물론 시아는 음료수를 만들어 주는 일은 할 줄 모른다. 시아가 카페 일과 관련해서 할 줄 아는 건 마시는 것밖에는 없다.
“그래서 이 편지가 신발장 안에 들어있었다고.”
“네! 월이 신발장이요.”
하지만 상담이라면, 특히나 괴담과 관련한 상담이라면 태주보다는 시아다. 그렇기에 중간평가를 받기 위해 설이는 시아의 앞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날 내버려 둬, 라….”
시아는 지루한 듯 턱을 괸 채 말했다.
“월이가 왜 나갔는지 알겠군. 상대가 자신을 봤다는 확신이 있었구나.”
월이의 성격상 그건 꽤 경계할 만한 일이다.
자신이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자기 주변 사람을 노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월이가 참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 별일은 없겠지만.”
“별일 없을 거라고요?”
“그래. 높은 확률로.”
시아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잠깐 평가부터 하자면, 지금까지는 잘했다. 사건 자체야 아직 한참 남았지만.”
“정말요?”
설이는 화색을 띠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한 대로의 결과를 끌어냈으니 이건 성공이지.”
“그건 성공…이긴 하죠?”
설이야 자신감이 없었지만, 그래도 메시지를 전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일단 상대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접촉하려고 했다는 부분은 조금 지적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그것도 월이가 있다면 그렇게 조심할 필요는 없고.”
이래저래 생각보다 호평이다. 설이는 그게 조금 의외였다.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부족하지.”
시아는 피식 웃었다. 설이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너희가 지금 고생하는 건 여러모로 경험이니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어.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소리나 하고 싶지는 않지만, 고생하지 않으면 성장욕구를 느낄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니.”
게다가 부족하다 말하는 것도 속도의 문제다. 틀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니 굳이 교정해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 않아서요….”
설이는 조금 찌푸린 채 말했다.
“저도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설이가 지금까지 한 일은 투명인간의 흔적을 눈으로 본 것과 글의 내용을 좀 쓴 것뿐이다.
“저는 뭘 더 해야 할까요?”
설이가 올려다보자 시아는 조금 웃었다.
“불안하니?”
시아의 답은 설이의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답변이지만, 너무나도 정확한 대답이었다.
설이는 잠시 침묵하다가는 말했다.
“네. 제가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래요.”
분명 설이의 눈은 특별하다.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시아에게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직은 별 대단한 일을 해낸 적이 없다. 오히려 가끔 실수할 뿐이다.
반면 이곳의 다른 사람들은, 하다못해 괴담과 관련 없는 보영이조차 각자 무언가를 해내고 있었다.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설이는 확실히 조급해하고 있다. 시아는 이 말을 해 줘야 할 필요성을 조금 느꼈다.
“쓸데없이 조급하게 구는구나.”
“…조금 그래요.”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너는 아직 도움이 되고 있지는 않아.”
“윽….”
본인도 알기에 설이는 그저 살짝 움츠릴 뿐이었다.
“분명 네가 없어도 지금까지의 있었던 일들을 해결하는 데 별문제는 없었겠지.”
지금까지 있었던 몇 건의 사건에 설이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만 해도 이미 충분히 대단한 거야. 아직 배우는 단계니까.”
비교 대상을 다른 사람들로 잡으니 본인이 너무 초라해지는 것뿐이다. 설이는 분명 꽤 괜찮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이 인원들 사이에서 방해가 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게다가 네가 주는 건 비교적 작은 도움이지만, 꽤 정확한 도움이기도 해.”
“하지만 사소한걸요.”
“정말로?”
시아는 조금 웃었다.
“네가 지금까지 한 일을 길가에 있는 아무나 잡아서 데리고 와서 시키면 할 수 있는 일이니?”
“…아뇨.”
비록 대부분의 일이 눈이라는 특별한 재능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건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건 사소한 일이 아니야. 전문가가 그 정도로 만족한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지만, 신입에게 그 정도 이상을 바라는 것도 웃기지.”
그러니 낙담할 필요가 없다.
“네 생각대로 너 없이 우리끼리 일을 해결하는 것도 물론 가능해.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어. 당장은 너를 가르치지 않는 편이 편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끼리 일 하는 건 언젠가 한계가 온다.”
그러니, 지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시아는 말했다.
“넌 곧 도움이 될 거야.”
그건 분명히 칭찬이지만 결국 지금은 별로 도움이 안 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럴까요…?”
그렇기에 설이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다. 그게 표정에서 너무 잘 드러났기에 시아는 조금 웃었다.
“이미 지금 하는 일도 그런 일 아니니? 태주 말을 들어보면 잘 하고 있는 것 같던데.”
“하지만 너무 어려운걸요?”
한트라도 달라는 눈빛으로 설이는 시아를 바라봤지만, 시아는 웃었다.
“태주는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힌트를 주지 말라고 했지만.”
“앗, 아아….”
“하지만 이번 사건 같은 일은 너도 처음 겪는 일이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을 해 볼까.”
설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현재 왜 괴담들은 다 사라져갈까?”
“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질문이기에 설이는 되물었다.
“그게, 지금… 이거랑 상관 있나요?”
“있지. 왜냐하면 이건 요즘은 보기 드문 형태의 괴담이거든.”
시아는 말했다.
“이건 분명히 사람이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거니까.”
