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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69화 (69/269)

6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4)

“뭐? 방송을 하자고?”

그래 봐야 맛도 없는 점심이다. 후딱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올라오는 길에 보영이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인지 들을 수 있었다.

“그래. 누구 하나를 타겟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게 어려우면, 그냥 전교생한테 다 전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런 의미에서 점심시간 라디오방송은 꽤 효과적이다.

신청곡을 틀고, 가끔 누군가가 사연을 보내면 읽어주기도 한다. 작기는 하지만 정말로 라디오인 셈이다.

“이 방송은 학교 내에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으니까, 부르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나름 괜찮은 생각 아니냐며 보영이는 말했지만 월이는 영 아닌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거 애매한데.”

월이는 잘라 말했다.

“난 그거 한 번도 안 들어봤어.”

“야, 좀 들어줘라. 방송부 애들도 열심히 하던데.”

“몰라, 그거 자는 데 방해나 되지.”

월이는 영 시큰둥했다. 하지만 저 태도야말로 일종의 정답이었다.

발상 자체는 정말로 좋았지만,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그렇네. 너처럼 안 듣는 사람이 많으면 그걸 메인 방법으로 쓸 수는 없겠어.”

보영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말 그대로 이론상 좋은 방법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방법 자체는 좋은 거 같긴 한데…”

설이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거기다가 생각해보니까 그걸로 투명인간한테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학교에 숨어있는 투명인간 나와라! 하는 방송을 그리 쉽게 할 수는 없다.

사람이 끼어드는 방송이다 보니 너무 노골적이거나 영문을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분명 죄다 잘라낼 것이 분명하다.

“이래저래 약점이 많긴 하구나.”

설이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전교생이 다 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건 나쁘지 않았는데.”

라디오가 안 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설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격문...?”

“격문이 뭐야?”

월이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하나 띄웠다. 설이는 아차 싶었다.

“격문? 대자보 같은 거라도 쓰자는 거야?”

보영은 조금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격문이라는 단어를 국사 시간 밖에서 들은 건 처음이네.”

“아하, 하… 대자보란 단어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

“보통은 대자보가 먼저 아냐?”

“그게… 그런가?”

설이는 어색하게 말했다. 보영이라면 혹시 이 한마디로 자신의 출신 같은 걸 알아내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잠깐의 지적 이후 보영은 이미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뒤였다.

평소라면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설이는 다행이라며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자보.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좋아. 내가 맨 처음에 방송을 선택한 이유는 전교생이 다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니까.”

그럴듯하다. 매일 하는 방송은 안 듣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붙은 대자보는 분명히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좋아, 그거 내용만 조금 그럴듯하게 꾸미면 될 거 같은데.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면 누구라도 보고들을 수 있게 하면 되는 거란 말이지.”

후후, 하고 보영은 은밀하게 웃었다. 어딘가 소름 끼치는 웃음이다.

“혼자서는 절대 생각해 낼 수 없었을 거야. 후후후…”

“쟤, 원래 저래?”

“아니. 나도 저런 모습은 처음 봐.”

두 사람은 소곤거렸다. 뭔가 새로운 문이 열렸나 보다. 나머지 두 사람은 조금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살짝 거리를 뒀다.

하지만 설이는 이내 새로운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근데 그거, 대답은 어떻게 들어?”

설이는 조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후후… 응?”

보영은 잠시 웃던 것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뭔가 굉장히 허탈한 표정으로, 보영은 말했다.

“대답을 어떻게 듣지?”

주의를 끌기만 하면 다가 아니다. 본인이 직접 나타나거나, 혹은 최소한 답변이라도 들을 수는 있어야 한다.

“생각보다 어렵네. 산 넘어 산이야, 이거.”

보영은 푸념하듯 말했다. 설이는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답이야 그런데 그냥 들으면 되는 거 아닐까?”

설이는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용만 잘 쓰면 쉽게 해결될 문제 같기도 한데.”

“어떻게 하게?”

“조금 생각해 본 게 있는데.”

설이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을 말했다. 보영은 진지하게 들었다.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되기만 하면 검열에도 안 걸리고, 좋겠는데?”

보영은 희망이 조금 보인 듯 말했다.

“좋아, 그건 좀 있다가 머리 굴려보자. 그럼 남는 문제는 어떻게 붙이냐인데.”

하지만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대자보를 붙이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야. 아무도 모르게 대자보를 붙일 수 있나? 남한테 목격되지 않고 붙이는 게 제일 좋은데.”

“굳이 몰래 붙여야 해?”

“모르는 소리? 원래 이런 건 몰래 붙이는 게 정석이라고.”

한 번에 확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누가 뭐래도 미스터리한 느낌이 있으면 좋다. 누가 붙였는지 알면 아무래도 관심도가 떨어진다.

“방법만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되겠는데…”

“글쎄. 그건 밤에 몰래 들어가 붙이면 되는 거 아냐?”

월이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게 어디 쉬운 줄 알아? 요즘 보안이 얼마나 철저한데.”

게다가 야간당직을 서는 분도 계신다.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물론 뭐, 그분들이라고 아주 열심히 순찰하시는 건 아니지만…”

보영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월이는 자신이 있었다.

“어려울 건 또 뭐야? 씨씨티비 안 걸리고 학교 들어갈 수 있는 장소만 알려줘 봐. 한번 해 볼게.”

“…진짜? 알려는 주겠는데, 할 수 있겠어?”

“아, 된다니까.”

조금 미심쩍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된다는데 토를 달 이유는 없다.

“그럼 한번 해 보던가.”

보영은 영 미덥지 못한 눈으로 월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위험하면 그냥 나와.”

“시간 안에 대자보, 완성이나 해놔. 밤에 후딱 갔다 올 거니까.”

