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12)
“으아- 누나, 월이 하교하려면 멀었죠?”
두 사람은 몇 시간 째 중노동 중이었다. 이럴 때야말로 월이가 있었으면 싶었지만, 없다고 자신들이 할 일을 내팽개쳐 둘 수도 없었다.
“같은 장치를 일 층에 다시 하려니까 죽을 거 같아요.”
태주가 계단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1층에선 시우가 홀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잠시 계단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한 두 사람이다.
“학교에 전화나 해볼까? 조퇴하라고?”
“걔라면 좋아할 것 같기는 한데, 에이, 아니에요. 그래도 공부는 해야죠.”
“공부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만,”
그 말엔 태주도 동의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한 번에 잡았으면 좀 좋아요?”
반쯤 자책 겸 장난으로 태주는 말했다. 시아는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게 왜 내 잘못이야.”
“뭐, 제 잘못이 좀 더 크긴 하죠. 참, 후회와 죄책감에 대해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제가 이런 말 할 처지인가 싶긴 하네요.”
따지고 보면 하는 일마다 후회만 남았고 죄책감을 가질 일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태주였다.
“그런 건 원래 겪어 본 사람이 조언해주는 거야. 인생에 아무런 죄책감과 후회도 없는 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어?”
“그거 좀 그럴듯하네요.”
시아의 말대로라면 아주 쓸모없는 조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조금은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후회와 죄책감이 없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사실 그 말도 맞았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겠죠. 아니, 소장은 어떨까요?”
갑작스럽게 떠오른 의문에 태주는 물었다. 혹시 소장이라면 그런 후회 같은 것도 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나는 그 사람이 아는 게 많은 만큼 더 많은 후회와 죄책감을 가지고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해 봤다만.”
하지만 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확신까지는 없는 듯했다. 있더라도, 혹은 없더라도 어느 쪽이어도 말이 된다. 그래서 더 알 수 없었다.
“뭐, 그거야말로 본인이 말을 안 해주면 모를 일이지.”
시아는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됐으니 망량 이야기나 조금 하자. 빠진 건 없겠지?”
“네. 준비는 완벽하죠. 이번에는 별문제 없겠죠?”
태주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번엔 확실하다는 생각은 있지만, 한번 크게 데인 탓에 조금 걱정이 됐다.
“응. 이번에도 실수하면 내가 장사 접는다.”
시아는 나름 자신감을 보이는 태도로 말했다.
“아이고, 이제 누가 주술해주나.”
태주의 장난에 시아는 태주의 어께를 툭 쳤다.
“어이, 강 씨. 헛소리 말고 짐이나 옮겨.”
두 사람은 그런 소리를 하며 킬킬 웃었다.
저렇게 단언을 할 정도라면 시아는 꽤나 많은 연구를 했을 것이다. 또 그만큼의 책임감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럴 것이 확실했다.
“말씀하시는 대로 짐이나 나르러 가죠. 아직 좀 남았잖아요?”
* * *
딸랑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제는 성호도 여러 번 들어 익숙해진 소리였다. 퇴근하자마자 사무소로 온 듯했다.
“저기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성호는 들어가도 괜찮을지 조금 머뭇거리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카페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바닥에는 선과 끈이 잔뜩 이었고 으스스한 도구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었다.
“이건···”
이렇게 배치를 한 모습은 처음 본 성호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네.”
성호는 변한 이곳의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사람이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아주 달랐다. 마치 거미줄의 한 가운데로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사람을 거부하는 공간 같군요.”
“사람을 거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 아닌 것을 반기는 공간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감은 있습니다만.”
성호는 대답이 돌아온 방향을 쳐다봤다. 대답한 것은 시아였다.
태주는 구석에서 시우와 뭔가 대화를 하고 있었고 잘 모르는 여학생 두 명은 자기들끼리 속닥대고 있었다.
“그게 무슨 차이인가요?”
성호는 천천히 다가오는 시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사람을 밀어내는 공간은 사람이 피할 무언가가 직접으로 눈에 보여야 합니다. 위험한 날붙이가 널려 있다거나, 혹은 고통과 괴로움이 실제로 보이는 공간이라거나,”
예를 들어 고문실이나, 옛날에 사용되던 형무소 같은 곳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민감한 이들은 안에서 오래 있지 못한다. 말 그대로 밀려나는 것이다.
