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1)
“학교괴담? 그런 게 요즘 있을 리가 없잖아.”
월이는 핀잔을 줄 생각으로 한 말이었지만 보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실 그렇지.”
그럼 이 이야기를 왜 꺼낸 거야?
어처구니가 없어진 월이가 입을 다문 사이에 보영은 옆에서 듣고만 있던 설이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설이는 눈을 조금 깜빡이다 물었다.
“투명인간? 저번에 본 거 말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투명인간을 어떻게 봐? 보이면 투명인간이 아니잖아.”
“응? 아아, 아니.”
설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실수했네…’
전혀 위험하지 않게 들리는 이야기였기에 맥이 풀렸던 탓이다.
아무리 들어도 비교적 훈훈한 이야기밖에는 없다.
방치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죽거나 다칠 상황이 아니고, 그냥 그럭저럭 좋은 일만 하는 투명인간에 대한 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앞에 월이만 있는 것처럼 말해버리고 말았다.
“뭐지? 이상한데?”
설이는 그냥 착각인 것처럼 넘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미 좀 늦었다. 보영이의 눈은 이미 반짝거리고 있다. 뭔가 건수를 제대로 물었다는 눈이다.
‘…큰일났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설이가 가만히 굳어있자 옆에서 월이가 나섰다.
“야, 솔직히 말해봐.”
“뭘?”
“너, 처음부터 뭐 물어보려고 한거지.”
“에잇,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은 싫다니까.”
조금 질린듯한 눈으로 월이는 보영이를 쳐다봤다.
“네가 흥미 가지는 일은 모르는 일뿐이잖아.”
“뭐, 그렇지!”
보영은 선뜻 인정했다. 설이를 몰아붙인 것이 조금 미안했는지 보영이는 콧등을 살짝 긁으며 말했다.
“이미 대부분 조사는 해 놨지. 사실 거의 다 누군가가 한 선행이었어. 몰래 한 내부고발이나, 혹은 좋아하는 사람한테 담요 덮어주거나 한 일들이더라고.”
“거의 다? 그럼 모르겠는 것도 있다는 말이야?”
설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설이의 질문에 보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사실 맨 처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였구나 싶었다.
“응, 나도 몇 개는 짐작이 안 가.”
사소한 일들이지만 그래도 원인을 모르니 괜히 신경이 쓰인다며 보영은 말했다.
“그것도 뭐, 그냥 누군가의 말 없는 선행인 거 아냐?”
월이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아무리 보영이라도 사람인 이상 뭐든지 알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그 말이 맞아. 근데 아무리 봐도 이 몇 개의 사건은 투명인간의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더 말이 된단 말이지? 내가 뭔가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월이는 찌푸린 눈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보영의 태도는 유들유들했다.
“사실, 나도 아마 너희가 별 반응 없었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거 같긴 한데.”
보영은 웃으며 말했다.
“한설이 반응을 보면 분명 뭔가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유도심문이다! 유도심문! 그 뭐시기 협정 위반 아냐?!”
월이가 항의했지만, 보영은 계속 웃으며 말할 뿐이었다.
“뭐시기 협정이 뭐야? 그건 형사소송규칙에 속하는 거야.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건 유도신문에 가깝지”
“어, 어? 그 두 개가 다른 건가?”
월이가 당황한 사이 보영은 물 흐르듯 설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자, 그럼 왜 착각했는지 알려줄래?”
설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은 생각나는 거짓말은 없다. 그리고 어설픈 거짓말은 들통날 게 뻔했다.
벼랑 끝에 몰린 기분으로 설이는 입을 열었다.
“나, 전학 처음 왔던 날에 하나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자신의 눈과 관련 없는, 그냥 이상한 체험이 하나 있긴 있으니 그걸 말하면 될 거다.
설이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시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전학 온 날?”
보영은 월이를 쳐다봤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느냐는 눈짓이었다.
“나도 처음 듣는 말이야. 그런 게 있었다고?”
“나 처음 온 날에 우리 반에 있는 출석번호보다 사람의 수가 많았어.”
설이의 말에 월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뭐? 그건 그냥 네가 새로 와서 그런 거 아냐?”
설이의 질문에 가장 먼저 답한 것은 월이였다. 그러나 설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마지막 번호인 21번이잖아. 처음 셌을 땐 확실히 나 포함 22명이었는데 좀 이상해서 1교시 끝나고 다시 세 보니까 다시 스물한 명이더라고.”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가, 어느 순간 다시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냥 처음에 잘못 센 거 아냐?”
“사실 그럴 거라 생각해서 처음에 말 안 했던 건데.”
처음엔 그냥 착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니 아주 사소한 반짝거림이 보였기 때문에 그냥 착각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설이의 표정을 본 월이는 조금 느낌이 왔는지 조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왜 말 안 했어?!”
“학교가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지!”
너무나 별일 없이 지나가는 학교생활에 그냥 아무 문제 없는 줄 알았다.
“그나저나, 그게 정말로 스물두 명이었어?”
보영은 되물었다. 그건 미심쩍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어떤 잊고 있었던 사실을 갑작스럽게 떠올린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어, 아마도? 내가 잘못 센 게 아니라면?”
“잘못 센 거야, 그래야 돼.”
월이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이 귀찮아질 것 같다는 직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보영이에게 사실을 알려준 시점에서 이미 늦었다.
“그거 어쩌면 잘못 센 게 아닐 수도 있어.”
“응?”
두 사람은 보영을 쳐다봤다. 보영은 뭔가 기이한 것을 보는 듯한 눈으로 설이를 바라봤다.
“나는 전교생...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학교에 입학할 때 총원이 몇 명인지는 기억하고 있어.”
