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2)
“어느 쪽이 맞냐고?”
“네. 혼자 생각해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몇 가지 가능성을 좁힐 수야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는 잘 모르겠다. 설이는 결국 도움을 요청했다.
“글쎄. 힌트라도 줘야 하려나?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는 건 아니니 확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태주는 그렇게 선을 긋고 말했다.
“지금 핵심 문제는 두 개지? 비슷한 경험의 두 사례와 최근에 돌고 있는 이상한 소문. 이렇게 말이야.”
“어….”
“물론 높은 확률로 그 둘은 뿌리가 같은 사건이긴 할 거야.”
태주는 일단 그 사실을 긍정했다.
“제 눈 때문에요?”
“그래. 네가 본 이상한 일은 하나잖아? 두 개나 세 개가 아니라 말이야.”
그러니 일단 여러 개의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한 가지만으로 단정하는 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참고하기엔 참 좋지.”
“제 눈이 없어도 확신하실 수 있었던 거에요?”
“지금만큼 확신은 못 하겠지만, 추측의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걸?”
소문과 사건은 분명 전혀 다른 종류지만, 그 두 가지 다 투명인간의 존재를 긍정한다면 한 번에 해결되는 문제다.
“이래저래 그 둘을 굳이 분리할 필요는 없어.”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투명인간에 대한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가 있다.
“자, 그러면 투명인간이 있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태주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럼에도 설이는 영 자신이 없는 듯 물었다.
“만약 그래도 투명인간이 아니라면요? 제가 잘못 봤다면요?”
“네가 직접 봐 놓고 그런 소리 하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주의 표정은 나쁘지 않다. 항상 의심하는 건 좋은 자세다.
“그래도 조금 생각 정도는 해볼까?”
공부 겸해서 그런 이야기를 해 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만약 네가 겪은 일은 소문과 무관한 사건이라면, 네가 본 건 어쩌면 그냥 조금 수준 낮은 귀신 같은 거였을 지도 몰라.”
굳이 투명인간을 빼고 설명하려 들면 생각나는 건 일단 그 정도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다면 월이가 지금까지 눈치를 못 채지 않았겠지.”
월이가 관심이 없는 걸 대충 훑고 넘기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귀신을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다.
“애초에 귀신에 대한 소문이 유행 중이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말하며 태주는 월이를 슬쩍 봤다. 월이가 귀신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귀신이야 물론 어디에나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아무런 맥락 없이 나오는 건 이상해. 그렇게 소리소문도 없이 귀신이 나올 리가 없어.”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지만, 이유 없이 나와서는 안 된다. 그게 귀신이라는 존재다.
그렇기에 귀신 쪽은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귀신은 아닌 거네요.”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건요?”
“그게 아니라면 번호 자체에 불가사의한 소문 같은 게 붙어서 그 자체로 생명력을 얻었을 수도 있기는 한데.”
숫자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번호였다는 이야기도 가능하다.
“번호가 하나 많은지 적은지에 대한 이야기나 사람이 하나 모자란다는 등의 이야기도 돈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야, 그런 이야기 있었어?”
태주는 월이에게 물었다. 이런 종류의 괴담은 관심이 없으면 정말로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이는 파르페를 퍼먹다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어? 아니!”
월이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그건 애초에 그냥 혼자 겪는 일이잖아? 소문 비슷한 것도 아니지!”
“역시 그런가.”
월이의 답에 태주는 가능성 하나를 더 지웠다.
“그렇다 하면 번호 자체에 이상한 소문이 붙은 것도 아니고.”
“유령이나 번호에 대한 착각도 아니라면, 남는 게 더 있을까요?”
설이는 잠시 생각했지만 생각나는 게 없었다.
“뭐, 사실 있기야 하지만 남은 것들은 정말 고려할 가치가 없는 거라.”
태주 역시 지리멸렬한 것들 외에 더 생각나는 것은 없다.
“그러니 나한테 말한 것 이외에 더 새로운 정보가 생기는 게 아니라면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전제로 생각해 나가는 게 합리적이야.”
길게 말했지만 결론은 조금 단순하다. 투명인간이 있다.
“그게 다인 건가요…?”
태주의 말을 들은 설이는 뭔가 실망스러워 물었다. 태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진짜 중요한 건 그다음부터 시작이거든.”
태주의 설명에 설이는 귀를 기울였다. 월이는 그 정도로 열심히 듣지는 않았지만, 신경은 쓰는 것 같았다.
“자, 투명인간은 왜 안 보일까?”
태주의 질문은 꽤 단순하다. 설이는 대답하려 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글쎄요? 귀신이 안 보이는 거랑 똑같은 이유 아닐까요?”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다르지.”
투명인간과 귀신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다르다.
“귀신은 형체가 없으니 보이지 않는 게 기본이야. 보는 쪽이 이상한 거고. 반면 투명인간은 ‘인간’이잖아?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으니까 이상한 거지.”
“어렵네요….”
“참고로 왜 안 보이는지는 나도 몰라.”
태주 역시 투명인간을 본 적은 없다.
“네? 그럼 왜 물어본 거예요?”
“질문을 던져야 그걸 알아내는 게 우선이라는 걸 이해시키기 쉬워지니까.”
태주는 그렇게 답한 뒤 이어 말했다.
“우리는 그냥 투명인간이라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도 종류라는 게 있잖아. 광학적인 의미로 보이지 않는 경우나, 그냥 그 자리에 있는데도 사람이 인식할 수 없는 경우 같은 식으로 말이야.”
