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3)
톡, 톡톡.
시아는 돌아오자마자 태블릿을 받아 슥 둘러보고 있었다. 앱을 몇 번인가 눌러보기도 하고 태블릿 자체를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했다.
그동안 태주는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영상 재생 버튼을 다시 한번 눌렀다.
“지금은 안 나올걸요? 한번 완전히 두들··· 아니 눌러 놨거든요.”
“그건 들었어. 그냥 얼마나 강한 저주인지 보는 거다. 음, 이건 진짜 특이한 물건인데.”
그리고 시아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패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 저주가 누구에게서 왔는지는 모른다 하셨지요?”
“저, 저요?”
선우는 깜짝 놀라 말했다.
검은 정장 차림의 시아는 아직 학생인 선우가 보기에 엄청난 전문가처럼 보였다.
젊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태주보다 조금 더 믿음이 가는 듯했다.
“네! 혹시 이곳에서 알아낼 순 없는 건가요?”
“물론 여기서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그러니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선우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평소에 저주받을 짓을 한 적이 있습니까?”
“네, 네?? 당연히 아니죠! 저도 안 했고, 걔도 안 했어요!”
선우는 절대 아니라며 펄쩍 뛰었다. 시아는 진정하라면서 말했다.
“기분 상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미리 확답을 받고 싶었습니다.”
씩씩대는 선우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아는 계속 설명했다.
“저주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거든요. 거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선우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며 눈을 깜빡였다.
“그런데 거는 사람은 확실히 있어야 하지만, 걸리는 사람은 꼭 정해져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크게 나누자면 두 종류로 나뉘게 됩니다. 대상이 정해진 저주와 정해지지 않은 저주. 예를 들 수 있으면 좋겠군요. 혹시 저주하면 생각나는 거 있습니까?”
선우는 눈을 굴렸다. 자신에게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문인 듯한 표정이었으나 일단은 순순히 대답했다.
“어··· 부적이나 인형 같은 걸 찌르는 거요? 그런 게 유명하잖아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이미지죠. 실제로 그런 방식은 미미하지만,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건 대상이 정해져 있어 막기도 쉽고 해제도 쉽습니다. 워낙 직설적인 저주니까요.”
시아의 설명에 선우는 뭔가 홀린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선우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그런지 아주 집중하고 있었다.
반면 태주는 옆에 앉아 열심히 하품을 참고 있었다. 이미 너무 많이 들은 내용이었다.
월이는 이럴 줄 알고 미리 자리를 피한 것일까. 감이 좋은 녀석이라고 태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반대로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거는 저주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집트 파라오의 저주가 있죠. 이런 저주는 보통 발동에 조건이 걸려 있습니다.”
파라오의 관을 만지거나, 피라미드를 도굴하거나. 하지만 사실 그쯤 되는 저주라면 작정하고 받으려 해도 쉽지 않다.
“대신 이 경우 해결하기 조금 더 까다로워집니다. 대체로 강하기도 하고 조건을 모르면 해제할 수 없거든요.”
걸리기 쉽지 않지만 일단 걸린다면 강력하다.
시아의 말에 선우는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럼 혹시 이건…?”
시아는 안심하라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겉보기에는 비슷할지 몰라도 아마 아닐 겁니다. 누군가가 걸리기도 어렵고, 아무도 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저주는 방치되었다가 사라질 테니 애초에 잘 시도하지 않거든요.”
모르긴 몰라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저주는 그래서 생각보다 꽤 많을 것이다.
시아는 길어진 설명에 목이 말랐는지, 옆에 있던 태주의 컵을 뺏어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태주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자, 그럼 이건 무슨 저주일까요?”
시아는 질문을 던졌다. 선우는 그걸 어떻게 아냐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일단은 전자로 추정됩니다. 태블릿은 조금 비싸긴 하지만 이걸 지키겠다고 저주를 걸 정도는 아닙니다. 영상 역시 중요하다 하기에는 너무 조잡하고요.”
“조잡하다구요?”
시아가 흘린 말에 선우는 질문을 던졌다.
“이 저주의 영상은 영화의 짝퉁이니까요.”
그나마 패드는 좀 비싼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정도로 귀한 물건은 아니다.
