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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57화 (57/269)

5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6)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시아가 돌아온 것인가 싶어 태주는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봤다.

“다녀왔숑~.”

“너였냐.”

태주는 영문모를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월이를 보며 말했다.

“누가 벌써 와 있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뭐 어때? 있으면 있는 거지.”

물론 설이 역시 그 옆에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두 사람은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고 곧바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태주가 한 빨리 돌아와 달라는 부탁 때문인 듯했다.

“지금은 별일 없는 거 아냐? 나도 보험 정도 역할이고.”

월이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번에 빨리 와 달라 부탁한 이유는 월이보다는 설이가 필요해서였다.

망량을 유인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시우를 제외한다면 설이뿐이다.

망량은 그 특수성 때문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이번엔 설이가 꽤 도움이 될 것이다.

월이는 본인 말마따나 보험 정도의 역할이다. 보험이 필요하지는 않길 바라며 태주는 말했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네. 그 친구 오자마자 시작할 것도 아니니까 시간이 좀 있지.”

태주의 말을 들은 월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설이에게 말했다.

“그러면 지금 이 타이밍에 옷 좀 갈아입고 와야겠다. 설아 가자!”

월이는 그렇게 말하고 설이를 데리고 재빠르게 위로 향했다. 설이는 어어 하는 사이에 붙잡혀서 함께 올라갔다.

그렇게 두 사람이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종이 울렸다. 아주 간발의 차이다. 이번에는 태주가 처음 예상한 대로의 인물이었다.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편하게 대하는 시아와 대조적으로 시우는 크게 긴장한 채였다. 그럴 만했다. 태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오는 길에는 뭐 이상한 거 본 거 없죠?”

겉으로만 봐도 멀쩡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의상 한번 물어는 봤다. 예상대로의 답이 돌아왔다.

“네, 괜찮았어요.”

시우는 조금 긴장했을 뿐, 아주 멀쩡했다. 게다가 사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시아도 이리 태평하게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장 우려했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망량과 마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태주는 안심했다.

“긴장 풀고 있으세요. 어차피 곧바로 시작할 것도 아니니까요. 잠시 긴장도 풀 겸 이야기라도 좀 할까요? 좋아하는 음료 있으신가요?”

“아, 저는 괜찮은데요···”

시우는 그것이 예의라는 듯 사양했다. 하지만 태주는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게 사양하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꾸며 놓긴 했지만, 진짜 장사를 하는 곳도 아니니까요. 애초에 이런 것 만드는 게 제 취미 중 하나라서요. 달달한 거 적당히 하나 드리면 될까요? 카페인은 괜찮고요?”

태주의 질문에 시우는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음료는 아무거나 상관은 없어요. 그래도 너무 진한 커피는 별로일 것 같아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도 슬슬 더워졌으니 아이스로 연하게 라떼라도 타서 주면 될 것이다. 시아 역시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나는 늘 먹던 걸로.”

“아니, 누나는 늘 다른 거 먹잖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주는 그게 적당히 아무거나 달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래 걸리지 않아 태주는 음료를 내놓았다. 연한 아이스 카페라떼에 메이플 시럽을 넣어 달달하게 만든 것이었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시아의 것에는 시럽을 적게 넣었다.

“마시면서 들어요. 오늘의 주의사항을 알려 줄게요.”

잔을 넘겨주며 태주는 말했다. 시우는 긴장한 듯 음료를 입에 대지 못했다. 태주는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는 스스로 목이 타서라도 마시게 될 거다.

“첫째, 절대로 지정한 곳 바깥으로 나가지 마세요. 둘째, 망량을 보려고 하지 마세요. 셋째, 누가 말을 걸더라도 대답하지 마세요. 무엇이 망량일 지 알 수 없으니 심지어는 저희가 질문하더라도 쳐다보지 말고 대답도 하지 마세요.”

어기지 말아야 할 것은 간단하지만 단호한, 그런 경고였다.

“…”

태주는 답변을 기다렸지만, 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하던 태주는 곧 이유를 깨달았다.

“아니, 지금은 괜찮고요. 조금 있다가 말하는 거예요. 아직 시작 안 했으니까 괜찮아요.”

“아! 하하….”

