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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70화 (70/269)

7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5)

“시끌시끌하네.”

보영은 싱글벙글이었다.

“예상 이상의 반응이야, 이게 다 내용이 좋아서 그렇지.”

대학교면 모를까 고등학교에 그런 대자보가 붙는 일은 드물다.

온종일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심지어 몇몇 학생은 수업 중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수업에 방해된 건 아닐까?”

설이는 교사들에게 조금 미안한 감정으로 말했다.

“뭐, 그건 우리 탓이 아니지.”

보영이는 악동 같은 미소로 웃었다. 수업에 집중 못 하는 것까지 챙겨줄 의리는 없다.

“게다가, 선생님들도 나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단 말이야.”

월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뭐, 내용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분도 있던데.”

어떤 선생님들은 그만 떠들고 수업에나 집중하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대자보 내용에 대해 학생들의 생각을 묻는 교사도 있었다.

“진도 빨리 뺀 사람이나 그렇긴 한데.”

월이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어쨌든 숨겨진 메시지 같은 걸 찾은 교사는 없어 보이지?”

월이의 질문에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자보 내용 가지고 즉석 토론까지 시키던 사람도 있더만, 뭐.”

“그렇게까지?”

설이는 조금 당황했다.

“그냥 쓴 글이 그렇게 된다고?”

“그거 좀 너무 잘 써서 말이야….”

내용 자체를 잘 썼다기보다는 의도를 너무 잘 숨긴 글이다.

당연히 ‘투명인간 나와라!’ 같은 내용의 글을 쓴다면 곧바로 철거당할 게 뻔했기에, 보영은 의도를 숨길 수 있는 글을 써 달라 부탁했고, 설이는 그걸 충실하게 써냈다.

“그냥 읽으면 읽히게 만들어진 글이란 말이지.”

그러나 너무 잘 쓴 세로드립은 의도를 파악 받지 못하듯, 지금 설이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의심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학생 중에서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교사 중 아무도 이것이 다른 메시지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하지 못했다.

“정작 그 사람이 메시지를 눈치챌 수 있을지가 좀….”

설이가 던진 의문 쪽이 오히려 가능성이 높다.

“…그럼 이거 헛고생 아냐?”

월이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래서 일부러 라디오에다 사연 넣어두기는 했는데.”

어제 대자보를 만들면서 미리 고민했던 문제다.

“그것까지 듣다 보면 당연히 눈치채지 않을까? 그리고 이거, 꽤 오래 붙어있을 거 같거든.”

내용물이 너무나도 그럴듯한 나머지 이 대자보가 쉽게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아니다.

“며칠씩 보다 보면 알지 않을까. 그동안 라디오에 사연도 계속 넣고.”

그래도 안 온다면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정말로 다 해본 셈이니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다.

“다행이네, 솔직히 바로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했거든.”

설이는 다행이라면서 웃었다.

“원래 붙은 대자보는 내용이 괜찮으면 바로 뗄 명분을 찾기 힘들어지거든. 너도 잘 알아 둬. 사람들은 실리와 명분을 구분하려고 하는데 어떤 종류의 일은 명분이 곧 실리야.”

보영은 그렇게 말하며 그저 싱글벙글할 뿐이었다. 월이는 저런 보영이는 처음 봤다.

“너 엄청 즐거워 보인다?”

“그야 당연하지!”

보영은 솔직히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재밌다. 소문을 모으기만 했지, 내 본 적은 없는데 말이야.”

“…그래, 재밌겠네.”

조금 이해는 갔다. 월이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명분이 곧 실리라.”

설이는 뭔가 새로운 말을 들었다는 듯 생각에 잠겼다. 보영은 당연하다는 듯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 세상에 힘이라는 건 결국 머릿수잖아.”

결국 누가 이기느냐는 누가 더 많은 아군을 모았는가에 대한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을 적은 비용으로 설득하려면 결국 정당한 명분을 확보하는 게 최고거든.”

그런 점에서 이번 대자보는 정말 좋은 방법이었다.

“원래는 저걸 붙이는 거 자체가 허가받지 않은 일이라 떨어져도 할 말 없는 일이지만, 저건 명분이 있다 보니 오히려 떼려고 하면 반대가 생길 거야.”

그렇기에 대자보는 충분한 이슈몰이를 하는 동안 붙어있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까지 한 번에 막 이슈가 된 건 아무도 모르는 사이 붙은 대자보라는 점이 크다.

