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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35화 (35/269)

3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15)

“아야야…”

한설이 눈을 떴을 땐 한밤중이었다. 머리가 멍한지 머리를 흔들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어디 간 거지?”

분명히 잠들기 직전까지 태주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는데, 지금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하늘의 별은 쏟아질 듯 가득하였고, 달빛도 어제보단 덜했지만 밝다.

그때 마당 저 멀리에서 무언가 번쩍거렸다. 그러더니 점점 눈이 시려 왔다.

‘지금은 겨울도 아닌데, 눈이 왜 이렇게 시리지?’

이상한 느낌이었다.

한설은 빛이 난 곳에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신발을 신고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어? 언니?”

그곳으로 걸어가던 중 저 앞에 옥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한설은 무심코 크게 부르려다 말았다. 옥분의 움직임이 다급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무래도 옥분 역시 빛이 난 곳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한설은 옥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 * *

옥분의 옛이야기는 끝났다. 생각보다 긴 이야기였다.

“엄마가 아니긴, 엄마 맞구만.”

월이가 말한 첫 감상이었다.

태주 역시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어떤 상태이고 왜 지금까지 이런 판단을 했는지는 알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태주의 물음에 옥분은 여전히 지네를 품에 꼭 안은 채 답했다.

“한설이가 인간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게 우리의 바람이지.”

그것이 옥분이 원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 독립을 위해 죽기까지 하겠다는 겁니까?”

태주는 어처구니가 없어 물었다. 옥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을 위해 죽는다는 게 아니야. 우리가 한설이와 떨어져야 할 때가 왔고… 그러니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을 뿐이야. 우리의 역할을 다 했으니.”

“그게 그 말이잖아…”

월이는 중얼거렸다. 어느새 위협하던 태도는 누그러져 있었다.

“그래. 그렇게 들릴지도 모르겠구나. 이렇든 저렇든, 우리는 밖으로 나갈 수도, 그럴 마음도 없어. 그러니 이만 한설이를 데리고 떠나주게나.”

옥분은 그렇게 말했다. 지네 역시 고개를 들어 힘없이, 그러나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습니다. 이미 약속을 했거든요.”

태주는 거부했다. 그렇게 사이좋게 사라지는 건 한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는 당신을 구할 겁니다. 당신만 구할 수 없다면 지네까지 함께 구합니다. 물론 사람을 절대 해치지 못하도록 목줄은 채우게 되겠지만요.”

태주의 말에 옥분은 피식 웃었다. 네까짓 놈들이 뭘 어쩌겠느냐는 투였다.

“우리가 거부한다면?”

“상관없습니다.”

“우리를 살리는데 우리 의견을 안 듣겠다라….”

“네. 저희에게 의뢰한 건 한설이니까요.”

옥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반응했다. 하지만 태주는 진심이었다.

“가족은 가족인가 봅니다. 다들 하나같이 자기 자신이 아닌 서로를 구해달라 아우성이네요.”

“무슨 말이지?”

옥분은 의아하다는 듯 질문했다. 태주는 한탄하듯 답했다.

“한설이 의뢰한 내용은 당신을 구해달라는 거였습니다. 언니를 구해달라는 말이었지요. 자신이 아니라요.”

“그런가. 그런 부탁을 했었나.”

옥분은 씁쓸하게 웃었다.

기특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옥분은 점점 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 사라져야 했다.

“신님, 저는 이제 그때가 너무 후회됩니다. 지금까지 그 아이와 함께했던 시간이 행복했던 만큼 후회됩니다.”

옥분은 지네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네는 더듬이를 파닥거리며 옥분의 손길을 그저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 우리가 그 애를 주웠을 때, 저는 그 애의 목숨을 살린 뒤 곧바로 사람들의 시설에 맡겨야 했던 겁니다. 신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그것이 옥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후회였다. 한설의 삶은 이미 일반인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이젠 결코 다른 사람과 완전히 섞일 수 없었다.

“아니면 그때, 아이가 싫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내보냈어야 했습니다.”

옥분은 한설과 지내는 시간이 너무 꿈만 같아서, 즐거워서 놓아주지 못했다.

“결국엔 그저 내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애를 살리고 싶었고 내 손으로 기르고 싶었습니다. 그게 다 제 욕심이었습니다.”

지네의 머리 위에 옥분의 눈물이 떨어졌다. 옥분은 고개를 들어 태주를 바라보았다.

“하루만 더, 한 달만 더, 그리고 일 년만 더. 이윽고 그건 십 년을 훌쩍 넘어버렸지.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기에 그 애를 놔주지 못했다. 그게 독이 된 거야.”

그것은 한설이 평범한 삶을 살 기회를 앗아간 것이라 옥분은 생각했다. 그것이 옥분이 자신에게 묻는 죄였다.

“내가 계속 살아 있다면 계속 같은 욕심을 부릴 거다. 계속 그 애를 붙잡고 살고 싶겠지. 그러니 나는 이대로 사라져야 한다.”

“글쎄요. 결국은 모르는 일입니다. 애초에 시설에 들어가서 살았다면 그 애는 행복했을까요.”

물론 이젠 한설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었다. 주민등록증도 없고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해 몸만 큰 사람이 바깥에 나가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가 행복한 일이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진 않을 겁니다. 인간이 인간들 틈에서 산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죠.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는 곳이 어쩌면 더 좋은 환경이었을 수 있죠.”

