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14)
이전까지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을 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만큼 턱이 무거웠던 적이 없었다.
지네는 옥분의 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전에도 본 적이야 있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었다.
옥분의 혼은 남들의 것보다 컸다. 그러나 다른 혼들과 마찬가지로 이대로 두면 흩어져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흩어지도록 둘 수는 없었다.
지네는 옥분의 혼을 모았다. 어디로 가지 못하게 붙잡아 두었다. 어디로도 흩어지지 않도록 지네는 혼을 붙들고 있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영혼의 형태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다시 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의지를 갖추지는 않았다.
몇 달을 지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혼이 흩어지지 않도록 힘썼다.
생각보다 오랜 기간, 지네는 영혼을 묶어 두고 있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그렇게 지네는 옥분의 영혼을 아꼈다.
지네가 그렇게 가만히 힘쓰고 있는 동안 당연히 마을에는 풍년이 들었다. 사람들은 지네에게 감사했다.
감사받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왜 사람들은 소녀에게 감사하지 않는가.’
까득, 까드득.
지네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 놓고도 그제야 그런 생각을 했다.
다음 해, 또 다른 처녀가 왔다. 흉년이 오면 자신에게 바쳐질 것이었다.
돈에 팔려 온 여자였다.
지네는 옥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를 잡아 드시지요. 그래야 저 같은 사람이 덜 나올 겁니다.’
그러나 아니다. 지네가 있는 한 누군가는 계속 죽어야 했다.
자신이 있는 한 누군가는 그래야 했다.
어느 날부턴가, 소녀는 두꺼비를 기르기 시작했다. 옥분과 마찬가지로 외로웠던 것이리라.
두꺼비는 소녀와 함께 자라났고, 크기도 꽤 커졌다.
어쩌면 맨 처음의 자신과 같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그저 조금 크고 또 평범한.’
이윽고 또 십 년이 지나고, 흉년이 왔다. 옥분이 때와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처녀에게는 지네가 아니라 두꺼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두꺼비는 지네에 맞섰다.
당연히 두꺼비는 지네보다 약했다. 하지만 두꺼비는 자신을 함께했던 소녀를 지키기 위해 불같은 독까지 뿜어냈다. 그렇게 온몸을 불살라 처녀를 지켰다.
두 독 기운의 싸움 여파에 처녀는 기절해 버렸다.
그리고 그 싸움의 승리자는 당연하게도 지네였다.
그러나 죽기 직전까지 기절한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 힘쓰던 두꺼비를 보며, 지네는 자신이 이긴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두꺼비는 소녀를 지키려고 그 앞에서 선 채로 죽었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저건 결코 패배자의 죽음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네는 그 길로 모습을 감췄다.
사람들은 지네가 두꺼비와 함께 죽었다고 이야기를 퍼트렸다.
그리고 그 자리엔 커다란 장터가 생겼다.
사람들은 장터의 이름을 지네 장터라 하고 은혜 갚은 두꺼비의 이야기를 널리 퍼트렸다.
* * *
지네는 공기인 듯 바람인 듯, 신인 듯 요괴인 듯 그저 물 흐르듯 숨죽여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님, 신기한 일이로군요.”
옥분의 영혼이 눈을 떴다.
“다시 눈을 뜰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네는 옥분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지네의 그런 감정을 옥분은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둘은 하나였고, 동시에 구분된 둘이었다.
지네도 옥분도 무슨 상황인지 몰랐지만,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지금의 마을은 어떻습니까?”
지네는 자신이 없어도 마을은 잘 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을 필요가 없었다. 직접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전해졌다.
“그건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옥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옥분이 깨어났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속박하던 것은 없었으니 둘은 계속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았다.
옥분은 고향에도 한번 가 보았다. 세월이 흘러 남동생은 죽고 없었으나, 남동생의 손자들은 잘살고 있었다. 따로 인사도 축복도 하지 않고 둘은 떠났다. 그러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후론 정처 없는 여행길이었다.
원래 있던 나라에서 벗어나 큰 대륙도 가 보고 작은 섬에도 가 보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큰 전쟁이 몇 번 있었고 나라가 바뀌었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상자가 혼자 굴러다녔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둘은 함께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신비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꽤 오래전부터 세상을 유랑하던 둘은 신비가 부정당하고 사라지는 것을 봐왔다.
한반도의 마지막 호랑이는 총에 맞아 죽었으며 천연두는 완전히 사라졌다.
지네도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면 아마 사라졌을 것이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리를 버린 덕에 둘은 남을 수 있었다.
신도 무엇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서 살아남았다.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친 여행은 길고도 즐거웠다.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리고 점점 그 사람이 부러워졌다.
