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망량고양이 (1)
날이 좋았다.
햇볕은 쨍쨍했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런,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씨다.
지금 있는 장소가 장례식장만 아니었다면 기분이 참 좋았을 것이다. 태주는 한탄하듯 내뱉었다.
“이거, 검은 옷을 입고 왔어야 했나.”
평일 낮이라 그런지 장례식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태주의 남색 복장은 더 눈에 띄었다.
그러나 태주의 복장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다 보니 남을 살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뭐, 조문을 온 것이 아니니 상관은 없지.”
시아는 자신의 복장을 한 번 가다듬으며 말했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고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아니, 본인은 그렇게 입고. 그런 소리 하기에요?”
시아는 늘 그렇듯 검은 정장이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팔의 장식은 떼 놓은 상태였다. 덕분에 장소에 알맞은 복장이었다.
태주의 장난스러운 말에 시아는 피식 웃었다.
이미 두 사람은 몇 시간째 이곳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빈소를 방문한 것은 아니고 그저 장례식장의 바깥쪽만 돌고 있었다.
바깥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수상해 보일 법도 하지만, 두 사람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없다.
“역시 안 보이네요.”
“그래. 안 보인다.”
시아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무언가를 찾는지 두리번거리며 걷던 두 사람은 흡연 구역에 있는 벤치 앞에 멈춰섰다.
시아는 벤치로 가 털썩 주저앉으며 천천히 전자담배를 꺼내 물었다. 몇 시간 동안 열심히 걸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후우-”
주변에는 나무가 많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아마 저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소년은 무언가를 본 게 아닐까. 시아는 그런 생각을 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시아는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가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퍼져 나갔다.
“혹시나 했는데, 아쉽네요.”
태주도 시아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숲을 들여다보았다.
“그런가? 나는 당연히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애초에 사람 얼굴의 고양이라니, 그런 게 이런 곳에 있으면 이미 소문이 쫙 퍼졌을걸?”
시아의 애초부터 기대도 안 했다는 말에 태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땅을 툭툭 찼다.
“흔적 정도는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장례식장엔 흔적조차 없다는 정보를 얻었으니 만족할까 봐요.”
“그래. 역시 그 소년이 봤다는 건 자신과 관련 있는 것 같아. 장례식장과는 상관없이 말이야.”
결국은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이전에 내린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는 결론이다.
“아이 아버지의 얘기는 너무 정보가 적어요. 괴담을 믿지 않으니, 마음대로 해석해서 얘기했을 수도 있고요.”
시아는 쭉 빨아들이던 전자담배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뭐,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보자고. 그나저나,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건 좀 의외인데.”
“방금은 뭐가 없을 거라면서요?”
태주의 지적에 시아는 몸을 한번 쭉 뻗으며 말했다.
“그 괴물 고양이는 없어도 오랜만에 다른 거 하나 정도는 볼 수 있을까 싶었거든. 장례식장이라는 건 원래 귀신과 만나기 딱 좋은 곳인데 말이야.”
아쉬운 듯 아쉽지 않은 듯한 기분으로 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대가 변했다는 거겠지.”
* * *
두 사람이 장례식장에 방문하기 다섯 시간쯤 전,
태주는 혼자 사무소 일 층을 지키고 있었다. 막 점심을 먹고 난 뒤였고 시아는 식후땡을 하러 간다며 사라졌다.
딸랑.
보통은 사람이 잘 찾아오지 않는, 애매한 시간대에 나타난 갑작스러운 손님이었다.
예상치 못한 손님의 등장이기에 태주는 조금 허둥대기는 했으나, 간신히 크게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태주의 인사를 들으며 들어온 것은 세미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머리는 염색한 듯 새까맸으며 피부는 나이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주름이 조금 있었다.
그는 찌푸린 눈으로 주위를 슥 둘러봤다. 그리곤 못 미덥다는 투로 태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가 그 문제 생기면 오라는 곳이 맞습니까.”
“네. 어떤 일로 오셨는지는 몰라도, 이곳에 오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잘 찾아오신 게 맞을 겁니다.”
태주는 정중하게 남자에게 말했다.
태주의 말을 곱씹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표정은 풀지 않은 채였다.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굉장히 단도직입적이었다.
의례적인 인사나 겉치레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인지, 혹은 그저 그런 성격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네, 편한 곳에 앉으시죠. 커피 드시겠습니까?”
“사양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이 아니군요.”
남자의 말에 태주는 내심 아쉬웠다. 아직 식후에 차 한 잔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가장 안쪽의 테이블을 골라 앉았다. 태주는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저는 강태주라고 합니다.”
“아, 제가 인사도 없이…. 실례했습니다.”
남자는 정중하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태주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 흘깃 보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잠시 여기에 두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지갑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괜찮습니다.”
