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9)
“오랜만이야.”
소장이 씨익 웃자 성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화가 조금은 누그러진 채였다.
“감사할 일도 아니지. 네 아버지에게 의뢰를 받아서 한 일이거든. 거 참 정신도 온전치 않은 양반이 의지가 어마어마했어.”
성호는 소장의 말이 이해가 안 되었는지 되물었다.
“네? 아버지가··· 의뢰를 했다니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그러니까, 댁이 이곳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거지.”
소장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태주는 눈만을 깜빡거렸다.
“자, 내가 다시 만날 거라는 이야기를 했던 건 기억할 테고, 이 정도면 단순 사기가 아니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을까?”
“이전에 신세 많이 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성호는 확실히 이전보다 날을 죽인 상태로 말했다. 이제 귀신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이전의 것이다.
이런 곳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단순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자신에겐 둘도 없는 은인을 사기꾼이라 몰아붙이는 것은 합리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허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있었다.
“아버지가 의뢰했다니요.”
“말 그대로의 의미. 네 아버지는 나한테 한 가지 의뢰를 했었지. 이곳을 거치지 않았으니 정식 의뢰는 아니지만, 여기 대장은 나니까! 원칙에 어긋나더라도 내가 받고자 하면 받는 거지.”
태주는 자신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끼어들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는 아니라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아버지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였지 않습니까. 무슨 의뢰를 하셨다는 겁니까.”
의뢰했다는 것이 사실일 리가 없다고, 그리고 했다 쳐도 온전하지 않은 정신으로 하는 의뢰에 무슨 의미가 있냐는 의미로 성호는 소장에게 말했다. 그러나 소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말은 틀린 건 아니지만, 치매 환자라도 가끔은 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지.”
소장은 그렇게 말하며 성호를 똑바로 봤다.
“내게 의뢰를 하던 그 순간, 네 아버지는 분명히 정신이 맑았었다. 믿건 믿지 않건 그건 상관없어. 단 한 순간, 사당에 도착한 순간 네 아버지는 잠시 정신을 차렸었고, 그리고는 그때 나와 만났지.”
그것은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들 된 입장에서 믿고 싶을 주장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아버지는 그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왜 거기까지 갔는지, 어떻게 갔는지 그 모든 것이 다 의문이었다. 먼 과거에 가슴 속에 묻어 뒀던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물어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성호는 마음을 조금 다스리고는 물었다.
“···그렇다 치죠. 그래서, 아버지가 당신에게 한 건 무슨 의뢰였던 겁니까.”
성호는 한풀 꺾인 채 물었다.
“맨 처음에는 자신에게 붙은 것을 떼어낼 수 있는지 물었다. 자신이 갑자기 악화된 원인을 본인만은 알 수 있었던 거지. 짐작하듯이 그 달라붙은 게 망량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뗄 수야 있었겠지만 뗀다 해서 치매가 낫는 것은 아니고, 또 떼어낸 망량이 새로운 사람에게 들러붙을 거라는 걸 들은 네 아버지는 그 바람을 취소했다.”
성호는 아버지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자신이 이것을 끝까지 붙잡아 둘 수 있는지 묻더군.”
성호는 끄덕이던 고개를 멈추곤 허망한 눈으로 소장을 바라봤다.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었다.
실종되었다 돌아온 아버지는 그 이후 계속 방으로 들어갔다. 금방 다시 나왔다가도 곧바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성호는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혹시 방 안으로 계속 들어가시는 것이 그래서였습니까?”
“그래. 네 아버지는 스스로를 가두어야 한다 생각했어. 망량은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고.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반복은 그런 둘의 의견차 때문이었지.”
그 과정에서 온 집안을 다 헤집어 놓고 다녔기에, 혹시나 아버지가 다칠까 두려워 성호는 집에 있는 모든 모서리에 스펀지를 덧댔다.
소장의 말을 들은 성호는 물었다.
“제 아버지는 자신에게 나쁜 것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알았지. 그게 망량이고, 망량이 대체 뭐 하는 건지는 당연히 몰랐지만 말이야.”
무언가 나쁜 것이 있다는걸, 본인은 모를 리 없다.
“왜 말씀을….”
안 하셨을까. 성호는 그런 뒷말을 삼켰다. 소장이 먼저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 양반이 하는 이야기에 의미가 있나?”
“예?”
“망량의 가장 악질적인 부분 중 하나는 망량이 붙은 사람의 말은 치매 노인의 헛소리처럼 들려버린다는 점이지. 그렇기에 굳이 네 아버지는 그런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장의 말을 들은 성호는 소장을 쳐다봤다.
