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3)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세 사람은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어디서 불러올 필요도 없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보영이가 아예 먼저 반으로 찾아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설이는 보영이를 보자마자 물었다. 보영 역시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이야기를 받았다.
“투명인간 말하는 거지?”
“응. 그게 어떻게 된 걸까? 더 생각한 거 있어?”
설이의 질문에 보영은 잠시 팔짱을 꼈다.
“글쎄…. 나는 투명인간이라는 걸 믿지는 않아. 정말로 보이지 않는 사람 같은 게 있을 리는 없잖아?”
보영의 말에 두 사람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있다는 건 인정해.”
“뭐가? 투명인간이??”
보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월이는 당황해서 물었다. 보영이가 그런 걸 믿으리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네가 그런 걸 믿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말이야 투명인간이라 하지만, 정말 투명한 사람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 하지만 투명인간이든, 혹은 비슷한 거든 뭐든 간에 그런 게 없다면 이해가 안 가니까.”
투명인간의 존재는 믿지 않지만, 그런 무엇 혹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는 말이다.
“의외네.”
“의외고 뭐고, 정말로 조사 결과가 그렇게 나와버리니까 별수가 없잖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보영은 눈을 찌푸렸다.
“물론 내가 다 맞는다는 생각은 안 해. 실수나 착각일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어. 하지만 그래도 몇 개의 사건은 정말! 너무나도! 이상하단 말이야.”
그렇기에 그런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참을 수가 없어.”
조금 짜증 나는 것 같은 눈으로 보영이는 말했다.
“마침 우리도 그게 조금 신경 쓰이는데.”
설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 친구의 도움이 없다면 절대로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재빨리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따로 하기보다는, 같이 생각해도 될까?”
“어? 정말?”
설이의 그런 말이 보영은 조금 눈을 반짝거렸다.
“안 그래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던 참이었는데, 잘됐네! 도와줄 생각이라는 거지?”
“도와준다, 기보다는 우리도 궁금하다?”
“그게 결국 돕는 거지 뭐.”
하지만 그런 어떤 존재를 검증할 방법이라고 할 만한 건 별로 없다.
“근데, 좀 궁금해서 묻는 건데 투명인간 관련된 소문이 언제부터 있었어?”
설이는 조금의 기대를 담아 질문했다.
혹시 자신들이 파악한 것보다 그 소문이 먼저 있었다면, 태주가 우려한 그런 종류의 사건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근 두 달 사이에?”
하지만 보영의 말은 그 기대를 무참하게 박살 냈다.
“물론 이전에 있던 일 몇 개가 사실 투명인간이 한 거 아냐? 하는 이야기가 조금 있었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아는 사건들이야. 그냥 사람들이 착각한 거였지.”
그렇다면 결국 태주가 말한 마지막 가설에 힘이 실린다. 설이는 혹시나 몰라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아님 뭐, 학교 밖에서 그런 소문이 돌았다거나….”
“그런 것도 없었어.”
단언이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절대로 없었어.”
본인이 아는 한도라고는 하지만, 보영이가 몰랐다면 정말로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럼 정말로, 이 소문은 갑자기 생긴 거네.”
단순한 결론이지만, 부정할 수 없다. 그 말을 들은 보영은 조금 덧붙였다.
“나는 그냥 꼬리가 잡힌 거라고 생각해. 갑자기 투명인간이 생겨났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꼬리가 잡혀?”
“학교에 있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더 이상 자기 존재를 숨기지 못했다… 정도? 없던 투명인간이 생긴 건 아닐 거 아냐?”
어떤 의미로는 꽤 정확한 추측이다. 설이는 살짝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물었다.
“그, 그럼 혹시 어떤 방법을 써서…?”
“글쎄. 나도 방법이야 잘 모르겠어. 그 사람은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찾아낼 수가 없단 말이지.”
보영이는 한숨을 쉬었다.
“데이터나 뭐 그런 것조차 없어. 있는데도 시스템에서도 검색이 안 되는 건지, 없는 거라 검색이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아무래도 보영이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설이가 생각한 것보다도 꽤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네, 표현하면 그렇게 되겠네. 있어야 하는데, 없어. 혹은 없어진 줄 알았던 게 다시 생겨나. 책 같은 것도 갑자기 한 권이 없어졌다 다시 찾았다고 하고….”
어떤 의미로는 너무나도 투명인간이라는 표현이 걸맞은 상황이라고 보영은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냥 단순 시스템 오류인 거 아냐?”
“그 생각도 해보긴 했는데, 학교 시스템이라는 게 생각보다 그리 허술하기만 한 건 아니란 말이야. 그냥 단순한 오류면 금방 정정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그 오류는 정정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증거라고 하기에는 영 애매했다.
“차라리 찾아본 결과 아무것도 없어서 확실히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또 아니란 말이지.”
보영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중간부터는 정보 공유라기보다는 한탄에 가까웠다.
“엄청 열심히 조사했네?”
두 사람이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로 조사를 열심히 했다.