“이러면 며칠씩이나 안 기다려도 될지도 모르겠는데?”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린다.

“그래서, 어떻게 한 거야?”

보영은 신기하다는 듯 월이에게 물었다.

“어… 어?”

“학교 침입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담 넘는 거 이상으로는 알려주지 않았는데, 정말로 성공해 버려서.”

별로 기대도 안 했는데 정말로 성공해버렸다.

“어떻게 했어?”

“그게, 말하자면 긴데….”

월이는 눈을 굴렸다. 아무리 그래도 한 번에 훌쩍 뛰어넘어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기니까 쟤한테 들어.”

“뭐?”

보영이 어처구니없어하는 사이 월이는 곧바로 도망쳤다.

“나 할 일 있는데, 그거 다 이야기하면 못 할 거 같거든!”

저 멀리 사라지며 월이는 외쳤다.

“…그게 말하기 그렇게 어렵나?”

보영은 어처구니없었지만, 이내 눈을 빛냈다.

“그러면… 어쨌든 너한테 들으면 되는 거지?”

“어, 아하하…”

설이는 난처하게 웃었다. 그야 어떻게 했는지 짐작이야 가지만, 그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벽을 기어올랐다는 거 같은데…”

설이는 대충 얼버무렸다.

“벽을 기어올라? 진짜로? 걔 미쳤냐? 아니, 내가 잘못 들은 게 맞지?”

“잘 들은 게 맞을걸…”

설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영의 눈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빛났다. 아니, 정확히는 빛나는 게 아니라 불타는 것에 가까웠다.

“걔 어디 갔냐?”

* * *

반쯤은 도망친 것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월이는 창문을 확인해야 했다. 자신이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창문을 닫은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창문을 닫은 누군가는 높은 확률로 투명인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월이는 영화 감상부로 향했다. 아직 자신이 무언가와 만났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확실하지는 않으니까.’

월이는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 번씩이나 실수할 리 없다고도 생각하고는 있었다.

왜 창문을 닫았는지는 모르겠다. 자신은 그걸 추측할 수 있을 만한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는 몰라도 굳이 닫았다는 건 그 상태를 더 좋아하는 거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월이는 일부러 창문을 열어 두고 탈출했다. 만약 창문을 누군가가 일부러 닫은 것이라면, 월이가 나간 다음에도 창문을 닫았으리라.

월이는 금세 영화 감상부의 문 앞에 도착했다.

“계세요오?!”

방문을 두어 번 노크했다.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이 들리더니 달칵 하고 문이 열렸다.

“점심시간에 무슨 일이야?”

문을 열자 나온 것은 선우였다. 의아하다는 말투다.

“지금까지 직접 찾아온 적은 없잖아? 혹시 또 무슨 일 있는 거야?”

조금 경계하는 말투다. 물론 월이를 경계하는 건 아니다. 뭔가 이상한 일이 또 생겼는지 물을 뿐이다.

“어, 아니 그냥···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음, 나한테? 아니면 쟤한테?”

선우는 안에서 한창 태블릿 컴퓨터에 키보드를 연결해서 두들기고 있는 남학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뭔가 열심이네.”

월이가 무심코 그렇게 말할 만큼 열심히 또 뭔가를 쓰고 있었다.

“아무나 대답해줘도 상관은 없는데··· 근데 쟤한테 지금 뭘 시킬 수 있긴 하냐?”

“아마 안될 걸···? 저번에 같이 영화관 갔다가 또 뭔가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놀러 갔더니 갑자기 작업량이 늘어나는 사람이야.”

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다. 같이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이 또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끼리끼리 노는구나.”

어떻게 보면 비난으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선우는 그 말이 또 기분 좋게 들렸나 보다. 잘 어울리니 좋긴 한데, 굳이 눈앞에서 저러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

“하여튼 다른 것 때문은 아니고 저 창문.”

“응? 창문?”

“어. 오늘 아침에 창문 열려 있었어?”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그래도 선우는 별 의심하지 않고 대답을 해 줬다.

“음··· 글쎄. 잘은 모르겠는데···. 지금 열려 있긴 한데 처음부터 열려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신경 안 쓰면 모르긴 하지.”

납득은 가지만 곤란하다. 월이가 그럼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닫혀 있었어. 내가 오자마자 환기하려고 문 열었거든.”

수현이 어느새 잠시 타이핑을 멈추고 월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창 뭔가를 두드리고 있으면서도 바깥의 소리는 듣고 있나 보다. 나름대로 좋은 변화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이 백만 배는 낫다.