“그래서 망량은 다른 것들과 달리 인간과 딱히 조화를 이룰 필요 없이 하던 대로 하며 살지. 대놓고 있어도 과학적으로 부정될 여지가 없는 거지. 원래부터 헛소리하는 것을 전제로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붙으니 말이야. 엇차 이건 태주한테 할 말이었는데. 뭐, 듣고 있으니 뭐 상관없나.”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 다른 이야기로 빠져버렸다. 소장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의뢰는 그게 다였습니까.”
성호는 무겁게 물었다. 소장은 별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게 다였어. 그리고 전에 살던 집이 있던 곳을 가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같이 돌아다니며 보여줬지. 물론 이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건 늙은이 소원 들어주는 셈 치고 산책갔다 온 셈이지. 그건 그냥 서비스야.”
“···아버지는 그걸 보고 뭐라 하셨습니까.”
“별 대단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 건물을 한번 돌아보고, 그 안의 모습을 구경했지. 미리 말해 두지만, 그때까지는 네 아버지는 아직 정신이 맑았어. 너도 한번 일이 끝나면 가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야.”
성호는 무언가를 더 묻고 싶었지만 무슨 질문부터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정신이 맑을 때의 아버지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듣고 싶었다. 그것이 거짓일지도 모른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성호가 질문하기 전에 먼저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소장님, 잠시만요. 자기가 받아들이셨다고요?”
태주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기에 끼어들었다. 성호의 눈이 곱지는 않았으나 태주는 무시했다.
“그래. 망량이 다른 이에게 가지 못하도록 붙잡기로 한 거다.”
태주는 갑작스러운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 모습은···”
망량이 모습을 자유롭게 바꿀 수 없었던 이유는 고인이 망량에게 역으로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본인이 선택한 결과다. 다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겠지. 망량의 역사에 비해 그 양반의 역사는 어마무시하게 짧으니까. 그럼에도 그런 게 가능했던 이유는 첫째, 망량의 모습이라는 것이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본인의 의지가 엄청나게 강해서다.”
태주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그것이 그저 망량이 시우를 홀리기 위해 취한 모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망량은 시우를 홀리기 위해 그 모습을 취했던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 취했기에 시우를 홀리려 했다.
“망량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거군요.”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게··· 사람 의지로 되는 일인가요.”
“생전에 의지가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던 거지. 죽고 나서도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해 줄 수 있을 만큼.”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소장의 평가였다.
결국은 이제야 태주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것은 있었지만 지금 알아낸 것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었다.
“나답지 않게 이번엔 말이 많았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나서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을 것들이 많았으니 말이야. 이번만 일부 예외인 걸로 하지.”
소장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아, 그리고 저 사람한테 보수 안 챙겨도 된다. 아버지께 이미 내가 옛날에 받아 챙겼어.”
소장의 말에 두 사람 모두 당황했다. 그러나 그 말만을 남긴 채 소장은 다시 사라져 버렸다. 뭔가 더 말할 것처럼 하더니 그냥 혼자 올라가 버렸다.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 두 사람은 멀뚱히 서 있다가 태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다시 이야기를 좀 해보죠.”
“···그럽시다.”
* * *
다행히 이야기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처음 성호가 물은 것은 실패한 원인이었다.
태주는 자신이 잘못된 판단과 상황을 설명했다. 미숙했던 조사와 시우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간과해 벌어진 일이라고 자신의 실수를 다시 한번 사과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성공할 수 있는 겁니까?”
성호는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태주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높은 확률로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던 부분들을 다시 조사하고 점검할 필요는 있습니다.”
태주의 말에 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냥 가능하다고만 했다면 오히려 믿지 않았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성호는 그렇게 말했다. 태주는 조금 표정이 나아졌다. 원하던 대로 한 번의 기회를 다시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이번에는 그 망량이라는 것이 나타날 때 저도 있어야겠습니다.”
하지만 성호는 태주가 결코 손쉽게 허가할 수 없는 것을 요구했다.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망량의 모습은 아드님께, 그리고 선생님께 특히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모습입니다. 자칫하다가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태주는 그렇게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성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봐야겠습니다.”
태주는 성호의 마음이 이해가 갈 듯 말 듯 했다.
태주는 성호가 고인의 아들이기에,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시우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모습을 직접 지켜보고자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저희가 다른 문제가 없을지 먼저 조사해 보겠습니다.”
“아니, 저는 꼭 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당장은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일단 저희가 알아야 할 것은 여전히 많으니까요. 다른 이야기부터 하지요.”
태주는 화제를 돌렸다. 성호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대신 약속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약속이요?”
“네. 제가 보기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무조건 원하는 대로 대면하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태주의 말에 성호는 조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럼 그 이야기부터 하지요.”
성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태주는 질문을 시작했다. 꼭 필요한 질문이었다.
“혹시 시우 씨와 할아버지의 사이가 어땠나요?”
태주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과연 그 어른스러움은 본인이 가지고자 했던 것일까.
