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18)
다음 날 이른 아침.
세 사람, 아니 이제 네 사람이 일 층에 모여있었다.
시아와 태주는 평소에 입던 복장 그대로였지만, 한설과 월이는 아직 잠옷 바람이었다. 한쪽은 평상복이 아직 없어서 그런 거였고, 한쪽은 그냥 귀찮아서 그랬다.
“이걸로, 작업은 끝났다.”
시아의 말을 마지막으로 은은한 빛은 사라졌다.
“자, 여기.”
시아가 한설에게 비녀를 다시 건넸다.
“다 끝난 건가요?”
한설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오래 걸리는 건 아니었네요?”
“에이 뭐야! 시시해! 뭐 엄청난 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리 스펙타클한 장면이 없자 월이가 툴툴댔다.
임시조치 때 귀신 하나와 거대 지네 하나가 연기가 되어 비녀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곤, 뭔가 엄청난 걸 기대했던 듯했다.
“이거 보려고 일찍 일어난 건데, 그냥 잠이나 더 잘걸!”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작업이야.”
시아는 발끈해서 말했다. 다른 건 괜찮지만 자기가 한 일이 별 거 없다는 말은 조금 참기 어려웠다.
시아가 월이에게 한바탕 설교를 시작하기 직전 한설은 비녀에서 뭔가를 느낀 듯 말을 흘렸다.
“아, 확실히 따뜻하네….”
그 말을 들은 시아는 월이를 보던 시선을 한설에게 돌렸다. 의외라는 듯 시아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 있었다.
“확실히 보통은 아니구나.”
시아의 말에 한설은 당황해 말했다.
“네? 저요?”
“응, 방금 따뜻하다고 그랬지? 그런 걸 느끼는 건 굉장한 거다.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못 느낄걸? 그게 바로 재능인 거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느낄 수 있었던 건 사람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온기 정도였다.
저렇게 손난로를 만지는 듯한 온기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게 재능이 있는 건가요?”
“그래. 선천적인 걸로 보이는구나. 눈만 그런 게 아니야. 너는 그냥 애초부터 괴담들에 쉽게 호감을 살 수 있는 체질이야.”
시아의 장담에 월이는 궁금해진 듯 물었다.
“무슨 호감?”
“괴물은 인간을 보면 딱 인간이라는 걸 알아. 우리가 다른 인종의 사람을 보면 곧바로 우리와 다른 사람인 걸 알 수 있는 것과 똑같이 말이야.”
“그래서?”
“자연히 그들은 낯선 인간을 경계하겠지.”
“어…. 음, 그런데 설이는 아니라는 거지?”
“그렇지. 만약 네가 처음 보는 외국인이 국밥 먹다가 유창한 한국말로 ‘이모 여기 깍두기 더 주세요!’ 하고 외치는 걸 보면 네 기분이 어떻겠냐?”
“…그게 뭐야? 아니 뭐, 어째서인지 친근하게 느끼기야 하겠지만.”
“그게 괴물들이 저 아이를 보면 느낄 감정이야.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호의적으로 보기에는 충분한 정도의 호감이지.”
목숨이 걸리거나 중요한 국면에서는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별 이유 없이 호감을 살 수 있다.
그건 상당한 메리트였다.
“의외로 엄청난 재능이야.”
“엄청난 거 같기는 한데, 비유가 그 모양이니 뭔가 엄청 별 볼 일 없는 것 같잖아 그거….”
월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그게 언니를 부를 수 있게 되는 데도 도움이 될까요?”
한설은 그게 가장 궁금한 듯 물었다. 조바심이 난 듯 조금 말이 빨랐다.
“그래. 너한테는 그 표현이 맞겠네. 네가 있다면 네 언니는 더 빨리 나올 수 있을 거야.”
시아의 말에 한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이 언니를 빨리 꺼낼 힘이 있다는 말 같았다. 다행인 일이었다.
월이는 한설의 손에 있는 비녀를 콕콕 찔러보았다.
