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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51화 (51/269)

5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13)

“뭐야 저 사람들?”

선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두 사람은 사무소에서 쫓겨나듯 나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뭐 실제로 뭐 자기들만의 규칙이 있는 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수현의 말에 선우는 여전히 골이 난 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얼굴이 붉어졌다.

갑자기 단둘이 있게 됐다는 걸 실감해서였다. 패드를 빌린 이후로 두 사람만이 있던 것은 처음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둘만 있을 때는 분명 이렇게 어색하지 않았었는데.

“일단··· 갈까?”

수현은 말했다.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던 탓이었다.

“어디로?”

선우는 어디로 갈 거냐 물었다. 수현은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 모습에 선우가 웃자 어색함이 스르륵 풀리는 듯했다.

“글쎄? 어디로든?”

“너희 집 쪽으로 가자.”

“우리 집?”

선우의 말에 수현은 되물었다. 자신의 집의 끔찍한 꼴이 생각나 한 번 더 당황한 수현은 횡설수설했다.

“어, 음··· 나 오늘은 좀 그런데···.”

“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냥 바래다주려고 그래.”

수현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선우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수현은 속으로 안심했다.

그렇게 둘이 대화하던 중 수현의 눈앞에 키가 큰 남자가 나타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방금까지는 아무도 없던 거리에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그 남자는 그곳에 서 있었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한국인인 것 같기도 했고, 외국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낯선 듯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익숙한 것 같기도 했다.

“안녕?”

수현은 깜짝 놀랐다. 말을 걸 줄 몰랐던 상대가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소극적으로 수현은 반응했다. 가까이서 본 남자는 생각보다도 더 키가 컸다. 180 후반의 키로 보이는 남자는 수현이 상당히 올려다봐야 했다.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선우를 뒤로 보냈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아하, 나 나쁜 사람은 아니야. 걱정하지 마.”

초면에 반말인 남자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수현은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좋아서 웃는 것은 아니었다.

“음, 소개는 못 받았겠지만 나는 그 사무소의 소장이야.”

“아, 그러셨군요!”

남자의 자기소개에 수현은 어느 정도 이 이상한 분위기가 납득이 갔다.

스스로를 소장이라 밝힌 남자는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받을 게 있어서 왔거든.”

“받다뇨?”

“그렇게 도움을 받았으면 줄건 줘야지. 안 그래?”

마치 사채업자 같은 말투와 표정이었다. 수현은 다시 급격하게 표정이 안 좋아졌다. 옆에 있던 선우 역시 표정이 안 좋아졌다.

선우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부탁은 제가 했으니 비용은 내가 낼게요.”

“아냐, 나 때문에 고생까지 했는데 돈까지 내게 만들 수는 없지. 내가 낼게.”

수현은 선우가 얼마나 지불하기로 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했다. 얼마가 되었든 자신이 내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돈을 내겠다며 옥신각신했다. 그 모습을 보고 소장은 뭐가 재미있는지 싱글벙글이였다.

“수현이야 그렇다 치고 너는 들었을 텐데. 나는 돈으로 보수를 받지 않아.”

“하지만 돈 말고는 지금 당장 낼 수 있는 게 없는 걸요.”

선우의 대답이었다.

얼마가 되었건 돈은 내려면 낼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이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소장이 원하는 것은 애초부터 돈이 아니었다.

“낼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럴 리 없지~ 세상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낼 수 있는 게 많아.”

소장이 미소를 짓는 것과 반대로 수현은 표정을 급격하게 굳혔다.

“잠시만요, 대체 뭘 요구하려고 하는 거예요?”

수현은 온갖 좋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걱정하지 마. 애초부터 너에게 요구할 생각이라서 말이야. 네 쪽이 좀 더 가치가 있거든.”

소장은 수현 쪽을 바라보며 정말로 활짝 웃었다. 방금까지는 불쾌한 기분이 강했었다면 이번에는 소름이 돋았다.

“네, 네? 가치라니요?”

소장은 왼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수현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가방에서 나오는 물건을 지켜봤다. 소장이 꺼낸 것은 펜과 종이였다.

“자, 사인 좀 해줘.”

어떤 종류의 계약서 같은 걸까. 뭔지는 몰라도 선우가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마침 소장은 펜과 종이를 수현에게 내밀었다. 선우가 불안한 눈빛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수현은 안심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종이를 받아들었다.

