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13)
성호가 사무소에 도착하기 약 십여 분 전,
“이전에는 제가 당신에게 망량을 보지 말라 말했었죠.”
태주는 시우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반대입니다. 당신은 망량을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이전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저번에는 절대로 보지도 말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죠. 잘못 알고 있었으니까요.”
태주는 상황이 달라졌다 말했다.
“당신의 할아버지께서 망량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저번에야 알았거든요.”
태주는 망량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설명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었고 그래서 이전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기회가 한 번 있다고 태주는 말했다.
“그래서 망량을 이번에 붙잡는 것은 당신의 역할입니다.”
“제, 제 역할이요?!”
시우는 괜히 부담스러워졌다. 그걸 눈치챈 태주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잠시 뒤 저희가 스위치를 하나 드릴 겁니다. 시아 씨가 신호하면 바로 그 스위치를 올리면 됩니다.”
“아, 그런데 이걸 꼭 제가 해야 하나요?”
시우는 그게 조금 의문이었다. 바깥에서 타이밍 맞춰 버튼만 누르는 거라면 그게 꼭 자신이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태주는 설명했다.
“그게 의외로 중요한 점이랍니다. 자신을 해한 것에게 자기 손으로 반격한다는 것은 주술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거든요. 쓰는 방법이야 전혀 주술적이지 않긴 하지만요.”
태주는 그렇게 말했다. 시우는 아리송하긴 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 한번 한발자국 떨어져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가장 집중해서요.”
“네?”
시우는 물음에 태주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설명할 뿐이었다.
그래서 시우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저 딱 소리가 나자마자 스위치를 켰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나머지 대기하던 사람들도 딱 소리가 나자마자 얼른 선글라스를 꼈다.
시아 역시 신호와 동시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선글라스를 꼈다.
빛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망량 뿐이었다.
망량은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기괴한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못했다.
빛과 어둠이라는 경계가 그곳에는 없다. 도망칠 수 없고, 이전처럼 투과하여 피할 수 없다.
빛은 그 자체로 망량을 죽일 수는 없지만 가장 고통스럽게 속박했다. 그 꼴을 본 시아는 이번에는 역으로 망량을 비웃기 시작했다.
“그래서, 멍청이에게 당한 것을 뭐라 불러야 하나? 똥멍청이?”
시아의 비웃음에도 망량은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으니까.
“경계로는 너를 붙잡을 수 없다면 단순히 다른 방법을 쓰면 돼. 너는 이 많은 선과 끈들이 다 경계를 위한 건 줄 알았겠지만, 사실 전선을 감추기 위한 거였어.”
망량은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면서도 시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생각을 해봤지. 사물의 틈에, 경계에 숨을 수 있는 녀석을 가둬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기괴한 비명과 태연한 시아의 조화가 오싹했다.
“꼭 가둬야 하나? 그냥 아무 데도 못 가게만 하면 되지 않나? 빛과 어둠의 경계 속에서 네가 산다면 빛만이 있거나 어둠만이 있다면 너는 어디로도 갈 수 없겠지.”
“너··· 너··· 너···”
“어둠도 좋았겠지만, 저번에 보니까 빛을 엄청 싫어하더군? 지금 고통스러워하는 거 보니까 잘 선택한 것 같은데.”
망량은 고장 난 재생장치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망량의 분노가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이 느껴졌다.
“지금 이곳에는 그림자 진 곳이 단 한 곳도 없어. 네가 피할 곳은 없는 거지. 기분이 어떤가? 초짜라 생각한 사람에게 당한 기분이?”
시아는 망량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 밝은 빛 속에서 망량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언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말 있어?”
저편에서 월이가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걸 본 망량은 노인의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된다··· 안된다···.”
망량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는 듯했다.
“안된다··· 성호야···”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망량은 말했다.
“아비를 죽게 둘 생각이냐.”
시우는 그걸 보고는 놀라 아버지를 쳐다봤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우는 아버지가 큰 충격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저 한 마디가 얼마나 충격적일지 알고 있었다.
“아니, 아닙니다.”
시우가 생각한 대로 아버지는 뭔가 말하기 시작했다. 저번의 자신처럼 말을 해 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아버지도 자신처럼 무너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직접 부르는 것이니 더 심하게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와다오, 성호야.”
“아버지….”
망량은 말하는 것이 시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시우에게 하듯 죄책감을 건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호는 무너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뭐?”
“그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단호한 대답에 시우가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눈치챈 듯싶었다.
“아버지, 그만두셔도 괜찮습니다.”
성호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을 놓고 편하게 가셔도 됩니다, 아버지….”
시우가 걱정과 달리 아버지는 망량의 말에 현혹되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 나를 왜 보내는 것이냐.”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그래도 성호는 망량에게 홀리지는 않았다.