“이 안에 그때 그 둘이 다 들어있다는 게 신기하네.”
“너무 그렇게 막 만지지 마. 설이에게는 소중한 물건이잖아.”
태주는 그런 월이를 말리며 말했다.
“앗,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다잖아! 왜 너가 더 난리야? 흥!”
설이의 괜찮다는 말에 월이는 태주에게 밉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설이의 이어지는 말에 금세 울상이 되었다.
“맞아요, 친구끼리는 민폐 끼쳐도 괜찮은 거라고 그랬거든요!”
“어, 어…? 나 민폐야…?”
“응!”
설이의 해맑은 팩폭에 태주와 시아는 한참 배를 잡고 웃었다.
설이는 다들 왜 웃는 건지 모른 채 따라 웃었고 월이는 테이블에 얼굴을 박은 채 혼자 중얼거렸다.
“민폐라니… 내가 민폐….”
겨우 웃음을 멈춘 시아가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한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설아, 앞으로는 좀 더 열심히 배워야 할 거야. 이쪽은 정말로 아는 게 힘이 되는 영역이거든. 그건 또 능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네! 당연하죠!!”
한설의 힘찬 모습에 시아는 피식 웃었다.
“사무소 활력제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네.”
“그러게요.”
태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아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럼 나는 이제부터 자체휴가. 정리는 알아서 해라.”
“네. 고생했어요. 뒷정리는 내가 할게. 둘도 들어가서 쉬어.”
“오예! 나는 안 치운다!”
태주의 말에 시아는 계단으로 향했고 엎드려있던 월이도 신난다는 듯 벌떡 일어나 그 뒤를 따랐다.
한설 역시도 따라 올라가려다 태주를 향해 꾸벅 인사하고는 올라갔다.
태주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인사를 저 정도로 하면 귀찮은 음료수도 만들어 줄만 하다고 장난처럼 생각했다.
‘다음에는 월이는 안 만들어줘야지.’
태주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홀로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하던 카페가 조용해졌다.
느긋하니 한적해서 좋았다.
딸랑.
그때 사무소의 고요함을 깨고 문이 열렸다.
벌써부터 손님이 찾아올 리가 없었기에 태주는 깜짝 놀라며 문 쪽을 쳐다봤다.
“소장이었네요?”
또 그새 어딜 나갔다가 돌아오는 건지, 참 신출귀몰한 사람이었다.
“다들 올라갔나 보네.”
소장은 씩 웃었다.
“다 알고 왔을 거면서….”
아마 일부러 아무도 없는 시간을 골라서 왔을 것이다.
굳이 이 시간을 골라서 왔다면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소장은 온 것이리라.
그렇다면 물어볼 것은 정해져 있었다.
“소장이 그런 거죠?”
“뭐를? 아, 방울 말이야?!”
소장은 천연덕스럽게 되물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투였다.
소장의 모르는 척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안 어울리는 짓이었다.
“시치미 떼지 말고요. 설이 말이에요. 분명 약인지 주술인지 때문에 잠들었으니 일어날 수 있었을 리가 없는데 말이에요.”
“우연이야, 우연.”
당연히 태주는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태주는 다른 이상한 부분들도 곧바로 물었다.
“게다가, 그 옥분 씨가 닫으려 했던 눈도 어째서인지 완전히 열려 있었고요. 저희한테 올 때까지만 해도 거의 완벽하게 닫혀 있었잖아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 만큼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뭔가 했다고?”
“소장 아니면 누가 해요?”
소장은 태주의 말에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걸 내가 하지 누가 하겠어. 처음 만난 날엔가? 눈의 봉인이 해제되는 약을 줬지, 아마?”
남일 얘기하듯 말하는 소장을 보며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지적하기엔 다른 궁금증이 더 컸다.
“바로 해제되는 약은 아니었나 보죠?”
만약 그랬다면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눈을 떴어야 했다.
“뭐, 효과를 보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약이지. 닫혀있던 시간에 비례해서 효과 보는 약이야. 꽤 오래 닫혀있었으니 효과도 늦게 일어나게 된 거겠지.”
