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16)
한설의 질문에 옥분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머리로는 알았다. 마음이 찢어지더라도 긍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말할 수 없었다.
순간 갑자기 손등에 따끔한 것이 느껴졌다.
지네였다. 지네의 더듬이 끝이 옥분의 손등을 찔렀다.
지네는 이제 그만하자고 하고 있었다.
“아뇨,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건 옥분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마지막이 되어야 할 소망이었다. 그러나 지네는 이번에도 거부 의사를 밝혔다. 둘이 함께 여행을 떠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왜, 왜 반대하시는 겁니까!”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그만 하자고 지네는 전했다. 그리고 저들에게 옥분이 사라지지 않게 할 방법이 있다면 도움을 받자고도 했다.
키릭, 키리릭-
“그래도… 그래도…!”
옥분이 함께 사라지자 했을 때, 사실 지네는 그러기 싫었다. 옥분이 사라지는 것이 싫은 것이었다.
하지만 옥분이 원하는 것이 한설이 잘 되는 것이었기에 지네는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른 방법이 생겼다.
옥분이 살 방법.
옥분에게 한설이 자신보다 잘 되었으면 하는 존재였다면, 지네에게는 옥분이 그런 존재였다.
설령 자신이 죽거나, 혹은 죽은 것만도 못한 존재가 될 지라도 지네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옥분은 그것을 지금에 와서 알았다.
“시, 신님….”
한설은 고개를 떨구는 옥분의 곁에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언니. 저는 언니와 함께 살고 싶어요.”
“…그러하냐.”
옥분은 반쯤 체념한 듯 말했다. 한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건 언니가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요. 언니 없이 밖에 나가면, 이전만큼 즐겁지 않을 것 같아요.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옥분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한설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저 지네의 존재를 저는 몰랐지만, 지네와 언니는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아온 거죠?”
한설은 아직 지네가 두려웠다. 하지만 언니가 지네를 꼭 끌어안는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고 억지로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함께 하는 것이라고.
그 둘 사이에 끼어든 것은 한설이었다.
“저는 언니의 발목을 잡는 존재였을까요?”
한설의 질문에 옥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하지만 제가 없었다면 언니는 더 오래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옥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한 선택이었어. 여행을 마친 건 내 의지야.”
“그렇게 따지면 바깥으로 안 나간 것도 제 선택이고 제 의지인걸요. 여기로 다시 돌아온 것도 제 의지고요.”
한설의 말에 옥분은 침묵했다. 옥분은 잠시 침묵하더니 물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사실상의 항복 선언을 하며 옥분은 마지막 질문을 했다.
“내가 마지막까지 이곳에서 죽어야겠다 하면 어떻게 할 게냐.”
“저도 이곳에서 안 나갈 거예요. 혼자라 해도요.”
옥분은 한설의 눈을 마주 봤다. 한설의 눈에서 얼핏 푸른 반짝임이 보였다. 자신이 감게 했던 눈이 다시 열린 것이다. 옥분은 혀를 찼다.
“여기에 오기 전에 두 사람에게 물어봤어요. 제가 바깥에 나가면 어떻게 살게 되냐고요.”
그것은 한설이 미래에 대해 한 첫 질문이었다.
“태주 씨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했어요. 지원을 받으면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난 뒤에 독립하는 것, 그리고 아예 저기 있는 두 분이랑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같이 사는 것. 그렇게 두 가지로요.”
“너는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
옥분은 한설에게 물었다. 한설의 대답을 어느 정도 짐작한 채 하는 질문이었다.
“그때는 몰랐어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아요. 제가 평범하게 고등학교에 다니는 선택을 하면 우리가 다시 만나기는 어렵겠죠.”
“결국은 저들과 같은 길을 가겠다는 거구나.”
신비와 엮이며 살아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한번 이쪽으로 튕겨 나오면, 다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위험한 일도 많을 거다. 죽을 수도 있을 거고, 쉬운 일이 아닐 거야.”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게 유일한 방법인걸요.”
옥분은 결국 한설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대신에 태주에게 물었다.
“한설의 부탁이 나를 구해달라는 것이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태주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옥분은 다시 물었다.
“그럼 방법은 있고?”
미심쩍어하는 옥분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꽤 고생해야 하겠죠. 일단은 그 육체부터 포기해야 하니까요.”
옥분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혼을 다른 곳에 옮긴다는 건가.”
오래 산 존재라 그런지 옥분은 태주가 하는 말을 금방 알아챘다. 확실히 그것은 죽는 것은 아니었다.
“위험한 방법을 쓰는군.”
물건에 깃든 혼은 물건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물건이 사라진다면 거기 깃든 것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말 그대로 목줄을 쥐겠다는 말이로구나.”
“그 목줄을 만드는 건 저희가 하겠지만, 목줄을 쥐는 역할은 한설이가 하게 될 겁니다. 한설이가 협박을 한다면 그냥 귀엽게 들어주시죠.”
“네놈들이 한설이를 협박해서 우리를 부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옥분이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
“가능성이야 있지만, 애초에 더 위험한 짓도 하신 분이 뭐 그런 걸 걱정합니까?”
태주는 핀잔을 줬다.
그 위험한 짓 끝에 지네의 몸은 동강이 났다.
결국은 할 말이 없어진 옥분은 입을 다물었다.
지네는 괜찮다는 듯 옥분에게 몸을 부볐다.
“그래서, 우리를 어딘가 깃들게 한다 치고 그 이후에는 설이를 어떻게 할 건가?”
“일단은 교육부터 받아야겠죠. 당신들과 소통하려면 꽤 많은 걸 배워야 할 테니까요. 본인이 원한다면 학교도 보낼 거고요.”