“무슨 내용이….”

수현은 종이를 받고는 고개를 갸웃 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무슨 계약인가요?”

수현은 물었다. 소장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응? 계약이라니. 그냥 크게 사인해줘! 가능한 한 크게.”

“그··· 왜요?”

수현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코팅해서 보관할 거거든. 네 사인은 미래에 가치가 아주 높을 예정이라 말이야.”

“제 사인이요?”

수현은 믿지 않았다. 뭔지는 몰라도 고작 그 정도만 요구할 리 없다.

“못 믿어도 상관은 없지만, 사인은 제대로 해서 넘겨 줘. 난 그 사인만 있으면 되거든!”

소장은 그렇게 말하며 가방 속에서 받침대까지 준비해서는 종이와 펜을 흔들었다.

수현은 긴가민가하면서도 크게 사인을 했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소장은 신난다는 듯 활짝 웃으며 종이를 받아 들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심지어는 사인이 제대로 되었는지에 대한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로 이게 끝인가 싶어 수현과 선우는 서로 마주 봤다. 하지만 정말 끝이었다. 소장은 어느샌가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고 길가에 남은 건 두 사람뿐이었다.

“뭐지 대체?”

긴장이 풀린 탓인지 수현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옆에 있던 선우 역시도 상황이 웃겼는지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 정말 바보 같아.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우리.”

“하하, 그러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두 사람은 웃었다. 잘된 일이었다. 한번 웃고 나니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은 확 풀렸다. 어느새 어색했던 감정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조금은 이전처럼 돌아간 것 같았다.

수현은 선우와 오랜만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정말 별것도 아닌 말로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사실 대화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대화했다는 것이었다.

“야, 내가 너 없는 동안 동아리 유지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미안해, 그리고 고생했어.”

두 사람은 천천히, 이 이상 느린 속도로 걸을 수 없을 만큼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어느새 벌써 아파트가 가까워져 있었다.

해가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아 하늘이 붉었다.

“저…. 다음 주말에, 영화라도 보러 갈래?”

목소리가 떨리고 뒤집혔다. 이전에는 자주 했던 말인데도 이번에는 말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노을빛 덕분에 수현의 붉어진 얼굴이 감춰졌다.

“뭐야, 그거.”

선우는 피식 웃었다. 그런 수현의 태도가 우스웠는지 킥킥 웃은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잘 골라 놔. 나도 그동안 많이 늘었다고.”

“···그래야겠네.”

“내일 학교에서 봐.

선우의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

수현의 집은 여전히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내일 학교에 가기 전까지 모두 정리하겠다고 수현은 마음먹었다.

신발장의 신발들, 널려 있는 옷가지, 지저분한 바닥, 청소하다 보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수현의 집은 이전과는 다르게, 아니 어쩌면 이전처럼 깔끔해졌다.

“원래 우리 집은 이런 모습이었지.”

수현은 정리된 거실을 보며 새삼 감회에 젖었다. 없어진 것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기억 속의 집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끼익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봤다.

“설마,”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열린 문은 영화를 모아 둔 방이었다. 자신이 잠갔던 방문이 스스로 열렸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스스로 열리는 문이라, 원래라면 공포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지금 수현이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신비와 경외였다.

어쩌면 이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소홀했던 영화에 대한 마음이 자신을 다시 부르는 것일지도 몰랐다.

홀린 듯, 수현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대량의 영화 DVD, 포스터, 팸플릿들은 죄다 먼지를 잔뜩 먹었지만 제 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원래 자리에 있었다.

수현은 앨범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 장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현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스크랩해두지 못한 반지 시리즈의 마지막 리메이크작의 포스터를 그곳에 넣어 뒀었다.

앨범은 어린 시절에 만들기 시작한 물건이라 삐뚤어져 있는 것도 있었지만 마지막 하나는 최대한 바르게 원래 자리에 붙여넣었다. 이걸로 자신은 앨범을 채울 수 있었다. 마지막 물건이었다.

* * *

“나 언제 꺼내 주는 거야?”

월이의 공허한 외침이 경계 안에 울려 퍼졌다.

바깥에서도 해체 작업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혼자서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은 굉장히 불안한 일이었다.

시아와 태주 역시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서둘러 보냈다.

드디어 경계가 위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월이는 눈을 감았다. 직접 보고 있으면 어지럽기 때문이었다.

