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14)
[글쎄,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내가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고 싶은 말이라. 남이 전해준다 해서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처음엔 소장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다음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성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운 목소리였다.
[모르지? 큰 의미가 있을지도.]
[당신 말이니 어째 그럴듯하군요.]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망량이 흉내 낸 목소리가 아니라 진짜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잖아?]
소장은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잠시 침묵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릅니다. 제가 얼마 만에 맨정신으로 돌아온 건지 저조차도 잘 모르겠으니까요. 분명 이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착잡한 목소리로 아버지는 말했다.
[그러니 말해봐.]
[음….]
아버지는 녹음되고 있는 사실은 모르는 것인지 천천히 말했다.
[먼저 산책을 조금 멀리 와버렸다고 전해주십시오. 거, 참 저도 좀 많이 늙은 모양이라고, 옛날이라면 이 정도는 거뜬했을 텐데, 아무래도 몸이 조금 지치긴 한다고 말입니다.]
아니요 아버지, 그 거리는 젊은 저도 못 걷는 거리입니다. 속으로 그런 말을 삼키며 성호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제게 치매가 온 것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전해주십시오. 저조차도 몰랐던 일인데 어떻게 그 아이가 알겠습니까. 그 아이는 책임감이 강하니 그걸 자기 탓이라 여기고 있겠죠. 책임감 때문에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고, 그 때문에 다시 책임감을 가지고. 참 악순환이나 다름없군요. 하긴 보고 배운 것이 저 같은 사람이니 그런 것도 당연하긴 합니다만.]
아이라. 이제 중년의 나이임에도, 그리고 그때도 이미 중년의 나이였음에도 아버지는 자신을 아이라고 불렀다.
어린 나이면 모를까 자신이 이 나이를 먹고도 가지는 단점을 자신의 문제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여전히 아버지는 자신을 아이로 보고 있었다.
[꼭 해야 할 말이라 할 만한 것은 그 정도가 다군요. 따로 더 전할 말이 있을까요? 사랑한다는 말도 좀 전해 달라고 하고 싶지만, 당신이 그걸 전하면 모양새가 이상할 것 같기도 합니다.]
[뭐,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거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소장은 아버지가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지금의 대화가 녹음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 말을 믿어야지. 그나저나, 제가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겠습니까?]
[3년? 조금 안 되려나.]
소장의 말대로 아버지는 그로부터 3년이 조금 안 되어 돌아가셨다.
[그럴 때는 2년 조금 넘는다고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사람 참…]
아버지는 소장의 말에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자신의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던 것일까. 성호가 그것을 의아해하자마자 소장은 질문했다.
[두렵지는 않나?]
[당신이 그걸 묻습니까? 다 아시는 분이.]
아버지는 의아하다는 듯 소장에게 물었다. 그러나 소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알면서도 물어야 할 때는 있는 법이라니까?]
[굳이 대답하자면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미 병에 걸려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요. 그저 저 같은 사람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버지다운 말이라고 성호는 생각했다. 저런 모습 덕분에 빈소에 온 사람이 많았으리라. 진심으로 함께 슬퍼해 준 이도 있었던 것이리라.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도와주지. 나중에 받기로 한 물건이 하나 있으니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원한다면 이제라도 망량을 떼어 주겠다는 말이었다.
조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저은 것 같았다. 그 행동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제가 이걸 떼어내 봐야 얼마나 더 좋은 경험을 하겠습니까?]
[뭐, 몇 번 정도 더 맑은 정신을 차리겠지. 그리고 내가 말한 것보다 몇 년 정도 더 살겠지.]
[됐습니다. 바쁜 아들 붙잡아 뭐합니까. 부인이라도 살아 있었으면 생각이라도 해 봤겠습니다만.]
별로 아쉽지도 않다는 투로 아버지는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아쉬울 것이다. 아버지는 속마음을 잘 티 내지 않았으니까. 그 몇 번의 맑은 정신이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절실했을지 성호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네 의견을 존중하마.]
소장은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들었던 것과는 달리 엄숙하고 진중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만은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 같아서 성호는 놀랐다. 아버지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생각을 대신 말해줬다.
[세상에,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 분이 평소에 목소리는 왜 그러고 다닌답니까?]
[내 맘이야.]
소장의 목소리는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경박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였다.