지금까지 겪은 다른 일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지금까지 네가 본 사례들을 한번 볼까? 망량과 만난 사람, 저주의 비디오를 본 사람 등등… 어느 쪽이든 사람 본인이 괴담이 된 게 아니야. 괴담 속의 존재와 만났을 뿐이지.”
설이는 잠시 생각이 멈췄다. 투명인간과 사람이 만난 게 아니라, 사람이 투명인간이 되었다.
확실히 처음 겪는 일이다.
“어, 그렇네요? 아니, 하나 있어요!”
“네 언니 말이구나. 하지만 잠시 예외로 둬 주렴. 지금은 현대에는 왜 괴담이 사라져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니까.”
시아는 조금 진지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일단 설이는 시아의 첫 질문에 답했다.
“괴담이 사라지고 있는 건 그냥 사람들이 안 믿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설이는 예전에 비슷한 말을 들은 적 있었다.
“많은 사람이 알수록, 그리고 많은 사람이 믿을수록 그렇게 있을 수 있다면서요.”
“그래. 정확하지.”
시아는 웃었다.
“그렇다면 현대에 괴담 속의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니?”
“모르겠어요.”
설이는 아무래도 경험이 없으니 알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사건은, 정확히는 네가 들어오기 직전과 그 이후까지는 그런 사건이 거의 없었지.”
사실 시아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만큼 드물다.
“사람이 괴담과 만나는 건 대체로 우연의 산물이야. 물론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이 만나지는 않겠지만.”
무언가 문제가 생긴 사람이 확률적으로 만난다.
“그럼, 사람이 괴담이 되어버리는 건요?”
“그것 말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그렇게 된단다.”
“그게 뭔가요? 자기가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던 거라도 된다는 말이에요?”
설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는 찬찬히 말했다.
“예시를 하나 들어볼까.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어떤 것이 유난히 안 되는 날. 그런 날을 사람들은 마가 꼈다 말한다.”
종종 쓰는 표현이다.
“우연히 뭐가 잘 안되는 날, 자기 실수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마가 낀 거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은 중요한 실패나, 혹은 큰 실수를 한 사람들에게서 많이 보인다. 도저히 그것이 자신이 한 잘못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거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람은 그것을 외부요인의 탓으로 돌리게 되지. 그것은 자신이 나쁜 무언가에 쓰였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그렇게 사람에게 마가 낀다. 한번 이렇게 설명하고 나면 다른 설명 따위는 필요 없다. 마가 끼었으니 뭐가 잘 안 되는 것이다. 컨디션이 어떻고 어떤 점에서 노력이 부족했고 하는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괴담에 따른 설명은 그런 강력함을 갖는다. 번개가 왜 치는지, 제우스의 존재를 믿고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렇게 괴담은 그 존재만으로도 다른 설명을 모두 필요 없게 만든다.
“다행히 예시로 들었던 평범하게 마가 끼는 정도는 사람이 금방 떨쳐 낼 수 있어. 애초에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거든. 하지만 떨쳐낼 수 없는 것에 엮이는 경우, 혹은 그 자체로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상태가 너무 심각할 경우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투명인간이 되었다는 건가요?”
“뭔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는 확실하지.”
무엇이 어떤 종류의 방식으로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시아도 모른다.
시아가 알 수 있는 건 어딘가 심각한 상태라는 것뿐이다.
“이런 건 태주가 참 귀신같이 잘 찾는데 말이야.”
사실상 별다른 특별한 힘도 없이 이 안에서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진짜 괴물에 가까운 건 태주 아닐까. 시아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나머지는 혼자서 한번 생각해봐.”
줄 수 있는 힌트는 다 줬다. 시아는 웃었다.
“혼, 혼자서요?! 여기서부터요?”
조금 더 설명이 이어질 줄 알았던 설이는 당황했다.
“여기까지면 충분히 이해하지 않았니? 혹시 지금까지 한 설명이 이해가 안 갔다면 다시 설명해 줄 수는 있는데.”
애초에 연습용 사건이었다. 여유가 있을 때 홀로 파고들어 볼 수 있는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 사건. 그러니 이 이상 설명하는 건 오히려 설이에게도 손해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여기서부터 더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설이는 조금은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전 투명인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걸요.”
“투명인간에 대해 모르더라도 할 수 있는 생각이야 있겠지.”
모르는 것에 너무 집중한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단서가 생기는 법인데. 마음이 약해진 시아는 아주 사소한 힌트를 하나 더 주기로 했다.
“힌트 하나 정도는 주고 시작해볼까.”
시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쪽지를 보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쪽지요?”
설이는 잠시 당황했다.
“음… 의사표현이에요.”
짤막하긴 했지만 확실한 의사표현이었다.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했구요?”
“자신을 찾지 말라는 말이겠구나.”
시아는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하는 이는 누구지?”
“…어?”
순간적인 직감이지만 꽤 중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건 중요한 질문이었다.
“뭐, 이것도 그리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어떤 사람이 나를 찾지 말라고 하지?”
“음… 자리를 비우거나, 숨거나… 그런 사람이요?”
“대부분 그런 사람이 나를 찾지 말라고 하겠지.”
나를 찾지 말아라.
“떠나고 싶은… 사람일까요?”
“글쎄.”
시아는 더 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설이는 조금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날 내버려 둬….”
홀로 뭔가 중얼거리며 생각하는 설이를 보며 시아는 미소지었다.
“내가 뭐라도 마실 걸 내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다. 다음에 태주와 둘이 있을 때 저 커피머신을 쓰는 방법이라도 조금 배워볼까. 시아는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