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8)
“상태는 좀 어떻지?”
기다리고 있던 시아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까보다는 좀 낫지만 그래도 안 좋아요.”
시우는 1층의 뒷방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한테 숨기던 게 더 있었던 모양이야.”
시아는 씁쓸하게 말했다. 태주 역시 혀를 한번 찼다.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은 그것으로 피해자를 비난할 요소가 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저 미리 눈치채지 못한 두 사람의 잘못이었다.
“어른스러워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태주는 상황을 되짚었다.
“그냥 잘 숨길 줄 아는 아이였던 거에요. 남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아니까. 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주 잘 아니까.”
아이의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고 너무 안일한 선택을 했다.
“우리가 너무 성급했던 거죠. 시우가 할아버지에게 죄책감이 있었다는 걸 우리는 몰랐어요.”
시우는 망량을 보자마자 크게 좌절했고 빌고 또 빌었다. 이건 누가 봐도 죄책감이었다.
문제는 왜 시우가 죄책감을 가지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죄책감이라.”
시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만 들으면 시우는 좋은 아이였어.”
시우는 어른스러웠다. 아버지의 신뢰를 받았고 태주나 시아에게 보이는 태도만 봐도 예의가 바르고 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치매가 온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낄까?”
시아는 골똘히 생각하며 말했다.
“무언가 크게, 자신만이 아는 잘못을 했을 거야.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겠죠.”
물론 사람에 따라 가족을 좋아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죄책감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극단적인 태도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건 정말로 뭔가를 크게 잘못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이제 와서 그게 뭐였는지는 알 수 없다는 거죠.”
태주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라도 충분하다면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요.”
그러나 시간은 별로 없었다. 일단 저 꼴을 본 시우의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지.”
시아는 말했다. 지당한 말이었다. 태주 역시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일단 나는 망량이 부른 이름이 시우가 아니라는 점이 신경 쓰인다만. 성호…라 그랬지?”
태주는 그 말에 지갑 속 명함을 꺼냈다.
“성호는 아버지의 이름이죠.”
“아버지의 이름이 왜….”
“아마 뭔가 그 이름 가지고 할아버지와 얽힌 사건이 하나 있었겠죠.”
“물론 추측까지는 된다만. 할아버지가 치매였다면 손자를 아들로 착각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치매 환자에게 흔히 보이는 증상이었다. 어쩌면 노인에게 시우는 어린 성호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고인은 시우를 평소에 성호라 불렀을 것이라고 시아는 이야기했다.
“예, 그건 맞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못 된다.
“어쩌면 그렇게 불리는 게 싫어서 나쁜 짓을 했거나 그럴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요.”
“그건 알 수 없지. 지금 확실한 건 왜 그랬는가가 아니야. 어떻게 망량이 평소의 노인이 부르던 것처럼 시우를 부를 수 있었냐는 거지.”
망량이 생전 노인의 얼굴만이 아니라 목소리와 호칭까지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은, 망량의 의태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얼굴의 의태는 그 정도가 한계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상해.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였어.”
망량은 그 당황한 와중에도 좀 더 쉽게 사람을 속일 수 있는 모습을 고르지 않았다.
소장의 모습이나 아버지의 모습으로 바꾸지 않았다. 그렇지 못했다는 건 망량의 의태능력에 한계는 있다는 말이다.
“지금 망량은 유연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리고 하나 더 추가로 말하자면 생각보다도 빛에 더 약한 상태인 것 같아.”
망량은 구슬이 깨졌을 때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반응을 보였다. 월이가 던진 나이프 소리에는 반응이 없었으니, 아마 빛에 놀란 것일 거였다.
이유를 찾아내 적절하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번 일의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시우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고,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 * *
시우의 아버지, 성호는 사무소 근처의 카페에서 일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 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기다림이 지났고, 드디어 사무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다림이 무색하게, 태주는 실패했다는 말을 전했다.
성호는 가장 먼저 아들의 안위를 물었다. 아들이 괜찮다는, 그러나 겁을 먹었다는 답변을 들은 뒤에야 그는 분노를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태주의 목소리는 진심이 묻어났다. 그러나 그는 그딴 건 궁금하지 않다는 듯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하고 곧바로 차를 몰고 갔다.
처음부터 사무소의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아들의 상태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졌다.
성호는 거칠게 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안쪽에 태주가 보였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 아들은 어디 있습니까?”
태주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드님은 뒤에 있는 방 안에 있습니다. 지금은 안정을 취하고 있고요.”
성호는 태주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죠. 데리고 나와주세요.”
“조금 화를 가라앉히고 만나는 게 어떨까요. 이제 막 안정되었는데 화가 난 아버님을 만나면 또 놀랄 수도 있습니다.”
태주는 걱정스러운 말에도 성호는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답했다.
“상관없습니다. 데리고 나오시죠. 이딴 곳에서 무슨 안정입니까. 병원으로 갈 생각이니 이제 신경 끄십시오.”
“정신과 말인가요.”
태주는 좋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우를 데리고 나와주십시오. 안 그러면 경찰이라도 부르겠습니다.”
