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11)
지금 태주가 수현을 대하는 태도는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지금 수현은 저주의 시발점이다.
만약 수현이 스스로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번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주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태주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말했다. 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증오하는 마음이야. 사실 이래저래 이야기했지만, 저주의 방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강한 의지만 있어도 저주가 성립해. 굳이 주술적인 해석까지도 필요 없지.”
태주가 시아에게 물었던 것, 그리고 시아가 당연하다 긍정했던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 거창한 저주는 사실 필요 없다. 그저 악의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죽는다.
음습한 괴롭힘과 따돌림, 불특정 다수가 던지는 작은 악평, 한 사람의 인격 자체에 대한 부정과 비난.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죽는다.
결국은 그런 것이 다 원시적인 형태의 저주다. 사람은 의외로 강하지만, 또 의외로 약한 것이라 마음만으로 다치고 죽는다.
“저주라는 건 그런 거야. 증오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형태가 아무리 완벽해도 제대로 된 저주가 되지 않아. 반대로 과정이 아무리 불완전해도 증오하는 마음이 강하면 저주는 완성돼. 너는 스스로를 그만큼이나 증오하고 있었던 거야. 저 허접한 영상에 그렇게나 살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저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술에 속한다. 그리고 주술 종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고는 사라진다.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해진 형태도 없고, 마침내는 결과만이 남는다.
그렇기에 저주에 중요한 것은 다른 잡다한 방법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이해는 돼.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낡은 괴담, 오래된 비디오, 우연히 이루어진 불행의 연속.
그 속에서 수현이 느낀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분노였을 것이다. 태주는 그것이 안타깝고 또 화가 났다.
“물론 아직 나는 너에 대해 잘 몰라. 끝까지 알 수 없는 것도 많겠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겠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수현의 말을 들은 이후 태주는 속에서 계속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더는 참을 수 없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건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상처가 있다면 치료할 수 있게 도와주고도 싶다. 원망스러운 대상이 있다면 원망하는 것조차도 도와줄 수 있었다.
“네가 했을 법한 생각을 맞춰볼까?”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태주는 대답도 듣지 않고 계속 말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저히 알 수 없고 밥조차 다시 먹기 싫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거야. 그렇게 한동안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슬픔이 희석되겠지. 그리고는 깜짝 놀라는 거야. 가족이 죽었는데 내가 웃고 있다니. 웃고 있던 와중에도 갑작스럽게 눈물도 날 거야. 나는 이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겠지.”
“어떻게…?”
그건 수현이 했던 생각과 아주 비슷했다. 그렇기에 수현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태주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말을 이었다. 태주는 단언할 수 있었다.
“원래 그런 거니까.”
다시 웃을 수 있는 건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슬픔이 적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단단해지는 과정이라고, 태주는 확신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죽은 것도 너 때문이 아니야. 그저 불행이었을 뿐이지, 네 잘못이 아니라.”
태주의 말을 듣던 수현은 점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태주의 말에 가족들이 죽을 당시를 다시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그건 나 때문이에요. 그래야만 해요.”
수현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드디어 자신 깊은 곳에 있는 생각을 말했다.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수현은 태주를 노려봤다. 태주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 때문이 아니면 정말 우리 가족들은 아무 이유 없이 죽은 거잖아. 그럼 우리 엄마 아빠 억울해서 어떡해요? 내 탓이야. 나는 행복하면 안 돼요….”
수현은 서럽게 울었다.
“네 부모님은 네가 밤길에 혼자 돌아오는 게 걱정이 돼서 데리러 간다고 하신 거겠지?”
태주는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그리고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걱정이 잘못이라 할 수 없는 거야. 마찬가지로 그게 네 탓이라고 할 수 없어.”
태주의 말을 수현은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들었다. 수현의 가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태주는 몰랐다. 그러나 그 슬픔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 안타까웠다.
