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10)
수현은 자주 영화관에 갔다.
부장인 선우는 처음에는 가지 않았으나, 한번 수현이 같이 가자 요청했을 때 수락한 이후로는 종종 같이 갔다.
부장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는 건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고, 또 신문사 상까지 받는 동아리 활동이라면 입시에도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속셈도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꽤 진지한 활동이 된 셈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
다만 수현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계속 봐야 한다는 점이 문제 아닌 문제였다.
“대체, 이게 어디가 재미있다는 거야?”
“어… 글쎄? 보다 보면 재미있긴 한데….”
처음 마이너한 예술영화 종류를 봤을 때는 수현이 신문사에 글을 내겠다고 할 때 하지 말라 그럴 걸 그랬다는 후회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다양한 영화를 보다 보니 취향에 맞는 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우는 몇몇 재미있게 본 영화들에 대해 수현에게 질문했다.
“…그 장면, 굳이 그렇게 찍은 이유가 있어? 뭔가 둥근 느낌이던데.”
사소한 영화적 장치에 대한 질문이었다. 수현은 그런 질문을 받은 것이 처음이었기에 상세하게 대답했다.
“그, 뭐냐. 일부러 촬영 시에 사용한 렌즈가 조금 다른 건데….”
“응? 화면만 보고 그걸 어떻게 알아?”
“그게, 화면비율도 좀 다르니까….”
한번 듣고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몇 번 듣고 나니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선우는 처음으로 이전에 본 영화를 다시 한번 봤다.
수현의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본 영화의 느낌은 이전과 달랐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영화의 언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게 이런 의도였던 거야?”
맨 처음 스스로 감독의 의도를 분석했다 생각했을 때, 선우는 수현에게 물었다. 수현은 이렇게 말했었다.
“감독의 의도는 우린 몰라. 굳이 정확한 의도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도 의미는 없지. 우리는 그저 추측하고, 해석할 뿐이니까.”
“뭐야, 그게?”
선우는 조금 실망했지만, 이어지는 말에 조금 마음이 풀렸다.
“하지만 나도 너처럼 생각하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난 뒤에야 선우는 수현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래 중 최초로 수현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선우는 이제는 자청해서 수현과 함께 영화관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부실에서 보곤 했으나 부실에서 볼 수 있는 영화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은 이곳저곳 돌아다니게 되었다.
영화 감상부는 진지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부원이 전부 활동하던 시기보다도 더 많은 활동을 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도 생겼다. 수현에게는 최초의 이해자였고, 선우에게는 괴짜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믿음직한 친구라는 인식이 생겼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양호했고, 활동 역시 지속되었다.
수현의 부모님은 교우관계가 여전히 좁은 것은 불만이었으나, 그래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친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현은 주로 활동하던 곳에서 반지 시리즈의 첫 작품이 리메이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많은 영화를 봤고 또 많은 경험을 했지만, 여전히 수현에게 있어 최고의 영화는 처음에 봤던 반지 시리즈였다.
객관적으로는 그보다 재미있는 영화도 많고 그보다 의미 깊은 영화도 많았으나 그래도 여전히 수현에게 있어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텔레비전 속에서 귀신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수현에게 최초로 계시를 준 영화다. 그렇기에 그 리메이크의 국내 개봉은 수현에겐 꼭 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이너한 장르인 데다, 해외 평도 좋지 않아 국내 극장 대부분에서는 그 영화를 상영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인원들의 지속적인 요구 끝에 영화는 심야 시간대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수현에게는 기쁜 소식이었다.
사실, 가장 적극적으로 요청을 했던 것도 수현이었다. 수현은 자신이 그 영화를 봐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느꼈다.
마침 여름방학이었고 수현은 부모님께 부탁했다. 심야 영화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했다. 가는 길은 알아서 가되 오는 길에는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수현은 기대를 품고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는 끔찍하게도 재미가 없었다. 영화는 옛날의 그 느낌이 아니었다. 적은 예산과 한정된 특수효과만으로 만들어낸 정제된 연출이 아니었다.
티 나는 특수효과와 기존의 느낌을 망쳐버린 졸작뿐이다. 수현도 그 평가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현에게는 그런 것은 사소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수현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영화 자체는 재미가 없더라도 그 장면만큼은 건질 수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수현는 잠시 여운에 젖어 앉아 있었다.
영화관에서 나와 부모님께 전화했다. 얼른 이 기분과 느낌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연락이 되지 않았다. 계속 전화를 해댄 통에, 얼마 남지 않았던 배터리가 다 해 핸드폰마저 꺼졌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은 오시지 않았다.
슬슬 피곤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주변 편의점 알바생에게 부탁해 전화를 걸어 봐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수현은 첫차를 타고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
교통사고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은 집에 도착한 이후였다. 수현은 얘기를 전해 듣자마자 까무러쳤다.
장례식 내내, 울지 못했다. 모든 것이 다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데리러 오라고 하지 않았다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애초에 영화를 개봉해 달라 요청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저주의 비디오에 빠지지 않았다면 부모님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여러 사람이 장례식에 왔지만, 수현에게 도움을 주는 이는 없었다. 친척들도 장례 절차를 도와줄 뿐 수현을 챙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선우는 그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찾아왔고 가장 오래 남아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장례식은 끝났다. 장례식을 마치고, 수현은 집에서 그냥 쉬었다. 일주일을 넘게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이 종종 찾아왔지만, 집에 없는 척을 했다.
