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40화 (40/269)

4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2)

끼이익-

홀로 기다리며 손톱을 조금 물어뜯던 여학생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해결된 건가요?”

여학생은 태주에게 뛰어가듯 다가왔다.

“그 귀신은 이제 안 나오나요?”

여학생은 불안한 듯 재차 물었다. 바깥에서도 월이가 열심히 망치질하는 소리는 들었을 터였다.

“네, 일단은요.”

태주의 말에 여학생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확 밝아졌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에요. 잠깐 눌러놓긴 했지만, 지금은 임시조치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이어지는 태주의 말에 여학생은 다시 안색이 새파래졌다.

이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단번에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던 여학생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거 어떻게 안 될까요?!”

여학생의 절박함 때문일까, 질문은 거의 고함치는 것에 가까운 음량으로 나왔다. 자신이 크게 소리를 지른 것에 대한 자각도 없는지 소녀는 그저 부들부들 떨었다.

태주는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미소를 띠고는 대답했다. 손님의 걱정과는 달리 실제로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최소한 당장은 그렇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하지만 그러려면 이젠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이번 일은 정말 갑작스럽게 시작된 일이다. 태주가 오늘도 그냥 별일 없이 지나가겠거니 생각하던 와중에 여학생이 들이닥쳤다.

여학생은 얼마라도 내겠으니 살려 달라며 난리를 쳤고, 태주는 황급히 임시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급한 불은 껐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초지종을 알아야 했다.

“단순히 귀신을 잠시 눌러 놓는 정도까지는 이대로도 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이상은 이대로는 어렵거든요.”

그러나 여학생은 잠시 엄지손톱을 이로 잘근잘근 씹었다. 방금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겁을 먹은 듯 보였다.

이대로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태주는 일단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겠다 싶어 패드를 꺼냈다.

“확인해보시겠어요?”

태주는 들고 있던 패드를 살짝 보여줬다.

“지금은 귀신이 나오지 않아요.”

어떤 방법으로 귀신을 퇴치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때려 부수는 건 늘 확실한 방법이지만 아무래도 전문성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안 나오나요?”

여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태주는 싱긋 웃으며 동영상을 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여학생은 기겁했다.

“히이!”

당연히 귀신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확인했던 사항이었다.

“괜찮아요. 지금은 못 나오니까요. 보세요, 안 나오죠?”

잠시 눈을 감아버렸던 여학생은 아무런 소리도, 이상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하아- 다, 다행이에요.”

“지금 이건 일시적인 거에요. 잠시 눌러놓은 거죠. 시간이 지나면 회복을 할 거고, 그럼 다시 나올 수도 있습니다.”

태주의 말에 여학생은 몸서리쳤다. 그래도 처음처럼 대화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어 태주는 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그, 그걸 완전히 없앨 수는 없나요?”

“방법이야 있죠.”

태주의 대답에 여학생의 표정은 확 밝아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태주의 말에 여학생의 표정은 다시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해결 방법을 알 수 있어요.”

태주는 아직도 지금 이 일이 정확히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를 더 하기에는 아는 게 너무 없어요.”

그럼에도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듯 여학생은 물었다.

“만약 여기서 멈추면 어떻게 되나요?”

여학생의 질문에 태주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럼 높은 확률로 다시 나타날 겁니다. 어쩌면 더 강해져서요.”

태주의 말에 덜덜 떨고 있던 여학생은 흠칫했다. 이것이 협박처럼 들리는 것은 태주도 알았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하얗게 질린 여학생은 말을 하지 않았다.

태주는 골치가 아팠다. 왜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겁에 질린 건 알겠지만 도와주려는 입장에서는 갑갑한 일이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질 자체는 형편없는 물건이라지만 그래도 죽음의 저주다.

조금만 잘못 대처한다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요, 마음이 좀 불편하시겠죠. 그런 일을 겪으셨으니 말이에요. 자, 그러면 자기소개를 먼저 할까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도 없잖아요? 대화하려면 서로 이름이라도 알아야죠.”

태주는 최대한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통성명하는 것은 사람의 긴장을 푸는 첫걸음이었다.

“제 이름은 강태주에요. 여기 직원 중 한 명이고요.”

“제 이름은··· 선우에요. 김선우요.”

삼십 분 만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아낸 태주는 이제야 한발 나아간 기분이 들었다.

“선우 씨라고 앞으로 불러도 될까요?”