곧 바람이 휘몰아치고 경계가 무너지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완전히 경계가 풀렸다고 느낀 순간 월이는 눈을 떴다.

“으엑, 냄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아는 경계에 필요한 특수한 것을 안에다 넣어 피웠기 때문에 특유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넣은 과일 향은, 예민한 코를 가진 월이가 느끼기에 냄새가 섞여 더 이상할 뿐이었다.

“문 열자, 문!!.”

월이는 자연스럽게 코를 막고 말했다. 월이가 문을 열며 정리가 시작되었다.

“나 왔다.”

소장은 늘 그렇듯 일이 다 끝난 뒤에야 왔다.

“아, 소장님 문 닫지 마요! 환기 중이란 말이에요.”

월이가 문을 닫으려던 소장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그렇게 이상한가? 그래 봐야 거의 수증긴데.”

시아는 변명하듯 말했다.

“이상하거든!”

연기나 안개를 이용하는 것이 경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월이도 알았기에 더 투덜거리지는 않았다.

“방금 두 사람 나갔는데 봤어요?”

태주는 소장에게 질문했다.

“그래. 보수도 받아왔지.”

“뭐 받아왔어요?”

“사인.”

“사인이요?”

“그래. 나중엔 아주 비싼 물건이 될 사인. 물론 팔지는 않겠지만,”

소장은 어느새 코팅까지 마친 사인이 쓰인 종이를 자랑하듯 보여줬다. 나머지 사람들로서는 그게 도통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짜린데요?”

한설의 질문에 소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값을 매길 수가 없지. 부르는 게 곧 값인 물건이니까.”

소장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뭐, 그래요. 가치 있는 물건이라면 잘됐네.”

태주는 떨떠름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신경끄기로 했다.

“그 싸인 그래도 굳이 값을 매기면 얼마인 거에요?”

월이는 여전히 궁금한지 물었다.

“안 판다니까. 개인 소장용이야.”

“권력 남용이에요! 권력! 남용!”

그러나 소장은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고 월이는 불평했다.

“그게 왜 가치가 있나요? 그래 봐야 그냥 사인이잖습니까?”

시아의 질문에 소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기다렸던 질문은 이 질문이었던 것인지 소장은 그제야 흔쾌히 답변을 시작했다.

“이게 미래에 남을 유일한 본명 사인이거든.”

“네?”

“저 친구는 나중에 가명을 쓸 거야. 그리고 영화 관련 사인은 죄다 가명으로만 할 거고. 누가 요청해도 본명으로는 사인을 해주지 않아. 왜냐하면?!”

소장은 기쁜 듯 싱글벙글인 채였다.

“나한테 해 줬기 때문이거든!”

소장의 마지막 말을 이해한 것은 태주뿐이었다.

“허,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 되나 봐요?”

“물론이지. 저만한 영화감독은 수십년 동안 나오지 않아.”

소장이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미래에는 꽤나 엄청난 사람이 되는가 보다 하고 사람들은 짐작했다.

“평생 내가 한 사인의 가치를 낮추지 않기 위해 마지막 그 날까지 하지 않아. 공문서에 하는 걸 제외하고 말이야.”

“어··· 그러면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말인가요?”

한설의 질문에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러니까 이건 정말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이 될 거야.”

“하지만 소장님에게 그게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면 결국 가치가 없는 물건이 되지 않겠습니까.”

시아의 질문에 소장은 음흉하게 웃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듯 소장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하하, 아냐 걔가 생전에 인터뷰를 한 번 하거든. 본명으로 사인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다고. 자기의 처음이자 마지막 본명 사인이라는 인터뷰를 말이야.”

“뭐 거의 해적왕의 보물이네요.”

태주는 홀로 ‘친필사인은 실존한다!’하고 외치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리고 이 사인은 미래에 환상 속의 사인이라고 불릴 거야. 있는지 없는지 불분명한, 하지만 사인을 한 본인은 있었다고 주장한 그런 물건이 되는 거지. 그 자체로 하나의 환상이 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꽤 재미있고 또 가치 있는 물건은 맞았다. 그게 그 재미있는 물건이 되려면 최소한 삼십 년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소장은 싱글벙글 웃었다. 결국, 미래에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장이 팬심으로 사인 한 장만 받았다는 말이다.