[어쨌든 뭐, 사랑한다는 말은 어떻게 알아서 전해주시지요. 그리고 문제가 없다면 제가 죽고 난 다음의 이야기나 조금 알려 주십시오.]
[망량이 너를 지금 부리고 있듯, 사후에는 네가 망량을 부릴 거야. 전세역전인 거지.]
[그렇게 되겠지요.]
[그건 망량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지, 다른 사람에게 가지 못하게 되니. 그래서 네 가족의 주변을 맴돌 거야.]
[그건 정도 해결은 해 준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조금 고생이야 하겠지만. 어쨌든 망량은 그 모습으로 가장 홀릴 가능성이 큰 네 아들에게 갈 거다.]
그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걸 좀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손자에게 하려고?]
[솔직히, 아들도 나이를 좀 먹지 않았습니까. 망량과 만나는 게 덜 위험한 건 차라리 제 손자겠죠.]
[그것도 그리 안전하기만 한 건 아니다만.]
[뭐, 솔직히 말하면 아직 손자보다는 아들에 더 애정이 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당신이 다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맞긴 하지. 조금 귀찮을 뿐.]
[그럼 그 정도 부탁은 들어주시지요. 어차피 저 아니면 더 힘들게 해야 했던 일 아닙니까. 아니, 사실 제가 이렇게 말할 것도 다 알고 계셨을 분이 왜 굳이 몰랐던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필요한 절차지.]
[아니 그게 무슨…]
어처구니없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성호는 살짝 웃었다. 그 말투는 예전과 완전히 같았다.
[뭐, 이건 이 정도면 됐나? 꼭 전달하고 싶은 한 마디 정도 더 해라. 그리고는 네가 바라던 곳을 조금 구경시켜주지.]
[그렇군요. 한 마디라.]
아버지는 잠시 침묵했다. 가장 중요한 한마디라 하면 확실히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뭐라고 하실까. 자신의 모자람을 타박하실까? 성호는 긴장한 채 숨을 죽였다. 이미 주변은 고요하지만, 혹시라도 방해되지 않도록 집중했다.
[미안하다고 전해주십시오.]
미안하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미안해야 할 일이 뭐가 있었단 말인가.
[무엇이 미안한가를 이야기해 줘야 하지 않겠냐.]
[그냥 전부 다 말입니다. 말년에 제가 이렇게 되어버려 고생시킨 것도, 어린 시절 작은 집에서 가난하게 지내느라 원하는 물건을 못 사줬던 것도, 일하느라 못 놀아준 것도, 지금 생각하면 마음에 걸리는 것뿐입니다.]
[마음에 걸린다고.]
[글쎄요. 이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겠군요. 아이일 때는 제가 아이에게 해 줘야 할 것은 못 해준 마당에 어른이 되고 나서는 짐은 다 지운 느낌이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뭐, 본인 생각은 그렇다니까.]
소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 한마디는 어째 자신에게 말한 것 같아서 성호는 움찔했다. 아마 실제로 자신에게 한 말일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말을 해 주는 게 좋을 거다. 어쩌면 한 번 정도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글쎄요. 있다면 그때 생각이나 한번 해 보지요.]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하자. 이제 네가 가려 했던 곳에 조금 가 보지.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그렇게 소장은 말했다. 성호는 이제 곧 음성 파일이 종료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직 재생 시간은 한참 남아 있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기존과는 달리 의미심장한 대화가 아닌 조금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원래 집이 있던 곳으로 향하며 말하는 아버지의 추억 이야기와 이곳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를 아버지에게 설명하는 소장의 목소리, 근처에 살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두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성호에게는 쓸모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조금 힘겨운 목소리였지만 너무나도 즐거운 목소리였다.
마치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성호는 아버지의 그런 목소리를 들어본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제 좀 지치네요.]
이제 돌아가야겠다는 의미 같았다.
재생 파일은 어느덧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고 그것이 성호는 조금 아쉬웠다.
[아마 이제부터 너는 계속해서 자신을 가두려고 할 거다. 망량이 다른 곳으로 가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상관없습니다. 제정신도 아닌 노망난 늙은이니까.]
그 표현이 성호는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 말에 그저 마음 아파하며 있기에는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네 손자는 너를 원망할 거야. 그리고 그 때문에 네가 방 안에 들어갔을 때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겠지.]