“장례를 치르며 저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염도 발인도 다 했지요. 인제와 아버지의 얼굴로 그런 소리를 하신다 한들 제가 넘어갈 리가 없지 않습니까.”
“너, 는?”
망량은 그제야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성호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변해버린 아버지를 가장 비통하게 바라본 사람이었고 그래서 망량에게 깊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망량의 말이 통할 턱이 없다.
“유언이 겨우 그거라니,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시아는 망량에게 딱하다는 듯 말했다.
월이는 망량의 옆에서 멈췄다.
“이걸로 치면 된다고?”
월이는 시아에게 물었다.
이전에 던진 나이프는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했는데, 이건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거 그냥 농기구잖아.”
월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쇠스랑이었다. 이전에 시우가 할아버지를 가둘 때 썼던 물건이었다.
“그냥 농기구는 아니고 망량을 가뒀던 물건이니까, 그거.”
시아의 말에 시우는 잠시 움찔했다.
“아, 아무래도 얼굴은 좀 피해서 쳐.”
“나도 그 정도 센스는 있거든?”
월이는 쇠스랑이 어색한 듯 한 번 고쳐잡았다. 그리고 제대로 힘주어 휘두르기 직전, 망량은 꽥 소리를 질렀다.
“떨어지겠다!!!!! 지금이라도 떨어져 주겠다!!”
망량은 아까의 희번덕 하던 기색 없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흐음?”
시아는 피식 웃었다. 월이는 잠시 손을 멈췄다.
“다시는 저 둘을 노리지도 않겠다. 그러니 놔주지 않겠나.”
목소리는 절실했다. 말 그대로 애걸이었다. 몸 하나 깜짝할 수 없는 괴물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러나 통할 리가 없다.
“너 같으면 들어주겠냐?”
월이는 어처구니없어하며 그대로 쇠스랑의 뾰족한 부분을 짐승의 몸체에 찔러 넣었다.
“멈춰!! 멈춰!!!”
그리고는 힘껏 잡아당겼다.
“끄아아아아악!!!!!!!!!!!”
망량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갈기갈기 찢어졌다.
“폭력 안 멈춰~.”
월이는 그렇게 말하며 쇠스랑을 어깨에 걸쳤다. 망량은 불에 타듯 점점 사라져갔다.
그때 마지막 남은 눈이 눈동자를 굴리더니 성호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고마웠다.”
몸이 갈기갈기 찢긴 망량, 아니 노인 얼굴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뚜렷해서 그곳에 있는 모든 이가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소리를···.”
너무도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그 말이 끝으로 망량은 완전히 사라졌다. 가루나 연기조차도 남지 않고 세상에서 지워졌다.
“끝난 건가요”
성호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다행히 잘 추스른 듯 보였다. 아니, 손을 벌벌 떠는 것을 보니 그리 멀쩡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괜찮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성호를 보며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끝입니다. 망량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 언젠가 망량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아예 세상에서 사라진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이전과 같은 짓은 못할 겁니다.”
성호는 믿기로 했다. 사실이 아니라 해도 진실을 알아낼 방법은 없거니와, 진짜로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혹시 마지막 말은 아버지가 한 말이었을까요.”
슬픈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건 사무소 사람들도 모를 일이었다.
“망량의 마지막 장난일 수도 있고, 진짜일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그렇군요.”
성호는 눈에 띄게 실망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한 말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 한마디를 가슴에 품기에는 망량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그 마음속의 갈등을 시아는 알 수 있었기에 잠시 성호의 반응을 살피다가 말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요.”
“네?”
“거짓인지 진실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그냥 구분하지 말고 두십시오. 아버지가 한 말이라면 좋은 거고, 아버지가 한 말이 아니라면 아버지가 할 말을 대신 전한 거라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걸까? 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번뜩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확실히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시우가 서 있었다. 성호는 조금 비틀거리며 시우에게 갔다.
“이젠 괜찮을 거다.”
그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아들을 걱정한 것이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구나.”
“아빠….”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구나.”
시우는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자신보다도 아버지가 더 힘들 텐데 자신을 먼저 신경 쓴다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웠다.
시우는 결정을 내렸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오늘 말해야 한다는 것을.
그저 말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가진 불안함 때문이었다.
“아빠.”
“응?”
아버지는 시우의 부름에 혹시 뭔가 잘못된 것일까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 눈을 보며 이젠 도망치지 않겠다, 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성호와 시우는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사무소에서 시우는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한 잘못을 얘기했고, 성호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실망했는가 하면 실망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은 아들을 혼낼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너무 과중한 짐을 맡기고도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탓이었다.