“힘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으려 들어. 그리고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중 가장 편한 방법이지. 남 탓을 하거나, 혹은 너처럼 자기 탓을 하거나.”
사람들은 종종 자책이 남 탓보다 낫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차라리 불합리한 남 탓이 나았다.
“너처럼 자책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그냥 자신을 갉아먹을 뿐이라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도 배워야지.”
수현은 빨간 눈으로 태주를 쳐다보았다. 눈에서는 아직도 눈물이 흘렀다.
“이미 지나간 일을 받아들여. 그러다 보면 점점 무뎌지겠지. 그럼 웃을 일에 웃고 울 일에 울 수 있게 될 거야.”
태주가 하는 말을 들은 수현은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으나, 눈가에서 눈물은 계속 흘렀다.
“네가 하려던 건 그냥 천천히 하는 자살이야. 차마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지만, 끝없이 자신을 원망하고. 그래서, 네게 가장 충격적인 형태로 저주는 만들어졌어. 그리고 그 마음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결국 넌 다시 저주를 만들어 내겠지.”
태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있는 티슈를 수현에게 건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어.”
아무도 이 말을 해 주지 않았다. 태주는 그게 조금 화가 났다.
“너 자신을 포기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다른 이에게 자신의 것을 줄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도와줄 이를 만났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수현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하나는 있었지만, 수현이 밀어냈다.
“네가 영화를 여전히 좋아하는 건 잘못이 아니야.”
물론 이렇게 말해도 당장은 받아들일 수 없을 거다. 그렇기에 태주는 일부러 강하게 말했다.
“확실하게 말해서, 네가 지금 하는 그 생각은 틀려먹었어. 그걸 보여주지.”
얼떨떨하게 휴지를 받아든 수현은 태주를 멍하니 쳐다봤다.
“난 먼저 나가 볼 테니까 조금 정리되면 나와. 오늘 안에 저주를 완전히 끝장낼 거니까. 아마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태주는 천천히 방문을 향해 걸었다. 말을 너무 심하게 했던 걸까 싶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질문이 들려왔다.
“저한테 이런 말을 왜 해주시는 거예요?”
수현의 질문이었다. 태주는 멈칫했다. 그냥 대답하지 말까 생각하다가 이것이 상대가 처음으로 삐딱하게 굴지 않고 한 제대로 된 질문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답을 했다.
“어쩌다 보니까.”
그 말을 남기고 태주는 방문 바깥으로 나갔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불행이 있다면, 이유 없이 어쩌다 찾아오는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최소한 태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오우, 멋있는 척 좀 할 줄 아는 놈인데?”
방문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태주는 월이를 마주쳤다. 월이는 방문 밖에서 흘러가는 대화를 조금 들은 듯 곧바로 태주를 놀려먹기 시작했다.
“아이 씨, 보자마자 사람 놀릴 생각부터 하고.”
태주는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머리에 열이 올라 너무 막말했던 것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응~ 어쩌다 보니~”
월이는 일부러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만들어 놀렸다. 태주는 작게 혀를 찼다.
“그치만 저는 좀 감동이에요.”
반면 한설은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사실 이쪽이 좀 더 까다로웠다. 월이처럼 놀리는 편이 더 마음이 편했다.
머리에 열이 올라 한 부끄러운 소리를 감동이라며 치켜세우는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태주는 알지 못했다.
“제발 그만하면 안 될까. 나 좀 부끄러운데.”
“부끄러운데~ 안 되는데~”
“내가 이번에 니가 하는 일이 많으니까 참는다. 진짜.”
태주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말했다.
“야, 뭐 평소에는 안 참으면 나한테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태주의 말에 월이는 놀리듯 답했다. 태주는 할 말이 없어져 입을 다물었다.
“뭐, 그래도 잘 했어.”
월이는 그렇게 말하곤 앞으로 먼저 쌩하니 걸어갔다.
“어디 가?”
