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39화 (39/269)

3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저주의 동영상 (1)

저주의 비디오에 대한 괴담은 유명하다.

‘비디오를 틀면 귀신이 나온다’

그리고

‘보면 죽는다.’

이 극단적이고 간단한 방식의 이야기는 초기에 굉장한 충격이었고 비슷한 종류의 괴담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보면 죽는 책, 보면 죽는 만화, 조금 변형되어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안 되는 책, 혹은 여러 번 보면 죽는 그림 등등….

이제는 지나치게 남용되어 유치하기까지 한 소리다. 더 이상 이 비슷한 이야기들은 전혀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기술의 변화 역시 이런 괴담이 시들해지는 데 한몫했다.

카세트테이프나 비디오테이프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결국 저주받은 비디오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 낡아빠진 방식의 괴담을 이용한 저주를 받아버린 사람이 생겼다.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그랬다.

* * *

“이거 너무 시대착오적인 거 아니야?”

태주는 뜨뜻미지근한 눈길로 태블릿 PC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 안에 들어있는 동영상 파일 중 저주받은 동영상이 있다는 제보 때문이었다.

피해자의 제보에 따르면 동영상을 틀면 귀신이 나타난다고 했다.

올드한 방식이다. 태주가 시대착오적이라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사진과 동영상 파일 속에서 태주는 금방 그 저주받았다는 동영상을 찾아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홀로 새까만 썸네일이라 찾기는 쉬웠다.

“그래도 좀 발전한 거 아냐? 테이프가 아니라 이제 동영상 파일로 만들어서 배포되는 거 봐.”

월이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썸네일 봐라. 어휴, 그냥 하는 짓이 낡았어.”

태주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패드를 봤다. 월이는 태주가 왜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하는지 의아했다.

“우리 하는 일이 다 그렇잖아. 지난번엔 천년은 된 것 같은 지네도 만났는데, 겨우 이십 년 정도 지난 영상한테는 왜 그렇게 짜게 구는 거야?”

“아니지- 그건 징그럽긴 해도 나름의 품격이 있었잖아! 거의 문화재 같은 느낌도 나고 그랬다고. 그런데 이건 그런 게 없어. 특히 파일명은 진짜 최악이야. 저주video.mp4라니.”

태주가 불만이라는 듯 한숨까지 쉬며 말하자, 월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니까.”

“그래도 옛날에 영화는 재밌게 봤었는데···.”

나름 원작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던 태주는 너무 대충 만들어진 저주의 영상에 왠지 모르게 조금 열이 받았다.

“그게 재밌나? 난 안 봐서 모르겠는데.”

“그거 나름 괜찮은 영화였어. 이젠 좀 낡은 물건이라지만···.”

“그런 낡은 영화 같은 건 별로 관심 없으니까, 이제 시작이나 해.”

칼같이 자르는 월이의 말에 태주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나 월이 말이 맞았다. 기분이야 어쨌든 슬슬 잡담은 그만해야 할 때다.

“그럼 곧 시작할 테니까 준비하자. 그래 봐야 별 대단한 게 나올 것 같지는 않긴 하지만.”

태주는 패드를 테이블 위에 세워 뒀다. 일부러 귀신이 튀어나오기 좋게 만든 것이다.

“준비됐어?”

망치를 한번 붕 소리가 나게 휘둘러본 월이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말했다.

“응, 난 준비 끝. 셋 세고 틀어.”

태주는 월이가 준비를 마친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했다.

“셋, 둘, 하나, 지금!”

-끼이아아아악!

태주가 신호에 맞춰서 영상을 틈과 동시에 소름 끼치는 괴성이 들렸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희끄무레한 형태는 곧 여자의 모습을 갖췄다.

당연히 살아있는 모습은 아니다.

전신이 하얗고, 온몸에 퍼런 실핏줄이 가득한, 마치 시체와 같은 모습을 한 긴 머리의 여자는 피를 철철 흘리며 화면으로 다가왔다.

-뚜둑, 뚜둑, 그웨에엑

온몸은 부자연스럽게 움직였고 눈에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표정은 고통스러운 듯 절규하는 것 같았다.