“어느 쪽이든 도저히 까다로운 저주가 걸릴 만큼 대단한 물건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또 그러면 의문이 생기죠. 왜, 당신은 이 영상을 틀었다는 것만으로 저주를 받은 걸까요? 별다른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데 말입니다.”
시아의 물음에 선우는 다시금 표정을 굳혔다.
결국은 이 영상의 정체는 불명이라는 긴 설명이다.
“알 수 없다면 그렇게 긴 설명을 하신 이유가 뭔가요?”
“그냥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는 것과, 어떠한 이유로 지금은 알 수 없다 말씀드리는 건 차이가 크지요.”
틀린 말은 아니다. 확실히 그냥 모른다고 하면 선우는 아마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게다가, 또 혹시 이야기를 듣고 짐작 가는 구석이 생긴다면 더 좋은 일이고요.”
그러나 선우 역시 스스로가 당한 저주가 어떤 종류의 저주인지 짐작 가는 곳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이제 남은 방법은 직접 발로 뛰어 조사하는 것밖에 없다.
아쉬운 일이지만 내색하지 않고 태주는 시아의 말을 이어받았다.
“짐작 가시는 곳이 없다면 일단 저희가 이걸 가지고 분석 좀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수현이라는 사람을 불러 주시면 좋겠군요. 그분 이야기도 들을 필요가 있으니까요.”
태주의 말에 선우의 눈동자가 크게 떨리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걔는··· 아마 안 올 거예요.”
선우는 수현이라는 친구를 부르는 것이 조금 껄끄러운 듯한 모양새였다.
“왜죠?”
패드를 빌릴 정도로 친한 사이인데 여기로 부르는 게 어렵다는 것은, 태주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태주의 질문에 선우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귀신 때문에 불렀다고 하면 미쳤다 하지 않을까요?”
“다른 핑계로 부르셔도 됩니다. 그냥 괜찮은 카페를 찾았다고 하신다거나.”
어떤 식으로든 일단 부르기만 하면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든 이끌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선우는 그럴 수 없다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졌다.
태주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 제가 그 친구랑 지금 좀 거리감이 있어서요···”
“싸웠어요?”
“싸운 건 아닌데···”
선우는 말끝을 늘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싸우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지금 편한 사이는 아니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었기에 태주는 더 추궁하는 것을 그만뒀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직접 그 친구를 이곳으로 초대하죠.”
선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그럼 일단은 다 말씀드린 것 같은데 더 말해야 할 게 있나요?”
선우의 질문에 태주와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제 집에 돌아가시면 될 것 같네요.”
더 할 것이 없다면 그 편이 낫다.
시아가 그렇게 말하자 선우는 다시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집에 돌아간다면 저는 안전할 수 있나요? 영화에서는 다른 화면에서도 막 나타나던데.”
“네, 이곳에서 물건을 보관하고 있다면 괜찮을 겁니다.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제게 물어보시고.”
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태주에게 태블릿을 건넸다.
“이거, 들고 올라가서 할 일 해. 말 안 해줘도 알지?”
“당연하죠.”
태주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패드를 받으며 일어섰다.
선우는 잠시 불안한 눈으로 패드를 보다가 시아에게 말했다.
“저··· 묻고 싶은 게 몇 개 더 있는데요.”
“얼마든지 물어봐도 좋아요.”
태주가 자리를 뜨자 시아는 그 자리로 몸을 옮기며 답했다.
태주는 살짝 고갯짓으로 선우에게 인사를 한 후, 계단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어땠어?”
“아잇!! 깜짝이야!”
갑작스럽게 회색 머리와 그 뒤에서 함께 숨어있는 검은 머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 뭐야 진짜. 깜짝 놀랐네. 올라가 있지 뭐 하러 여기 있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단 말이야!”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어요?”
당당한 월이와 우물쭈물하는 한설이였다.
“아니야. 괜찮아. 그래도 다음엔 미리 말해줘. 쟤는 근데 올라갈 것처럼 해 놓고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태주는 솔직히 귀신을 봤을 때보다도 놀랐다.
“말했잖아. 궁금하다고.”
“저도 좀 궁금해서…”
월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렇게 계단에 서서 훔쳐 듣고 있을 정도로 궁금할 거였으면, 그냥 함께 들었어도 되었기에 태주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태주는 금방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쟤 너랑 같은 학교냐? 그래서 그래?”
태주의 짐작에 월이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 역시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월이가 아는 애래요! 그치 월이야?”