“사인 하나 받은 건 뭔가 좀 손해 본 기분이긴 한데. 그래도 그 친구가 나중에는 잘 산다고 하니까 기분은 좋네요.”

월이는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후 쉬었다.

“결국, 이번 일도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네요.”

태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기들 월급이야 소장이 알아서 주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자신의 성과를 가시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태주 입장에서는 아쉬웠다.

소장은 위로하듯 말했다.

“뭐, 모든 사람이 돈 되는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래도 너희들 돈은 내가 챙겨 주잖아.”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태주의 어깨를 툭 짚었다.

“너희들 일 잘 한 건 내가 아니까 괜찮아.”

그래도 소장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소장 입장에서는 정말 만족스러운 거래였던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또 내일부터 학교 가야 하나.”

“앗, 그러네!”

내일 학교에 가야 하는 두 사람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태주는 문득 떠올린 것처럼 말했다.

“맞다. 너 그거 얼굴 가린 거 다 들통난 거 알지?”

“뭐? 그게 들켰다고?”

월이는 진심으로 깜짝 놀란 듯 태주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당연히 들키지 멍청아. 선우 걔는 첫날에 슬쩍 봤고 수현이는 직접 데려왔잖아. 분명 알걸.”

“진짜? 난 그러면 대체 뭘 위해···”

“뭐, 눈치껏 네가 먼저 모른 척하면 걔들도 알아서 모른 척하지 않을까.”

“그래도 괜히 신경 쓰인단 말야.”

월이는 투덜거렸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그 애들이 과연 월이를 평범하게 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너 근데 학교에 친구가 많은가 봐?”

“응? 왜?”

“이번에 사실 기대한 것보다 더 잘 조사해 와서.”

태주의 말에 월이는 조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어··· 몇 명 있지.”

“몇 명이라기보다는, 읍!”

월이는 급하게 설이의 입을 막았다.

학교에 친구가 없는 건 상관없었지만, 그래 보이는 건 싫었다.

“뭐, 다시 이런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학교에서 일 생기거나 하면 다시 너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잘됐네.”

“뭐, 그 정도라면 앞으로도 나한테 맡겨.”

월이는 지금부터라도 교우관계를 조금씩 넓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중에 학교에 보호자 자격으로 이 멤버들이 온다면 그래도 할 말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걔네는 어떻게 되려나?”

시아의 의문이었다. 그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서로 좋아하고 있었다.

“난 안 알려주지.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소장은 시아의 의문에 피식 웃고는 그렇게 답했다.

“쓸데없는 건 알려주더니 이런 건 안 알려주시네.”

태주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소장은 씩 웃으며 자리를 뜰 뿐이었다.

“낄낄, 난 간다.”

“아 좀, 알려주고 가요!”

태주의 외침에도 소장은 무시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시아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뭐 알아서 잘 하겠지. 마지막에 가기 직전에 서로 마주 보는 거 보면 꿀 떨어지더만.”

“잘 됐으면 좋겠네요.”

한설은 웃으며 말했다.

“야, 그래도 나중에 한번 가서 물어봐. 우리도 좀 궁금하니까.”

태주의 말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연애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도 별로 없긴 하지.”

반면 월이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만 하면 나한테 물어보래? 아니 근데 이거 연애 이야기였어?”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주 이야기보단 연애 이야기가 낫지 않겠냐.”

* 다음 이야기 *

장례식은 거의 끝났다. 이젠 마지막 절차다. 이제 저곳에서 떠날 수 있겠다며 소년은 한숨을 쉬었다.

“삼십 분 정도 대기했다가 출발한대요.”

버스 앞쪽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이 버스가 도착하면 장례식은 끝이라고 했다. 소년은 덜덜거리는 창문에 기대 바깥을 바라봤다.

출발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소년은 무료한 표정으로 창 바깥을 바라봤다. 조금 멀리, 며칠 동안 있었던 빈소 건물이 보였다.

마침 빈소 벽 옆에는 본 적 있는듯한 고양이들이 모여 있다. 소년은 그 무리를 유심히 살폈다. 그 안에 자신이 놀아준 녀석이 있는지 궁금했다.

“어라?”

그 무리 안에 처음 보는 고양이가 있었다. 지나치게 커 눈에 띄었다.

저렇게 큰 고양이가 있었나? 고양이가… 맞나…?

왠지 자세히 살피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알았다.

저건 고양이가 아니야.

그것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을 감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

“아, 아아!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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