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10)
아무 일 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확실히 소장의 말대로 망량은 지금 그리 자유롭지 않은 듯했다.
“어우, 죽겠다. 태주야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시아와 월이는 불침번을 서느라 비교적 상태가 안 좋았다. 해가 뜨자 시우가 있는 방에서 나와 늘어져 있던 시아는, 마찬가지로 시간이 되어 일 층으로 내려온 태주를 보자마자 커피를 달라 닦달이었다.
“나도 초코프라푸치노!!”
태주를 뒤따라오던 월이도 마시고 싶은 걸 외쳤다.
“어휴, 그래 오늘은 해 줄게. 다들 고생했으니까. 설이 넌 마시고 싶은 거 없어?”
다행히 태주는 오늘 오전에 시우와 대화를 해야 해서 초번으로 선 덕분에 조금 쌩쌩한 편이었고, 설이는 열 시만 되면 곯아떨어지는 통에 불침번을 서지 않아 아주 쌩쌩했다.
“저는 괜찮아요!”
마지막으로 내려온 설이는 고개를 저으며 시아의 옆으로 가 앉았다.
태주는 월이에게 음료를 먼저 쥐여준 후 시아의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금세 음료를 한입에 다 털어 넣은 월이는 설이와 함께 사무소를 나섰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온다아-!”
정신없는 아침이었다.
그 사이에 시우의 아버지까지 찾아와 쇠스랑을 전해주고 갔으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일 층엔 이제 시아와 태주, 그리고 아직 잠을 자는 시우만 남아있었다. 아침 일찍 때와는 달리 아주 고요한 분위기였다.
태주는 늘어져 커피를 마시고 있는 시아의 맞은 편에 앉아 쇠스랑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성호의 말대로 사이즈가 애매한 물건이었다. 본격적인 농기구라기엔 작고 단순 정원용 도구라기에는 조금 큰 것도 같았다. 사실 쇠스랑이라기보다는 확실히 좀 더 특이하게 생긴 갈퀴라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의외로 별로 많이 사용된 물건은 아닌 듯하고.”
“그러게, 농기구라기엔 너무 깨끗하다.”
태주의 혼잣말에 시아가 답했다.
“닳아 있는 부분도 없고 자루에도 손때가 타 있는 부분은 딱히 없네.”
유일하게 이상한 점이 있는 부분이라 하면 쇠붙이와 자루가 이어지는 쪽에 묻어 있는 페인트칠 정도였다.
태주는 페인트가 묻은 부분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이렇게 깨끗한데 이 구석에만 페인트가 묻어 있다니, 너무 이상하네요.”
“페인트? 어디?”
태주는 페인트가 묻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여기 옆에요.”
“응? 진짜 이상하네. 어떻게 사용하면 여기에 페인트가 묻지?”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모르죠. 방금 받은 물건인데. 뭐, 집 안에서 고인께서 종종 들고 다녔다고 하니 어디 부딪히거나 그런 걸 수도 있겠죠.”
확실히 이런 것을 조심해서 들고 다니지 않으면 집 안 구석구석에 흠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걸 감안해도 이상해.”
시아는 태주에게서 쇠스랑을 뺏어 들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세를 잡아보았다. 한손으로, 양손으로, 어깨에 걸쳐 메 보기도 하고 거꾸로도 들어 봤다. 하지만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지 여전히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뭐해요?”
태주는 갑자기 시아가 왜 저러나 싶어 물었지만 시아는 대답도 해 주지 않은 채 계속 하던 행동을 반복했다.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태주도 시아가 이상하다고 표현하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아,”
“이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도 쇠스랑의 자루와 쇠가 이어지는 부분을 어딘가에 부딪히게 할만한 자세는 없었다. 이윽고 시아가 더 이상 새로운 자세를 떠올려 보는 것을 포기할 때쯤 태주는 말했다.
“그렇네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어요.”
아마 태주 혼자서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전, 시골에서 좀 살아본 시아가 있었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지? 당장 나도 잘 모르겠어. 이거 평범하게 들고 다녀서는 이런 곳에 뭐가 묻을 이유가 딱히 없는데.”