“뭐야, 밖에 신경 쓸 여유 있으면 그냥 처음부터 네가 나오지 그랬냐.”

월이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수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유가 있진 않은데, 직접 와서 물어볼 정도면 꽤 중요한 거 같아서 그랬지. 또 이상한 일이 있는 거 아냐? 그럼 이 마감보다 중요한 일일 거고.”

“그, 그렇지?”

꽤 정확한 파악이다. 월이는 조금 눈을 깜빡거렸다.

“도움받은 적이 있는 입장에서 나도 그냥 입 싹 닫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더 물어볼 게 있어?”

“아니, 없어. 그런데 너… 상태 많이 좋아졌구나?”

월이는 이게 전에 봤던 사람이랑 동일인물이 맞나 싶어 찬찬히 다시 봤다. 지금 다시 보니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든 면이 바뀌어 있었다.

머리는 관리되어 있었고 교복에 다림질도 다 되어 있었다. 혈색도 좋아졌다.

“너 얘한테 무슨 일을 한 거야…”

월이는 수현 대신 선우를 보고 물었다. 선우는 얼굴을 붉히며 씩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 대답 역시 수현로부터 나왔다.

“무슨 일을 한 건 나지. 물론 계기가 선우 때문인 건 맞지만.”

당당하게 말하고 있지만 수현 역시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월이는 그 꼴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고, 그래. 잘났다~”

월이는 입맛을 다셨다. 학교에서 대놓고 연애기류를 풍기고 있는 걸 보니 속이 쓰린 탓이었다.

“어쨌든, 질문할 건 그게 다라고?”

“그래. 그거 하나였어. 창문이 확실히 닫혀 있었단 말이지.”

수현은 다시 한번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겨있었어. 아예.”

“그래, 그렇단 말이지.”

월이는 잘 들었다며 인사했고, 수현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바로 타이핑에 착수했다.

월이는 곧바로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 대자보 너희가 붙인 거야?”

선우는 따라 나오더니 물었다. 아무래도 이쪽도 묻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월이는 순간적으로 밝히지 말까 하다가 그냥 말해 주기로 했다.

“응, 내가 붙였어. 비밀이야.”

“응, 그럴 거 같더라. 내용 좋던데?”

선우는 역시 그랬다며 살짝 웃었다. 근데, 그 내용물은 내가 쓴 게 아닌데. 월이는 설명하려다가 어쩐지 구차해지는 것 같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게 봐 줬으면 다행이네.”

월이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확인할 것은 다 했으니 이제 돌아가 정보를 공유할 일만 남았다. 이제 잠시 뒤면 라디오가 시작할 시간이다.

“별로 안 돌아가고 싶은데….”

월이는 출발하기 직전 설이에게 설명을 떠넘기고 왔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거야 뻔한 일이다.

그렇게 복도를 지나던 월이는 문득 자신이 붙인 대자보에 시선이 닿았다.

“뭐, 뭐어… 이 정도 읽고 가는 건 상관없겠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월이는 말했다.

“으, 아니 나는 확인 작업 하는 거니까.”

누군가에게 변명하는 것처럼 말한 월이는 천천히, 최대한 느긋하게 대자보를 읽기 시작했다.

~

우리 주변의 잘 보지 않는 이들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 하나의 문제에 처해 있습니다. 바로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조금 더 주변 사람들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당신이 주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아직 이 질문에 대답하는 분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계신 분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사는지 알고 있나요. 무슨 냄새를 좋아하는지, 무슨 색의 꽃을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별과 날씨와 그 사람의 기억에 남는 시를 아십니까?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왜 노란 옷을 입는지 모릅니다. 촌스러운 분홍색의 꽃을 사랑하는 이유도 모릅니다. 그가 비를 좋아하는 이유와 북극성을 좋아하는 이유를 모릅니다.

‘사실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알기 위한 노력은 쉽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다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해야 한다고,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만 아는 게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단순히 겉만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당신의 생각을 전하고 또 당신에게 말하는 그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십시오.

쪽지, 편지, 다른 방식이라도 뭐든 좋습니다.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곳에 있는 당신부터 시작해 주십시오. 상대가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될 겁니다. 그렇기에 작은 한 발이면 충분합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하십시오. 거창한 것이 상대를 이해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사소한 것이야말로 상대를 이해하는 지름길입니다.

↓↓↓

-직접 얼굴을 보이기 싫은, 익명의 누군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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