최소한 2학년 학생이 몇 명인지는 평소에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학년에 중간에 전학을 간 학생은 없고 전학을 온 사람만 너랑 한설이랑 해서 두 명이야.”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월이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보영은 이어 말했다.
“나도 숫자를 잘못 센 적이 한 번 있거든. 아니, 당시에 그냥 잘못 센 줄 알고 넘겼던 적이라고 해야 하나.”
맨 처음 학교 강당에서 입학식을 했을 때를 보영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 학교 입학식에 있었던 사람은 분명 백두 명이야.”
“지금은 몇 명인데?”
“백세 명.”
숫자가 맞지 않는다. 월이는 눈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러니까 나랑 쟤가 전학 왔으니 백네 명이 되어야 하는 게 맞는데, 지금 학생 수는 백세 명뿐이라는 거지?”
“사실은 이전에도 가졌던 의문이긴 한데, 그때 그냥 잘못 셌구나 하고 넘겼거든.”
월이는 혀를 찼다. 다른 사람이라면 얼버무릴 수 있겠지만 보영이에게는 그게 힘들다.
심지어 비슷한 경험을 한 두 사람이 있다면 착각이라 하기도 어렵다.
비슷한 두 개의 경험, 그리고 학교에 돌기 시작한 소문.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평범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월이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진짜로 있는 건가? 그 투명인간인가 뭔가?”
* * *
저녁, 월이는 카페 테이블에 축 늘어져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말이야.”
학교에서의 대화는 거기서 마무리됐다. 이상한 일을 파악했다고 해도 당장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 같은 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명 뭔가 있다는 확신은 있었다. 그렇기에 돌아오자마자 두 사람은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투명인간에 대한 학교괴담이라, 확실히 조금 신기하긴 한데.”
“조금 신기하다고?”
태주가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 이번 일이 이상한가 싶어 월이는 물었다.
“일단 확실히 괴담치고 정석적인 이야기는 아니거든.”
괴담이 많은 장소 하면 늘 손에 꼽히는 장소 중 하나가 학교지만, 그런 곳에서 생기는 괴담치고는 꽤 온건한 내용이다.
“게다가, 이게 진짜 괴담이라는 게 밝혀진 것도 우연이고.”
그러니 확실히 신기한 일이라며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걔는 뭐 하는 애길래 그런 이상한 정보를 다 꿰고 있냐?”
“보영이 말하는 거야? 그건 나도 몰라. 걔는 나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거든.”
저번에 월이가 어떻게 조사 비슷한 짓을 했는지 알겠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이번에 너희가 찾아온 일은 조금 이상한 일이 맞아. 걔가 어떤 애인지는 몰라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보고 싶은걸.”
“글쎄… 의외로 안 만나보는 게 좋을지도…?”
여러 의미로 월이는 그 친구가 비현실적인 것과 만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뭔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들쑤시고 다니는 곳이 한 둘이 아닌데 그런 종류의 일까지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두 사람의 그런 대화를 설이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일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글쎄?”
설이의 질문에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곤 말했다. 당연히 어떻게든 도와줄 줄 알았던 월이는 당황했다.
“뭐? 도와주는 거 아니야?”
“내가 어떻게?”
태주는 되물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내가 들어가서 조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뢰로 들어온 거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말이야.”
태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월이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지만 반박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설이의 말실수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으…”
설이가 움찔했다.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걸 탓하는 건 아니지만. 한번 둘이 알아서 해봐! 필요한 부분 있으면 도와줄 테니까.”
태주는 이때다 싶어 연습 삼아 둘이 해보라고 떠밀었다.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나도 당황스러운데….”
월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도 되긴 해. 누가 죽고 살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런데 신경 쓰이는 거 아냐?”
“신경이야 쓰이긴 하는데….”
“제가 해결해야 할까요?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하고 싶다면 한번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다 경험이니까.”
설이는 경험이라는 태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해결이라는 게 대체 뭘까요?”
하지만 목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가 조금 어려웠다.
“이번 일? 아니면 일반적으로?”
태주는 구분해서 물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었다. 태주 역시 아는 게 없다. 설이도 그걸 알기에 대답했다.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잡으세요?”
“글쎄. 사건마다 다르겠지만.”
태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의뢰를 한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결말이 되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의뢰를 한 사람 말이죠.”
설이는 태주의 말을 한번 반복해 말하며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의뢰를 한 사람이 없는데요.”
“글쎄. 지금은 그렇긴 하지만 아마 곧 생길걸? 어쩌면 의뢰인이 나타나지는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분명 누군가 문제를 겪는 사람은 있을 거야.”
단언할 수 있다. 아주 기본적인 이유였다.
“모든 괴담은 사람이 만드는 거야. 크든 작든, 미완성이든 완성이든 그래.”
망량이나 저주의 동영상에 얽힌 이야기 역시도 그랬다.
“그 일에 엮여있는 게 한 사람인지 여러 사람인지는 몰라도 누구 하나는 있을 거야. 아무도 없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
태주의 말을 들은 한설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러면 일단 그 사람을 찾는 게 시작이겠네요?”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이해가 생각보다 빠르네. 네 옆에 친구는 매번 까먹는 일인데 말이야.”
“흉볼 때는 제발 나 없는 데서 해 달라니까.”
태주의 말에 월이는 으르렁거리며 불만을 표했다. 미안하다며 태주는 월이에게 대신 먹고 싶은 거 하나 해주겠다며 메뉴를 물었고 둘은 어느새 그 대화에 빠져들었다.
아직 묻고 싶은 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꽤 화기애애했기 때문에 설이는 중간에 끼어들기가 좀 어려웠다.
“음…”
그렇게 설이는 홀로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투명인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