태주의 말에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좋아요, 일단은 앉아서 이야기하기로 할까요? 계속 이렇게 서서 대화하는 것도 조금 그렇잖아요.”

선우는 그제야 자신이 서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 네. 죄송합니다. 제가 경황이 좀 없어서···”

선우는 붉히며 자리로 돌아갔다. 좋은 징조다. 부끄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다른 감정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니까.

“자, 그럼 이야기를 좀 들어 볼까요?”

* * *

“이건 분명히 그 애가 관련된 일일 거예요.”

“그 애요?”

선우는 태주가 건네준 레몬티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네. 아마도…. 그게 영화 속의 그 귀신이라면 확실해요!”

선우의 말은 히스테릭했고 날카로웠다. 태주가 태블릿에서 나온 귀신에 대해 설명한 후론 줄곧 이런 태도다.

태주의 표정은 미묘해졌고 선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그 표정을 보지는 못했다.

“혹시, 태블릿의 이니셜은 보셨나요?”

태주는 뒤에 각인되어 있던 이니셜을 떠올렸다.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S. H.였던가요?”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태블릿은 제 친구 거에요. 수현이라는 친구요.”

“그러면 이 패드가 본인 게 아닌 건가요?”

“네. 빌린 거예요.”

선우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가요.”

태주는 잠시 생각했다. 원주인이 따로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두 분은 원래 어떤 관계셨죠?”

선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냥…. 그냥 친구예요.”

전혀 그냥 친구가 아닌 것 같은 표정으로 선우는 말했다.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절대 평범한 친구를 말할 때 나오는 표정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건 과연 원래 주인은 이 동영상이 태블릿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서 건네줬는가에 대한 문제다.

“그럼 선우 씨는 주인이 그 영상을 일부러 넣었다 생각하시는 건가…아뇨! 그냥 확인하는 거예요.”

말하는 도중 선우가 기분이 상한 듯 눈을 치켜떴고 태주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저는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선우는 태주의 변명에 다시 고개를 숙이곤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수현이라는 친구가 저주를 건 것은 아닐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러나 동시에 연관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태주는 선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걔는 절대로 남한테 저주를 걸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남한테 받으면 받았죠. 저는 걔가 받아야 할 걸 어쩌다 보니 제가 받은 거 같다고 생각해요.”

태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선우는 수현이라는 인물이 자신에게 저주를 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에게는 나름의 근거가 있는 듯했지만, 태주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손님은 확실히 수현이라는 분이 선우 씨에게 저주를 내린 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하… 네….”

그러나 또 이번에는 자신이 없어 보인다.

태주가 보기에 이 태도는 수현이 자신에게 저주를 걸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다기보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요, 그건 당장은 확인할 수 없는 문제니 넘어가도록 해요.”

태주의 말에 선우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못 믿으시는 건가요?”

“아니요. 저주라는 건 완전히, 그리고 빨리 끝내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시간은 별로 없는데 저희가 알아야 할 건 많으니 빨리 진행하려고 하는 거예요.”

태주의 말에 선우는 잠시 조용해졌다. 태주는 그 틈을 타 말했다.

“일단 몇 가지 확인을 먼저 해야겠네요. 첫째, 패드를 빌리기 이전부터 그 영상이 있었는가, 둘째로 원래 있었다면 그 동영상이 존재하는 것을 원래 주인이 알았는가, 셋째는 알았다 하면 고의였는가.”

연화는 가장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답했다.

“음, 먼저 영상은 제가 빌리기 이전부터 영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 이걸 빌려 놓고 별로 쓰지 않았거든요. 제가 영상을 따로 받은 적도 없구요.”

“많이 안 썼다고요?”

대체 그럼 왜 빌린 거지? 태주는 내심 궁금했으나,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일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원래 주인이 이 영상에 대해 알고 있었는가부터 시작해야 하겠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태주는 큰 기대 없이 물었다. 그걸 선우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태주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선우의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 고의는 아니었을 거예요.”

“그렇군요.”

“죄송해요. 정확한 게 하나도 없네요….”

“음, 아니에요. 그럼 혹시 이 패드를 언제 빌리셨죠?”

“거의 한 달 좀 안 된 것 같아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꽤 비싼 물건일 텐데, 오래 빌렸다 싶었다.

“그러면 빌리고 꽤 오랫동안은 저주의 영상 같은 건 알지 못하고 계셨다는 거네요?”