[그렇습니까. 그 어린아이가 고생할 걸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좋겠네요.]
아버지는 미래에, 시우가 그런 일을 자신에게 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성호는 허탈해졌다.
[그 아이가 너를 가두는 건 부도덕한 일이야. 너는 그 아이를 용서할 생각이냐.]
[제 손주 녀석이 고생할 걸 생각하면, 미안할 뿐입니다. 그저…. 반성하고 뉘우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반성하지 않는다면?]
소장은 은근하게 물었다. 아버지는 그런 질문에 돌아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듯 당황했다.
[글쎄요. 그렇다면 그건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 비교적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아들의 아들이 그 정도도 못하지는 않겠지요. 사실 제 정신머리가 이래 버려서 그 아이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아들이 키웠다면 그 정도는 할 겁니다.]
성호는 홀로 생각했다.
‘예, 아버지. 제 아들은 그것을 잘못이라 느끼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틀리지 않았다. 그것이 어쩐지 기뻐서, 조금 슬퍼서 성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 전하마.]
녹음된 기록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성호에게 꽤 여운이 남는 내용이었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을 받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생각나지 않게 될 때, 몇 번이고 듣고 싶었다.
집 바깥으로 나올 때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성호는 하늘을 봤다. 광공해로 가득 차, 별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단 하나만 또렷이 보였다.
어쩐지 그 별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성호는 썩 즐거워졌다.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리고 그 말들은 이제 전할 수 없었다.
문득 성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 만큼 아들은 아버지에게 전할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그 못다 한 말들은 아들에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성호는 지금 당장 아들에게 전해줄 말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너를 용서했다고, 네가 아직 잘못을 저지르기 전부터 너를 용서했다고 말이다.
* * *
성호와 시우를 배웅한 뒤 네 사람은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그중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금단증상이 조금 오고 있는 시아였다.
“그래도 잘 끝났네요.”
“그래. 잘 끝났지.”
태주의 말에 시아가 기지개를 켜며 답했다.
시아는 한 번의 실패 이후 담배 한 번 태울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바쁘게 준비했고, 머릿속에는 빨리 정리를 끝내고 한 대 빨러 갈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나마도 지금은 지쳐서 움직이기 싫었지만 말이다.
멤버들은 일단 짐부터 옮기고 다시 쉬자는 결정을 내렸다. 사람도 많고 힘깨나 쓰는 월이도 있기에 확실히 정리는 빨랐다.
거의 정리가 끝나갈 무렵 태주는 무심코 말했다.
“참 끔찍했어. 이번 것도.”
태주는 징글징글하다며 몸서리쳤다. 한번 대화의 물꼬가 터지니 잠시 잡담하는 시간이 되었다.
“으- 확실히 모습이 좀 끔찍하긴 했지?”
월이는 들고 있던 물건을 정리하며 태주에게 말했다.
“차라리 잘린 목만 있거나 잘린 몸통만 있는 게 나은 거 같아.”
“나는 가끔 네 감성을 모르겠어…”
태주는 월이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끔 보면 월이는 뒤숭숭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건 끔찍하잖아!”
설이도 작게 소리쳤다.
태주는 그래도 이곳에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데 안심했지만, 설이 역시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결국 월이와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다.
“보내 주더라도 몸은 붙인 채 보내줘야지! 그렇지 않아요?”
태주는 다시 한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네 감성도 모르겠어…”
요즘 여고생 평균이 저런가 싶어 태주는 깊이 탄식했다.
“아니, 몸은 붙인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야?”
태주의 질문에 설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언니가 사람이 머리 떨어져서 죽는 건 너무 비참하댔어요. 어라? 이거 몸을 붙이는 게 아니라 머리를 붙이는 건가?”
뭐가 맞는 건지 고민하는 설이를 보며 태주는 두통이 오는 기분이 들었다.
“다르게 죽는 건 안 비참한가…?”
확실히 그 양반은 애한테 주입한 상식의 표준이라는 게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그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태주는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설아, 아직 그분들은 별 반응은 없어?”
설이는 늘 비녀를 품에 지니고 다녔다. 허리춤에 있는 비녀를 슬쩍 만져본 뒤 속상한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진전이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음, 아직 그 정도면 그리 오래 걸리는 건 아니긴 해. 몇백 년을 쓴 몸을 버리고 며칠 만에 뿅 적응할 리가 없으니까.”