집이 조용했다. 밥통에 밥이 없었다. 집에 치약이 다 떨어졌다. 물은 항상 미지근했다. 다 부모님이 미리미리 채워 두던 것이었다. 이젠 그걸 채워줄 사람이 없다.
장례식 이후로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일주일이 더 지났다. 수현은 마음을 추스르고 학교에 나갔다. 걱정 어린 눈빛들이 수현을 쳐다봤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모두가 수현을 깨진 유리조각처럼 다뤘다.
수현은 가장 먼저 영화부 활동을 그만뒀다. 리뷰를 쓰던 사이트들에서도 활동을 멈췄다. 영화를 보관하는 방문을 잠가 뒀다.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수현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은 웃을 자격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수현은 텔레비전을 친척에게 넘겼다. 친척은 흔쾌히 받았다.
소식을 들은 다른 친척들이 안 쓰는 물건이 있으면 넘겨 달라 말했다. 부모님의 유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달라는 대로 다 줬다.
이제 남은 비싼 물건은 부모님이 생일선물로 주려고 차에 보관해 뒀던 패드 하나였다.
사고현장에서 발견된 거였다.
이런 걸 장례식 직후에 받아도 기쁠 리 없었기에 사고 이후 처박아뒀던 물건이지만, 갑작스레 물건들을 집에서 다 비우고 나니 생각이 났다.
수현은 이리저리 패드를 만져봤다. 물건에 이상은 없었다. 사용 테스트를 하던 도중 수현은 자신이 옛날에 들어가던 사이트에 들어갔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옛날 버릇 그대로, 사이트 내에서 동영상들을 찾아보고, 다른 사람의 리뷰를 봤다. 그러다 무심코 리플을 쓰려 했지만, 로그인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제야 수현은 자신이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이트를 둘러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받아 둔 동영상을 재생조차 하지 못한 채 수현은 패드를 곧장 종료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심심하고 지루했지만. 그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벌이다. 견뎌야 했다.
선우 역시 이전과는 생활이 달랐다. 이제 활동하는 이는 한 명뿐인 영화 감상부였지만, 선우는 계속 동아리를 유지했다.
선생님들도 동아리를 없애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수현은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선우는 말했다.
선생님들도 수현의 상황을 알았기에 예외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동아리는 남겨놓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선우는 홀로 영화를 보고, 분석하고, 글을 써 봤다. 그러나 이전처럼 재미있지 않았다. 선우는 수현이 만큼 분석적으로 영화를 볼 수 없었고, 그만한 글을 써낼 수도 없었다.
리뷰 쓰는 걸 그만둘까 싶었다. 하지만 계속해야 했다. 이곳이 수현이 돌아오기로 마음먹었을 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한 달에 하나씩, 선우는 보고서를 써냈다. 이를 악물고 써도 수현이 쓴 것만 못했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선우는 장례식장에서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됐다. 그런 일을 겪은 이가 주변에 없었기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말을 하지 못했다. 수현은 장례식 사흘 동안 점점 망가져 갔다.
선우는 그래서 수현이 영화부에 탈퇴 의사를 밝혔을 때 말리지 못했다. 위로 한마디 해 주지 못한 자기 탓 같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동아리를 유지하는 것이 지쳐가던 선우는 수현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선우는 직접 동아리로 돌아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 했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선우는 수현에게 영화를 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 뭐가 있냐 물었다.
수현은 말없이 패드를 건네줬다.
선우는 얼떨결에 물건을 받아 버렸다. 원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미 등을 돌린 수현에게 돌려주지 못했다.
“한 달 있다가…. 딱 한 달만 쓰고 돌려줄게.”
수현은 안 돌려줘도 된다 말했지만, 선우는 못 들은 척 몸을 돌렸다.
‘사실은 이런 걸 받고 싶은 것이 아니야. 나는 너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싶은 거였어.’
선우의 말은 입안에 맴돌 뿐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 * *
“그 패드 문제는, 사실 작은 엇갈림이에요. 평소라면 사소한 수준이었을 테고요. 그건 잘못이라 하기도 뭐하죠.”
그러나 저주가 거기 껴 있는 이상, 그건 더 이상 사소한 잘못이라 할 수 없다.
“이 저주는 당신이 만든 거예요.”
저주의 형태를 보면 너무나도 확실하다. 태주는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까놓고 말하자면, 그건 선우 씨에게는 그리 엄청나게 위협적인 건 아니었어요. 죽음의 저주치고는.”
그 저주는 기껏해야 팔 정도밖에는 화면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 저주는 선우를 죽이기 쉽지 않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원래대로 발동하여 수현이 저주를 발동시켰다면 어땠을까.
시아는 완성도가 좀 낮은 물건이라고 대차게 까버렸으나, 사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완성도 따위는 상관없다. 한쪽 팔 뿐이라도 도망칠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어요. 과장 하나 없이 말이죠.”
“차라리 그게 나았겠네요. 깔끔하고 편할 텐데.”
수현은 더 이상 표정조차 없었다. 그런 수현의 모습에 태주는 화를 꾹 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렇게 말할 거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