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5)
그 뒤로 한참을 더 이야기하고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 시간은 어느새 다섯 시가 넘어있었다.
“아직 어린데 잘 할 수 있을까요?”
“다른 방법은 없으니까.”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태주는 미간을 찡그리며 시우 집을 한 번 되돌아봤다. 시아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 망량은 경계에서 사는 존재라 경계도 잘 안 먹히고,”
망량의 특징이었다. 빛의 영역도, 그림자의 영역도 아닌 흐릿한 그 경계 속에 사는 것.
그러니 경계를 펼친다고 안전하다 보장할 수가 없었다.
“평범한 흡혈귀 같은 것들처럼 약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지.”
“흡혈귀라, 오랜만에 듣네요. 이젠 볼 일 없을 텐데.”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한 번 더 쉬었다.
“복 달아난다.”
“망량도 그렇게 달아나면 좋을 텐데요.”
태주와 시아는 망량을 잡을 방법은 시우가 미끼가 되는 것뿐이라고 알려주었다.
굉장히 위험한 방법이었다. 시우를 보호할 마땅한 방법도 없었고, 일단 부르고 나면 부적이나 다른 수단도 먹히지 않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망량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것을 잡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처음엔 겁을 집어먹고 거절했지만, 자신이 안 된다면 다음 목표는 부모님일 거라는 말에 자신이 미끼가 되겠다고 했다.
“우리가 망량과 마주칠 수만 있으면 잡기는 쉬운 거죠?”
“그깟 망량쯤은... 이라 말하고 싶지만, 생각만큼 쉽진 않아. 그래도 나한테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지.”
시아의 자신만만한 말에 태주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요?”
시아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애는 자기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그것이 정말로 자기 할아버지가 맞았는지 궁금해하지 않더라고.”
“그랬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물어보라 했을 때 두 사람은 그 질문을 기대했었다.
답도 준비된 상태였다. 그러나 질문 자체가 돌아오지 않았으니, 대답할 기회도 없었다.
“보통은 그걸 가장 궁금해하는데 말이에요.”
“뭐, 망량이라는 말을 듣고 난 다음에는 어렴풋이 알았을지도 모르지. 그게 자기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래, 그럴 수도 있긴 하죠.”
태주는 그러나 영 석연치 않은 듯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보고 나서도 의문은 조금 남아요.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았다는 게 숨길 일인가? 물론 묻기 전에 먼저 말하는 건 이상하겠지만, 우리가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봤는데도 답을 피한 느낌이었잖아요?”
시우의 그 태도로 보아 자신들이 밝혀내지 않았다면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는 것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태주의 말에 시아는 덧붙여 말했다.
“나는 그보다 괴담 쪽에 이상한 부분이 느껴지는데. 젊은 사람이 망량에 씌었다는 건 이유가 없인 불가능해.”
굳이 손쉬운 먹이감인 다른 노인을 노리지 않고 왜 굳이 아직 적당하지 않은 시우를 노리고 있는가.
“거기에도 분명 따로 이유가 있을 거다. 이쪽 이유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시아의 말에 태주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투덜거렸다.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 게 낫나 싶어요. 이거야 머리가 아파서.”
“월이만큼 몸이 좋아질 게 아니면 우린 머리가 고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야.”
“아, 그건 무리죠.”
그냥 머리나 열심히 굴릴 수밖에 없겠다며 태주는 한탄했다. 이제 해가 지기 시작해 한창 더울 시간이 지났는데도 조금 후덥지근했다.
슬슬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망량이라.]
태주는 사무소에 돌아와 아이의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남자는 제 아들을 홀린 것의 정체를 듣고도 담백하게 말했다.
“예. 망량이 무엇인지 설명해 드릴까요? 조금 내용이 길기는 한데요.”
[들어도 모를 것 같으니 됐습니다. 그래서, 정체를 알았다는 건 문제 해결도 가능하다는 말인가요?]
“일단 방법은 찾았습니다. 바로 붙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합니다만.”
[그렇습니까.]
피로한 목소리였다. 그럴 법도 했다. 남자는 지금 장례식 동안 밀린 업무를 급히 처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아들의 일까지 겹치고 있었으니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상당히 피로하리라는 것을 태주는 짐작할 수 있었다.
“저 혹시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그러나 그렇더라도 물어봐야 할 것은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저희 아버지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러니까 시우의 할아버지?]
남자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들은 질문이 잘 들은 것이 맞는지 의문이었는지 되물었다.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태주는 거짓말이 아닌 선에서 교묘하게 둘러댔다.
“아무래도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망량과 만났으니까요. 고인과도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싶었거든요.”
사실은 망량이 원래 고인에게 붙어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태주는 하지 않았다.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남자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음, 그런가요? 생전에는 굉장히 좋은 분이셨습니다. 제가 아들이라 조금 더 고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항상 모든 이에게 친절하시고, 성실하셨죠. 물론 말년에 병을 좀 앓으시긴 했습니다만.]
“말년에 병이라 함은.”
[알츠하이머를 조금 앓으셨습니다. 그래도 초기에는 상태가 괜찮으셨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안 좋아지셨지요. 요 몇 년 사이의 일입니다.]