둘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자리를 찾고 싶어졌다. 고민 끝에 결국 자신들이 있던 원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부근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으아아앙!”
첫눈이 오는 겨울이었다. 길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봤다.
옛날에도 종종 볼 수는 있었지만, 크게 신경을 썼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울고 있는 아이는 조금 달랐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 아이의 주변엔 푸른 기운이 돌고 있었다. 옥분은 그것이 하나의 재능임을 알았다. 종종 날 때부터 영혼을 볼 수 있는 아이가 있었다.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모를까, 괜히 마음이 쓰였다. 아마 그 눈망울에서 울던 동생이 생각난 탓일 거다.
옥분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품에 안았다.
“신님. 제가 이 아이를 살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옥분이 처음으로 지네에게 바란 소망이었다.
“이 아기가 아이가 될 때까지 길러내고 싶습니다.”
지네는 선뜻 그러자고 하지 못했다. 이대로 조용히 있으면 몇백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이 아이를 맡는다면 이십 년을 채 버티기 힘들 거였다.
지네는 그렇기에 약간 꺼리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옥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삶에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린 충분히 오래 살았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아기를 보육 시설로 보낼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귀신을 보는 아이는 쉽게 귀신에 홀리는 법이었다. 세상은 그것을 정신병이라 했고 부모도 없는 정신병자 아이를 사람들이 어떻게 대할지 옥분은 너무 잘 알았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 자신이 가르치고자 했다.
“우리가 십 년을 기른다면 우리의 수명을 반 정도 소모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이십 년을 기른다면 우리는 사라져야 할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아이를 살리고자 합니다.”
지네는 두려웠다. 자신의 삶이 끝나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힘을 다하면 옥분의 삶이 끝날 것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남은 삶을 이 아이의 보호자로 쓰고 싶어요.”
옥분은 그렇게 말하며 지네를 보듬었다.
둘은 하나다. 그렇기에 옥분이 생각하는 것은 지네가 생각하는 것이고 옥분이 원하는 것은 지네가 원하는 것이다.
지네는 결국 옥분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지네는 옥분과 함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젠 사람이 오지 않을 산이었다.
지네는 그 안에서 아주 오래전 봉인된 사당을 찾았다. 이젠 그리운 곳이었다.
다시 사당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외부의 사악한 것이 오지 못하도록 적당한 표식을 꽂아 경계도 만들었다.
경계를 만드는 것은 지금까지 쌓여 있던 마지막 신앙과 믿음을 모두 다 소모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십오 년 이상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그만큼 지네는 오래 살아왔고 많은 사람을 잡아 먹어왔다. 이번에는 그 모든 것을 써서 단 하나를 살리고자 했다.
지네는 옥분이 빨리 사라질 것을 슬퍼했다. 그것을 안 옥분은 웃었다. 지네와 함께 세상을 유람할 때 보여주던 잔잔한 미소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봤던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었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대로 세상을 유람해봐야 얼마나 더 즐거운 일이 있겠습니까? 세상은 볼 만큼 봤고 즐길 만큼 즐겼습니다. 원래라면 보지 못할 것들을 봤고 경험하지 못할 것을 다 경험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그러니 저는 만족합니다.”
옥분의 그런 웃음을 지네는 아주 오랜만에 봤다. 그렇기에 지네는 더 슬퍼할 수 없었다. 옥분이 하고 싶은 대로 지네는 하게 두기로 했다.
아이의 성장은 빨랐다. 처음에는 겨우 뒤집기를 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금세 걸음마를 했다. 어느새 말도 하고 뛰어다녔고 무엇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먹을 수 없는 것인지 구분해내기 시작했다.
지네는 그것이 경이로웠다.
분명 아무것도 모르던, 태어나자마자 걷지도 못하는, 그런 짐승보다도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게 사람의 아이였는데. 어느새 어엿한 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한설아.”
옥분은 아이를 한설이라 이름 붙였다. 큰 눈이 오는 날 주웠기 때문이었다.
“네, 언니.”
옥분은 자신을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 했다.
자신은 어머니라 불리울 만큼 대단하지 않았기에, 한설을 낳은 진짜 어머니는 따로 있었기에.
그래서 옥분은 자신을 언니라 부르라 한설에게 가르쳤다.
“내가 사라지거나 혹은 따로 말해주기 전까지는 절대로 바깥으로 나가지 말거라.”
“바깥이요?”
“그래. 언젠가 너도 바깥에 나갈 거란다.”
옥분은 한설에게 바깥이란 어떤 곳인지 가르쳤다.
종종 바깥에 나가서 직접 바깥의 변화를 체험하고 오기도 했다. 언젠가 이 아이는 자신들에게서 벗어나 바깥에서 살아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한설은 바깥을 알아야 했다.
