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4)
“그렇군.”
시아는 그제야 왜 시우가 아버지에게 무엇을 봤는지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
남자는 시우에게 상황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시우의 태도는 남자의 앞에서는 좀 더 심각했지만 두 사람 앞에서는 꽤 괜찮았다.
그 몇 가지 이상했던 점은 시우의 말 한마디로 어느 정도 이해가 가게 바뀌었다.
“그런 걸 아버지한테 말씀드릴 수 있을 리가 없지.”
“···맞아요.”
시우는 바닥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처럼 보였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것 같은 죄책감이다.
“도저히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에 대비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장례식을 치르는 아들의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거기에 대고 죽은 할아버지의 얼굴이 달린 고양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모욕이었다.
게다가, 애초에 사람의 얼굴을 하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남자는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들이 직접 한 말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외에 이유를 찾을 수 없기에 남자는 사무실로 찾아온 것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시우는 자세히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남자에게는 한없이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에게는 말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겠군요.”
이 경우 모르는 사람에게 오히려 진실을 털어놓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다만 그러려면 한 가지 보장이 필요했다.
“아버님께 어떤 내용도 전달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태주의 말에 시우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하지만 일부를 적절히 걸러내어 전할 수는 있어요.”
“아···!”
시우는 그제야 태주가 하는 말의 의도를 알아챘다.
“저희가 거짓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일종의 원칙이죠. 하지만 불필요한 것까지 알리는 것 역시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알렸을 때 고객을 더 불안하게만 하고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라면 전할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무엇이 그런 정보인지 선별하려면 어느 정도의 진실은 저희가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걸러서 전하려면 거를 만큼 내용이 많아야 한다. 그런 뉘앙스를 시우는 알아들었는지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저희의 질문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럴게요.”
시우는 각오를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 역시 한번 옅은 미소를 보였다. 시아는 차를 한번 홀짝이고는 말했다.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하나 물어보지요.”
시아는 본격적으로 그 고양이에 대해 묻기 전에 질문을 하나 했다.
“그것을 보고는 정확히 무슨 기분이었습니까?”
시아는 조용히, 표정은 거의 지운 채 물었다. 그 표정에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끼며 시우는 되물었다.
“그냥, 그냥 무서웠어요.”
시우의 대답에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을 묻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야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감정 하나를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것이다.
“공포라면 공포도 좋고, 불쾌함이라면 불쾌함도 좋고. 그때 느낀 모든 감정을 거짓 없이 모두 말해야 합니다. 설령 기쁨이나 환희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감정일지라도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시우의 질문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시우는 알지 못했기에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서릿발 같은 눈으로 시아는 시우를 보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그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시아는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고는 티백을 꺼내 찻잔과 함께 내왔던 작은 접시에 올려 두었다.
“차를 즐기기 위해서는 차의 모든 맛을 다 뽑아낼 필요는 없지요. 과추출이야 말로 맛을 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그건 즐기는 경우의 이야기이고 성분을 분석해야 할 때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것을 그저 괴이한 이야기로 끝낼 것이라면 시우의 감정을 그저 공포로 해석해도 된다. 그저 여름날의 질이 나쁜 공포 이야기라면 그때의 기분을 그렇게 퉁치는 것으로 넘어가도 상관없다.
“하지만 당신의 경험을 그저 괴담으로 끝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게 꽤 불편한 일이 될 지라도요.”
시아는 그래서 모든 것을 듣고자 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닌 것 역시 사실이었다.
“애한테 겁주고 그래요.”
“하지만 사실이지.”
그 말에는 태주 역시도 고개를 젓지 못했다. 허나 상대는 아직 중학생이다.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사실이라도 자기감정이 어떤 건지 알 수 있도록 철저한 훈련을 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게 자기감정에 노련하게 마주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요. 그렇게 다그친다고 해서 제대로 정답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구요.”
태주의 말대로였다. 시우는 조금씩 고민했지만 제대로 정답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솔직히 모든 기분을 다 말하라고 해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기쁨은 확실히 없었던 것 같아요. 두려움이 그래도 가장 컸어요.”
시우는 천천히 그 당시의 기억을 곱씹었다.
“그다음은 놀라움이었던 것 같아요. 그, 그다음은 역겨움이고요.”