짐작하고 있던, 그리고 시우를 통해서 확인했던 내용이었다.
“그동안은 계속 집에서 지내셨나요?”
[예. 시설에 맡기는 것도 대기가 좀 필요하다더군요. 생각보다 같은 일에 처하신 분들이 많은 거겠죠. 신청해 놓고 기다리는 중에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건… 상심이 크셨겠군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 덕에 누군가는 들어가실 수 있었겠지요. 그냥 그리 생각하려고 합니다.]
남자의 대답에는 꽤 많은 선함과 현명함이 깃들어 있었지만, 어쨌든 고인께서는 시설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인께서는 꽤 오랜 기간을 집에서 시우와 함께 생활했을 것이다.
꽤 어른스럽게 구는 어린 학생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태주는 필요한 것은 들었기에, 대화를 마무리하려 조금 밝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군요. 아 참, 집 정원이 참 예쁘던데요.”
[정원을 꾸미는 게 아버지의 취미셨습니다. 나이 들고 취미로 조경을 조금 하려 하셨거든요. 결국은 병 때문에 그리 오래 하지는 못하셨지만요. 이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 바꿔 볼까도 했지만, 더 예쁘게 꾸밀 방법을 저는 못 찾았습니다.]
감각적인 정원의 모습이 이제 막 조경을 배운 노인의 작품이었다는 데 태주는 조금 놀랐다.
“조금 놀라운데요.”
노인에게서 으레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그런 올드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저는 솔직히 정말 전문가의 작품인 줄 알았습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확실히 재능이 있으셨는지도 모릅니다. 치매만 아니었다면 괜찮은 새 소일거리를 찾으신 셈이 되었겠지요.]
“저도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태주는 작게 맞장구를 쳤다. 결국 화제 전환에는 크게 실패한 셈이었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남자는 물었다.
[도움이 되는 정보였나요?]
남자의 말에 태주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괴로운 기억이셨을 텐데요.”
[그건 상관없습니다. 아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군요.]
태주는 통화의 마무리가 보이자, 마지막 용건을 전했다.
“참, 문제 해결을 위해 내일 아드님을 여기로 모시고자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제 아들이 그리로 가는 것 말인가요.]
남자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네. 아무래도, 아무런 설비도 없는 그 집을 헤집고 다니는 것보다는 여기서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설치하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그다지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닙니다만.]
“예, 걱정하시는 부분은 이해가 갑니다. 과연 집 바깥으로 나가도 괜찮을까 걱정되시겠지요.”
남자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가 걱정하는 것과는 반대다. 시우는 지금 아버지와 멀어져야 한다.
여러 의미로 그럴 필요가 있다.
[그 설치해야 한다는 게 저희 집에 설치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물건입니까?]
“네, 아무래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습니다. 저희 역시 익숙지 않은 곳에 이것저것 설치하는 것은 조금 꺼려지고, 게다가 어떤 것들은 자칫하면 망가질 수도 있어서요.”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지만 집안을 구석구석 뒤지고 찾고 망가트리기까지 하는 건 실례인 일이다. 거짓말도 아닌 데다가 꽤 적당한 핑계거리다.
[그런가요? 하긴, 그렇겠네요.]
남자 역시 그리 생각했는지 그래도 집에서 하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런데 그거, 제 아들은 괜찮다고 한 건가요?]
“예. 아드님도 동의하였습니다. 대신 저희 중 한 명이 직접 가서 아드님을 모셔오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남자가 걱정할만한 부분을 태주는 미리 언급했다.
[아이가 괜찮다 말했다면 문제는 없긴 합니다만….]
여전히 꺼림칙한 느낌인지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새로운 방법을 제안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남자는 결국은 아들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허가했다.
[그렇다면 제가 내일 오전 중에 아들을 그쪽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던 듯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태주는 반대 의사를 표했다.
“아뇨, 저희가 직접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이의 불안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더 강해진다. 그렇다면 지금만큼은 잠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걱정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혹시나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손님은, …이렇게 말씀드리는 무례하다는 건 알지만, 방해입니다.”
꽤 냉정하게 말하는 태주의 말에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겠군요. 그렇다면 제가 다른 도울 일은 없을까요?]
“당장은 없습니다만,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주의 말에 남자는 조금 불만이 있는 듯했지만, 이미 내린 결정을 뒤집지는 않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내일 방문은 몇 시쯤 하기로 하셨습니까?]
“오후 한 시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저녁 넘어서 쯤 일이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아, 그게 낫겠네요. 끝날만 한 시간을 대강 계산해서 알려드릴 테니 그 시간이 된다면 아드님을 데리러 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일이 마무리된 뒤면 아드님도 많이 지쳐있을 테니까요.”
이럴 때는 뭐라도 하는 게 불안을 더는 방법이다. 태주의 말에 남자는 할 일이 생겼다는 것에 오히려 마음이 풀렸는지 한결 목소리가 편해졌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하지요. 제가 대략 어느 시간쯤 방문하면 되겠습니까?]
“음, 지금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저녁 열 시 전후일 것 같지만…. 아직 언제 끝날지 확신을 할 수는 없으니 저희가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예. 그러면 그때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