“반면 사람이 아닌 것을 반기는 공간은 사람을 밀어내는 요소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아는 겁니다. 이곳이 좋지 못한 것이 즐겨 찾을 만한 곳이라는 걸요.”
대표적인 예시로 폐가나, 폐병원이 있다. 직접적으로 위험한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 꺼림칙하다.
성호는 조금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곳은 귀신을 부르기 위해 꾸며진 상태라는 거군요.”
“뭐, 잡담은 여기까지가 되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이야기는 끝났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성호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준비는 다 끝났거든요.”
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성호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까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아니, 다른 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제 아들이 안 보이는데요.”
성호는 모든 준비가 마쳤다고 하는데 갑자기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저번에는 가장 중앙에서 준비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 일부러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곳에 보내 뒀습니다.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거든요. 따로 맡은 역할도 있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손님이 가운데에 가야 합니다.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네?”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성호는 당황했다.
“다만 제가 신호를 드리면 바로 눈을 감으십시오. 봐서는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
시아가 그렇게 말하자 성호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불길한 기분밖에는 들지 않았다.
“저번에는 보면 안 될 것을 볼 수도 있으니 오는 것도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꼭 하기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위험한 일이라면 아들보다 자신이 겪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다.
“그랬지요. 하지만 약속드렸지 않습니까?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해 드리겠다고.”
그런 약속을 태주와 하긴 했었다.
“…하지만 원래는 참관만 할 생각이었는데요.”
시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이편이 나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번에 통제에 실패하기는 했습니다만.”
시아의 말은 그저 성호의 불안함을 가중할 뿐이었다.
“이번엔 더 많은 준비를 해 왔으니 괜찮을 겁니다.”
“지금 그 말 하나도 안심이 안 되는 건 아시죠?”
시아는 성호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성호는 이들의 통제에 따르기로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국은 이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해 보겠습니다. 뭐, 죽기야 하겠습니까?”
아들도 하루 만에 털고 일어난 걸 보면 그리 심한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닐 거다.
조금 불안하지만, 그 정도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성호는 마음을 다졌다.
* * *
성호는 긴장한 채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전등이 있기에 촛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창은 모두 막혀 있었고, 이번엔 입구마저 막혀 있었다.
“이걸 잠시 들고 계시죠.”
시아는 향을 건네줬다.
“이게 뭡니까?”
성호의 물음에 시아는 라이터를 건네주며 말했다.
“향입니다. 망량을 부르는. 그 향에 불을 피운 순간부터 당신은 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 당연히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도 안 됩니다.”
성호는 그것만 지키면 되냐 물었다.
“망량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무시하는 것만이 당신이 할 일의 전부입니다.”
성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는 마음의 준비가 끝나면 불을 켜라 말했고 성호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뒤 향을 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향이 퍼져 나갔다. 연기는 성호를 한번 휘감고는 퍼져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가 바뀌었다. 무겁고 퇴폐적인 향이 났다.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은 냄새라고 성호는 생각했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성호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얼마나 걸릴지 물어봤어야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분위기가 바뀌었다.
“바로 나타났네요.”
어떤 여학생이 말했다. 그러나 성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들려왔다.
“또 같은 일을 하는군.”
성호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하지 말라는 당부는 잊지 않았기에 그저 눈만을 부릅뜬 채 지켜봤다.
이윽고 괴상한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의 얼굴에 짐승의 몸통을 단 괴물이었다. 아들이 저런 걸 봤으니 정신을 조금 놓을 만도 하다고 성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성호는 숨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번에는 말을 하는구나.”
시아는 물었다.
이전에는 제대로 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낸 소리라 해봐야 사람 이름을 부르는 것과 비명만을 질렀을 뿐이었다.
“흥, 실력도 없는 무당 나부랭이가 뭘 하겠다고 나서? 애송이 녀석.”
망량은 그렇게 시아를 비웃었다.
“지적이 뼈아프군.”
시아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저런 종류에 도발에 일일이 넘어갈 필요는 없었다.
“이번엔 말을 하니 묻지. 왜 왔지?”
굳이 자신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다는 것은 대화를 해보겠다는 의미였다. 그것이 그저 조롱을 위한 것이라 해도 그랬다.
그리고 예상과는 한 치도 다르지 않게 망량은 말했다.
“왜 왔냐고? 그야 바보 같은 너희들을 비웃어주러 왔다.”
“비웃는다, 인가. 그 이유만은 아닐 텐데.”