허나 그 이상의 감정은 시우는 말하지 못했다. 당황하고 허둥대며 시우는 열심히 생각해 봤지만,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모양이었다.
“흠, 확실히 너무 밀어붙였나. 미안합니다.”
결국은 방법이 썩 좋지는 않았던 셈이다. 침음성을 흘리며 시아는 작게 목례했다. 시우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에요. 다 필요하셨던 거죠?”
“뭐 그렇기는 합니다.”
시아는 조금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심이 있는 아이다.
“이번엔 제가 질문할게요.”
“아, 네.”
태주는 원래 맨 처음에 하려던 질문을 시작했다.
“그 고양이,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못 봤다고 하셨죠?”
“네.”
“그렇다면 같은 곳을 여러 사람이 보는데 혼자만 그것을 본 건가요? 아니면 혼자만 보고 있던 곳에 그게 있었던 걸까요?”
“애초에 그곳을 바라보고 있던 건 저 혼자뿐이었을 거에요. 다른 사람들은 그때 바빴으니까요.”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태주는 이어서 다음 질문을 시작했다.
“그 고양이가 시우 씨에게 뭔가 한 게 있나요?”
“아니에요. 그저 모습만 보였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때 이후로는 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기에 처음에야 엄청나게 무서웠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무섭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은 든다고 시우는 말했다.
“모습이 조금 끔찍했지만, 사실 눈이 마주쳤을 뿐이에요. 그 이상으로 뭔가를 하진 않았어요. 최소한 직접적으로는요.”
시우의 말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는 머릿속에서 몇 가지 가능성을 추리고 있었다.
“위협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네. 전혀요.”
“그렇다면 사람에게 직접 해를 가하는 성격의 무언가라 할 수는 없겠군요.”
그 어떤 위협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는 것은 사실상 없는 것과도 다름이 없었다는 말이다. 어떤 의미로는 그저 아지랑이 같은 것이다.
“네. 그 말대로예요.”
시우의 말을 듣던 시아는 질문했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고 말했지요.”
“네.”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돌릴 수 없었던 쪽입니까, 아니면 스스로 돌리지 않은 것입니까?”
“···제가 돌리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누군가가 보라고 강제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시선을 돌려도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았다.
“한 가지만 더 묻지요.”
“뭔가요?”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시아의 질문에 시우는 눈만을 깜빡였다. 고양이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에 대해 물으니 당황스러운 탓이었다.
“어··· 좋은 분이긴 하셨는데요.”
“좋다··· 좋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될 수가 있겠지요. 훌륭한 인품을 가진 분이실 수도 있고,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분이셨을 수도 있겠지요. 혹은 선행을 많이 하셨을 수도 있고요. 할아버지는 어떤 의미로 좋은 분이셨습니까?”
“···사실은 잘 몰라요.”
결국은 조금 망설이다가 시우는 실토했다.
“잘 모른다.”
시아는 그렇게 되뇌었다.
“사실은 저는 할아버지랑 제대로 된 대화를 해 본 적은 없거든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들은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면 현명하시고 선량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시우는 시선을 피하며 그리 말했다. 시아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렇군요. 할아버지에 대해 더 말씀하실 것은 없으시다는 말인가요?”
“어··· 네.”
시우의 대답을 들은 시아는 눈을 감았다. 깊은 생각을 할 때의 버릇이었다. 잠시 뒤 눈을 뜬 시아는 말했다.
“저는 당신이 무엇을 봤는지 짐작이 갑니다.”
“정말이요?”
시우는 놀라서 말했다.
“제가 본 게 뭔가요?”
“당신이 본 건 아마 망량일 겁니다.”
“···그게 뭔가요?”
시우는 정말로 처음 들었다는 투로 질문했다.
“망량이라는 건 완전히 처음 들어요.”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예 들어본 적 없지도 않을 겁니다.”
이런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한 번 들었을 이름이기도 하다.
“이매망량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앗! 그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요.”
시아는 시우의 반응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매망량이라는 단어는 사실 온갖 귀신을 이르는 말로도 쓰입니다. 백귀야행이나 괴력난신과도 일맥상통하는 의미죠. 하지만 이것을 굳이 이매와 망량으로 분리한다면 이들은 작은 단 두 가지의 괴물입니다. 특정할 수 없는 것에서 특정할 수 있는 것이 되는 셈입니다.”
