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6)
[마지막 닉네임 ‘투명인간’님의 사연이었습니다. 점심 시간이 거의 끝나 가는데 다들 좋은 하루 되길 바랍니다. 노래 제목은 invisible입니다. 이 노래를 신청하려고 아이디를 투명인간으로 하셨군요?]
“방송은 잘 됐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투명인간이 잘 들었을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확히는, 둘 다 대답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설이는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시들어가는 월이를 쳐다봤다.
“너는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거야? 씨씨티비 없는 곳만 알려주면 된다고 말하길래 뭐 나름대로 방법이 있나 했는데, 뭐? 벽을 기어올라? 너 제정신이냐 진짜?”
“…제정신이긴 했는데….”
월이는 십 분째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쭈뼛대며 돌아온 월이를 붙잡은 보영이는 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그런 위험한 짓을 했냐며 살벌하게 까고 있었다.
“하여튼 미친 거지. 창문으로 들어가서 창문으로 나온다고? 왜? 그럼 신문도 문이니까 다음엔 신문에 나오면 되겠네? 어디서 ‘여고생, 객사!’ 같은 거로 말이야! 그치?”
“아니… 안 다쳤잖아….”
월이는 이런 잔소리를 들은 것이 아주 오랜만이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애초에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이런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월이만 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걱정하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영이 저렇게 화를 내는 건 몰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월이는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을 그냥 잘라버릴 만큼 냉정하지는 못했다.
“안 다친 게 중요해? 그럼 살인미수는 뭐, 아무것도 아냐?”
“야, 아무리 그걸 살인이랑 비교하냐….”
“너 그렇게 구는 게 자살미수랑 뭐가 달라? 그거 내버려 두면 자살 방조야 방조.”
보영은 살벌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걱정을 끼친 죄도 있고 하니 월이는 가만히 들었다. 하지만 눈만은 설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와줘….’
설이는 그런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설이는 조금 미안한 마음을 품었다. 자신이 좀 잘 얼버무렸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설이는 눈치껏 물었다.
“저기, 그쯤 하면 괜찮지 않을까?”
“뭐?”
“으, 아니 그러니까, 우리 아직 메시지 이야기는 하나도 못했잖아.”
그 말에 보영은 시계를 살짝 보더니 혀를 한번 찼다. 아직 만족스러울 정도의 잔소리는 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후, 그래. 잠시 멈출까.”
“어휴.”
너무 티 나는 한숨이다. 순간 보영이 째려봤고 월이는 다시 움찔했다.
“어쨌든, 그래. 시간도 없으니 이 이야기를 하긴 해야지.”
“…그나저나 못 알아본 거 같지?”
설이의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봤다.
“아직 모르지.”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하지만 계속 눈치채지 못 할지도 모르잖아.”
대자보는 각 문단의 첫 단어만 읽으면 메시지가 된다. 하지만 그냥 읽으면 그저 좋은 말이 쓰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목표는 그 ‘투명인간’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투명인간이 알아보지 못해 실패하는 게 아닐까. 설이는 걱정했다. 하지만 보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메시지 전달은 성공적이었어.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해.”
“못 알아들을지도 모르는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래 붙어있을 수 있으니까 언젠가 눈치챌 수 있지 않을까? 내일도 모레도 방송부에 사연을 보낼 거니까.”
“어우, 오늘은 앞쪽이랑, 머리를 강조하는 말이었나?”
월이는 아직 정신이 약간 혼미한 채 물었다.
“그래, 닉네임도 투명인간이니까, 아마 자기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건 눈치챘을 거야.”
알지 모를지 확률은 반반이다. 그러니 계속 시도하면 언젠가는 통할 거다.
“매일 비슷한 의미의 닉네임으로 방송을 하면 한번은 듣지 않을까?”
“답이 안 오면?”
“그래도 답이 없으면… 뭐 어쩔 수 없나. 없는 거로 치던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든가 해야지.”
“아 맞아 그거!”
별수 없다는 보영의 말에 월이는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나 어제 학교 갔을…때… 야, 말 좀 하자.”
월이가 학교에 침투한 이야기를 하자마자 보영은 바로 시퍼렇게 눈을 떴다.
“아, 진짜 미안하다니까. 어쨌든 이 이야기는 해야 해. 나 어제 투명인간 만난 거 같아.”
그 말에는 아무리 보영이라도 더 화를 낼 수 없었다.
“뭐?”
* * *
“분명 창문을 잠근 누군가가 따로 있었어.”
월이는 자기가 겪은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비현실적인 부분을 적당히 검열하긴 했지만, 학교 안에서 겪은 일만은 거짓을 덧붙이지 않았다.
“학교 안에 분명히 누군가가 있었단 말이지….”
보영은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누군가가 닫았을 가능성은? 예를 들면 야간당직 서시는 분이라거나.”
“…그건 아냐.”
아무리 그래도 코 고는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말할 수 있다.
“순찰을 누가 돌았다면 그걸 모를 리가 있어?”
하지만 월이의 말에도 보영은 영 납득이 안 가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잖아?”
“투명인간이라면 보이지 않으면서 창문을 닫을 수 있어.”
월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보영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내가 투명인간이라고 표현하는 건 상대가 정말로 투명하다고 믿어서가 아니야.”
보영에게 투명인간은 일종의 비유일 뿐이다. 그 부분이 결정적인 관점의 차이였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좁힐 수 없었다.