태주의 말에 시우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뭐, 긴장하면 그럴 수 있죠. 어쨌든 방금처럼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러면 상황이 끝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겠지요?”

태주는 그래서 시우에게 펜과 종이를 내밀었다.

“이 안에 암호를 적어 주세요. 아무거나 좋습니다. 말도 안 되는 단어여야 좋겠네요. 그리고 그걸 보이지 않게 접어서 제게 넘겨주세요. 이건 제가 상황이 끝나기 전까지는 펼쳐 보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요?”

“안에 있을 때 이 안에 적어 놓은 말이 들리지 않으면 상황은 끝나지 않은 겁니다. 그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모든 말을 다 무시하세요.”

“···그러면 이 안에 적히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네요?”

“예. 하지만 모른다는 게 중요하지 내용이 중요한 건 아니니 적당히 아무도 모를 말을 써 주시면 됩니다.”

“까먹을 만큼 길게 쓰지만 않으면 될 겁니다.”

시아가 중간에 참견했다. 어느새 자기 몫의 음료를 다 마신 채다.

시우는 조심스럽게 종이에 뭐라 적었다. 내용은 모르지만, 꽤 길게 적은 것을 보니 문장인 듯했다.

“이렇게 접으면 되는 건가요?”

시우는 안이 보이지 않도록 여러 번 접어 태주에게 건네줬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식이면 됩니다. 절대로 안에 있는 것을 까먹지 마세요.”

태주는 그것을 자신이 들고 다니는 지갑 안에 넣었다. 이제 이건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외에는 주의해야 할 게 있을까요?”

“글쎄요. 다른 것도 있긴 한데 주의사항이라기보다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라서요.”

태주는 잠시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머지는 시우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달린 문제다. 그럼에도 해 줄 말이 있다면 단 하나뿐이다.

“여유를 가지세요.”

“여유요?”

시우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네. 여유가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제를 과대평가하지 않게 해 주거든요.”

실제로 그랬다. 시우는 아직도 음료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조금 있으면 알아서 마시겠지 싶었지만, 시우는 지금까지도 음료를 한 입도 마시지 못했다.

“긴장하지 말라 해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건 저도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풀어져 있어도 괜찮아요. 죄지은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긴장을 하나요.”

태주의 말에 시우는 힘겹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음료를 조금 마셨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긴장이 풀린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뭐, 그게 그렇게 말한다고 풀릴 수 있는 건가.”

시아는 태주에게 말했다. 태주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말로만 해서 그렇게 긴장을 풀 수 있다면 세상에 긴장으로 중요한 순간을 망치는 이들은 없을 거다.

“노력은 해 볼게요. 그런데 망량과 만나는 걸 이곳에서 하는 건가요?”

시우가 보기에 이곳이 그렇게 준비된 공간은 아닌 것 같았다.

“예. 그럴 예정입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지금 이 장소는 아닐 겁니다.”

“그럼 어딘데요?”

“한 층 위요. 그곳에 적당한 공간을 마련해 놨거든요.”

태주의 말에 시우는 보일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를 힐끗 봤다. 천장만이 보였다.

“위···”

“이 층은 다른 곳과 다르게 완전히 고립된 공간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죠. 문을 열고 있다면 열린 공간이지만 닫아 둔다면 완전히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 됩니다. 이번 일에는 최적화된 장소죠.”

이 층은 그런 점에서 주술을 써먹기 좋은 공간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정말로 고립되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아가 늘 심심해서 내려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조금 뒤에 두 사람이 더 내려올 겁니다. 그 두 사람이 내려오면 시작하도록 하죠.”

* * *

태주가 말한 대로 2층은 별세계였다. 불빛이 깜빡거리는 계단을 오르고 나니, 본격적으로 어두운 장소다.

“어딘가 으스스하네요.”

잘 모르는 두 사람, 그리고 더 잘 모르는 두 사람에게 둘러싸인 시우는 잔뜩 긴장한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의 한 가운데에는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고 그 앞에 촛대가 두 개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의자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바닥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기 앉으시면 됩니다.”

시아의 말에 시우는 원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이 층은 전기가 통하지 않으니 필연적으로 창이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평소에는 너무 어두운 곳이 될 것이다.

지금은 그중 단 하나의 창만이 열려 있었다. 그곳으로 옅은 빛이 들어왔다. 빛은 시우 앞 큰 촛대 두 개를 비추고 있었다.