귀신은 눈동자 없는 눈으로 화면 바깥의 두 남녀를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없어 공허한 눈이지만 증오와 분노가 가득해 보였다.

고개를 꺾으며 귀신은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귀신’의 모습 그대로다.

“야, 월아 그래도 이거 밤에 보면 꽤 무서웠을 수도 있을 거 같다. 그치?”

“엥. 누가 요즘 이딴 걸 무서워해? 밤에 봐도 안 무서울걸?”

“아니, 지금이 낮이라 그렇지. 밤에 혼자 보면 꽤 무서울 거 같은데?”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마치 완성도를 품평하는 듯한 그런 대화다.

- 아니다···!! 네가 아니야!!!!!

두 사람이 실없는 대화를 하는 동안,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귀신의 얼굴은 어느새 화면에서 사라져 있었다.

월이는 귀신이 사라진 걸 보고 화면을 자세히 보려 다가갔다.

“어? 도망갔나아!! 뭐야!! 깜짝이야!!”

그 순간 갑자기 태블릿 PC의 화면 바깥으로 새하얀 손이 훅 튀어나왔고 월이는 소리를 빽 질렀다.

“너 안 무섭다면서?”

태주의 놀리는 듯한 말에 월이는 자존심이 상한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무서운 거랑 놀란 건 다른 거야! 그냥 깜짝 놀란 거거든!!”

그게 무서운 거 아닌가. 점프스케어는 그럼 공포물이 아니게 되는데.

그러나 태주는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월이는 손이 갑자기 튀어나와 당황한 것일 뿐, 저 생김새에 놀란 건 아니었으니까.

손의 모습은 그 자체로 기괴했다. 툭 튀어나온 혈관과 길고 두꺼운 손톱이 마치 특수분장 같기도 했다.

문제는 그 손이 더듬더듬 뻗어 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타닷, 타닷

귀신은 테이블을 피처럼 보이는, 그러나 피라고 하기에는 더 끈적해 보이는 붉은 무언가를 뚝뚝 떨어트리면서 조금씩 더 멀리 팔을 뻗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기다리던 것이 바로 지금 이 상황이었다.

“지금 아니냐?”

“지금이지.”

한참 떠들면서도 시선은 결코 그 손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던 두 사람이었다.

태주의 말에 준비하고 있던 월이는 망치로 그 손을 내리찍었다. ‘쿵!’ 하고 무겁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 키에에에에엑!!

방 안에 비명이 울렸다. 찢어지는 괴성은 남자의 것 같기도 했고 여자의 것 같기도 했다.

고통에 움찔거리던 손은 화가 난 것인지 주변을 한번 크게 붕 휘둘렀다.

붙잡히면 좋은 꼴을 보긴 힘들 거라는 직감이야 들지만 그래 봐야 팔밖에 없다. 피하는 게 어려울 리 없다.

월이는 몸을 슬쩍 뒤로 뺐고, 귀신은 손에 아무것도 닿지 않자 꿈틀거리며 화면의 바깥으로 팔을 더 길게 뻗었다.

쾅!!

월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팔을 내리쳤다. 그리고 그 이후 방에서는 묵직한 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세 번, 네 번”

월이는 입으로 수를 세어가며 계속 내리쳤다.

“야, 태블릿 안 부수게 조심해라. 그거 프로라서 망가지면 비싼 돈 주고 물어줘야 해.”

태주의 말에 월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

쾅!

“았!”

쾅!!

“어!”

쾅!!!!!

- 끼에아아아악!!

귀신은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계속 질렀다. 그러나 고통에 움찔거릴 뿐 손은 생각보다는 상태가 멀쩡했다.

“저거 진짜 튼튼하다.”

“좀 더 팰까?”

눈을 희번덕거리며 월이는 물었다. 아무래도 놀란 데 자존심이 좀 상한 것 같았다.

“뭐, 그래. 아직 멀쩡해 보이니까.”

“좋았어.”

월이는 기분 좋게 웃었다. 때리는 손을 멈추지도 않으면서 웃고 있었다.

가만 보면 옆에 있는 이 녀석이 제일 무서운 게 아닐까. 태주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서른 대쯤 맞은 결과, 창백한 손은 더 견딜 수가 없었는지 축 늘어지고 말았다. 시간으로 따지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야, 이거 진짜 잘 버티네. 더 때려야 하나?”

