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9)
태주는 크게 하품을 하며 일 층 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태주는 이전에 저주에 대해 시아와 대화한 적이 있었다. 시아는 마찬가지로 저주에 대해 설명을 했고, 태주는 그때 질문을 하나 했었다.
‘저주에서 가장 중요한 게 그게 다예요?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 말고, 그전에 하나 더 있지 않아요?’
전에 태주가 시아에게 한 질문이었다. 시아는 웃으며 대답했었다.
‘그야 너무 당연한 거니까.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지.’
“그래, 정말이지 그 말 대로야.”
아무래도 피로가 좀 쌓여 있다. 태주는 눈을 감고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약속한 시각이 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딸랑, 하고 방울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태주는 눈을 떴다.
“저밖에 없나요?”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현이었다.
분명히 자신 말고 선우도 온다고 했는데 본인밖에는 없어서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수현 씨만 조금 일찍 불렀습니다. 먼저 할 일이 있어서요. 일단 따라오시죠.”
태주의 말에 수현은 별말 없이 태주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태주가 테이블이 아닌 다른 방으로 따라오라 말하자 그제야 수현은 멈칫했다.
“왜 이쪽으로 가죠?”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태주와 수현은 복도를 거쳐 1층의 작은 방에 들어갔다.
“앉으시죠.”
태주가 말한 대로, 수현은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태주는 앉지 않았다. 그저 문 앞에 서 있었다.
“일단 먼저 묻겠습니다.”
수현이 의아함을 채 느끼기도 전에 태주는 말을 꺼냈다.
“저주가 해결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네?”
갑작스러운 태주의 질문에 수현은 당황스럽다는 듯 선뜻 답하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수현은 태주가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해서 온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보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음…, 글쎄요. 해결된다고 제가 뭘 할 게 있나요? 일단 저는 저주를 믿지도 않고요. 그냥 이전처럼 살지 않을까요.”
수현은 난처하게 웃으며 답변했다. 하지만 태주는 웃지 않았다.
“음, 아뇨. 전 안 그럴 것 같아요.”
“그래요? 어떨 것 같은데요?”
“곧 죽을 것 같아요.”
수현은 농담인가 싶어 태주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나 태주의 표정은 진지했고, 조금의 웃음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질 낮은 농담이라면 받아줄 수 있었겠지만, 한없이 진지한 태주의 말에 수현은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지금 갑자기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갑자기라니? 지금까지 죽을 것 같이 굴고 계셨던 분이.”
수현은 어처구니없어했지만, 태주는 신경 쓰지 않았다.
“조사를 좀 했습니다. 수현 씨가 자신의 물건들을 이것저것 주변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죠.”
태주는 천천히, 알아낸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수현은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태주를 쳐다보았다.
“그게 왜요?”
“그게 바로 저주의 원인이니까요.”
태주는 여전히 웃지 않으며 말했다. 수현은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집안 꼴만 봐도 알 수 있다. 남에게 자신의 물건들을 넘겨주는 것을 보면 느낄 수 있다.
그게 저주의 원인이다.
“당신한테 별명도 하나 붙었던데요.”
“뒷조사라도 하셨어요?”
수현은 공격적인 태도로 물었다.
“뒷조사… 까지도 필요 없었죠.”
태주는 핸드폰을 살짝 들어 보여줬다.
“전화만 해도 대부분 알 수 있던데요?”
물론 두 사람 정도가 직접 발로 뛰어 알아낸 부분도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제게 말도 없이 저를 조사하셨다는 거 아니에요?”
화가 난 듯 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 방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이 방엔 창문조차 없었고, 하나 있는 문 앞에는 태주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그 지적은 지당했겠지만,”
이번엔 아니다.
“당신 때문에 저주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죠.”
이번에는 정말로 제3의 피해자가 있다. 그렇기에 태주는 강하게 나갈 수 있었다.
“선우 씨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할까요?”
선우의 이야기가 나오자 처음으로 수현은 잠시 침묵했다.
“이전에, 제가 이번 저주가 왜 생긴 건지 말씀드렸었죠?”
태주의 말에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이번에 선우 씨가 저주를 받은 이유는 당신에게 물건을 받아간 사람 중 가장 양심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랬다.
“선우 씨는 자신이 물건을 빌려 쓰고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쓰고 있었죠.”
“저는 그냥 준 거였어요.”
“그게 문제였어요.”
“네?”
수현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대꾸했다.
“만약 그 태블릿의 주인이 아예 바뀌었다면 아마 그 저주받은 동영상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자신을 저주하는 게 아니었을 테니까요.”
태블릿의 주인이 달라진다면 저주를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저주는 애초에 실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줘 버렸다고 생각했고, 태블릿을 가지고 있는 선우 씨는 주인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주는 주인을 착각했다.
“일종의 버그가 난 겁니다. 실행되지 말아야 했던 저주가 주인을 잘못 인식한 거예요.”
저주는 수현이 만들어냈다. 그건 우연히 만들어진 물건이었고, 마찬가지로 우연히 실행은 되지 않았다. 저주는 만들어지기만 한 채 실행이 되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패드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버렸다.
주인을 저주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저주는, 주인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실제로 들고 있는 사람을 원래 주인이라고 착각해 버렸다.
