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13)
옥분의 부모님은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못 먹어 생긴 병이었다.
가난 때문이었다.
옥분은 어린 남동생과 단둘이서 세상에 남겨졌다.
그때 옥분의 나이는 고작 일곱 살이었다. 동생을 돌볼 방법은 없었고 옥분을 지켜줄 어른도 없었다.
옥분은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대로면 두 사람 다 죽는다는 것도 알았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야 했다.
이 마을에서 동생을 살리는 방법이라 해봐야 뻔했다.
자신이 제물이 되면 된다.
옥분은 그걸 조건으로 동생을 마을의 한 집에 입양 보냈다. 옥분이 보기엔 마음 착한 부부였다.
부부는 자신도 마지막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길러 주겠다 했지만, 옥분은 거절했다.
자신은 그 당집에서 살겠노라 말했다.
정이 들면 살고 싶어질 것이었다.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자신의 마지막이 될 곳에 익숙해져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당황했다.
어린아이가 그곳에 직접 들어간다고 하니 찔렸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마을 안에서 살아도 되지 않겠냐 말했다.
하지만 옥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당집 앞에 옥분은 섰다. 그리고 당당한 자세로 인사했다.
“오늘부터 신세를 지게 된 옥분이라 하옵니다.”
옥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금까지 제물이 된 소녀들은 모두 울며 들어갔다. 일부는 기절한 채 들어갔다.
제 발로 그곳에 들어가도 되겠느냐 물은 소녀는 옥분이 처음이었다.
“신님은 여기 사시는 건가요?”
옥분은 당집 안을 휘 둘러봤다.
원래라면 사람이 살 곳은 아니었다. 화려하게 칠해져 있었고 먼지가 가득했다. 사람이 살기 위한 물건들은 없었다.
옥분은 청소를 시작했다.
자신이 살 곳이었고 자신이 마무리될 곳이었다. 더러운 곳에서 살고 죽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 청소를 하는 데는 하루가 꼬박 걸렸다.
“어우, 더러운 건 그래도 거의 치웠네. 아무리 신님이라도 청소는 좀 하셔야지요.”
옥분은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신님이 자기 말을 듣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실, 두려움을 덜기 위해 하는 말에 가까웠다.
“저는 앞으로 이곳에서 살겠습니다. 살날이 정해져 있지만, 그동안 잘 살고 싶어 이곳으로 왔습니다.”
고작 일곱 살이 할 말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말투였다. 그리고 그것은 두려워하는 자신을 내몰기 위해 되뇌는 말이었다.
어린 나이지만 자신의 끝을 옥분은 받아들여야 했다.
옥분은 어디선가 이불을 얻어 와 덮고 누웠다. 온종일 청소를 했기 때문에 피로해서일까, 옥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지네는 그 모든 말을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물로 바친 것인가 했으나, 평소에 바치던 것보다 어린것이라는 걸 알았다. 또 아직 흉년이 들지 않았음도 알았다.
이전에도 별 것 아닌 일로 이곳에 잠시 들르는 인간은 많았다.
지네는 옥분이 곧 다시 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옥분은 그곳에서 계속 살았다.
옥분은 매일같이 조잘거렸다.
“어제는 산에서 옥색 돌을 찾았습니다. 진짜 옥은 아니지만, 색이 참 고와요.”
“오늘은 비가 오니 좋은 일이에요. 올해 농사는 잘 되겠군요.”
“어제 제가 불을 꺼트렸지 뭡니까. 결혼해서 시어머니라도 있었다면 엄청 혼날 뻔했습니다.”
“올해도 풍작이로군요. 신경을 써 주신 게지요. 감사할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가도 소녀는 떠나지 않았다. 지네는 처음으로 인간 여자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게 되었다.
아이는 시종일관 밝았고 여전히 시끄러웠다.
아이는 점점 자랐다. 키가 컸고 가슴이 자랐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는 자랐다.
시간은 서서히 흘렀지만, 아이가 자라는 것은 순간이었다.
어느 날 아이에게서 처음으로 피 냄새를 맡았을 때 지네는 아이가 다친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건 월경이었다.
옥분은 처음으로 사당 안에서 눈물을 보였다.
