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8)
월이는 시무룩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방문을 안 잠그고 나왔다고?”
돌아오자마자 사색이 되어있으니 태주 역시 깜짝 놀라고 말았지만, 들어보니 아주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음, 일단 그건 나중에 고민하자.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
태주는 그 문제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문을 잠가 놨다는 것은 평소 잘 드나들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니 높은 확률로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문이 열린 걸 눈치채더라도 누가 들어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닫아둔 문이 열리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그냥 문이 고장 났나 생각하겠지. 그러니까 그만 침울해하고, 거기서 알아온 것들 좀 얘기해봐.”
태주는 설이 옆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 거야? 그만 서 있고 여기 와서 앉아,”
월이는 주춤주춤 다가와 앉았고, 태주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곤 시아 옆에 앉았다.
그동안 시아는 자신이 찍어온 사진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건 뭐예요? 신발들이에요?”
한설은 시아의 폰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응. 가족들이 쓰던 신발을 그대로 두고 있더라.”
사진을 본 태주는 조금 놀란 듯 사진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지금 신고 다니는 신발이라고 해도 되겠는데요.”
“방도 마찬가지야. 부모님이 쓰시던 방은 깔끔하게 해뒀더라고. 그런데 자기 방이나 거실은 완전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였어.”
“흠.”
태주는 짧게 침전된 소리를 냈다. 왜 저렇게 된 건지 짐작이 가서 그랬다.
“그리고 또 다른 이상한 점은 거실과 부엌에 가구나 전자기기가 없었다는 점이야. 특히나 비싼 것들 위주로 말이야.”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요?”
한설은 손을 들고 물었다.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흔적이 있었어. 버리거나 치운 거겠지.”
시아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이 다른 사람에게 준 건 자신의 물건뿐만이 아니었던 듯싶었다.
둘의 대화가 끊기자 월이가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이것도 봐봐. 누구 취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집에 영화 DVD나 팸플릿 같은 물건들이 엄청 많더라고. 포스터도 많았고! 여기가, 내가 아까 말한 잠겨 있었다던 방이야···.”
마지막 순간 자신의 실책을 떠올렸는지 월이는 다시 시무룩해졌다.
태주와 한설은 월이가 찍어온 사진을 보곤 깜짝 놀랐다.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그 양의 방대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공포영화 비율이 좀 높았어.”
월이는 방에 들어갔던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 사진만 봐도 그러네.”
태주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최소한 태주가 이름을 알 정도의 공포영화는 다 있는 것 같다.
“여기만 문이 잠겨 있었다고?”
태주의 질문에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먼지도 가득했어! 오랫동안 쓰지 않은 창고처럼.”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이 청소해둔 부모님 방, 문을 잠그고 먼지가 쌓일 정도로 들어가지 않는 방.”
태주의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겼다. 한설은 요리조리 눈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일단 저주의 형태가 왜 오래된 공포영화의 형태가 되었는지는 좀 알 것 같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시아였다. 세 사람은 동시에 나란히 시아를 쳐다봤다. 시아는 월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열어봤던 스크랩 앨범, 거기에 있던 영화 대부분이 공포영화였어. 그리고 그 중 반지 시리즈는 따로 정리되어 있었지.”
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설에게 물었다.
“뭔가를 정리할 때 따로 빼놓은 건 어떤 물건이지?”
“어… 글쎄요?”
갑작스럽게 받은 질문이었기에 한설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중요한 물건일까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중요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
시아는 영화 수집에 대해 잘 몰랐기에, 객관적으로 가치가 있는 물건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별도의 항목을 빼놨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어.”
수집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원하는 것을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항목을 따로 분류했다면, 그게 수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정도는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 저주의 형태가 말이 돼. 특별한 방법을 정하지 않은 저주는 건 사람이 그럴듯하게 느끼는 방식으로 형상화되니까.”
시아의 설명을 잠자코 듣고 있던 태주는 뭔가 알아낸 듯 눈을 빛냈다.
“그래서 그런 건가. 반지 시리즈라···”
태주는 수현과 했던 대화를 기억했다.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귀신을 이야기하자 수현은 어쩌면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리곤 한동안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하얗게 질렸다고요?”
“응. 거의 사색이 되던데.”
한설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게 단순히 놀란 반응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잠시 후 진정되고 나서 이래저래 더 떠보기는 해봤지만, 수현은 한사코 그 주제에 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 말 이후로 상당히 방어적이고 조심스러워져서 더 많은 걸 알아내기는 어려워졌지.”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을 알 수 있었으니 성과는 있었다.
“그 수현이라는 친구는 원래 공포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던 거 같아. 그 앨범도 그렇고 보여준 사이트도 그렇고.”
이 정도라면 확신할 수 있다. 이래 보나 저래 보나 이번 사건이 영화와 관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러모로 영화랑 관련이 있는 건 확실한 거 같은데….”
하지만 당장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시아가 말끝을 흐리며 말하자 태주는 어쩌겠냐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더 조사할 수밖에 없죠, 뭐. 아무래도 밤을 새워서라도 알아봐야 할 게 있겠어요.”
