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6)
“···안녕하세요.”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경을 쓴 침울해 보이는 인상의 학생이 들어왔다. 예쁘장한 얼굴에 선이 가는 남학생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수현이었다.
중성적인 이름이기도 했고, 선우가 그냥 친구라 말했기에 상대를 여학생으로 알았던 태주는, 직전에 월이의 문자를 받고서야 수현이 남학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수현 학생 맞죠? 편한 데 앉아요.”
태주는 얼굴을 보며 인사했다.
수현은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그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았다.
태주와는 거리가 좀 있는 곳이었다.
주변에서 잘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한없이 위축되어 있어 어쩐지 연약해 보였고,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이곳까지 수현을 안내해 온 월이는 시아와 할 일이 있어 나갔고, 설이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이곳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태주는 수현에게 질문했다.
“커피 좋아해요?”
“어, 네.”
“단 거로?”
“아뇨.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
“시원한 거로 드릴까요?”
“그냥 따듯한 거로 주세요.”
소년은 무뚝뚝했다.
마치 사람을 거절하는 듯한 모습이다. 절대로 내 문제에 참견하지 말라는 듯 가시를 세우고 있다.
태주는 커피 기계가 돌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지, 수현이 왜 저런 태도인지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태주는 조심스러웠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자신이 어설프게 위로하거나 조심성 있게 구는 것보다는 그냥 평범하게 대하는 것이 서로에게 나을 것 같았다.
태주는 수현에게 머그컵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건네고, 수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것을 본 뒤에야 질문했다.
“왜 불렀는지 알아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 제가 준 패드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물어볼 게 좀 있다고···.”
태주는 수현이 잘도 그런 부실한 설명을 듣고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싶었다.
태주는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는 사무소에요. 이름을 따로 붙이진 않았고요.”
“카페가 아닌가요?”
수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뭐 간판도 없는 카페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메뉴판도 없고요.”
“그럼 여긴 뭐 하는 데인가요?”
“괴담에 엮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해요.”
태주는 대답을 들은 수현의 눈이 갑작스럽게 크게 뜨이는 것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주제에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괴담이랑 관련된 사람들을 도와준다고요? 어떻게요?”
“음, 글쎄요. 그때그때 달라요. 별의별 방법을 다 쓰죠. 물론 대체로 합법적인 범주 안에서요. 지금도 그런 이유로 부른 거예요. 선우라는 분이 지금 이상한 문제에 얽히게 되었거든요.”
선우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태주는 수현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뭔가 알고 있는 것일까 싶어 태주는 은근히 본 주제를 던져 봤다.
“그 패드에서 이상한 게 발견되었거든요. 짐작 가시는 게 있나요?”
태주의 질문에 수현은 침묵했다. 태주는 잠시 기다렸다. 재촉할 필요는 없었다.
“···네. 있어요.”
수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태주를 쳐다보며 질문했다.
“저기, 그런데 그건 그냥 평범한 호러 영상이었을 텐데요. 그 영상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역시 맨 처음 영상을 패드 안으로 옮긴 것은 수현 본인이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네. 문제가 좀 있습니다. 혹시 동영상을 직접 보신 적은 있나요?”
“아니요. 받아만 두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별 감흥이 없는 말투로 수현은 질문했다. 아까 가졌던 흥분이 금세 싹 가신 것처럼 보였다. 특이한 일이라고 태주는 생각했다.
“음,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동영상은 저주받은 동영상이거든요.”
수현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친 소리라 생각하고 있을지, 혹은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알고 있지 않았던 것인지 표정만으로는 알아보기 힘들다.
“저주가 무슨 비유 같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때문에 뭐가 잘못되었나요?”
“아뇨, 저주는 말 그대로 저주에요. 그리고 수현 씨가 뭔가 직접 했는지 어땠는지는 전 아직 모르고 있고요.”
태주는 간략하게 설명했다. 전부 말한 것은 아니다. 수현이 빌려준 패드에 있었던 이상한 영상을 튼 선우가 저주에 걸린 상태고, 그 해결을 위해서는 수현이 꼭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저한테 믿으라는 건가요?”