태주의 말에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죠.”
설이는 조바심은 내지 않았다. 그래도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으니 불안함은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시우랑 아버지는 잘 풀렸을까요?”
태주가 어깨를 한번 으쓱하자 시아가 대신 대답했다.
시우의 표정을 봤던 시아는 시우에게 맺힌 응어리가 어느 정도는 풀어졌음을 알았다. 물론 딛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의외로 호평이네요.”
“그나저나 이렇게 한번 쉴 거면 나 잠깐 나갔다가 와…”
시아가 이렇게 된 김에 잠시 쉬고 올까 하는 생각을 한 순간 갑자기 소장이 나타났다. 아마 위층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 나갔다 온다.”
소장이 오자 시아는 하려던 말을 하지 못했고 모든 사람의 이목은 소장에게 집중되었다.
“지금 나가려고요?”
태주가 대표로 물었다.
“응. 뭐 좀 거슬러 주고 오려고~”
소장은 천진하게 말했다.
“엥? 뭘 줘요?”
“나한텐 필요 없는데 그들한텐 좀 귀중한 물건?”
제대로 말해줄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기에 태주는 더 묻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설이가 궁금했는지 질문했다.
“거스름이 있으면 받은 것도 있는 거 아니에요? 이번에 받은 건 뭔데요?”
“덤으로 받은 것부터 말하면 너희가 이번에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되겠지. 이건 그 거스름이고.”
망량은 이번에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것은 죽은 고인이 마지막까지 망량을 붙잡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의뢰 대상에게 도움받은 격이니 소장이 거슬러준다 말하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기는 했다.
“그럼 덤이 아닌 쪽은요?”
“덤이 아닌 쪽이라 하면 저거지.”
소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으로 구석에 쓰러져 있는 쇠스랑을 가리켰다.
“뭐야, 저거 왜 저깄어?”
태주는 저걸 그 두 사람이 안 챙겨갔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사실 구석에 쓰러져 있어 잘 보이지 않기도 했다.
“저게 이번에 받을 거라고요?”
“그래. 정확히는 그 할아범한테 너 죽은 다음 저거 가져간다고 말했었지. 저거 귀한 물건이거든.”
소장이 말했으니 사실이긴 하겠지만, 조금 특이하게 생긴 물건일 뿐 그런 귀한 물건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예술품이라도 되는 겁니까?”
시아가 가장 먼저 물었다. 하지만 소장은 하하 웃으며 부정했다.
“아니, 그냥 주술적으로 좀 의미가 있는 물건. 나중에 실체 없는 걸 잡아야 할 때 쓸 수 있을 거야. 주로 월이가 쓰게 되겠지.”
“뭐야? 내 거에요?!”
소장의 말을 들은 월이는 남아 있던 짐을 던져두고 쪼르르 달려가 쇠스랑을 집어 들었다. 그립감은 조금 어색했지만 좀 쓰다 보면 익숙해질 것 같았다.
“월이가 쓰기에 딱 알맞은 물건이야. 절대로 망가지지 않거든. 그리고 한번 망량을 잡았었으니 관련 기능도 추가로 붙은 거고”
그 말에 월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망가진다고? 그럼 이거 안 부러져요?”
조금 신기한 장난감을 받은 것 같은 눈빛이었다.
“응. 그거 안 부러져.”
월이는 소장의 말을 듣자마자 다른 사람들이 말릴 새도 없이 양손에 힘을 줬다. 옆에서 설이가 우앗! 하는 소리를 지르며 피했다.
그러나 정말로 쇠스랑의 자루는 고작 나무임에도 부러지지 않았다.
월이는 괜히 오기가 생겨 힘주어 쇠를 우그러트리려 했다. 당연히 그 부분도 망가지지 않았다.
그제야 태주는 페인트가 묻어날 정도의 강한 힘에도 쇠스랑이 멀쩡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쩐다! 진짜네?!”
월이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신이난 월이를 보며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야, 그런 거 할 거면 미리 말 좀 해. 애 놀라잖냐.”
“그랬어? 미안!”
월이는 설이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사과했다. 설이는 괜찮다고 하며 다가가 쇠스랑을 구경했다.