지네는 아이가 우는 것을 처음 보았고 어머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당황스러웠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처음, 지네는 옥분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지네의 몸은 거대랬다. 방안을 거의 꽉 채울 정도였다. 벽도, 문도 다 새까만 몸통으로 막아버린 지네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저 옥분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옥분의 얼굴은 약간 붉었으나, 눈만은 새까맸다. 지네는 그렇게 가까이에서 사람의 눈을 본 건 처음이었기에 조금 신기해했다.
옥분은 흠칫 놀랐다. 진짜로 지네가 나타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옥분은 자신의 마지막인 줄 알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지네는 옥분을 잡아먹지 않았다. 그저 곁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변화가 없자 옥분은 눈을 떴다. 하지만 아직 두려워 말은 하지 못했다.
바깥에서는 빗소리가 들렸다. 투두두둑 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옥분이었다.
“저를 잡아먹으러 오신 겁니까.”
인간이 지네에게 한 첫 질문이었다. 요청이나 부탁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지네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지네는 잠시 고민했다.
이윽고 지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은 이전에 봤던 인간의 몸짓을 따라 한 것이었다.
그것이 지네가 처음으로 해 본 대화였다.
옥분은 지네가 나타났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대답을 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이전까지의 우울함은 싹 가셨다.
“그럼 제가 신님의 자리를 더럽혀서 화를 내러 오신 겝니까?”
지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아니라면 호기심이 생기는군요. 소녀를 위로하러 오기라도 하신 겁니까.”
지네는 고개를 저으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몰랐지만, 옥분의 질문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이 하려던 것은 위로였다.
옥분은 까르르 웃었다. 집채만 한 지네가 자신을 위로하러 나타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웃긴 듯했다. 지네는 여전히 당황한 채 그저 가만히 있었다.
“아니, 생각도 해 본 적 없던 일이라 결례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군요. 오늘이 제 마지막은 아닌 모양입니다.”
지네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옥분은 한 번 더 웃더니 자리에 누워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배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지네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앉거나 서거나, 절하거나 말거나는 지네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옥분은 이불을 덮고 누웠다.
지네 역시 따라서 웅크렸다. 옥분이 누워 있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지네는 똬리를 틀었다.
“때로는 곁에 무언가가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법이로군요. 역시 오래 살아 그런지 잘 아십니다.”
옥분은 잠들기 직전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네는 옥분이 완전히 잠들기 전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것이 처음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처음이 있다면 두 번, 세 번은 어렵지 않았다. 소녀가 홀로 있을 때 지네는 종종 나타났다.
그것은 흥미이기도 했고 의외로 재미있기도 했다. 인간이 어떤 것인지 지네는 옥분을 보며 배웠다.
옥분이 마을에 가는 일은 드물었다. 그저 자신만의 일을 하며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렇기에 홀로 돌아다닐 때가 많았다. 가끔은 돌을 줍고, 예쁜 것은 주머니 챙겨오기도 했다.
애초에 제물로 바쳐질 것을 알았으니 다른 사람들도 딱히 뭔가 시키지는 않았다.
“도와줄 생각은 없으시지요?”
그날도 옥분은 예쁜 돌을 주워와 열심히 갈고 있었다.
옥분의 말에 지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을 부수고 갈고 하는 것을 지네가 도와줄 수는 없었다.
대신 지네는 산짐승 하나를 잡아서 건네줬다. 밥이라도 챙겨 먹으라는 의미였다.
소녀는 낑낑대며 그 짐승들을 마을에 가져다줬다. 소녀가 얻은 것은 그저 며칠 분량의 고기뿐이었다.
“신님 덕분에 오늘의 식사는 꽤 풍족할 모양입니다.”
소녀는 지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지 않고 지네는 자리를 떴다. 자신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기에, 저렇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게 민망했다.
이후로도 지네는 종종 멧돼지나 다른 짐승들을 잡아서 소녀에게 줬다.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녀를 보살폈다.
지네는 인간을, 옥분을 지켜보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쓸모없는 것을 애지중지하기도 하면서 소중한 것을 대뜸 남에게 주기도 한다. 하등 쓸모없는 일인 것 같은데도 열심히 하고, 필요한 일임에도 대강대강 하다가 나중에 낭패를 보기도 했다.