“만약 선우 씨가 좀 더 뻔뻔했다면, 그래서 아예 본인의 것으로 삼아버렸다면 동영상은 아무 기능도 남지 않았겠죠. 이건 사고에요.”
이번 일에서 선우는 완벽한 피해자라 할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수현은 태주를 죽일 듯 노려 봤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제가 잘못했다는 말인가요?”
“최소한 이번 일에 한해서는요, 네.”
태주는 확실하게 단언했다.
“당신의 잘못이 있어요.”
* * *
수현은 자신이 처음 공포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기억하고 있다.
나이까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 여섯 살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수현이 본 것은 단 한 장면, 텔레비전에서 귀신이 기어 나오는 장면이었다.
수현은 그 한 장면에 매료되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리고, 머리부터 천천히 나오는 귀신의 모습은 수현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또 매력적인 장면이었다.
오래 볼 순 없었다. 어린아이가 공포영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본 수현의 부모님이 얼른 채널을 돌려 버려서였다. 그러나 그 한 장면만으로도 수현이 그 광경을 뇌리에 새길 만큼 임팩트가 있는 장면이었다.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 비슷한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어린아이의 상상력에 큰 충격을 준 것이었다.
수현은 그런 느낌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인지 몰랐다.
수현은 그게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부모님에게도 물어봤다.
“엄마, 티비에 그 머리긴 여자 나오는 거 어떻게 봐?”
하지만 부모님은 당황할 뿐 알려주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 나중에 더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수현의 부모님은 영화를 좋아했다. 덕분에 방에는 비디오테이프가 가득했다. 죄다 옛 영화들이었고, 아쉽게도 어떤 영화를 봐도 수현에게 그만큼 충격을 주는 장면은 없었다.
애초에 부모님이 어린이용 영화를 틀어줬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수현은 스스로 그 장면을 찾기 시작했다.
수현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혔다. 부모님의 아이디로 초록 검색창에 질문도 올렸다.
올린 질문 글에 누군가가 반지 시리즈의 한 장면이라는 답변을 남겨주었고, 그제야 수현은 그것이 공포영화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수현은 어떻게 하면 그런 것을 더 찾아볼 수 있는지 알아봤다.
컴퓨터를 따로 배우기 시작하고부터는 작은 사이트 여러 곳도 가입했다. 나중까지 살아남은 곳은 많지 않았지만 몇몇 사이트는 끝까지 살았다.
그렇게 수현은 공포영화의 세계에 매혹되었다.
수현은 많은 사람이 소개하는 공포영화에 대한 글을 봤고, 올라온 영상을 직접 보기도 했다. 대부분은 질 낮은 점프 스케어 영상에 불과했지만, 종종 잘 만든 작품도 있었다.
반복적으로 그런 영상들을 보고 자란 수현은 분위기와 상황을 통한 연출법에 대해 어느 정도 감각이 생겼다. 소위 말하는 ‘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
초등학생을 마치고, 중학생이 되며 수현은 용돈을 받았다. 그 돈은 죄다 고전 공포영화를 모으는 데 사용했다.
처음에는 말리던 부모님이었지만, 본인들도 영화를 좋아했던 데다가 수현과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해하게 되었다.
수현이 공포영화를 선호하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충격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수현은 본 작품들에 대한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가 봐도 학생이 쓴 글이었다. 문법도 약간은 틀리고 구성도 지리멸렬했다. 그래도 중학생치고 봐 줄 만한 글이었다.
작은 사이트고, 또 서로 오래 본 아이디이기에 사이트 내에서 글의 수준에 대한 지적은 비교적 온건하게 이루어졌다. 덕분에 수현의 글솜씨는 날로 늘었다.
점점 글은 수준이 높아졌고, 그와 함께 영화를 보는 눈도 날로 높아졌다.
부모님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가만히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응원했다.
부모님이 약간 아쉬워하는 것은 수현의 좁은 교우관계였다.
수현은 영화 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수현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굉장히 한정적이었고, 또 소극적인 교류만이 이루어졌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조그마한 아이에게 사람들은 관심이 별로 없었다.
수현은 미래에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 늘 이야기했고 부모님은 그러려면 사교성은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영화라는 것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수현 역시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맞는 말이라 결론 내렸고 그렇게 수현은 어떻게 하면 사교성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며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러다 수현의 눈에 들어온 게 영화 동아리였다. 수현은 망설임 없이 영화 동아리에 들어갔고,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아리는 선우가 영화를 틀어 놓고 놀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영화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현은 그냥 혼자서라도 제대로 된 동아리 활동을 하겠다 마음먹었다.
“선우야. 나 여기 신문사에 내가 쓴 글을 보내려고 하는데, 우리 동아리 이름으로 보내도 될까?”
“뭐? …상관없겠지, 마음대로 해.”
선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답했다. 그저 조금 특이한 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 동아리가 자기 이름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수현은 자신의 리뷰를 신문사에 제출했다. 작은 대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현은 작은 상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출했으나, 최우수상을 받았다.
게다가 수상자 중에서는 유일한 고등학생이었다.
상은 학교로 배달되었다. 감상부의 이름으로 제출한 리뷰였기 때문이었다. 상금도 꽤 나왔고, 리뷰 역시 신문에 실렸다.
교사들의 영화부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놀기 위해 모였던 다른 부원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활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처럼 간판만 내걸어 두고 노는 일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우는 대표였기에 활동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둘만의 동아리 활동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