평범한 사람이 보일 만한 일반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태주에게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보통은 이 사무실에 오는 사람들은 이미 괴이한 현상을 접하고 오기 때문에,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평소에 이런 경우의 수를 상정해 본 적이 없었던 태주는 어떻게 하면 저주라는 현상이 현실에 일어났다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음, 뭐 일단 그게 문제의 그 패드입니다. 잠시 드릴 테니 확인해 보시겠어요? 패드 안의 영상은 재생하지 마시고요.”
태주는 일단 패드를 꺼내서 상대방에게 보여줬다. 영상 재생이야 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겉모습 정도는 보여줄 수 있었다.
“제가 준 게 맞네요.”
수현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 순순히 인정했다. 안의 내용물은 쳐다도 보지 않고 그냥 케이스를 빼 각인을 확인한 뒤 다시 태주에게 돌려줬다.
사용하는 것을 조금 꺼림칙하게 여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저주 이야기는 믿지도 않지만, 저주가 있다 쳐도 저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 같은데요. 이젠 제 것도 아니고요.”
수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상관이 없다고요?”
태주의 말에 수현은 시선을 피했다. 지적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수현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알아서 한 발을 빼는 모양새다.
“···저랑 상관없어요.”
“선우 씨는 태블릿을 빌린 거라고 말했는데, 아닌가요?.”
“걔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전 그걸 줬고 돌려받을 생각은 없어요.”
수현의 태도는 완강했다. 기묘한 일이었다. 받은 사람을 돌려주려 하고 있고, 준 사람은 받지 않으려 한다. 꽤 훈훈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게 저주받은 물건이 아니라면.
“의좋은 형제도 아닌데 참… 어쨌든 좋아요, 선우 씨는 이걸 빌려 썼다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알아주세요. 그리고 대신 저주를 뒤집어썼다는 것도 말이에요.”
“그러니까 저주 같은 건 안 믿는다니까요.”
수현의 말에 태주는 노선을 바꿨다. 두 사람이 원래 아는 사이고 꽤 친했다면, 선우가 죽을 뻔했다는 건 수현에게 충분히 자극될 터였다.
“믿으시건 안 믿으시건 상관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선우 씨는 죽을 뻔했고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안색이 아주 새파랬죠. 혹시 최근에 선우 씨 모습을 본 적 있나요?”
“…아뇨.”
“그래요? 원래는 꽤 가까우셨다고 들었는데요.”
“지금은 아니에요.”
수현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더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표현이다.
“저희는 당신이 일부러 선우 씨를 저주하려고 일부러 패드를 줬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제가 왜 그런 짓을 해요?”
수현의 말투는 날카로웠다. 태주는 역시 수현이 일부러 꾸민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를 풀어주면 곧바로 자리를 뜰 게 뻔하다. 수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계속해서 몰아붙여야 할 때다.
“지금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저주한 게 된다고요?”
“그럼 설명이라도 좀 해주시죠.”
태주는 일부러 날카로운 태도로 물었다. 이제 수현은 저주의 존재유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증명을 우선시하게 될 거다.
“저희가 확인했을 때, 태블릿에는 이전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어요. 사진도, 영상도, 연결된 계정 같은 것도요. 남아 있는 건 정말로 단 하나뿐이었어요. 스스로 생각해도 수상하지 않나요?”
“본인이 초기화를 한다 하길래 그냥 줬을 뿐이에요.”
“그래요, 말은 되네요. 하지만 그거 하나뿐이라면 제가 이렇게 추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태주는 곧바로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이건 굉장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들 수준에서는 꽤 부담스러울 정도의 가격이에요. 그렇죠?”
“그건 또 왜요?”
수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쉽게 남의 손에 넘기기 힘든 물건이라는 말이에요. 그걸 한 달이나 빌려준 것만 해도 이상한데, 아예 줬다고요? 심지어 각인까지 된 물건을?”