월이는 약간 감탄하며 말했다.

“아니, 그전에 책상이 먼저 망가질 거 같은데.”

이미 밑에 있는 책상이 거의 부서지기 일보 직전일 때까지 때린 뒤다.

“아까보다는 살살 한두 번만 더 찍어봐. 더 안 움직이는 거 확실한지 확인해 봐야지.”

태주의 말이 제대로 마쳐지기도 전에 월이는 몇 번 더 두들겼다. 이제 손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그저 충격이 올 때마다 움찔거리기만 했다.

조금 너덜너덜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평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듯 손은 아직도 형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손은 이제 더 이상 나오려 하지도,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망치가 내려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월이는 흩날리던 머리칼을 다시 정리했다.

이전에는 예쁘게 정돈되어 있던 머리카락이었으나, 여러 번 망치질하느라 꽤 헝클어져 있었다. 귀신과의 싸움에서 월이가 입은 유일한 피해였다.

“생각보다 별거 없었네. 설이가 봐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월이는 생각보다도 더 안 위험했던 상황을 보고 말했다.

“뭐 좋은 거라고 이걸 보여줘?”

“보면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설이는 지네 말고 다른 건 못 봐봤으니까.”

“그러려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관련 경험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맞는 말이기에 태주는 다음에 한 번 불러볼까 고민했다.

- 사라라락

“어? 어어! 저놈 저거 들어간다.”

그렇게 둘이 잡담을 하는 사이, 손은 황급히 패드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런, 그 잠깐 사이에 도망갔네.”

태주의 말에 월이는 어쩔 수 없다는 의미로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이렇게 되면 당장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도망갔다고 해서 별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이쪽이 쫓아갈 수 없듯, 손의 주인이 나오는 것 역시 한동안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맞고도 금방 다시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지.”

태주는 패드를 집어 들고 다시 한번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러 보았다. 그러나 동영상은 오류만을 일으킬 뿐 더는 재생되지 않았다.

혹시 망가진 것인가 싶어 다른 영상들도 켜보았지만, 다행히 다른 문제는 딱히 없었다.

기기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태주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저주의 동영상이라는 물건이 아예 태블릿을 망가트릴 정도로 악질인 건 아닌 모양이네.”

“그럼 이제 지금은 끝이지?”

펜을 돌리듯 망치를 빙글빙글 돌리던 월이는 귀신이 더는 나오지 않을 것 같자 망치를 삐걱거리는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생각보다 약해서 다행이네. 그래도 짜증 나. 도망쳐서 사람을 귀찮게 만들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팔을 잘라 놨어야 했는데.”

월이의 흉흉한 발언은 불쌍한 하얀 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손에게는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좀 한시름 놨나?”

월이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우리가 한 일이라고 해봐야 그 저주를 두들겨 팬 것밖에는 없잖아.”

태주는 집어 든 태블릿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케이스, 완전 새거네.”

“최근에 샀나?”

“기기는 전 세대 거기는 한데. 케이스만 바꾼 건가?”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케이스와 패드를 분리해봤다.

케이스가 깨끗한 것처럼 본체 역시도 아주 깔끔했다. 그대로 재포장해서 넣으면 새것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모습이었다.

각인된 이니셜 S. H. 라는 글씨를 제외하면 다른 새 제품과 구분할 방법은 없었다. 태주는 다시 원래대로 케이스를 끼웠다.

이제는 맨 처음 사건을 제보한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월이가 해야 할 일은 끝났지만, 반대로 태주의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자, 그럼 나는 먼저 나가볼 건데, 너는 어쩔래?”

“나, 난 됐어. 그냥 올라가 있을래. 설이랑 3층에서 있을게.”

월이는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듯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그런가 싶었지만, 태주는 굳이 더 캐묻지는 않고 말했다.

“그래? 그럼 시아 누나 좀 불러줘. 지금 밖에 나가 있는 거지?”

“아마 그럴걸? 문자 해 놓을 게-.”

월이는 끝이 늘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올라가 있어.”

태주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제 피해자를 만나보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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