“둘의 사이요? 무슨 다른 일이 또 있었습니까?”
성호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무슨 다른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하는 질문입니다.”
“글쎄요, 일단 제 아버지의 말년에 가장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건 시우긴 합니다.”
치매인 할아버지를 모시는 것은 분명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종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였던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뭔가 있었던 걸까요?”
태주는 시우가 죄송하다며 사과하던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 말에 성호는 처음엔 짐작이 가는 게 없다고 하더니 이내 뭔가 떠오른 듯, 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 이전에 한 번 할아버지 일로 크게 혼낸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게 무슨….”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태주의 물음에 성호는 잠시 한숨을 푹 쉬곤 말했다.
“한 번 집 안에 쇠스랑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쇠스랑이요?”
태주는 집의 정원을 가꾸던 할아버지의 물건이리라 짐작했다.
“네. 갈퀴 비슷한 물건이었는데 정원용이라 사이즈는 조금 작았죠. 창고에 뒀던 것인데, 아마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것이리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위험한 물건이다 보니 아이에게 화를 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우 씨는 꽤 억울했겠네요.”
“그랬죠.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 탓도 아니었는데.”
“그럼 그 이후로는 그게 집 안에 있었던 적은 없던 건가요?”
“네. 집안에 흠집 같은 건 계속 생겼던 거 보면, 아마 아버지가 물건을 가져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테니 가져오시면 다시 돌려놓고 하는 일을 반복했겠죠.”
태주는 흠집이라는 말을 잠시 되뇌었다. 그 모습을 본 성호는 문 주변에 특히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걸 한번 볼 수 있을까요?”
태주는 그것이 꽤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집을요?”
하지만 성호의 대답에 태주는 실망했다.
“흠집들은 이미 다 지웠습니다. 쇠스랑이라면 있습니다만,”
태주는 아쉬운 대로 쇠스랑이라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망량을 잡을 계획은 따로 생각해 두신 겁니까?”
망량을 잡을 계획이라거나, 혹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 아들을 지키겠다는 이야기를 성호는 듣고 싶었다.
그 물음에 태주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망량을 잡을 수단은 이전에 이미 마련해 놨던 적이 있습니다.”
“수단이요.”
태주는 망량이 빛에 약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망량을 포획할 방법도 성호에게 설명했다.
“그러면 계획이 있는 거로 보입니다만.”
“음, 하지만 아직 세부적인 사항이 다듬어지지 않았어요, 이전엔 그게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거든요.”
맨 처음에, 태주도 시아도 망량을 꼭 붙잡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저희는 처음에 망량을 잡지 않더라도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냥 쫓아내기만 해도 될 거라 생각했죠.”
그게 아니었기에 상황이 이 꼴이 된 것이다.
“기존의 방법은 붙잡지 못할 확률이 꽤 높습니다. 실제로 이전의 판단이 맞았다면 그래도 괜찮았겠죠. 쫓아내더라도 상관이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전제가 달라지니, 세부 목표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망량을 아예 붙잡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망량은 가능하다면 계속 나타날 것 같으니까요.”
비록 시우는 망량이 주로 노리는 종류의 사냥감은 아니지만, 지금은 충분히 노릴 수 있는 정신상태고, 또 일종의 원한도 있다.
“그러니까, 이전의 계획을 꽤 보강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망량을 단순히 쫓아내는 게 아니라 아예 처치해야 한다는 거군요.”
“예. 그게 아니면 의뢰인 ‘망량이 다시 아드님께 달라붙지 못하게 한다.’ 는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그것이 성호의 의뢰였다.
“그냥 망량을 접근하지 못하게 쫓아내는 선에서 그치면 분명 문제는 다시 생길 겁니다. 그 문제는 다시 나타난 망량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이대로라면 제 아들은 망량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계속될 거라는 말이군요.”
성호는 조금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망량만 잡으면 만사 해결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도 이전까지는 간과하던 일이었지만요.”
태주는 조금은 위로가 될까 싶어 말했다.
“시우는 그래 봐야 중학생입니다. 마음에 어떤 문제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지요. 그저 망량 때문에 그것이 조금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뿐입니다. 사춘기라 하면 원래 그런 시기 아닙니까.”
“그렇죠. 하긴 그 애는 아직 어렸죠.”
성호는 조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은 아직 어린아이에게 너무 많은 짐을 맡겼던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문제가 자기 탓인 것 같아 성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지금 아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정신은 차린 것 같습니다. 아드님을 오늘 밤 여기서 재우는 게 어떨까요? 이곳은 어쨌든 비교적 이상한 것들로부터 안전하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지요.”
성호는 잠시 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의 대화만을 더 나눈 채 성호는 길을 다시 나섰다.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아직 밤바람은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