“그건 준 게 맞아요. 빌려준 게 아니라요.”
태주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왜죠?”
“저한테는 필요 없어서요.”
“필요가 없다면 보통 팔지 않나요?”
태주가 수현의 답을 이해하지 못하자 수현은 딱딱하게 굳은 미소를 지었다.
“못 팔아요. 쓰지도 못하고요.”
“못 쓰겠다는 게 뭐 기계를 못 다루고 이런 건 아니죠?”
태주의 의문에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혹시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 계신가요?”
“네, 압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가 나던 날에 그걸 부모님이 사 오셨더라고요. 차에서 발견된 물건이에요.”
수현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태주는 아차 싶었다. 생각보다 민감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남에게 준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유품인가요?”
태주의 질문에 수현은 잠시 생각했다.
“글쎄요, 아마 제 선물이었겠죠. 직접 전달은 못 해주셨지만···.”
그것도 유품이라 할 수 있는지 수현은 잘 모르는 듯했다. 어쨌든 태블릿은 수현의 것이 되었고 한동안은 써 보려 시도도 해 봤다고 수현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써 보려고도 해봤는데, 도저히 못 쓰겠더라고요. 볼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나거든요.”
그래서 그냥 달라는 사람 줘 버렸다고 수현은 말했다. 태주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아무리 그래도, 소중한 거 아닌가요?”
“요즘 좀 그래요. 볼 때마다 괴로워지는 물건들은 달라는 사람한테 그냥 주고 있어요.”
태주는 침묵했다. 별로 좋지 않은 징후기 때문이었다. 뭐라 말하고 싶기도 했지만, 자신이 뭐라고 주제넘게 조언할 입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현은 왠지 조금 홀가분한 듯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저는 그 영상을 저주하려고 내버려 둔 것도 아니고 다른 속셈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그냥 못 쓰는 물건이니까 걔를 준 거죠. 그저 그뿐이에요.”
태주는 수현을 더 자극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다시 한번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태블릿에 있는 그 영상이 실제로 저주받은 물건이라는 말씀은 드렸죠.”
“네. 그래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한 번도 영상을 틀어본 적 없거든요. 저주가 실존한다는 말도 전 못 믿겠고요.”
아마도 틀어보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수현이 어디까지를 알고 있고 또 어디까지를 모르고 있는 것인지 태주는 알 수 없었다.
“그래요, 그건 알겠습니다. 당신이 일부러 저주하지 않았다는 말도요. 그럼 설명을 좀 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영상이 어디서 났는지에 대한 것 같은 거 말이에요.”
“글쎄요. 어디서 받았는지는 알지만 어떤 게시글인지는 모르겠네요.”
태주는 사이트의 주소를 물었다. 수현은 별것 아니라는 듯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태주는 즉시 패드로 검색해서 사이트를 들어가 봤다.
중소규모의 작은 회원제의 사이트로,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UI였다. 공포라는 주제로 모인 사람들을 위한 작은 사이트로 보였다.
혹시 이곳에서 저주가 시작한 것은 아닌가 싶어 태주는 유심히 사이트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언뜻 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곳은 그저 해외의 괴담 번역이나 공포영화 리뷰가 주 컨텐츠인 특이할 것 없는 사이트였다.
특별한 저주가 이곳에서 시작할 만큼 대단한 곳은 아니다.
“역시 이곳도 아닌가….”
잠시 태주가 사이트를 둘러보고 있는 사이 수현은 신경이 쓰였던 것을 질문했다.
“그런데 저주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저주인가요?”
믿지는 않는다고 말했으나 호기심은 있는 듯 수현은 질문했다.
“별 건 아니에요. 그냥 화면 속에서 귀신이 나오는 저주죠.”
“귀신이 나온다는 게 정확히 어떤···?”
“말 그대로예요. 화면 속에서 귀신의 모습이 나오는 거예요. 그 유명한 영화 알죠?”
태주의 설명에 수현은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처음으로 보인 커다란 감정적인 동요였다.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흘렸다.
“나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