“이매와 망량···”
시우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시아는 이어 설명했다.
“처음엔 당신이 본 것을 이매라 생각했습니다. 이매는 조금 고전적인 도깨비의 일종인데, 사람의 머리를 가졌고, 네발 달린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지요,”
시우의 첫 설명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건 그래서 이매 쪽에 가깝다.
“그럼 이매가 아닌가요? 망량이 아니라?”
시우는 당연한 의문을 품었다.
“예. 굳이 망량이라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그럼 망량이 뭔데요?”
“망량이 무엇인가. 그 대답은 문헌마다 내용이 다릅니다. 망량은 북방상제의 자식이기도 하고, 평범한 물귀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물귀신이라면 시아가 그것을 망량이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이야기에 따르면, 빛과 그림자 사이를 자세히 보면 있는, 빛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 그 무언가가 바로 망량입니다.”
그림자의 주변을 자세히 봐야 보이는, 그림자인지 빛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애매한 테두리.
그 테두리 자체, 혹은 그 틈에 숨어있는 괴물이 바로 망량이라고 시아는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주로 사람의 그림자 속에 웅크려 숨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기에 망량이라는 건 공부를 해도 확신은 얻을 수 없다. 외양도, 그 성질도 다 다르다.
“그러니 망량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라 이해하면 될 겁니다.”
시아는 잠시 뜸을 들이며 차를 한 모금 마시곤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보통, 망량은 그저 그런 정도의 것입니다.”
“그저 그런 거라뇨?”
“사람에게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망량에 대한 여러 묘사는 위협이라기엔 애매한 것들이다. 물귀신 쪽은 좀 위협적일지 모르지만, 그 역시 물가가 아니라면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하게 망량이 한 짓이라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 때문에 이매가 아니라 망량이라 말씀드린 거고요. 아니, 역시 이매와 망량을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요?”
시아는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하던 말을 이어했을 뿐이다.
“이매망량은 네 가지 한자의 뜻이 모두 도깨비라는 괴이쩍은 단어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한자는 중국에서 왔지요. 그렇다면 그것을 중국어로 발음한다면 어떻게 발음이 될까요?”
당연히 시우는 몰랐다. 태주 역시 그렇게까지는 모른다.
“치매왕량, 혹은 치미방량···. 사실 저도 중국어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니 정확하게 발음을 전해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듣기로는 대충 이렇게 들립니다.”
시우는 그 발음을 듣고는 딱딱하게 굳었다. 시아가 하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망량에 대해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홀린다는 점이죠. 노인네가 망령이 났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러나 그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망령은 그저 죽은 귀신이니까요. 정확한 표현은 망량이 난 것입니다. 이제 와서는 망령이 났다 쪽이 표준이긴 합니다만.”
망량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확실한 점은 사람을 홀린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옛사람들은 정신이 흐려진 이들이 망량에게 홀렸다고 생각했다. 영문을 알 수 없게 그렇게 된 것이니까.
시아는 시우를 보며 말했다. 시우는 당황하고 또 놀란 표정으로 시아를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냐 물었을 때 잘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태주는 그제야 시우의 아버지가 담담한 듯 보였던 이유와 집안 곳곳에 붙어있는 안전쿠션이 붙어있는 이유를 알아챘다.
시우는 시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아요.”
시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맞췄다고 자랑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역시 제가 생각한 대로 당신이 본 것은 망량이 맞을 겁니다. 이매의 모습을 취한, 말 그대로 이매망량이지요.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당신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빌린 망량일 겁니다. 주의해야 하겠군요.”
“뭐를요?”
“망량은 홀리는 존재입니다. 사람을 홀리고 속이고 놀려먹는 재미로 사는 것이지요. 생물이 아닌 것에게 산다는 표현이 참 이상하기는 합니다만.”
“홀린다···”
“예. 당신도 이미 한 번 경험했을 겁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시우는 눈을 떼지 못했다. 사실 별것 아니기에 시선을 피할 수 있어야 했다. 두렵다 하면 더욱이 그렇고 불쾌하고 징그럽다면 더더욱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시우는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그것을 자의였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망량은 이번에는 당신을 홀리려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