“학교 시스템은 어떻게 안 거야?”
“불법은 아니고 편법 정도의 방법인데, 그건 비밀.”
월이의 질문에 보영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 말을 들은 설이는 결국 이걸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 보여준 모습은 그래도 단순히 발이 넓다는 수준에서 끝날 수도 있는 거라면 지금 말하는 건 단순히 발이 넓은 수준이 아니다.
“궁금해서.”
짤막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진심이라는 게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참을 수가 없거든. 이렇게 애매하게 끝내는 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야.”
맨 처음에 한 말 그대로 흥미였다.
만약 투명인간이 있으면 있는 대로 재미가 꽤 있을 법한 일이니 좋다.
없으면 없는 대로 소문을 검증할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있는지 없는지도 불확실한 채로 끝내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자신은 그저 결말을 알고 싶다고 보영은 말했다.
“그냥 나는 그런 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야. 그러니까 있는지 없는지 시원하게 결론이 나면 좋을 텐데 말이야.”
“…와.”
설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 탄성이었다. 뭐랄까, 조금 그 기백에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고작해야 그 정도 이유로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행동력이다.
과연 그 이유에 얼마만큼의 열정이 담겨있는 걸까.
“하지만 생각나는 방법이란 방법은 다 막혔단 말이지. 난 더 방법이 없어. 그래서 새로운 의견이 나오는 건 엄청나게 환영인데.”
저렇게까지 해낸 사람 앞에서 이제 와서 나머지 두 사람이 새로운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정확히는 몇 가지 시도해 볼 방법이야 있지만 아무래도 괴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더 조사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
월이는 김이 샌 듯 물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해도 모르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아냐?”
“아니, 발상이 다를 수도 있잖아.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던가. 뭐 없어? 진짜?”
월이는 한숨을 쉬었다. 예의상 아무 말이라도 던져봐야 할 것 같았다.
“뭐, 시장 난리통에서 사람 찾듯이 투명인간 나와라! 소리라도 치던가?”
“응?”
보영은 얼빠진 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월이가 더 당황했다.
“그거…는! 생각 못 해봤는데.”
“뭐? 진짜 소리라도 치게?”
월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지만, 보영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게 또 아아~주 나쁜 방법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연히 그건 아니지. 내가 미친년도 아니고 말이야.”
월이가 무슨 소린가 싶어 멍하니 보고 있자 옆에서 설이가 물었다.
“그럼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
“나는 그런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들이 있어.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확신하고 있고.”
상대는 있다. 어디서 뭘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그렇다.
“그러면…. 네 말대로 부르면 되는 거잖아?”
“그럼 우리가 찾는 게 아니라, 상대가 우리에게 오게 하자 이 말인 거네?”
설이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래. 찾아볼 생각만 했지, 불러볼 생각은 안 했어. 월이 너, 혹시 천재 아냐?”
발상의 전환이다. 정작 월이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만 굴렸다.
“물론 진짜로 소리를 쳐서 부를 수는 없겠지만, 방법만 좀 다듬을 수 있으면 꽤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사소한 단서들은 찾았지만 명확한 증거물을 찾지 못하던 보영에게 이건 꽤 괜찮아 보이는 검증방법이다.
뭣보다, 별로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니, 근데 그럼 어떻게 부를 건데?”
어디에 있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불러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있다는 것 자체는 확신할 수 있다 쳐도 그 부름이 전달된 건지 알 수가 없다.
“답변이 오지 않으면, 이게 답변을 안 한 건지, 혹은 그냥 없는 건지 구분할 수가 없잖아.”
대답이 온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정도지만, 이 방법의 문제점은 답변이 오지 않으면 그냥 헛된 시도로 끝난다는 점이다.
세 사람은 방금과는 다른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라….”
보영은 반쯤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이전보다는 한층 난이도가 내려간 고민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 투명인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또 성향도 몰라. 아마도 학생일 거라는 짐작 정도밖에는 할 수가 없단 말이지.”
그렇기에 뭐로 확실히 불러낼 수 있을지 생각해내기가 조금 어렵다.
“도저히 보고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미친 어그로를 끌어야 한다는 말인데….”
보영은 뭔가 시동이 걸린 건지 홀로 중얼거렸다. 월이는 이러다 시간 다 가겠다 싶어 말했다.
“야, 일단 밥부터 먹고 고민하자.”
월이는 기다리다 지친 듯 한숨을 쉬었다.
“점심시간 끝나겠어.”
점심시간은 어느새 절반 정도가 지나있었다.
“그런데 반찬 남았을까?”
설이의 질문에 보영은 미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 생선조림이라 남았을걸.”
앞서 달려가려던 월이는 그 말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윽…. 생선조림이라니….”
반찬이 남은 것 자체는 좋은 소식이지만 별로 좋은 메뉴는 아니었다. 보영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뭐, 어째. 살려면 먹어야지.”
그때,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영은 내려가려던 발걸음을 살짝 멈추고는 말했다.
“오, 저거 나쁘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