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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42화 (42/269)

4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4)

“자, 그럼 나도 내 일을 해야 하는데….”

두 사람이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 문을 통해 시아가 들어왔다.

“아니, 뭐 그렇게 이야기할 게 많아요?”

중간에 월이와 한바탕 시간낭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아가 돌아오는 게 그보다 늦었다.

그렇게 할 말이 많았나 싶어 태주는 물었다.

“질문이 많았나봐요?”

“뭐, 오컬트적인 것들에 한참 관심이 많은 나이 아니니.”

시아는 어쩔 수 있냐는 듯 물었다. 하긴, 뭐든 질문하라고 해 놓고 질문을 안 받아주고 돌려보내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그렇긴 한데, 누나 또 설명 엄청나게 길게 했죠?”

“나름 짧게 했어. 전문적인 이야기는 반도 안 했단 말이야.”

시아는 변명하듯 말했지만, 태주는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걸 반이나 했다고요?”

“…반밖에, 겠지.”

물이 절반 담긴 컵의 물을 보는 관점 같은 대화다.

“에휴….”

이런 대화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돌렸다.

“그래서, 불안감은 좀 떨친 것 같아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길게 대화를 한데는 선우가 느끼는 불안감을 줄여 준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 별 필요야 없겠지만 부적도 하나 줬지.”

“진짜를 준 거예요? 저번에 좀 비싼 재료 샀다고 자랑하더니?”

태주의 질문에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건 너무 비싸지. 그냥 평범한 재료로 만든 복제품이야. 그래도 며칠 정도는 작동할 물건이라고. 그 시간이 지나면 기념품 이상의 의미는 없겠지만.”

며칠이라면 충분한 시간이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시간이야 차고 넘치죠.”

사무소에서 보통 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일주일 이내다. 게다가 상황을 보아하니 이번 일 역시 그리 길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대화해 본 소감은 어때요? 뭐 알아낸 거 있어요?”

태주의 질문에 시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 있는 듯했다.

“알아낸 거라, 있기야 하지.”

“뭔데요?”

태주의 질문에 그 시아는 맞은편에 앉으며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눈을 감았다.

길지 않은 간격을 두고 시아는 말했다.

“너였구나.”

“네?”

뜬금없는 시아의 말에 태주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상 속 귀신이 한 말 말이야. 반면 너희는 ‘네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지.”

“…아. 대상이,”

그제야 시아의 말을 이해한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없으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겠지.”

“그럼 역시 선우 씨에게 누군가가 해코지를 하기 위해서 저주를 건 게 될까요?”

꽤 간단한 결론이라고 태주는 생각했지만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리 간단하게 결론 내리긴 아직 일러. 아마 저주는 그동안 대상이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

“네?”

“어떻게 안 거냐고?”

시아는 그렇게 말하곤 허공을 응시하며 전자담배의 케이스를 한번 딸깍거렸다. 마음이 불편할 때 자주 하는 버릇이었다.

“그 애는…. 굉장히 사랑받고 자란 아이 같았지? 단순히 돈만 많은 게 아니야. 복장이나 행동거지 모두 다 부족함 없이 자란 티가 나.”

“그런 거 같더라구요.”

태주는 선우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고 말했던 걸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왜 굳이 패드를 빌린 건지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정도로 돈은 많아 보인다.

“그런데 그게 왜요?”

“그래서 이번 일이 이상해.”

설명이 부족한 시아의 말에 태주는 더욱더 큰 의문에 빠졌다.

“그 애가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저주 자체는 이상해도 그 애가 대상이 된 건 그리 이상한 일 같지는 않은데. 원래 저주는 잘 사는 사람이 대상이 될 확률이 높잖아요.”

원래 시기와 질투를 사는 건 잘 사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주의 지적은 지당하지만, 이번 저주에 한해서 그건 정확하지 않다.

“그럴 확률이 높은 건 맞지만. 지금은 좀 일반적인 상황과는 이야기가 달라. 저주가 상당히 꼬여 있거든.”

“꼬여 있다고요? 어떻게요?”

“음, 뭐라고 해야 하나. 대상이 잘못된 저주라고 해야 하나.”

태주는 시아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여러 번 말했지? 저주라는 건 결국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다고. 기억해?”

“그야 기억하죠. 대부분의 저주는 그래서 해결이 쉽다고 말했죠?”

월이가 이곳에 합류하기 전부터 여러 번 들은 이야기였다.

일반적인 다른 괴담들과는 달리 저주와 같은 종류의 것은 파훼가 쉽다.

“그래. 보통은 저주 전체를 완전히 부술 필요가 없이 조건만 바꾸면 되니까. 저주를 보낸 사람에게 반사하거나, 혹은 저주의 대상이 죽었다는 걸 보낸 사람이 확인할 수 있으면 저주는 자연스럽게 끝나지.”

이건 저주의 구조에서 생기는 결함에 가깝다. 그렇기에 저주는 손쓸 새 없이 사람을 죽일 정도로 강하거나, 당하는 본인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것이 아닌 이상 결국 해결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안 되는 거고요?”

“응. 내가 괜히 꼬인 거라 표현하는 게 아냐. 이번 저주는 저주를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동일하거든.”

예상치 못한 말에 태주는 순간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뭐야? 근데 그게 그렇게 되는 거였어요?”

그렇게 물어도 시아도 오늘 처음 본 물건이다.

“글쎄, 난 경험한 대로 말할 뿐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저주돌리기를 쓰려 했는데 전혀 먹히지 않아서 확인해 보니 그렇던데.”