“저희를 사기꾼이라 여기시는군요.”
“아니라고 할 참인가요?”
태주는 신음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자신도 성호의 입장이라면 저런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성호는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냉정했다. 크게 소리치고 위협을 할 만한 일인데도 그러지는 않았다. 평소에 몸에 밴 태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당장 제 아들을 데리고 나오시죠. 그리고 그 이후로 우리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될 텐데요···”
자신이 생각해도 할 말은 없었기에 태주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결국은 신뢰를 주지 못한 본인의 잘못이었고, 성호를 설득할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뇨. 시간 낭비였습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조금이라도 빨리 상담을 받는 편이 나았을 거 같군요.”
성호는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태주를 노려보는 시선 역시 날 서 있었다. 상처 입은 자식을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눈이었다. 그렇기에 태주는 강하게 권유할 수 없었다.
허나 정말로, 한 번만 더 기회가 있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쉽게 체념할 수 없었다.
태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성호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곤란한 상황이구만.”
그렇기에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소장이 태주는 너무나도 반가웠다.
두 사람의 표정은 크게 변했다. 한 명은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한 사람은 뭔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이다.
“소장님!”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역시나야. 지금 이것보다는 더 잘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질책하는 말에 가까웠지만, 태도는 여전히 유들유들하여 화내고 있는 게 맞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뭐, 하긴 망량은 그만큼 까다로운 존재지.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허용범위 안이야. 참작의 여지도 있고.”
소장은 그렇게 말했다. 태주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 태주는 문득 이상한 것을 느꼈다. 성호가 조용해진 것이다. 새로 사람이 등장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성호가 당장이라도 자기 아들을 내놓으라고 말하던 것을 멈출 이유는 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성호의 얼굴을 살폈다. 성호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우리, 본 적 있지?”
소장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반말이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성호는 그런 내색이 없었다.
“혹시 그때 그….”
“그래, 맞아~ 그때 그 사람.”
* * *
몇 년 전, 자그마한 실종사건이 있었다. 사라진 건 성호 아버지였다.
납치를 당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제 발로 걸어나가 실종되었다. 치매 노인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성호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아버지는 아닐 거라 생각했던 거다.
아버지는 퇴근 후 돌아와 보니 집에 안 계셨다. 근처에 나갔나 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시우가 그때 이미 집에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서야 성호는 아버지가 실종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장 먼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아버지가 언제부터 자리에 안 계셨느냐 물었다. 그러나 가족 중 아무도 알지 못했다. 부부는 맞벌이였고, 아이는 학교에 갔다가 집에 들어왔다. 그러니 언제 아버지가 나간 것인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꽤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밖에는 알 수가 없었다.
경찰은 난색을 보였다. 언제 출발했는지를 모르니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성호는 절망했다. 아버지의 상태를 몰랐던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아버지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이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리 방법을 마련해 놓지 않은 본인의 잘못이었다.
성호가 할 수 있는 것은 연락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라도 만들어 놨어야 했는데….”
그걸 만드는 것이 아버지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걸 인정하는 거 같아서 일부러 미뤘다.
멍청한 짓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조차 하지 않았던 자신은 천하에 둘도 없는 멍청이였다.
성호는 언제라도 연락이 오면 나갈 수 있도록 차 안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찾아 나설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주 가는 곳은 어디지?’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시는 분들 집은?’
‘아버지가 어디를 평소에 가고 싶어 하던 곳이 있었나?’
성호는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나이를 먹고, 아버지가 사라지고 나서야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렇게 지옥 같던 몇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에게 아버지를 보호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성호는 자신이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도 모르게 차를 몰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발견되었다는 곳에 가서야 아버지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을 알았다.
사당동이었다.
먼 과거에 가족들이 함께 살던, 어머니는 젊고 자신은 아직 어리던 시절의 그 좁아터진 집구석으로 아버지는 돌아가려 한 것이다.
성인 남성의 걸음으로도 여덟 시간은 걸어야 했다. 아마 나이든 아버지의 몸으로는 열 시간도 더 넘게 걸렸을 것이다. 노인 혼자 이곳까지 걸어온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집은 결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집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성호는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끅끅대며 울었다. 시야가 흐려져 가까운 주차장에 급히 차를 대고는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 울고 있을 수는 없다. 빨리 아버지를 찾아야 했다.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고 심호흡을 했다. 몇 번 목소리를 내보며 울먹이던 기운이 목소리에 남아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봤다.
“아, 아.”
성호는 조금 진정하고 아버지를 데리고 있다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 그곳에 아버지는 있었다.
아버지는 지치고, 신발이 닳아 떨어지고,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으며 한참을 매연을 맞아 먼지가 조금 껴 있었다. 그러나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아버지의 옆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성호는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정말로, 눈앞의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자신은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다시 볼 인연이 있으니 만날 거라며 별다른 사례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 말한 뒤 성호는 경찰에게 전화했다. 아버지를 찾았다고 신고를 취소해야 했다.
경찰에게 연락하는 사이 그 남자는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잊지 못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