“바깥에 나가면 언니랑 시장이란 곳에 가 보고 싶습니다!”
“바깥에 네가 나갈 땐 너 혼자 나갈 거란다. 그때는 이 언니는 나가지 못해, 한설아.”
“음, 언니 없이요?! 저는 그럼 안 나갈래요!”
옥분은 피식 웃었다.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기도 했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옥분은 조금 씁쓸했다.
조금 욕심을 부렸던 건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함께 살자 하는 아이의 칭얼거림을 이겨내지 못해 결국 지금에까지 왔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한설은 언젠가 인간들 사이로 돌아가야 했고, 자신들은 사라질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목표는 달성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옥분은 한설의 귀신을 보는 눈을 닫았다.
옥분은 아이가 자라는 동안 귀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감췄다. 지네 역시 알지 못하게 했다.
쓰지 않은 기관은 약해진다. 마찬가지로 영시 역시 계속 보지 않으면 퇴화한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한설은 평범하게 살 수 있다.
옥분은 그렇게 믿었다.
이제 놔 줄 때가 되었다.
“경계는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세월이 꽤 흐른 어느 날 밤에 옥분이 물었다.
그러나 그건 경계를 만든 지네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몇 달, 혹은 몇 주를 버틸 수 있을까. 이미 한계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옥분은 한설을 기르는 것이 행복했지만 이제는 이별을 더 미룰 수 없음을 알았다.
어느새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십오 년을 넘어 이십 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옥분이 보기에 한설은 늘 아이였고 그래서 너무 오랜 기간 품고 말았다.
“가르칠 것은 많건만….”
옥분은 한탄했다. 하지만 끝에 다다른 지금 다른 방법은 없었다.
옥분은 지네에게 이제는 한설을 바깥으로 내보내자 말했다. 지네 역시 구슬픈 소리를 냈다.
먼저 옥분이 모습을 감추기로 했다. 그리고 그래도 나가지 않으면 지네가 모습을 드러내 바깥으로 나가게 유도하기로 했다.
그러고 며칠 뒤 옥분은 모습을 감췄다.
첫째 날 한설은 그저 집안을 지켰다. 옥분이 곧 돌아오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한설이 옥분을 찾는 듯 돌아다녔다. 지네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겁을 줘서 바깥으로 내보내기로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겁을 줬다.
처음에는 소리만 들려줬다. 한설은 신경을 곤두세우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네는 조금 더 크게 소리를 냈다. 한설은 그 소리에 놀라 달리기 시작했다.
지네는 한설을 쫓았다. 크게 다칠 만한 지형이 아닌 곳으로 몰았고, 자꾸 넘어지는 한설이 걱정되어 최대한 천천히 움직였다. 한설이 힘들어하면 근처에 머물러 쉴 수 있게, 길을 이상하게 들면 소리를 내 바른길로 가게 유도했다.
한설은 잘도 뛰었다. 저것이 얼어 죽을 뻔했던 갓난애였다는 것이 지네는 믿기지 않았다.
결국은 옥분이 맞았던 것이다.
자신들이 살 수백 년의 삶보다는 저 아이가 사는 것이 더 가치 있었다.
순간, 한설과 지네는 눈이 마주쳤다. 그때 지네는 한설의 눈에서 공포와 절망을 보았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처녀들의 눈과 같았다.
그 눈은 지네의 악몽이었다.
옥분이 마지막까지 보여주지 않기 위해 감았던 눈.
지네는 자신도 모르게 키릭, 하는 소리를 냈다. 한숨과 비슷한 것이었다.
옥분이 위로했다.
“어쩔 수 없지 않았습니까. 이리하지 않고서는 저 아이를 내보낼 수 없을 겝니다. 새는 둥지를 떠나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지네는 아주 조금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이 한 일들이었다.
자신이 잡아먹은 이들은 다 저런 눈이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자신이 잡아먹은 것들을 기억조차 못 한다는 것이었다. 몇 명을 잡아먹었는지, 몇 번을 그렇게 반복했는지 지네는 스스로도 몰랐다.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사람에게는 사람의 도리가 있는 법이고 신비에게는 신비의 도리가 있는 법입니다. 당신은 신비 그 자체였으며, 인간성을 가진 이후로는 단 하나의 목숨도 앗아가지 않았습니다. 본능을 거스르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존경받을 일이지 자책해야 할 일이 아니랍니다.”
옥분의 말을 마지막으로 둘은 한설이 살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허전한 공간이었다.
자신들이 살아온 삶과 비교한다면 한설과 지낸 시간은 찰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지네는 경계를 굳이 거두지는 않았다. 그리하면 조금 더 살 수 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둘은 이대로 그냥 사라지고자 했다. 그렇게 긴 여정의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한설이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