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2)
“사람의 얼굴을 한 고양이요?”
태주는 확인 차 다시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더 듣지 못했습니다.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아이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걸 꺼렸다. 캐묻고 싶기도 했지만 공포에 떠는 아이에게 다그치듯 물을 수 있는 부모는 없다.
남자는 별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손님이 직접 그 고양이를 보지는 못하신 거군요?”
태주의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 전 그런 고양이가 실존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가 그렇게 겁에 질릴 다른 이유 따위도 알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남자는 귀신을 믿지도 않고, 믿은 적도 없으나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의뢰 내용도 사실상 정해져 있는 거군요.”
태주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아이가 본 게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런 것을 봤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리고 제 아들이 다시는 그것을 보지 않게 해 줄 수 있습니까?”
남자의 요구사항은 깔끔했다. 그리고 절박함이 있었다.
그러나 태주로서도 당장은 확답을 줄 수 없다.
“일단 가능은 하겠습니다만, 이대로는 조금 힘들 겁니다.”
태주의 말에 남자는 눈에 띄게 표정이 굳었다.
“뭔가가 더 필요한가요?”
“예.”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아드님이 본 것이 무엇인지 입니다. 그걸 알아야 이후에 부탁하신 것들을 해낼 수 있으니까요.”
태주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손님이 해 주신 말씀만으로는 아드님이 본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남자는 납득이 가는 이유였는지 뭐라 더 말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듯 손을 꽉 쥐었다.
“아드님께서는 이곳에 오시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신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처음에는 같이 오려 했지만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일단은 저 먼저 와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아쉽기는 하지만 억지로 데려오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태주는 대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자녀분에 대한 질문 몇 가지 드려도 될까요?”
“네···.”
“혹시 아드님께서 원래 겁이 많은 편입니까?”
“겁이요?”
태주의 질문에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 또래 아이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같이 공포영화도 보곤 했지만, 놀라도 놀라지 않은 척…은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냥 그 나이 때의 아이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신 건가요?”
남자의 질문에 태주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게, 보통은 사람 얼굴의 고양이를 보고 놀라기는 할 테지만, 지금 자제분처럼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아예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이라면 그 정도로도 자지러지게 놀랄 이유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중학생에, 공포영화를 보고 태연한 척이라도 할 정도라면 그 정도로 두려워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렇지요.”
남자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분명 기괴하고 기묘하긴 할 것 같긴 합니다만, 그렇게 며칠을 떨 정도로 두려운 것이라 보기는 힘들 테니까요.”
원체 남들보다 겁이 많은 게 아니라면, 지금 그 아들의 상태는 이미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이다.
“역시 뭔가 다른 이유가 또 있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네. 최소한 지금까지 들은 내용으로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거리곤 뭔가 고민하는 듯 잠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혹시 장례식 중에 다른 사람이 비슷한 것을 목격하거나, 혹은 아드님이 그렇게 덜덜 떠는 상태가 되셨다거나 한 적은 없었던 건가요?”
“음,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발인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들은 그런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제게 그런 말을 해 준 빈객들도 없었고요.”
“그렇다면 아드님이 그것을 본 건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 혹은 마지막 단계쯤이겠군요.”
“저도 잘 모르긴 하지만, 시간상으로 본다면 그렇겠죠.”
딸랑.
두 사람이 대화하던 중에 마침 시아가 돌아왔다.
“손님이 오셨군.”
시아는 오자마자 특유의 자신감이 있는 자세로 말했다. 남자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람을 보고는 질문했다.
“···누구신가요?”
“이곳의 직원입니다.”
시아는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남자는 시아의 팔에 있는 장식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침 잘됐네요. 혼자 생각하자니 막막하던 참이었는데. 혹시 인면고양이에 대해 알아요?”
태주의 질문에 시아는 무심하게 다시 물었다.
“글쎄, 그것만으로는 어려운데? 사람 얼굴을 한 요괴는 많으니까 말이야. 다른 특징은 뭐 없나?”
시아의 말에 태주는 지금까지 들은 내용을 축약해 전했다.
“여전히 조금 어렵구만.”
시아는 얼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어떤 점이 어렵다는 겁니까?”
남자의 질문에 시아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사람의 얼굴을 달고 있는 요괴는 많습니다. 조금 지나치게 많지요. 흔히 말하는 도깨비도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 아들이 본 것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고양이였습니다.”
“맞아요. 그게 참 이상한 부분이죠.”
시아는 맞장구쳤다.
“그건 과연 정말로 고양이였을까요? 머리통이 사람이면 그게 고양인지 다른 네발짐승인지 알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게다가 공포에 질려서 한 말이라면 더욱이 자세히 살폈다고 하기는 어렵겠군요. 그러니 아드님께서 그냥 고양이라고 한 것인지, 뭔갈 알고 말한 건지는 직접 만나서 물어보지 않으면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남자는 뭔가 얻어맞은 듯 벙찐 표정을 지었다. 시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하나 확실한 건 소나 쥐처럼 엄청 크거나 작은 건 아니라는 거겠지요. 음… 대형견만 한 고양이는 있나? 내가 고양이는 잘 모르는데. 어찌 되었건 확신할 수 있는 건 그 크기 정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남자는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겠군요. 특이한 점은 공포를 유발한다는 점… 그 정도라는 말인가요?”