“백 보 양보해서 투명인간의 존재를 인정한다 쳐도 그런 사람이 왜 학교에 남아있는데?”
게다가 이 지적은 꽤 지당하다.
“고작 창문 하나 닫아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고? 투명한 사람이?”
“…이유야 모르지.”
“그러니까, 이유도 모르고 하는 그 말을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보영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비상식적인 일이라도 나는 인정할 수 있어. 하지만 가능 불가능의 이야기나 혹은 합리나 비합리의 이야기라면 나는 가능하고, 합리적인 이야기만 믿는다고.”
처음으로 세 사람은 의견 차이가 났다. 그러나 그 의견 차이를 조율할 방법은 없었다.
최소한 지금 있는 재료들만 가지고는 그럴 수 없었다.
“일단, 좋아. 그 이야기는 일단 이 정도로 멈추자.”
“멈춘다고? 네가?”
“사람을 무슨 멈추지 않는 소방차로 보는 거야?”
보영은 영 찜찜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여기서 끊어냈다.
“어쨌든 아직 할 말도 있고 말이야.”
“어?”
보영은 월이를 다시 한번 붙잡았다. 이번엔 설이까지 같이 붙잡혔다.
“이거 아까 끝난 거 아니었어?”
“‘중단’이었지.”
월이는 조금 소름이 돋았다. 설이 역시 소름이 살짝 돋았다.
“저기, 난 왜?”
“너도 똑같잖아?”
보영은 싱긋 웃었다. 물론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알면서 안 말리는 게… 정상일까?”
결국, 설이 역시 어어, 하는 사이에 같이 잔소리를 듣는 처지가 되었다.
보영의 잔소리는 점심시간이 끝나는 예비종이 울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돌아가야 하니까 일단 끊긴 하는데, 진짜 너네 그렇게 위험한 짓 하는 건 마음에 안 드니까 고쳐. 안 그러면 내가 다 중단하고 뒤집어엎을 테니까.”
보영은 으름장을 놓았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이건 재미로 하는 일이야. 목숨 걸 일이 아니라고.”
그저 학교 안에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끼어든 일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누구 하나가 목숨 걸면서 해야 할 수준의 일인 것은 아니다.
“…미안하다니까.”
“아무튼, 다음에 또 그러면…”
말끝을 흐리는 보영의 말에 월이는 부르르 떨며 말했다.
“안 그런다니까.”
그 말을 들은 보영은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채 삼십 초도 되지 않아서 본종이 울렸다.
두 사람은 이제야 풀려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좋은, …좋은 친구야.”
설이는 머리가 조금 혼미하기는 했지만,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가끔 엄청 냉정한 척하는데 사실 안 그래. 사실 그래서 소개해 주고 싶었던 것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월이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 * *
“미안하다니까. 다음엔 안 그럴게”
방과 후에도 여전히 보영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물론 월이는 다음에도 그런 일을 할 생각이지만, 최소한 다음번에는 걱정하지 않도록 만들어야겠다는 반성 정도는 했다.
“못 미더운데.”
전혀 믿는 표정이 아니다. 결국, 월이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말은 할게.”
“안 한다는 말은 안 하는 거 봐라?”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어디냐는 듯 보영은 한숨을 쉬었다.
“아, 저기 조금만 더 가면 대자보 있는 데야.”
“답변이 왔을까?”
설이는 궁금한 듯 물었다.
“글쎄, 있으면 좋기야 하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벌써 왔을까?”
보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대자보 뒤편을 살폈다.
“역시 없네.”
붙여 둔 대자보 뒤편에는 자세히 보면 작은 틈이 하나 있었다. 아주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래, 하루 만에 답장 오는 걸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거지.”
그러나 보영은 말과는 다르게 입맛을 쩝 다셨다. 그게 누군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대화할 수 있다면 많은 부분이 쉽게 풀리기에 아쉬운 부분이었다.
“응, 어쩌면 너무 알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알고도 답할 생각은 없거나. 아니면 답변을 할지 말지를 망설이는 단계일 수도 있겠지.”
아쉽지만, 아쉽다 해서 바로 그만둘 것도 아니다. 여기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뭐, 일단은 가자고. 이대로 계속 있을 것도 아니잖아?”
“그래. 그래야지.”
결국은 눈에 띄는 소득 없이 세 사람은 돌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이 있고, 모레도 있었다. 그리 성급하게 굴 필요는 없다.
“느긋하게 가자고.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해 봐도 되는 거니까.”
보영은 믿지 않았지만, 월이는 상대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으니 나쁠 건 없다.
“그래. 어쩌면 내일이나 모레 답변이 올 수도 있고. 어쨌든 내일은 새로운 일이 일어나겠지. 나 그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
보영은 그리 말하며 후다닥 달려나갔다. 계단을 우당탕탕 내려가는 보영을 보며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봤다.
“…저건 안 위험한가?”
“내가 벽 타는 거보다 저게 더 위험해 보이는데.”
보영은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우당탕소리를 내며 내려갔다.
“저렇게 할 일이 많나?”
월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우리도 가자.”
설이의 말에 월이는 사무소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건 또 뭐야.”
월이가 신발장을 열자 그곳에는 종이가 한 장 있었다.
월이는 조심스럽게 종이를 꺼냈다. 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거 분명히 쪽지지?”
상대방은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답변은 오지 않았던 게 아니다.
‘날 내버려 둬’
답변은 이미, 한참 전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