신비와 엮인 일을 한다 해서 학교를 못가는 건 아니다. 다만 보낸다 치면 월이와 같은 학년, 같은 반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그 정도야 소장이 해주겠거니 생각하며, 태주는 뻔뻔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이가 힘들어할까 걱정이군.”
“우리가 도와줄 테니 괜찮을 겁니다. 처음에 좀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요.”
옥분은 혼이 깃든 물건을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쇠락했다고는 해도 강대했던 신이 깃든 물건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거지?”
마지막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는 옥분에게 태주는 솔직히 대답했다.
“인력난이거든요. 우리.”
결국은 오늘도 밤을 새웠다.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뜰 판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좀 낫지 않겠습니까. 재능도 있는 것 같으니 얼마 안 있어서 도움이 되겠죠.”
애초에 소장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한설을 데려왔을 것이다.
처음부터 삼 층에 네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준비했던 것을 보면 확실했다.
“물론 꽤 오래 걸릴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을 자유롭게 그 안에서 꺼낼 수 있으려면 어설픈 수준으로는 힘들긴 할 테니까요. 하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도울 겁니다.”
옥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마 더 이상 한설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을 거다. 지네의 다리가 그 주먹을 감쌌다. 마치 처음 옥분이 울던 날처럼 지네는 옥분을 감쌌다.
“많이 힘들 거래. 그래도 할 거지?”
월이는 한설에게 물었다. 한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셋 다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죠?”
듣고 있던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물건에 깃드는 거 어떻게 하는 거야?”
월이는 태주에게 물었다.
깃든다는 것은 영혼을 몸에서 분리하는 법을 아는 이가 오랜 시간 준비해도 실패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일은 꽤 흔하지만,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뭐, 원래 어려운 일이긴 하지. 원래라면 시도할 생각조차 안 했을 거야. 영혼을 어딘가에 깃들게 한다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번엔 마침 딱 좋은 물건이 있지.”
영혼이 깃드는 것은 아무 물건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건에 역사가 쌓이고 물건 이상의 의미가 있을 때 무언가 깃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굳이 그런 긴 시간을 새로 들일 필요가 없었다. 지네와 옥분이 항상 함께하면서도 절대로 빼놓고 다니지 않은 것이 단 하나 있었으니까.
“비녀로군.”
옥분은 자신의 머리에 있는 비녀를 뽑았다. 머리카락이 풀어져 내려왔다. 긴 머리를 풀어헤친 옥분은 비녀를 손에 쥐고 잠시 바라봤다.
“그걸 잠시 설이에게 주시죠.”
옥분은 한설에게 비녀를 건네줬다.
한설은 비녀를 받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멀뚱거렸다.
태주는 앞의 둘에게 말했다.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의 몸을 버려야 하는 거죠.”
“말은 쉽게 하는군.”
사람의 영혼은 인형에 쉽게 깃들고 흉측하게 생긴 가면에는 악령이 쉽게 깃든다. 외양을 비슷하게 맞춰 준다면 좀 더 쉽다는 말이다.
반대로 사람의 형태에서 벗어날수록 사람이 깃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원래는 깃들기 쉽도록 모양이라도 맞춰 주는 편이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고생 좀 하시겠군요.”
“흥, 보조나 잘 해라.”
태주는 잘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태주는 그 나뭇가지를 비녀와 함께 쥐고 있으라고 한설에게 시켰다.
영체가 되었을 때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향 같은 것으로 해야 하지만, 그런 것이 없으니 대신하는 것이다.
불이 피워지자 지네의 영체가 먼저 서서히 사라졌다.
지네는 잘린 밑에서부터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가루처럼 날아갔다.
“먼저 가십시오. 곧 따라가지요.”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옥분 역시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못 만날 수도 있겠구나.”
옥분은 한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설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만날 거예요. 약속할게요.”
“후후, 그럼 나도 빨리 익숙해져야 하겠구나.”
기다리고 있으마.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옥분 역시 모습을 감췄다. 둘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월이가 쥐고 있는 표지판의 역겨운 점액질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남은 흔적은 오직 표지판의 잘려나간 밑동뿐이었다.
한설은 언니의 흔적인 비녀를 보며 말했다.
“이전에 제가 이게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죠. 언니한테만 있고 저에게는 없는 게 싫었거든요.”
한설은 비녀를 손에 꽉 쥐었다. 그리곤 태주를 올려다보았다.
“언니는 나중에 결혼한 사람이 틀어 올리는 거라 했어요.”
“비녀는 그런 거니까.”
한설의 꽉 쥔 손에서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체온 때문인지 아니면 비녀가 정말로 따듯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안에 분명히 있는 거죠?”
“그래.”
지네와 옥분은 이 안에 있었다.
아마 지금은 잠들어 있을 터였다. 한설이 둘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저 둘 역시 새로이 변한 몸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설은 웃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태주는 위로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미소와 눈물이 나쁜 의미 같지는 않아 보였다.
“얘들아 하늘 봐라.”
태주의 말에 한설은 눈물을 닦곤 하늘을 봤다.
쩍 하고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허공에서부터 금이 가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소리는 없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와그작거리는 감각에 세 사람은 압도되었다.
“거 참, 사람 하나 살기 위해 만든 공간치고는 참 거창하네.”
태주는 경이로운 감정을 느끼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달이 두 조각 나고 별이 떨어졌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이제 없었던 일이 될 것이다.
“예쁘다…”
월이가 중얼거렸다.
계속 보고 있으면 어지럼증이 올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세 사람은 계속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멀리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산속에선 새 지저귀는 소리,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