소녀의 삶을 지네는 지켜봤다.
* * *
소녀는 성장했고 어느새 여인이라 불릴 나이가 되었다.
여인은 자신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것은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각오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은 지네였다.
지네는 몇 년 안에 흉작이 올 것을 알았다. 아직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지력이라는 개념을 지네는 알았다. 오래 풍작의 신으로 섬겨지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었다.
지네는 풍작이 들 수 있도록 노력했다. 덕분에 꽤 긴 시간 흉작을 경험하지 않고 마을의 사람들은 살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옥분이 스무 살을 넘길 그해에 흉년이 들었다.
지금까지 사람을 바치던 중에는 가장 오랜 기간 풍년이 들었지만, 결국 끝이 온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사당으로 찾아왔다.
“때가 되었다.”
촌장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옥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농사 돌아가는 꼴이야 보면 안다. 이미 알고 있던 일이다.
자신이 도망이라도 갈까 봐 두려웠던 걸까,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꼴이 퍽 우스웠다.
하지만 그래서 볼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옥분은 남동생을 봤다.
남동생은 울고 있었다. 옥분은 남동생에게 울지 말라 말한 뒤 한번 꼭 안아줬다.
옥분은 곱게 옷을 차려입었다. 홀로 당집에 들어가 비녀를 틀어 올렸다.
밤이 되었고 여전히 옥분은 당집의 한 가운데 앉아 있었다.
지네는 나타나지 못했다. 차마 나타날 수 없었다.
하지만 옥분은 지네가 그곳에 있는 걸 이미 알았다.
“이 비녀, 기억하십니까. 이전에 제가 봐 뒀던 예쁜 색의 돌을 부수고 갈아 만든 것입니다. 그때 고기를 잡아다 주셨었지요.”
옥분은 홀로 말했다. 처음 이 당집에서 살게 되었던 날처럼 옥분은 계속 혼잣말을 했다.
“한 번쯤 이렇게 차려입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밥은 얻어먹을지언정, 돈이나 패물을 받을 수 있을 리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직접 만든 것입니다. 투박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잘 만들었다 생각하고 있는 물건이지요.”
옥분은 그리 말하며 방 안을 슥 둘러봤다.
첫날과는 다르게 한 톨의 먼지도 없었다. 만족스러운 청소 상태였다. 옥분은 미소를 띠었다.
“보고 계신 거 다 압니다. 나오시지요.”
그 말대로였다. 지네는 보고 있었고 또 다 듣고 있었다.
지네는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움츠린 모양새가 꾸중을 들은 어린아이 같았다.
옥분은 웃음이 났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서로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정해져 있던 결말이었다. 흉년이 든 이상 지네는 사람을 잡아먹어야 했다. 이제 와서 먹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희 집은 망했습니다. 흉년 때문이었지요. 정확히는 흉년 때문만은 아니고 그 시기 어머니가 아프고 그 때문에 아버지가 마음에 병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흉년이 아니었다면 이리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옥분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것은 아주 어린 날, 이제는 십 년도 더 넘은 옛이야기였다.
“저를 잡아 드시지요. 그것으로 흉년은 끝날 겁니다. 그래야 저 같은 사람이 덜 나올 겁니다.”
여전히 지네는 망설였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네 자신조차도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옥분의 말 대로였다. 이전까지는 의식하지 않았으나, 옥분을 잡아먹는 것은 자신의 의무였다. 잡아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옥분은 눈을 감았다.
“제가 눈을 뜰 일은 없을 겁니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시간을 끌면 제 두려움이 길어질 뿐입니다.”
옥분은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지네는 잠시 망설였지만 오래 끌 수는 없었다. 결연한 척하고 있지만, 옥분은 공포에 떨고 있을 터였다.
지네는 아주 오래전 느꼈던 죽음의 공포가 기억났다.
지네가 아직 아무것도 아닐 때,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모습.
자신이 먹어오던 처녀들도 그러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오히려 옥분이 이렇게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지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차라리 도망이라도 치지! 저항이라도 하지! 그랬으면 자신이 놓아줄 수 있었을 텐데.’
키이이이이이익!
옥분은 도망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