“준비 좀 미리 하려고 대단한 건 아니어도 준비할 건 좀 있으니까. 몇 시에 내려오면 된다고?”
“세 시 반 넘어서. 준비하고 있다가 내려오면 돼. 오히려 더 빨리 내려오면 안 된다?”
“오케이-.”
태주의 말에 월이는 알겠다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저기, 전 뭐 하면 될까요?”
한설은 초조한 듯 물었다. 자신만 할 일이 없어서 오히려 불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정말로 한설이 해야 할 일은 없었다. 특히나 이번 같은 경우는 더 그랬다.
“글쎄. 사실 이번엔 할 일이 별로 없지. 잘 보고 배우는 것 정도일까? 뒤에서 잘 보고 있어. 아마 다음… 어쩌면 다다음부터는 너도 해야 할 일이니까.”
태주는 바로 카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거기엔 예상대로 시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다 했냐.”
“다 했죠.”
시아는 많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자신보다 태주가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어련히 잘 했으리라 믿는 듯했다.
“준비는 거의 다 했네요? 이걸로 끝난 거예요?”
“거의라니? 다 한 거지. 어차피 나머지는 사람들이 와야 시작할 거기도 하고.”
태주 역시 시아에게 많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아가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맞았다. 최소한 주술적인 것과 관련한 것들은 그랬다.
두 사람은 말없이 잠시 기다렸다. 선우가 도착하고, 수현이 마음을 추스르고 나오면 곧바로 시작할 예정었다.
시아는 자연스럽게 품에서 전자담배를 꺼냈다. 그리고는 뚜껑을 열어 자연스럽게 한번 빨았다.
“그거 복숭아 맛이 나요?”
태주는 복숭아의 냄새를 맡았다. 실제 복숭아라기보다는 복숭아 껌 같은 냄새였다. 싸구려 같은 냄새기는 했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진짜 담배에 비하면 훨씬 좋은 냄새다.
“설마. 그냥 아무 맛도 안 나. 그냥 조금 나른해진다 해야 하나.”
시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하얀 연기를 내뱉었다.
“넌 이런 거 하지 마라.”
“그거 농담이에요?”
시아의 말에 태주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시아는 자신이 말을 던져 놓고도 부끄러운지 귀 끝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다시 침묵이 왔다.
시아는 이후 의식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 태주는 그저 복숭아 냄새를 맡기 위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었다. 한설은 이 모든 걸 놓치지 않기 위해 그냥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수현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이번 한 번만으로 마음을 완전히 추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후의 문제는 자신들이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아마 선우라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제가 이 일 시작한 게 좀 껄끄러울 때도 있어요.”
“왜?”
시아는 한숨을 후 뱉었다. 하얀 연기가 뿜어 나왔다.
“그냥 뭐랄까, 저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 가끔 남 가르치듯 말하면 부끄럽거든요.”
“뭘, 세상만사 다 그렇지. 그래도 도움이 되면 다행 아닌가. 헛꼰대질은 아닌 셈이니.”
“누나는 어때요?”
태주의 질문에 시아는 잠시 입에 가져가던 전자담배를 멈췄다.
“내가 그래서 무당 노릇 접은 거 아냐.”
시아의 말에 태주는 피식 웃었다.
딸랑,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선우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듯싶었다.
“제가 너무 일찍 왔나요?”
들어오자마자 선우는 그렇게 말하며 태주를 쳐다봤다. 태주는 살짝 웃었다.
“조금은요.”
“앗, 다시 나갈까요?”
당황하는 선우의 표정에 태주는 웃었다.
“아뇨. 여기 계셔도 됩니다. 조금 심심하실 수는 있지만요.”
“세 시 시작이라고 했죠? 그럼 기다릴게요.”
“그렇게 하시죠. 커피라도 한 잔 드릴까요?”
태주의 질문에 선우는 오늘은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런 날엔 커피는 별로죠. 콜라랑 팝콘이 좋겠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귀신 잡는 거,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