태주는 여기에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그러면 이런 칠은 어떻게 하면 생기는 거죠?”
“그야 나도 모르지. 일부러 벽에 기대거나 하면 가능하려나?”
둘은 곧바로 근처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 쇠스랑을 기대 세워 놔 봤지만, 페인트가 묻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그렇지. 그리고 이렇게 마른 페인트가 묻으려면 강한 마찰이 있어야 할 거야.”
평범하게 사용해서는 이런 곳에 페인트 자국이 남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태주는 주변에 막 써도 되는 물건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여기 의자도 많은데, 의자 하나 없어졌다고 티 나진 않겠죠?”
그 말에 시아는 태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채곤 씨익 웃었다.
“꽤 본격적이네?”
페인트를 긁을 정도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 태주는 실험해 볼 생각이었다.
태주는 슬쩍 의자에다가 쇠붙이 부분을 긁어봤다. 당연히 페인트는커녕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시아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태주의 손에서 쇠스랑을 뺏어 들었다.
“그 정도 힘으로는 턱없이 모자라지. 여기에 페인트를 묻혀보고 싶은 거 아니야?”
시아는 그렇게 말하곤 태주가 말릴 새도 없이 의자 다리 사이에 쇠스랑을 끼우곤 힘껏 자루를 잡아당겼다.
“아, 아니!”
끼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 다리가 빠직하며 부러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구가 망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빌린 물건인데 망가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농기구인데 이 정도로 망가질 리가.”
시아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 정도로 망가지면 기구가 불량이야. 대신 버려준 셈 치면 돼!”
“아니, 어휴! 의자 하나 버릴 셈이라고는 했지만 부술 줄은 몰랐네요.”
태주의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시아는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니 좀 생기는군.”
시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쇠스랑을 태주에게 건넸다. 확실히 그런 식으로 하니 원래 있던 모습과 유사한 자국이 생겨 있었다.
“모양도 위치도 비슷하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어딘가에 끼워진 채 힘을 가했다는 의미가 되겠군. 집에 그런 곳이 있을까?”
시아는 태주에게 물었다.
태주는 잠시 시우의 집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딱히 이렇게 끼울 수 있는 곳은 없었던 것 같았다.
“가구 하나를 이걸로 부숴 먹었으면 그런 이야기를 안 해 줬을 리도 없을 것이고···”
“의외로 간단한 방식 아니겠니.”
시아는 감을 잡은 듯 말했다. 태주는 시아 쪽을 쳐다봤다.
“그냥 문지른다고 되는 종류의 자국이 아니야. 의외로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크게 힘을 줄만 한 지점은 많지 않지. 무언가를 끼울 수 있는 곳도 그리 많지 않고.”
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잠시 그 방향을 보고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생각했는지 다른 곳으로 갔다.
“뭐 찾아요?”
태주는 시아를 따라가며 물었다.
“문고리.”
“문고리요?”
“동그랗지 않은 게, 일 층에는 없던가? 삼 층에는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시아는 문을 열어 삼 층으로 올라갔고 태주는 그 뒤를 따랐다.
“문고리는 왜요?”
“그런 자국이 생길 만한 건 문 정도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거든.”
“문틈에 끼우면 이렇게 되려나요?”
“문틈이 아니야. 그런 곳에 이 자루가 들어갈 리가 없잖아.”
시아는 태주의 방 앞에 서며 설명을 이었다.
“그래, 이 손잡이를 말한 거야! 자 이걸 이렇게 문에 걸쳤어. 이러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시아는 뾰족한 부분을 문이 당겨지는 방향으로 놓고 문고리에 걸며 말했다. 길이가 애매한 쇠스랑은 문고리에 걸쳐져 아슬아슬하데 바닥을 딛고 있었다.
“누가 문을 열면 이게 넘어지겠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것만 가지고 문이 고정되지는 않았다. 아마 짤막한 쇠스랑은 누가 문을 열면 바로 넘어졌을 것이었다
“어라.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데. 이게 아닌가?”