그러나 사실은 그것 역시도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태주 역시 조금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공포심을 준다는 점도 사실은 크게 도움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요괴란 게 원래부터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니까요. 두렵지 않은 요괴라는 것이 오히려 드물고요.”
그러나 이해와는 별개로 남자는 조금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두려워하고 있는데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인 걸지도 모릅니다.”
시아의 말에 남자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쳐다봤다.
“공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위협을 느낄 때 나옵니다. 덕분에 인간이 살아가며 피해야 하는 것을 피하게 해 주죠.”
공포는 괴담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기묘한 공생관계다.
어두운 밤길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 사람들은 그 길을 걷지 않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 길은 정말로 그 괴물의 영역이 된다.
두려움은 괴물이 살 곳을 마련해 줌과 동시에, 사람이 괴물로부터 멀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니 두려움을 느낀다는 건 아드님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걸 역이용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마지막 말은 괜히 덧붙였나 싶어 시아가 말끝을 흘렸지만, 다행히 남자는 조금 마음이 풀린 듯했다.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더 문제였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어쩌면 자식 되시는 분께서는 나름 최선의 대응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자 남자는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 보였다.
시아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는 잠시 무언가를 뒤적거리며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은 이걸 가져가시죠.”
시아는 오래 걸리지 않아 즉석에서 만든 간이 부적 하나를 남자에게 챙겨 줬다.
“이게 뭡니까?”
“일종의 호부입니다. 당장은 저희도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으니 조사한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일단 댁으로 돌아가 계십시오. 임시로 만든 것이지만 하루는 충분히 갈 겁니다.”
남자는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하루라는 건 내일 본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말이로군요.”
남자는 팔짱을 끼고는 생각에 잠겼다.
“정 불가능하다면 전화로 대화하는 것도 가능이야 하겠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직접 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저희가 내일쯤 찾아뵙거나 혹은 찾아오시는 거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태주의 질문에 남자는 잠시간 고민하더니 다시 물었다.
“아무래도 아들 상태 때문에, 찾아와주시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겸사겸사 집안 모습도 볼 수 있으니 태주도 그편이 좋았다.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차, 비용은 어떻게 됩니까?”
남자의 질문에 태주는 늘 하던 대로 말했다.
“돈으로 받지는 않습니다. 일이 끝나면 저희 소장님께서 찾아가실 겁니다. 그분이 무엇을 내야 할지 알려주실 겁니다.”
“예? 그게 구체적으로 얼마 정도 하는지…?”
남자는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이 말이 굉장히 불온하게 들리는 것은 태주도 알았다. 그렇기에 늘 설명을 덧붙였다.
“정말로 돈으로 받지 않기 때문에 금액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절대 부당하다 느끼실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겁니다.”
물론 그 말을 듣고 불안해하지 않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남자 역시 급격하게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은 약속을 잡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럼 내일 약속된 시간에 뵙겠습니다.”
태주는 남자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남자가 사무소를 나가자 둘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늘 하던 대로 해야지. 일단 커피부터 한 잔 마시자.”
* * *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태주와 시아는 설이에게 낮에 녹음한 대화를 들려주고 있었다.
“사람 얼굴의 고양이가 뭐죠?”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라며 설이는 물었다. 그러나 그것을 몰라서 두 사람도 더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게나 말이야. 우리조차 지금 당장은 짐작 가는 구석이 없네.”
시아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월이는 잠시 카운터를 지키느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이야기가 궁금한지 몸을 카운터에서 쭉 빼고 있었다.
“뭐야! 크게 말해봐! 나도 들을래!!”
시아는 그런 월이의 외침을 못 들은 척 몸을 테이블에 쭉 늘이며 엎드렸다.
“야! 언니! 못 들은 척하지 마!!”
야 언니라는 것은 대체 뭘까.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음, 그런데 그 고양이··· 고양이가 맞나요?”
“글쎄. 사실 그조차도 확신할 수가 없지. 일단은 그냥 고양이라 하자고. 부를 명칭은 필요하니까.”
태주는 약간 하품하며 설이에게 답했다.
“그러면 그 고양이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요?”
“음··· 그건 나도 조금 궁금하긴 하네.”
그것은 태주와 시아 역시 모를 일이었다.
“글쎄. 너는 어떨 것 같지?”
시아는 설이에게 물었다. 한설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 혹시 얼굴이 엄청 험상궂은 건 아닐까요? 한번 보고 그렇게까지 두려워했으니까요!”
“얼굴이?”
태주는 험상궂은 고양이의 얼굴을 상상하곤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시아는 괜찮은 생각이라며 웃음을 참는 태주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얼굴만 보고 무서울 정도라… 그쯤 가면 그건 사람의 얼굴이 아니겠지.”
“하긴 그렇네요.”
“반대로 정말로 그렇다면 한번 보고 싶기도 하네요.”
태주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얼마나 못생기면 그렇게 무서울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