옥분은 사랑이라는 말에 설핏 미소를 지었지만, 금세 표정을 지우곤 냉정하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해도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아. 내가 그 애의 평범한 삶을 앗아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데리고 살 수도 없지. 그러니 나를 빨리 잊어버리게 하고 바깥에서 자리를 잡게 해야 해. 이곳에서 계속 살게 할 수는 없어.”

“참 고집이 세십니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긴 것은 젊은 여성이었지만 아주 고집이 노인네 황소고집이었다. 하긴 어지간한 노인보다 오래 살기는 했을 거다.

“평범한 삶이라는 게 뭔데?”

태주가 뭐라 더 말하려던 사이 월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평범한 삶 운운하는 부분이 월이에게는 매우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었다.

“사람과 어울리고 사람과 결혼하고 사람과 죽는다. 그게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겠지.”

그것이 옥분의 답이었다. 월이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재차 물었다.

“그러면 행복한 거야?”

월이의 질문에 옥분은 입을 다물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옥분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월이는 계속해서 물었다.

“사람과 살지 못하고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사람과 죽는 걸 못 한 건 너잖아. 네 삶은 불행했어?”

옥분은 말문이 턱 막혔다.

옥분의 삶은 불행했다. 남들이 말하기론 그랬다.

어릴 때 어머니가 먼저 죽고, 아버지도 따라 죽었다. 자신은 죽음을 담보로 남동생의 삶을 얻어냈다. 스무 살, 남들이 꽃다운 나이라 칭할 때 자신은 죽었다.

억울하게 여기기도 했었다. 눈물도 흘렸었다.

하지만 되뇌어보면 자신은 불행하지 않았다. 행복한 순간이 너무 많았다.

나름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았으니 만족했다. 죽고 난 뒤에 두 번째 삶의 기회도 얻었으니 더더욱 불만은 없었다.

원래라면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듣지 못할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복이었다.

“하지만… 내 삶과는 상관없는 얘기야.”

하지만 한설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했다.

평범하게 사람의 삶을 살았으면 했다.

“그 애는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해.”

“그건…”

이번에는 반대로 월이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산다. 그건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그 한 문장은 그래서 힘이 있었다.

“나은 삶이라.”

태주는 되뇌었다.

“뭐가 나은 삶입니까? 평범한 삶이 꼭 행복한 것도 아닐 텐데요.”

고작 이십 년이 좀 넘은 인생경험으로 최소한 수백 년은 넘게 묵었을 귀신에게 훈수를 두는 것도 웃겼지만 태주는 말했다.

“사람이 사람 곁에서 살지 못하면 불행을 겪는다. 항상 불행하다 말하지는 않겠다만, 결국은 불행과 마주하는 순간이 오지. 겪지 않아도 되었을 불행을 말이야.”

옥분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뭐, 그런 인생을 제가 살아본 것이 아니라 반박은 못 하겠네요.”

태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평범한 삶에는 불행이 오지 않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요.”

태주는 옥분의 말을 지적했지만 옥분은 자신의 생각에 틀린 점은 없다는 듯 말했다.

“평범한 삶이 항상 행복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평범한 삶에는 평범한 불행이 오겠지.”

“그건 헛소리야.”

월이는 불평했다. 하지만 옥분의 태도는 완고했다.

“나를 설득할 생각은 관둬라. 우릴 내버려 두거나, 죽여라. 어설프게 도와주려 한다면 우리는 반대로 너를 공격할 게다. 너희가 반격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월이는 더 설전을 벌이기 싫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뭐 그런 거겠지.”

“인정하는 건가?”

옥분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처럼 굴더니, 잘 됐군.”

“음? 내 인정이 무슨 소용이겠어.”

월이는 그렇게 말하고 허공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듣고 있지? 나와!”

옥분과 지네, 그리고 태주조차도 월이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은 월이가 자신을 부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풀이 흔들렸다.

“설마.”

옥분은 신음하듯 말했다. 그곳에서 누가 나올지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지?”

옥분은 월이를 노려보며 물었다.

월이가 한설을 부르기 전까지 그 위치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잠들어 있을 줄 알았다.

귀가 밝은 월이만 한설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네가 지네를 안아 줄 때는 있었지.”

한창 싸울 때는 싸움에 집중하느라 소리를 듣지 못했다. 확실하게 눈치챈 것은 옥분이 지네에게 접근하는 순간이었다.

“그럼 거의 모두 들었겠군.”

옥분은 실소했다. 결국은 가장 들켜서는 안 될 사람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그럼 당사자 의견을 듣는 게 낫겠군요.”

태주는 전혀 놀라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안 된다.”

옥분은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듣지 않겠다는 듯 행동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미 끝난 일이다.

옥분이 하는 것이 부모로서 부리는 고집이라면, 그 고집을 꺾을 방법은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리는 고집일 것이었다.

“언니.”

한설의 부름에 옥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제가 언니 때문에 독립하지 못한다 생각하고 계셨나요.”

옥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강한 긍정이었다.

한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한설은 인정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언니와 함께 사는 게 즐거웠으니까요.”

“……”

옥분은 대답하지 못했다.

“언니는, 정말 저랑 살았던 걸 후회하시나요?”

“…그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설은 바깥에서 살아야 했다. 이곳에서 홀로 살게 둘 수 없었다. 자신을 버리고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그랬기에 더 모질게 말했다.

그러나 옥분은 이어지는 한설의 질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저희가 함께 있었던 시간은 모두 잘못된 시간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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