월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 * *

단 한 번 뛰어서 월이는 학교의 담벼락을 넘었다. 그렇게 학교 뒤편 부지로 들어온 월이는 아주 작은 충돌음만을 남기고 멋지게 착지했다.

아무도 없는 학교는 적막 그 자체다. 사람에 따라 으스스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월이의 입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괴도 같은 기분인데.”

원래라면 아무도 없어야 할 닫힌 곳에 몰래 몸을 비집고 들어가는 건 그 자체로 조금 재미있는 일이었다.

물론 뭔가 훔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한밤중의 학교 침입은 가슴을 울리는 뭔가가 있었다.

“후, 조금 진정해야지.”

하지만 그저 재밌기만 해서는 안 된다. 맡은 일은 제대로 해내야 한다.

두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대자보를 완성하는 동안 월이는 그다지 참견하지 않았다. 그저 완성된 물건이 어떤가 하는 평가에만 참여했을 뿐이다. 그나마도 사실 별로 제대로 한 건 아니다.

그런 일은 애초에 잘 못 하기도 하고, 하고 싶지도 않다. 두 사람도 그걸 원하지는 않았다.

대신 월이는 월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러 왔다.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가 이쪽이랬나?”

주변을 몇 번 휘 둘러본 월이는 확실히 이 부근을 보고 있는 카메라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중얼거렸다.

“걔는 대체 어디까지 조사하고 다니는 거야?”

보영이 틀릴 거라는 의심을 했던 건 아니지만, 이 상황을 눈앞에 두고 나니 어처구니없을 정도다. 나쁜 애는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뭐, 어쨌든 안 들키고 여기까지 왔으면 나머지는 쉽지!”

월이는 씩 웃었다. 그리고는 훌쩍 뛰어올라 이 층의 창문 바깥의 안전바를 붙잡고 섰다.

“2층을 바라보는 감시카메라 같은 건 없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붙어 이동하면 걸릴 이유가 없다.

월이는 조금씩 이동해 영화 동아리가 있는 부실 쪽으로 향했다.

“당연히 열려 있겠지?”

창문은 열려 있었다. 미리 열어달라 부탁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구교사 쪽의 건물이 허술하다. 그래 봐야 동아리방들 정도만 있으니, 보안 관리를 하시는 분도 이쪽 창문까지 잠그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월이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학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안에 들어오자 저 멀리서 누군가가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야간당직을 서시는 분께서 코를 고는 소리일 것이다.

“…진짜 별거 없는데.”

사실상 아무도 없는 학교다.

게임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랜턴을 들고 돌아다니는 수위는 없는 모양이다.

“조금 실망.”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안심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못 할 일은 없을 테니까.

월이는 최대한 발소리를 줄이며 걸었다. 괜히 소란피우는 건 질색이다.

“2층 로비에 붙이는 게 제일이라고 했지?”

물론 보영이는 어디에 붙이든 상관없다고 하긴 했다. 하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곳을 내버려 두고 다른 곳에 붙일 이유는 없다.

월이는 준비해 둔 테이프로 2층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볼 수 있을 자리에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거 생각보다 시끄럽네.”

찌직 찍 하고 테이프를 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막한 복도에 그 소리는 너무나도 잘 들렸고 조금 소름이 끼치기까지 했다. 빈 복도에서 시끄럽게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코 고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하긴, 그 정도 소리로 잠에서 깰 만한 건 월이와 같은 비정상적 청력을 가진 사람 정도일 것이다.

“됐네. 이제”

침입이 어렵지 종이 한 장과 작은 상자 하나를 붙이는 건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다.

“이제 무사히 돌아가면 끝!”

드르륵- 탁!

“인데… 이게 무슨 소리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마치 문을 여닫는 소리 같았다.

월이는 경계심을 최대로 올렸다. 가장 먼저 소리를 죽였다. 숨조차 멈추고는 귀를 기울였다.

뭐가 나타나든 지지야 않겠지만, 이번에 하려는 일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안 들키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직도 멀리서는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것도 확실하다.

“…내가 들어온 쪽 방향에서 들린 거 같은데?”

그렇다면 어쩌면 학교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창문을 열어놓고 나왔으니, 그 방향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금 안심하고 월이는 다시 걸었다. 예상대로 월이는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다시 영화 동아리 부실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순조롭다. 그렇게 생각할 때 월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라. 왜 창문이 닫혔지…?”

월이는 창문을 닫지 않았다.

곧 나갈 것이니 일부러 내버려 뒀었다. 그러나 그 창문이 닫혀 있었다.

“누군가 순찰을 한 건… 아니고.”

야간당직 서시는 분의 코 고는 소리는 계속 듣고 있었다.

“설마.”

그렇다면 방금 들은 소리는 바깥에서 들린 게 아니라 이 창문을 닫는 소리라는 말이다.

마치 문을 닫는 소리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창문을 닫는 소리였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뭔가 잘못되었다. 자신조차 느끼지 못한 누군가가 이 창문을 닫은 것 이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누가 이 창문을 닫은 것이란 말인가.

“환장하겠네, 진짜…”

찜찜함을 뒤로 하고 월이는 다시 창문을 열었다.

이게 착각이든, 혹은 진짜로 누군가가 닫은 것이든 일단은 집에 돌아가야 했다.

“이거, 안 닫아놔야지.”

창문은 일부러 열어 놨다. 조금 심술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확인하려는 목적이기도 했다.

내일, 월이는 다시 한번 이 창문을 보러 올 것이다. 혹시 이번에도 닫혀 있다면 그땐 착각 따위가 아닐 거다.

월이는 일부러 창문을 열어 둔 채 담장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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