선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애초에 한 달을 빌렸지만 실제로 사용한 기간은 채 일주일이나 될까요.”

“그러면 이 동영상을 언제 처음으로 봤나요. 그러니까…. 언제 정확히 이 동영상을 처음 재생했나요?”

태주의 질문에 선우의 안색은 좋지 않아졌다.

“이 영상을 처음 재생한 건 이틀 전이에요. 그 전까지는 이상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요. 전 그냥, 어쩌다 보니 이런 게 갤러리에 있는 걸 봤어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전에 처음 틀었다면 그래도 비교적 빨리 온 셈이니 다행이었다.

“처음 그 동영상을 재생했을 때는 별로 이상한 일은 없었어요. 그냥 조금 음산한 소리가 들리는 아무것도 없는 검은 영상이었죠. 그때는 제가 찍은 동영상 중에 이런 것도 있었나 하고 생각했어요.”

선우는 한숨을 푹 쉬고는 레몬티를 손에 쥐었다. 분명 건네줄 때까지는 뜨거웠으나 현재는 미지근해진 채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대체 이게 뭔가 하고 있던 사이에 ‘너야, 너였구나.’ 하는 소리가 들렸거든요. 속삭이듯이 말이에요. 기분이 나빠서 동영상은 곧장 종료했고요.”

선우는 그때까지는 그저 기분만이 조금 나빴을 뿐이라 이후에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뭔가 더 일어났겠죠?”

태주의 말에 선우는 눈을 감고 눈썹을 찡그렸다.

“바로 그다음 날이었어요. 제가 별생각 없이 패드를 켰는데 저절로 동영상이 재생되더라고요.”

태주는 아까 자신이 재생을 누를 때까지 영상이 켜지지 않았던 걸 떠올렸다.

“그때까지도 모습은 없었어요. 아니, 그래도 희끄무레한 형체 같은 것은 나타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실체 있는 모습은 아니었어요.”

선우는 그 말을 하면서도 부르르 떨었다. 혼자 밤에 보면 꽤 소름이 끼칠 모습이기는 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화면을 켰을 때는 이상한 팔뚝까지 나오더군요.”

“그만 하세요!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별로 겁을 주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기에 태주는 머쓱한 채 말했다.

“조심하겠습니다. 어쨌든 계속 말씀해 주시죠.”

선우는 천천히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셋째 날인 오늘, 자기 혼자 패드가 켜지더니 이제는 귀신의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선우는 너무 무서웠지만 켜진 패드를 끄지 않을 수도 없었기에, 패드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찾았다,’ 하는 목소리와 함께 선우는 귀신과 눈이 마주쳤다고 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눈을 보고서 선우는 거의 기절할 듯 놀랐다고 했다.

“그 눈을 마주친 게 바로 여기 오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고요.”

“바로 여기 오신 건 잘 하신 거예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선우는 얼굴을 찌푸린 채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오늘 하굣길에 전단지를 보고 간신히 찾아온 거예요. 이거, 어떻게 빨리 해결해 주실 수 있나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릴게요.”

선우는 태주에게 보채듯 말했다. 하지만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까 너무 경황이 없어 보여서 말씀 못 드렸는데, 저희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태주의 말에 선우는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럼 뭘 내면 되나요?”

“저희가 일을 해결하고 나면 저희 소장님이 알아서 그쪽으로 찾아가실 거예요. 그분이 무엇으로 지불해야 할지 알려줄 겁니다.”

태주의 말에 선우는 더더욱 의아해하며 말했다.

“네? 그게 뭔지 지금 알려주면 미리 준비할게요.”

“그건 저희도 알 수 없어서요, 하하…. 그래도 해준 일에 비해 과도한 걸 요구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태주가 민망하게 웃으며 말하자, 선우는 미심쩍다는 듯 인상을 썼다.

하지만 선우가 매달릴 곳은 당장은 이곳 뿐이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는 못했다.

금액은 나중 문제다. 일단 중요한 것은 그 귀신을 더는 나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좋아요, 보상은 과도하게 뜯어내지 않는다는 말을 일단 믿겠어요. 그럼 해결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선우의 질문에 태주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해결이 가능하긴 할 테지만 얼마나 걸릴지는 저도 몰라요. 이런 물건은 저도 처음 보거든요. 이제 곧 이 분야 전문가가 올 거예요. 그분이 오시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 순간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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