“어, 그래?”
태주는 월이를 바라봤다.
“친하지는 않은데, 쟤가 나름 유명한 애거든. 쟤는 날 못 알아본 것 같기는 한데, 나는 알아봤지! 괜히 서로 얼굴 알아보면 어색하니까 내가 미리 피했어.”
월이는 자신의 배려를 칭찬받고 싶은 듯 우쭐거리며 말했다. 태주는 월이에게 대충 잘 했다고 말해주며 계단을 올라가려다 멈췄다.
“아, 차라리 잘됐네! 안 그래도 쟤에 대해서 알아내야 할 게 많았거든.”
태주가 고개를 돌려 월이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자, 월이는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을 직감했는지 슬슬 뒷걸음질 쳤다.
“자, 잘 아는 사이는 아니라니까? 그치?”
월이는 한설이를 바라봤지만 한설이도 월이 편인 건 아니었다.
“그런데 뭘 알아내야 하는 건가요?”
“야! 설아! 그걸 물어보면 안 되지! 분명 머리 아픈 일일 거 아냐!”
월이는 그렇게 외치며 도망쳤다. 물론 고작해야 지하 주차장이었지만.
“어휴…. 야, 그런다고 할 일이 사라지냐?!!”
* * *
별수 없이 반강제로 돌아오게 된 월이는 뚱한 표정으로 태주의 질문에 답했다.
“혹시 평소에 학교에서 쟤 이미지는 어때?”
“조금 성격이 쎈 편이긴 한데, 이미지는 좋은 편이야.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들도 좋아하고.”
“혹시 그러면 수현이라는 애 알아?”
“몰라. 그런 애는 처음 들어보는데. 같은 학년이래?”
한설이야 어제 첫 등교였으니 당연히 알 리가 없었고, 월이 역시 수현이라는 학생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월이도 전학한 지 반년 조금 넘었으니, 같은 반이 아니거나 유명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겠다고 생각한 태주였다.
“아, 이 태블릿의 실제 주인이래. 아마 저주의 원래 주인은 그 사람이었을 것 같아. 정확한 건 만나봐야 알겠지만.”
월이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원래는 그 수현이라는 사람이 받아야 할 저주를 선우가 대신 받았다는 말이야?”
월이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지는 않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 조사를 좀 해야 하는데, 같은 학교니까 좀 부탁할게.”
“으흠, 무슨 조사를 하면 돼?”
“그냥 모든 정보. 잡다한 거 다 알아와 줘. 참, 그 수현이라는 사람을 데려올 수 있다면 좀 데려와 주고.”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태블릿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전에도 확인한 사항이긴 했지만 그다지 둘러볼 것도 없다. 애초에 안에 깔린 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주가 훑어보기 시작한 뒤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아 모두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이래서야 알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이 패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밖에는 없다.
“그 애를 만나보지 않으면 알 수 있는 게 너무 적어.”
월이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걔는 내가 어떻게든 데리고 와 볼게. 그런데 누가 나쁜 놈인 거야? 수현이라는 애가 나쁜 놈이야?”
월이의 물음에 태주는 피식 웃었다.
“나도 모르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지금 너희한테 일 시킨 거 아냐.”
“아, 진짜 귀찮네.”
월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자기 성향에 맞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수도 없다.
현역 고등학생이야말로 고등학교에서 이것저것 캐묻고 다녀도 의심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월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게. 마침 그런 거 물어보기 좋은 사람도 있고.”
“오케이. 그럼 그건 너한테 완전히 맡긴다.”
“저는요?”
자기도 뭐라도 해야 한다 생각했는지 한설은 손을 들고는 물었다.
“월이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듣다가 조금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그래.”
“일이 더 늘었어….”
월이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은 듯 말했다.
사실 이곳에서 선배 입장이 된 것은 처음이라, 나름대로 월이는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태주는 그런 월이의 속내가 뻔히 보여서 슬쩍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두 사람 다 쉬고. 내일 어떻게 할지 고민 좀 해봐. 대신 제대로 해 오면 먹고 싶은 거 만들어 줄게.”
태주의 말에 월이는 싫지만은 않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고 한설이는 그냥 대놓고 웃었다.
“네!”
“오케이-.”
두 사람은 밝게, 그리고 작게 구시렁거리면서 자기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