어느 쪽이든 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정말로 보이지 않는 건 아닐 것 같아요.”
“그래, 뭐 그건 단순한 괴담보다는 SF의 영역에 가깝기도 하고.”
설이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만 들을래.”
월이는 머리가 아픈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그냥 구석으로 도피해서 얌전히 아이스크림을 퍼먹기 시작했다. 태주는 피식 웃었다.
“원래도 안 듣고 있었으면서, 엄살은….”
“그래서 다음에 나오는 의문은 뭔데요?”
설이의 재촉하는 질문에 태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실존하는 사람이 투명해진 걸까? 아니면 투명한 사람이 새로 만들어진 걸까?”
“으에…?”
“귀신이 아니야. 투명인간이라는 건 분명히 투명한 사람이잖아?”
그렇기에 나오는 질문이다. 설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우선 투명한 사람이 새로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괴담이 어떻게 생기는지는 쭉 말해왔으니 알지?”
“네! 그런데 없던 게 새로 생길 수도 있는 거예요?”
태주는 잠시 생각했다.
“음, 그렇지. 예를 들면 동네에 뱀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돈다면 어떻게 될까? 아직 진짜로 뱀이 나타났는지 확인된 적은 없다 치고.”
“…일단 사람들이 뱀을 조심하겠죠?”
“그래. 사람들은 바닥에 있는 게 밧줄이라도 순간 뱀인 줄 알고 다시 보게 되겠지. 그러다가 정말로 뱀을 보는 사람이 나타날 거야. 밧줄을 착각하는 걸 수도 있고, 진짜 뱀일지도 모르지.”
그 순간 소문이 진실이 되어버린다.
“그럼 실제 뱀이 있든 없든 사람들 사이에서는 뱀이 있다고 믿어질 거야.”
그렇게 없던 뱀이 하나 생겨난다. 괴담 속의 존재가 생겨나는 과정이 대체로 이렇다.
“그렇게 사람들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뱀을 무서워하게 되는 거야. 거기서 살이 붙다 보면 하수구 안의 악어 같은 게 되는 거지.”
“…혹시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하나 생기는 것도 가능한 걸까요?”
번외 질문이기는 하지만 조금 궁금하다.
“그러니까,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뿅 나타날 수 있는 걸까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으면?”
설이의 질문에 태주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이론상은 가능해. 옛날엔 아마 꽤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문제는 현대 시스템이 만만한 건 아니라서.”
존재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실체 없는 무언가는 사라지게 된다. 모두가 확실히 ‘없다’라는 걸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요즘은 괴담 수가 옛날만큼 많지도 않고, 나타나더라도 사소한 이야기에 그친다.
“하지만 투명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빈틈을 잘 찔렀지. 그런 소문이라면 검증이 어려우니까.”
보이지 않으니 못 보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좋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니 그저 얼굴 없는 선인에 대한 표현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 굳이 그런 걸 검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니까, 누군가 새로운 투명인간이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설이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겪은 일이나, 아님 보영이가 겪은 일이 먼저 있었던 일이고, 그다음에 투명인간에 대한 소문이 돈 거잖아요.”
날카로운 지적이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이쪽은 별로 가능성은 없어.”
“그럼… 사람이 투명해졌다는 거예요??”
“그렇지.”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멀리서 듣던 월이마저 다시 이쪽 대화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말이다.
“소문이 먼저 나왔고, 그다음에 투명인간이 나온 게 아니라면 결론은 하나뿐이잖아? 투명인간이 먼저야. 그리고 소문이 그다음이고.”
“말도 안 돼!”
큰 지네 같은 거라면 모를까 투명한 인간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말이 왜 안 돼?”
“…그래서 아까 투명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투명했던 건지 질문하셨던 걸까요?”
“그래. 과연 그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그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 투명해진 걸까?”
아무도 모른다. 최소한 이곳에 있는 세 사람은 답을 몰랐다.
“그, 보영이랬나? 걔가 특별히 괴담에 관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 그런 친구가 볼 수 있었다면 처음엔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겠지.”
그러니 목격담 비슷한 것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를 알 수 없다.
“뭐,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끝이야. 내가 떠올리지 못한 다른 가능성도 있으니까,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하고 돌아와서 알려줘.”
태주의 조언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설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월이가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큰일 났다는 말이지?”
“큰일… 까지는 아니고, 작지 않은 일?”
* * *
“그래서 뭐부터 하면 되는 거야?”
등교하는 길에 던져진 질문이었다. 설이는 월이 쪽을 쳐다봤다.
“왜 그런 표정이야?”
“관심 없는 줄 알아서….”
어제 한창 대화를 하는 도중에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월이는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고, 들어도 모르겠어서 그랬지.”
중간부터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월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단순히 싸우고 어쩌고 하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면 자신이 들어봐야 별수 없다. 머리만 아플 게 뻔하다.
“솔직히 나 혼자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겠지만, 너는 해결하고 싶은 거잖아. 이번일.”
“웅.”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은 걸 보면 당연하다. 월이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그럼 하는 거지 뭐. 위험해질 것 같으면 그만두는 게 조건이지만.”
“고마워.”
“됐어, 뭘 낯간지럽게?”
월이는 됐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럼 일단 점심시간 되면 걔 좀 불러와야겠네.”
보영이가 없으면 아마 꽤 골치가 아플 거다. 설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 메뉴가 뭐지.”
월이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벌써 그게 궁금한 거야?”
“나 밥 먹으러 학교가.”
그러니 학교에서 그 외에도 할 일이 생기는 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밥만 먹고 오는 건 아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