시아의 지적에 망량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멍청한 것, 당연한 걸 말하고 잘난 척하기는. 당연히 목적이야 더 있지.”
망량은 이번에는 표정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말했다. 얼굴은 노인의 모습 그대로인지라 썩 불쾌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시아는 물었다.
“이전보다 확실히 상태가 좋아 보이는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쯧, 너는 생각이라는 걸 안 하는 거냐? 이전이 안 좋은 상태였지. 지금이 좀 나아진 거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노친네한테 달라붙는 게 아니었는데. 제기랄.”
망량은 하는 말마다 욕설을 붙이며 말했다. 시아는 그것에 전혀 동요하지 않으며 말했다.
“그 노인이 네게 뭘 했지?”
“재미로 달라붙었더니 죽자사자 달라붙지 뭐야? 그 덕에 이 모습에서 한동안 바꾸지도 못하고, 고생 좀 했지.”
소장이 말한 대로였다. 시아는 처음 듣는 소리인 것처럼 물었다.
“흠, 떼어내면 되는 것 아닌가.”
“다 늙어 빠진 주제에 생각보다 힘이 좋더라고. 하지만 늙은이가 힘이 좋아 봤자지.”
망량은 여전히 노인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아직은 노인이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시아는 확신했다. 그렇다면 계획은 통할 것이다.
“후, 결국은 노인 하나 못 이겼다는 말이 아닌가? 망량씩이나 되는 것이.”
시아는 역으로 망량을 비웃었다. 망량은 그 말이 언짢았던 듯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나를 이렇게까지 귀찮게 만들었으니 이 노인 가족은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그것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하지만 시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자기 할 말만 했다.
“흠, 그래. 그건 어디 마음대로 해봐. 그 전에 하나 궁금한 점이 있다만.”
시아가 질문했다. 망량은 의외로 여유롭게 대답했다.
“뭐, 죽기 전 마지막 질문 같은 건가?”
“왜 아들부터 노린 게 아니라 손자부터 노렸지?”
그 물음에 망량은, 시우 할아버지의 얼굴은 급격하게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하려는 걸 방해했으니까.”
성호는 알 수 없는 답이었지만 시아는 이유가 짐작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의도가 그게 아니니 칭찬할 일은 아니다만.”
시아는 중얼거렸다.
“이제 궁금증은 다 풀렸고? 그런데 너는 멍청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이런 거로 날 잡아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망량은 시아를 계속 비웃었다.
“흠, 붙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만.”
“이걸로?”
망량은 몸을 굴러가며 박장대소했다.
“저번이랑 크게 달라진 것도 없잖냐. 좀 속여보려고 노력한 거 같긴 한데, 다 티나!”
망량은 시아의 경계펼치기를 다 꿰뚫어 봤다는 듯 말했다. 틀리지는 않았다. 경계는 이전보다 한 층 강화되어 있었지만 망량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네가 제일 병신이라며 망량은 떠들었다. 그러나 시아는 당황하지 않고 그저 물끄러미 망량을 바라볼 뿐이었다.
“흠, 뭐 주술적 경계는 당연히 안 통할 걸 알고 있었어.”
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망량은 느꼈다.
“뭐?”
주술사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방법을 고집한다. 아마 자신을 잡겠다고 경계의 수준을 높이는 걸 망량은 많이 봐왔을 것이다. 그래서 시아의 경계를 보고 안심하였을 것이다.
자신 있게 펼친 더 높은 경지의 경계를 비웃고 농락하고 사라지는 경험, 그러나 이번엔 그것이 독이었다.
“어떤 주술적인 준비를 해도 널 잡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지랄이야, 놀라게.”
망량은 안심하고 비웃었지만 시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조금씩 앞으로 다가오던 망량은 이어지는 시아의 말을 듣고 발을 멈췄다.
“그래서 이걸 준비했지.”
망량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취한 순간 시아는 바로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 그러자 바로 사방에서 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술적인 방법이나 다른 방법을 활용한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 어느 한 곳도 그림자 지는 곳 없이 오직 빛뿐이었다. 망량이 숨어들어 갈 경계 같은 것은 없었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망량이 사는 곳이라면 그 경계를 이 공간에서 없애면 된다.
움직일 곳도, 도망갈 곳도 없게.
“아무래도 나는 다른 방법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어서 말이야. 이 좋은 걸 안 쓸 이유가 없지. 과학 맛이 어떠냐, 이놈!”
어느새 선글라스를 꺼내 쓴 시아가 망량을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