시아 역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고. 조금 방법이나 생각 같은 걸 좀 정리해서 말이야.”
* * *
“방법이 있긴 있어.”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시아가 맨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시아의 눈 밑은 거뭇거뭇했고 피부 역시 평소보다 푸석해 보였다.
“잠, 안 잤나 봐요?”
“응.”
태주의 질문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방법을 찾았다는 것 치고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방법 찾았다면서.”
태주의 말에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태주는 어리둥절해졌다.
“방법 있다면서요.”
“있지.”
시아의 말에 태주는 이번엔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갸우뚱했다.
“근데 못 찾았다고요?”
“그래.”
같은 대화가 반복되자 시아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설명을 빼먹었는지 깨달은 듯했다. 아무래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듯했다.
“방법은 있어. 사실 처음부터 쓸 수는 있었지만, 그게 그다지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거든. 저주를 없애는 건 가능하지만 근본을 없앨 수는 없어서 보류했었지. 다른 방법이 있나 찾아보려고 했는데 생각나는 게 없더라고.”
시아는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정작 태주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왜?”
태주의 말에 시아가 이번에는 반대로 태주에게 질문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제가 알 것 같긴 하거든요.”
시아는 태주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시아는 그제야 태주 눈 밑의 다크서클을 눈치챘다.
태주 역시도 밤늦게까지 뭔가를 한참 찾아보고 궁리했던 것인지 눈 밑이 검게 변해 있었다.
“그래?”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눈치였다.
“무슨 얘기 하세요?”
마침 설거지를 마친 한설이 돌아와서는 물었다.
“거의 해결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어.”
태주는 말했다. 사실은 해결이 된 건 아니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는 대화를 서로 했을 뿐.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태주는 그렇기에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한설은 생기 있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꽤 복잡한 일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도 금방 방법을 알아낸 두 사람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밤새 고생한 보람이 있나 보네? 그럼 이제 두 사람 다시 부를 거야?”
월이의 질문에 두 사람은 잠시 얼굴을 마주 보고 고민했다.
“음, 오늘 저녁, 아니면 내일 오전쯤? 준비해야 하는 재료들이 있어서 말이야. 몇 개는 소장에게 요청해 봐야지.”
시아의 말이었다.
“그럼 내일 점심때가 좋을 것 같은데. 나도 나름대로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
태주 역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도울 일은 없어?”
월이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저었으나, 시아는 네가 꼭 필요하다며 어깨를 감싸 안았다.
“방법은 간단해.”
시아는 월이를 끌어 앉혀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려가시는 건가요?”
한설은 태주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인사했다.
“그래. 두 사람한테 내려올 일 있으면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전해줘. 전화해야 하거든.”
태주는 계단을 통해 일 층으로 내려가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한 준비였다.
몇 번의 신호음 후 주인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사무소의 강태주입니다.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전화를 받은 것은 선우였다.
[네. 무슨 일이시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갑고, 또 불안했다.
“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마도 내일이면 문제는 해결이 될 것 같은데, 그 전에 알아야 할 게 있어서요.”
태주의 말에 선우는 잠시 침묵했다.
[…물어보고 싶은 거요?]
“네. 의뢰 내용을 변경하실 건지 좀 물어보고 싶어서요.”
태주의 말에 선우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변경이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저주를 없앨 방법은 찾았습니다. 하지만 의뢰 주신 내용대로만 하면 또 다른 ‘진짜’ 문제가 남아서요.”
[저주를 풀어 달라는 게 제 의뢰 아니었나요? 무슨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이 저주, 선우 씨를 괴롭히는 저주는 없앨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곧 다시 나타날 겁니다. 선우 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요.”
[…그래서요?]
선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냉랭했다.
[그냥 생각한 대로 하시면 되잖아요. 그걸 왜 물어보시죠?]
“저희는 의뢰받은 대로만 움직이거든요.”
태주는 알고 있었다. 선우는 수현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희는 저주의 원래 대상이 패드의 주인인 수현 씨라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그러니 아마 선우 씨의 의뢰대로 진행한다면 수현 씨가 다시 저주를 받게 되겠죠.”
태주의 말에 반대편에서 ‘헉!’ 하고 숨을 삼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제가 의뢰를 바꾸지 않으면 저주는 수현이에게는 계속될 거라고요?]
“네. 높은 확률로요.”
태주의 말에 선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싫으시면 이대로 진행하셔도 됩니다. 수현 씨의 일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면요.”
[한 가지만 질문 드려도 되나요?]
“뭔가요?”
[그 저주를··· 혹시 걔가 고의로 만든 건 아니죠?]
선우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고의는 절대 아닐 거에요.”
태주의 말을 들은 선우는 안심한 듯 가냘픈 숨소리를 뱉었다.
[네. 그럼 의뢰를 바꿀게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선우의 말에 태주는 싱긋 웃은 뒤 말했다.
“좋은 결정이네요. 그럼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현 씨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요. 질문드려도 괜찮을까요?”
상대는 이제 귀찮은 질문에도 성실히 답해줄 거다. 태주는 속으로 웃었다.
“그럼 몇 가지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