“그런데 이게 뭔데 이렇게 튼튼한가요?”
“비밀.”
소장은 태주의 질문에 그렇게만 답하고는 말았다.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겠다 싶어 태주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소장은 이어 말했다.
“뭐, 유래가 중요한가?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막대기 하나가 생긴 게 중요하지.”
소장의 말 대로였다. 만약 월이가 저걸로 전력으로 뭔가를 부수려 한다면 세상에 못 부술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런 물건으로 땅이나 가는 물건을 만든 건지 태주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쓸 만한 물건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긴 하네요.”
확실히 유명인 예정자의 사인보다는 만족할 만한 거래였기에 태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시아는 소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소장님은 우리가 한번은 실패하길 바랐습니까?”
시아의 질문은 모두가 생각은 했지만 말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소장은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아니.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 하지만 실패하길 바랐던 건 아니야.”
“실패할지도 모른다면 왜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야 너희가 발전이 없을 거 아냐.”
소장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너희들이 유능해서 이렇게 해결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건 소장이 전원에게 하는 칭찬 같은 것이었다. 태주와 시아는 그걸 알아채곤 피식 웃었고, 설이이와 월이는 칭찬받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재잘대기 바빴다.
“그런데 이거 평소에는 어디에 보관하지?!”
월이는 들고 있던 쇠스랑을 흔들며 물었다.
“월이 꺼니까 월이 방에 두면 될까요?!”
설이의 말에 태주는 알아서 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시아는 이렇게 된 김에 슬쩍 잠시 나가서 좀 쉬고 올까 하며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든 물건을 확인했다. 그리곤 조용히 문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소장은 손뼉을 한번 짝 치며 말했다.
“자, 어쨌든 난 나갔다 올 테니까 빨리 원상복구 해놔! 시아는 몰래 한 대 피우러 갈 생각 말고.”
소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아가 몰래 나가려는 것을 지적했다. 시아는 머쓱하게 돌아왔다. 조금 입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애들 고생하는데 여기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그러기야?”
소장이 놀리듯 하는 말에 시아는 뾰로통하게 말했다.
“…나 어른 안 할래.”
“좋은 어른에 대해 이야기 해 놓고 그런 소리예요? 그리고 어른 안 하면 담배는 어디서 구하려고요?”
태주는 시아의 반응에 웃으며 말했다. 시아는 할 말은 없는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입술은 뾰족했지만, 별수 없다는 듯 마지막 짐을 정리했다.
“나 그럼 갔다 온다.”
“예. 저희는 자고 있어도 되죠?”
“뭘, 언제는 물어보고 잤냐?”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종소리를 울리며 떠났다.
다음엔 좀 쉬운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태주는 마지막 짐을 들어 올렸다. 어쩐지 좋은 잠을 잘 것 같은 날이었다.
*다음 이야기*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돌아.”
보영은 점심을 먹던 중 갑작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월이는 물었다.
“머?”
“넌 일단 입에 있는 거 다 먹고 얘기해… 어쨌든 그게 무슨 소문이냐 하면, 학교 안에 투명인간이 있다는 소문이야.”
“너 또 나쁜 버릇 나왔냐?”
월이는 입안에 있던 걸 삼키고는 찌푸린 눈으로 보영을 쳐다봤다. 보영은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건 진짜 스몰토크인데. 들어보면 너도 궁금해질걸?”
귀신에 대한 괴담이면 모를까, 갑자기 투명인간 이야기가 유행한다는 게 월이는 이해가 안 됐다.
“아니, 뭐랄까. 이게 참 수상한 이야기란 말이야! 말하자면 이런 소문인데.”
보영은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월이는 또 시작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떤 고등학생 하나가 야자를 하다가 잠들었더니, 누군가가 담요를 덮어줬다. 그런데 아무도 그 담요의 원래 주인이 누군지 모른다더라.’
‘며칠 전 교사가 잃어버린 지갑이 교무실 책상 위로 올라와 있었다.’
‘누군가가 하던 폭행의 증거물이 아무도 모르게 제보되었다더라.’
“이런 소문들이 돌고 있단 말이지.”
“별거 아닌데?”
“별거 아니지.”
하나같이 별로 나쁜 이야기는 아닌, 그냥 어딘가 미묘할 뿐인 이야기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쨌든, 학교괴담이라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