“그래요, 아마 눈을 딱 좋을 때 뜬 건, 그 계산을 하고 약을 줘서 그런 거였겠죠.”
“그리고 하나 더! 그 약에는 부작용이 있지. 약효가 돌기 시작하면 잠이 온다는 거야. 그 효과가 끝나면 잠에서 깨고.”
“그게 잠드는 약을 먹어도 잠에서 깰 만큼 효과가 좋은 거예요?”
“음,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 일종의 프로그래밍 같은 거야. 마지막에 정의한 게 사실이 되지. 그 효과가 얼마나 강한지를 가지고 겨루는 게 아니라 따로 지정된 부분이 없으면 뒤에 발동한 효과가 무조건 앞의 상황을 덮어씌우는 것에 가까워.”
“전 프로그래밍 모르는데요.”
태주는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소장을 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비유가 너무 터무니없다.
“알아들었으면 됐지.”
결국은 소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이다. 언제 한설이 잠들지, 언제 다시 눈을 떠 적절한 때에 옥분을 따라갈 수 있게 할지. 그 모든 것을 다 예측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방법이다.
태주는 조금 김이 샜다.
그건 태주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 정도까지 내다볼 수 있으면 그냥 직접 하면 안 돼요?”
태주는 반쯤 장난으로, 그리고 나머지 반쯤은 진심으로 말했다. 일이 끝나고 종종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면 자신이 한 일이 죄다 무의미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었다.
“안 돼. 내가 직접 나서면 찾아올 무서운 사람이 있거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였다. 소장은 늘 태주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태주는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
“소장이 몸을 사릴 정도면 얼마나 무서운 거예요?”
물론 대답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태주는 아직도 명확히 풀리지 않은 의문을 하나 물었다.
“소장이 눈의 봉인을 풀었다 했죠?”
“그랬지.”
“만일 풀지 않았으면 어떻게 돼요?”
일어나지 않았을 미래에 대한 의문.
다른 사람이라면 답할 수 없지만, 소장이라면 답할 수 있는 문제다.
“한설이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을 거야. 나름 머리가 좋고 자립심도 있어서 걱정한 것보다는 쉽게 세상에 적응하긴 해.”
“말 그대로 옥분 씨가 원하는 삶이었겠네요.”
“그래. 사람과 살며 사람과 결혼하고 사람 사이에서 죽을 거다. 하지만 동시에 평생 그곳을 잊지 못해 향수에 젖어 살았겠지.”
“그런가요.”
태주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선택의 결과도 묻고 싶지만 참았다.
한설은 과연 다른 선택을 한 것보다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안 물어보네?”
“예. 그냥 모르고 있으려고요.”
“잘 했어. 굳이 몰라도 되는 걸 알려는 태도도 별로 좋진 않아. 그러다간 나처럼 되어버릴걸.”
소장처럼 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태주는 알지 못했다.
“글쎄요, 그렇게 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조금 궁금하긴 한데요?”
“아서라. 득이 적다고는 못하겠지만 실도 그만큼 많았거든.”
소장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나름 잘 했어. 기대 이상으로.”
소장은 태주의 등 뒤를 한번 툭 치고는 자리를 떴다.
태주는 슬쩍 웃었다.
미래는 모르지만, 지금 설이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우리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일단은 이거면 된 거 아닐까.
어쨌든 이번 일도 마무리되었다. 태주는 바깥의 문을 열었다.
“오늘은 또 누가 오려나?”
바 테이블의 뒤편에서 느긋하게, 태주는 손님을 기다렸다.
*다음 이야기*
그 동영상을 틀면 안 되는 거였다.
- 키긱, 킥! 킥!
목이 막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혹은 웃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학생은 등 뒤에서 들리는 기분 나쁜 소리를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대체 어디에… 찾았다…!”
간판도 없는 건물이지만 전단지에 나온 곳이 확실했다. 여학생은 달려가 문을 거세게 열며 외쳤다.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