대체 어쩌다 저런 상황이 된 건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말이 돼요?”

태주 역시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말 자체는 되겠지. 나도 이론상으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정도만 배웠었어.”

“이론상 배웠으면 이론상 해결을 어떻게 하는지도 있겠네요?”

“그런 게 어딨어? 애초에 그런 경우는 사실상 자살을 위한 거라서 막아보고 뭐고도 없지.”

이론상 있을 것이다, 정도의 두루뭉술한 이야기라며 시아는 말했다.

“참, 이런 걸 내 눈으로 직접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시아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곤 전자담배 케이스를 주머니에 넣었다.

“어쨌든 이게 조잡한 저주라 다행이야. 작정하고 만든 물건이라면 여기 오지도 못하고 죽었을걸.”

시아의 말에 태주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저주를 받은 사람이 운이 좋다고 표현하는 것도 웃기기는 하지만 저주가 조금만 진행이 빨랐다면, 혹은 좀 더 치명적인 물건이라면 이번 손님은 정말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문제는 더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스스로 저주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죠?”

언뜻 봐도 선우는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아니었고, 만약 그랬다면 이곳으로 도망을 왔을 리도 없다.

시아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거 같아. 그래서 꼬였다고 한 거야.”

“그럼 이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태주의 투덜거림에 시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지.”

시아는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하지만 스스로를 저주한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 시아의 결론이었다.

태주는 자신이 낸 결론만큼이나 시아의 말도 믿었다.

그렇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말이 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럼 선우 본인이 그걸 깔았을 리는 없다 치면, 원래 주인이 일부러 선우를 간접적으로 저주하기 위해 그런 동영상을 패드 안에 넣어서 넘겨준 거라 생각해요?”

태주는 시아에게 물었다. 하지만 시아는 그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주는 의도가 거의 전부인 주술이야.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이 저주를 건 셈이 되니까 아까 말한 저주돌리기가 통했을 거야. 저 영상은 정말로 스스로를 저주하기 위해 만들어졌어. 그게 이번 저주의 가장 괴상한 점이야.”

태주는 조금 고개를 갸웃했다. 쉽게 이해하기는 힘든 일이다.

“이게 굳이 말이 되는 가능성을 풀어 보자면, 누군가 자신을 저주하려고 넣어둔 저주가 어떤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갔다는 정도일까? 그 ‘어떤 이유’를 찾는 게 이번 일의 중점이겠지.”

그러니 시아는 대상이 잘못된 저주 같다 한 것이리라.

“일이 어떻게 되면 이렇게까지 꼬이는 거예요?”

“나도 몰라. 그러니 머리가 아픈 거지.”

시아는 머리를 짚었다. 꼬였다는 말이 과장이나 미사여구 없이 말 그대로 사실이었음을 깨달은 태주는 생각보다 더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응급조치를 끝내고 대화를 시작했을 때 선우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건 분명히 그 애가 연관된 일이라고. 어쩌면 선우는 본능적으로 이게 뭔가 꼬인 상황임을 알았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디지털 다운로드가 가능한 저주였다면 이해하기는 더 쉬웠을 텐데요.”

그렇다면 자신이 내려받은 동영상이니 스스로를 저주하고도 자살이 아니라는 현상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주의 말에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본 적도, 가능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 애초에 그런 게 가능했다면 피해자가 단 한 명일 리가 없지.”

“어쨌든 확실한 건, 이 저주는 스스로를 저주하는 형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저주돌리기 같은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꼼수라니! 이게 정석인데. 유서 깊은 방법이라고.”

시아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꼼수 취급을 받은 것에 발끈했는지 눈을 부릅떴다.

“아, 미안해요.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뭘까요?”

“해야 할 일? 글쎄, 몇 가지 있긴 한데, 일단 원래 주인부터 만나봐야 하겠지. 만날 방법은 있어?”

시아는 기지개를 한 번 쭉 펴고 말했다.

“네. 월이한테 내일 어떻게든 데려오라고 했어요. 같은 학교더라고요”

“그럼 잘됐군.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 말이야.”

시아는 그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참!” 하고 다시 뒤돌며 말했다.

“한가지, 더 확실한 게 있어.”

“뭐가요?”

태주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그 저주는 절대로 제대로 만든 물건은 아니야. 사람을 죽일 수야 있지만, 정말로 죽일 가능성은 거의 없는 물건이라고.”

“네? 그 팔, 조금 위협적이던데요. 월이가 아니라 일반인이라면 절대 못 이길 텐데.”

“그걸 놓쳐? 너답지 않은데. 하지만 뭐, 그럴 때를 위해 내가 있는 게 아니겠냐.”

시아의 우쭐한 말투에 태주는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제가 놓친 게 있다고요?”

“생각해 봐. 처음엔 목소리, 눈, 다음엔 팔. 그다음엔 뭐가 나올 수 있지?”

“글쎄요, 전신?”

“그리고 동영상이 재생되는 건 어디지?”

태주는 무심코 패드를 내려다봤다.

“…아하.”

“죽음의 저주라 해봐야 팔밖에 못 나오잖냐”

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태주는 뒤늦게 시아의 말을 이해하곤 짜증 난다는 듯이 인상을 팍 구겼다.

“골치 썩이는 것 치고는 정말 허점 투정이 물건이네요”

“어쨌든 나는 내려가 보마. 당장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시아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 층으로 내려갔고 태주는 테이블을 정리하며 혼잣말했다.

“월이랑 설이가 잘 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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