자신에게도 무거웠던 짐을 자식에게 맡겼던 것은 자신이 잘못한 거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마음이 갑갑했다. 성호는 잠들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결국 밖으로 나왔다.
남자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밤공기는 아직 차기에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깊은 곳 한구석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대문을 넘어 남자는 늘 걷던 산책로를 걸었다. 토요일 새벽이라 그런지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녕?”
그렇기에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을 때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곧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는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당신이군요.”
“그래. 나야.”
성호를 부른 것은 소장이었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했습니다.”
“뭘, 네 아버지가 한 일이 있으니 그만큼 더 도운 거지. 사실 망량을 그렇게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 애들이 이렇게 잡을 수는 없었을 거거든.”
소장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감사 인사는 됐어. 잠시 이야기나 좀 하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망량 문제인가요?”
남자는 물었다.
“망량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들었는데요.”
“망량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야. 굳이 말하자면 네 아버지 이야기겠지.”
따라오라는 듯 소장은 천천히 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고 성호는 따라 걸었다.
“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요?”
“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네 아버지에게 아들은 어떤 존재였나 하는 이야기.”
소장의 말에 성호는 발걸음을 순간적으로 멈추곤 소장을 바라봤다. 소장은 그저 능글능글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버지를 찾아주신 날… 말씀하신 건가요?
“흠, 너는 어떤 아들이었지?”
소장은 성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대뜸 물었다. 남자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다가 대답했다.
“글쎄요. 좋은 아들은 아니었을 것 같군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알지만 구태여 물어보도록 할까. 왜지?”
“아버지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고, 아들이 그렇게 몰릴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속은 쓰렸다. 생각만 하고 있던 것과 입 바깥으로 내뱉는 것은 달랐다.
“하하, 그래. 알면서도 물어본 심술을 부렸으니 조금 오지랖을 부려서 대답을 조금 해 주지.”
소장은 몸을 빙글 돌려 얼굴을 마주 보며 말했다. 뒤에 있는 남자와 얼굴을 마주하기 위함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나 같은 존재가 아니야.”
“네?”
남자는 소장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되물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모르는 일들 천지라고. 나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말이야. 사람은 사람을 모르고, 알더라도 그리 정확히는 알 수 없어.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거야. 아무리 가족이라도.”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장이 말하는 것의 의도를 여전히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네 아들을 어떻게 생각하지?”
“제 아들이요?”
남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아들이죠.”
“그런 일을 했는데도?”
소장이 말하는 ‘그런 일’이 무엇인지 남자는 알고 있었다.
“예. 그런 일을 했는데도요.”
그건 단언할 수 있었다. 남자의 단언에 소장은 다시 물었다.
“실망했잖아?”
“아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생각은 없지만, 그게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안 됩니다. 제가 가르치고 지켜줘야 할 소중한 아이인걸요.”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행동과는 별개로 여전히 아들을 사랑했다.
“뭐, 그렇게 생각할 건 알고 있었지. 하지만 자기 입으로 꼭 말하게 하고 싶었다.”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네가 네 아들을 생각하는 것이 그런데, 네 아버지는 너를 어떻게 생각했겠냐.”
“그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 정도로 소장의 말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최소한 소장은 아니었다.
남자가 그런 말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전에 소장은 말했다.
“뭐, 이런 이야기만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예?”
“다른 게 아니고. 안 준 게 있었지 뭐야? 사실 그거 주러 온 거였어. 앞의 이야기는 덤이고.”
소장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저번에 네 아버지가 나한테 지불한 것이 생각보다 비쌌단 말이지. 물론 돈으로 받은 게 아니니 거스름돈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내가 한 가지 다른 방법으로 갚아 주려고 했지.”
“뭔가요?”
남자는 물었다. 낼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반대로 거스름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들었다.
“성호 네게는 의미가 있을 그런 물건이야.”
소장은 그렇게 말하며 성호에게 뭔를 건넸다.
“…뭐죠 이건?”
낡은 mp3였다.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게 내가 주는 거스름이야. 참고로 그거 녹음 기능도 있어.”
성호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mp3를 자세히 살폈다. 전원 버튼을 눌러 봤지만 켜지지는 않았다.
“이 안에 뭐가 든 겁니까?”
성호는 그렇게 물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소장은 보이지 않았다.
성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겨 mp3를 자세히 살폈다. AA건전지가 들어가야 할 곳이 비어있었다.
성호는 급히 편의점에서 건전지와 이어폰을 샀다. 주변 벤치에 앉아 건전지를 끼우고 이어폰을 연결했다.
잠시 후 전원이 켜졌고, 잠시 조작법을 헤매던 성호는 곧 녹음된 파일 을 찾을 수 있었다.
남자는 이어폰이 귀에 잘 꽂혀 있는지, 소리는 잘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