시아는 황급히 조금 더 이리저리 생각해 봤다. 자신만만했던 태도와 지금의 허둥지둥하는 태도 때문에 조금 우스워지기는 했지만, 방향은 맞는 것 같아서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뇨. 그게 맞을 것 같아요.”
만약 처음 시아가 생각한 상황에서 그 밑에 쇠스랑을 받쳐줄 무거운 물건 하나만 놓는다면, 그리고 열고 닫는 방향이 반대라면.
“옛날 문을 널판지 끼워서 막는 것과 비슷한 원리네요.”
그런 식이라면 실제로 시아의 방식대로 그 문을 막는 것은 말이 되었다. 그 문을 열기 위해서 힘껏 잡아당긴다면 딱 자루 부분에 그런 페인트칠과 흠집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깐만요. 그렇다면,”
태주는 그제야 시우가 왜 죄책감이 생긴 건지 알 것 같았다.
“밖에서 문을?”
“그렇게 되겠지.”
* * *
점심때가 되자 시우도 정신을 차렸다. 사실은 자고 있었다기보다 혼절해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았을 것이다.
시우가 눈을 뜨고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본 것은 심각한 표정의 두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시우는 어색하게 인사했다. 어제의 실패가 있었으니 두 사람이 저런 표정이리라 생각했다.
“잘 주무셨나요.”
태주는 따라 인사했다. 그러나 시아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지만 시우는 잔뜩 긴장해 있는 터라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했다.
시우는 어제 일이 기억이 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무너지던 과정까지는 기억했다.
사과해야 했다. 자신이 버틸 수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기, 어제는···”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시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태주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시우는 자기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는데 태주가 선수를 친 격이 되었다.
“어, 아뇨. 제가 견디지 못한 탓인 걸요.”
“아닙니다. 저희 쪽이 잘못 파악했어요. 견디실 수 있을지 저희가 먼저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게 맞았습니다. 그러지 못한 제 잘못이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태주의 말에 시우는 그저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요? 괜찮으시다고요?”
태주는 고개를 들어 시우와 눈을 마주쳤다. 태주의 눈빛은 올려다보는 눈빛이었으나 강렬했다. 시우는 시선을 피했다.
“괜찮지 않으시던데요.”
“윽, 아니 그러긴 했지만요.”
시우는 미안함을 느꼈다.
자신은 분명히 그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결국은 자신이 이들의 계획을 망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죄송합니다.”
“어떤 점이요?”
“견딜 수 있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부분은 죄송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주는 미안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으나 그 말과는 다르게 딱딱한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지은 죄가 있으니 시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제, 아버님이 왔다 가셨습니다.”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 시우는 놀랐다.
“아버지가요?”
시우는 급격히 위축된 태도로 물었다.
“제 모습은 보셨나요?”
“제대로 보지는 못 하셨지만, 꽤 화내고 가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아드님의 상태가 좋지 않게 변했다는데.”
“그랬군요….”
시우는 확실히 의기소침해진 태도로 말했다.
“그래도 다행히 한 번 정도 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버님께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들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이요?”
“저희는 아버님께 당신이 한번 크게 혼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의 할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실 때 말이에요.”
태주의 말에 시우는 표정이 굳었다. 확실히 지금까지와 다른 반응이었다. 반응을 차마 숨기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것 말인가요?”
잠시 시간을 두고 시우는 물었다. 태주는 되물었다.
“글쎄요. 크게 혼난 적이 여러 번 있으신가요?”
그 시우는 그 질문을 압박으로 받아들인 건지 숨이 막히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을 본 태주는 확실히 이 부분이 진짜 숨기던 부분이라고 확신했다. 시우의 반응은 태주의 추측에 확신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요.”
“그렇다면 그게 당신이 죄책감을 가질 이유였거나, 아니면 관계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태주는 쇠스랑을 꺼내 들었다. 그건 본 시우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신은 그때 죄책감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어요. 잊어버린 거든 숨긴 거든 이젠 상관없습니다. 어느 쪽이 사실이건 이게 이번 일의 핵심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