시아는 먼저 촛대 앞에 섰고, 태주는 시우 옆으로 다가갔다.

“이 원은 하나의 경계입니다. 사람이 아닌 것에게 안이 잘 보이지 않게 만들었죠.”

“경계는 의미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시우의 물음에 태주는 맞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경계를 아마 상대는 물로 된 벽처럼 느껴질 겁니다. 튼튼한 경계라기보다는 장애물 정도지요. 그러니 어렵지 않게 뚫고 들어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 안에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며 바깥의 상황을 무시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시우는 물었다.

“이 경계는 시우 씨를 보호하는 역할이 아닙니다. 시우 씨를 보호해주는 건 저 아이이지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월이를 가리켰다. 월이는 시우에게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시우는 그런 월이를 영 믿음직하지 못한 눈길로 쳐다봤다. 겉보기엔 평범한 여고생이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굳이 말로 설득하려 하지는 않았다. 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월이의 든든함이었으니까.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월이는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인지 밝게 인사했다. 그런 태평함이 시우에겐 자신감으로 비쳤는지 조금 긴장을 푼 듯했다.

“벽의 역할은 당신이 그 안에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게 하려는 겁니다. 잠시 뒤, 당신의 냄새를 담은 향을 풍길 겁니다. 그때 당신은 뭔가 숨겨둔 것이 뻔히 티 나는 가림막 안에 숨어 있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태주의 물음에 시우는 상상했다. 그 가림막은 엄청 눈에 띌 것 같았다.

“제가···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겠죠. 확실치는 않겠지만.”

“예. 그게 저희가 노리는 부분입니다. 아마 상대는 정말로 그 안에 그게 있는 것인지를 의문으로 가지겠지요. 하지만 월이가 있어 쉬이 접근하지는 못할 거고요”

잠시 이것을 두고 고민하는, 그 망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가 경고를 드렸던 겁니다. 상대에게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을 줘 버린다면 저희는 상대방에게서 어떤 전략적 우위도 점할 수 없으니까요. 말씀드린 것은 기억하시죠?”

“네. 시작하고 나면 이 안에서 나가지 말고, 바깥에서 들은 것을 들은 척도 하지 말고,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 몰라도 일부러 보려 하지는 말라고요.”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몇 번이나 강조한 것이라 이제는 완전히 주의사항을 숙지한 것처럼 보였다.

티는 내고 있지 않았지만, 태주 역시 긴장했다. 최소한의 보호장치만을 믿은 채 미지의 것을 불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태주는 품에서 유리구슬을 꺼냈다.

“그게 뭔가요?”

“최후의 수단이요.”

구슬은 주먹만 한 물건이었고, 그 안에는 뭔가 찰랑거렸다. 마치 반짝이가 있는 유리 장식물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태주는 그걸 조심스럽게 건넸다.

“중요한 물건이니 조심하세요.”

일단 주니까 받기는 했지만, 무엇인지는 모른다. 시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간단히 표현하면 연막탄과 섬광탄의 중간 정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게임은 좀 해보셨나요?”

“조금은요.”

“그럼 더 설명 드릴 필요는 없겠네요. 이걸 터트리면 한 번 크게 소리가 나면서 크게 빛이 번쩍일 겁니다. 이상한 연기도 좀 날 거고요. 물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니지만 좀 크게 놀랄 정도는 됩니다.”

“이게요?”

겉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시우는 이게 정말로 그런 역할을 할지 미심쩍어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그런 물건이다. 사람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망량에게 통할 만한 특제품이다.

“예 바닥에 떨어트리기만 해도 깨질 수 있는 거니까 조심하시고요. 이걸 드리는 이유는 혹시라도 망량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상황일 때 망량을 깜짝 놀라게 하려는 겁니다. 의외로 공포를 먹고 사는 것들도 그런 갑작스러운 것에는 놀라거든요.”

시우는 구슬을 들여다보며 알았다고 답했다.

“제가 드린 말 명심하세요.”

태주의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이제 시작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시우는 조심스럽게 원 한가운데의 의자에 바로 앉았고 바로 주변에 있는 촛불에는 불이 붙었다. 요상한 냄새는 시우를 한번 휘감으며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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