“자, 그럼 무슨 상담을 하고 싶으신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굳은 표정이었다.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귀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들었습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괴담 전반입니다.”
“그렇군요. 저는 그런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귀신을 믿어 본 적이 없거든요.”
“이해합니다.”
남자는 딱 봐도 그러한 괴담과는 거리가 멀 인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이런 장소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을 말씀드리면 여기에 온 지금조차도 귀신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드물지만 분명 있다. 그렇기에 태주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나, 남자는 꽤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남이 하는 일을 부정하는 것이 마음 쓰이는 듯, 남자는 태주의 눈치를 살폈다.
태주는 개의치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오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기셨겠죠.”
남자가 이곳에 온 이상 이미 그 괴담에 대한 것을 믿고 말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믿지 않더라도 이곳에 오지 않으면 안 될 만한 일이 생겼을 것이다. 남자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씀대로입니다. 정확히는 제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요. 사실 아직도 무슨 일인지 이해가 잘….”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자식이 그렇게 두렵다는데, 부모가 마냥 무시하고만 있을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피해자가 자식이라면 확실히 무거운 마음으로 올 만도 하다고 태주는 생각했다.
어떤 의미로는 본인이 겪는 것보다 끔찍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식이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중학생입니다. 이제 2학년 되었죠.”
“으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에 영향을 받기 좋은 나잇대이긴 했다.
“그래서 자녀분께서 무슨 일을 겪으신 겁니까? 아, 잠시 녹음을 좀 하겠습니다.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남자는 태주에게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핸드폰에 내장된 녹음 기능을 켜는 동안 남자는 잠시 팔짱을 끼고는 생각했다.
태주는 그 틈을 타 문자 하나를 남겼다.
“글쎄요. 제게 정확히 말해주지 않아 시작이 언제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애가 변한 게 아이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제 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이후라는 겁니다.”
“어···. 그렇군요.”
태주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언제쯤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삼일장을 마친 지 이제 이틀 되었습니다.”
생각 보다 오래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태주는 남자가 어떤 기분으로 이곳에 왔을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슬프지 않다기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받아들인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태주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남자는 감사하다고 짤막하게 목례하며 말을 이었다.
“장례식은··· 이걸 순조롭다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문제는 없이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조문객이 많이 와주신 덕분에 조금 바쁘기는 했지만요.”
“힘드셨겠습니다.”
“감사하죠. 그분들 덕분에 아버지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겠구나 싶고, 마음도 잘 추스를 수 있었으니까요.”
남자의 모습은 조금 초연하지만 그럼에도 담담했다. 아마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이 아닐까. 태주는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게 아버님을 보내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곧장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죠. 그땐 저희도 피곤했으니 아이도 그런 거려니 싶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아이가 많이 놀란 걸까요?”
“저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놀라고 당황한 것이라고요. 사실… 장례식을 치르기 이전부터 이미 아이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기는 했습니다만,”
남자는 죄책감 섞인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저는… 아이가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그냥 뒀습니다. 사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했고요.”
남자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지만, 아무도 그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남자는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방금 부모님을 여읜 아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이 엄마와 저는 출근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도 아들 녀석은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아이는 어떤 상태였습니까?”
“아내가 부르려 했지만, 제가 더 쉬게 두자고 했습니다. 학교도 쉬겠다고 연락했고요. 하지만 저희가 퇴근하고 왔는데 점심을 먹은 흔적도 없고, 저녁을 먹자 불러도 나오지도 않는 것을 보고… 그제야 뭔가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
남자는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아들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했지요?”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이상했지요. 무언가 잘못된 것이 확실한 목소리였습니다.”
내 방문을 두드리고 있는 건 누구냐. 공포에 질려 짓눌린 듯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듯 아이는 물었다. 남자는 무슨 일이냐며 문을 열려 했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저인 것을 확인하고는 다행히 문을 열어 주기는 하더군요. 그렇게 문을 열고 나니, 그제야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눈은 퀭했고 얼굴은 초췌했다.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마치 한겨울처럼 부들부들 떨더군요.”
“떨었다고요.”
“예. 순간적으로 감기라도 걸린 건가 싶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공포에 의한 떨림인 것처럼 보였었다.
“왜 그런지 물었지만, 아들은 대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혼자 부들부들 떨 뿐이었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러는지를 듣고 싶었지만, 말조차 제대로 못 하더군요.”
그때쯤 가서는 저녁 식사 따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게 되었다. 급히 남자는 아내를 불렀다. 부모가 곁에 있음에도 아이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를 진정시키는 데만 몇십 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점점 진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뭐라고 했습니까?”
태주의 질문에 남자는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게. 아들이 그러더군요.”
‘장례식장에서··· 사람의 얼굴을 한 고양이를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