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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32화 (32/269)

3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12)

지네는 한설의 이름에 반응했었다. 이 반응으로 인해 더욱 확실해졌다.

“지네는 한설을 잡아먹거나 가두려 했던 게 아니야. 오히려 보호하려고 했던 거겠지.”

그렇지 않다면 한설의 이름에 그렇게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상관없는 얘기야. 이건 널 죽이려고 했다고.”

태주의 말에도 월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월이는 조금 더 힘을 줘 지네를 밟았다.

지네는 움찔거리기는 했으나 저항은 하지 않았다. 월이는 그런 지네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또 누가 어떻게 다칠 줄 알고?”

그 ‘누구’가 자신임을 태주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태주는 죽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뭐, 내가 먼저 도발하기도 했어. 열도 좀 받았겠지. 어쨌든 난 지금 무사하잖아? 무난하게 제압했으니 됐어.”

“그래서, 이야기한다고? 이거랑?”

월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입도 없고 지금까지 낸 소리는 괴성뿐이었던 지네와 대화를 한다는 건 월이가 보기엔 말이 안 되었다

“난 반대야. 그냥 죽일래.”

월이는 태주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다.

“내 말 들어봐. 저 지네는 이제 우릴 해칠 마음이 없어. 말하자면 긴데…. 정말 안 죽여도 돼.”

월이는 태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한 발로 지네의 머리통을 밟은 채였다.

대화하는 순간에도 월이는 지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겠다는 듯 월이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이걸 어쩐다 싶어 태주는 난처했다. 자신을 위해서 화내 주는 것이라 그러지 말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결국 월이는 한숨을 폭 내쉰 뒤 말했다.

“…. 하, 맘대로 해. 하지만 이 자세를 바꿔줄 생각은 없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곧장 찌를 거야. 이야기가 좋게 진행되더라도 조금만 의심스러우면 바로 찌를 거야. 아니어도 그냥 수틀리면 찌를 거야.”

뒷말이 살벌하긴 했지만, 이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이 이상 월이의 태도를 유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태주 자신도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자각이 있었기에 그 이상을 요구하고 싶지 않긴 했다.

“그래서, 이거 입은 어떻게 열게? 고문이라도 할 거야?”

월이의 말에 태주는 고민했다. 성대가 없으니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거고 그렇다고 행동으로 뭔가를 표현하도록 월이가 지네를 내버려 두지도 않을 터였다.

“그건 되었다. 내가 대신 말하지. 알고 싶은 건 죄다 말해주마.”

말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태주는 고개를 돌렸다. 월이 역시 시선을 잠시 그 방향으로 향했지만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날 선 태도로 월이는 쏘아붙였다.

“아까와는 꽤 분위기가 다르시네?”

목소리의 주인은 옥분이었다. 옥분의 표정은 차분했다. 이전에 자신에게 보였던 표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뭐, 되었다. 차마 더는 볼 수가 없어서 말이지.”

옥분이 시야에 나타나자마자 지네는 갑작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월이는 당장이라도 쇠붙이를 쑤셔 넣을 것처럼 지네를 몰아붙였지만, 태주가 말렸다.

“아니야. 그냥 둬.”

옥분은 천천히 지네에게로 향했다.

월이는 내키지 않는 투로 무기를 치웠다. 옥분은 천천히 지네에게로 향했다. 지네 역시 천천히 옥분에게 향했다.

“사실은 저도 이리 오면 안 되는 겁니다만.”

끄르르르르륵-

구슬프게 지네는 울었다.

정확히 울음소리인 것은 아니지만 마치 울음처럼 들리는 소리를 지네는 냈다.

“이미 다 들키지 않았습니까.”

옥분은 지네에게 다가가 머리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지네의 입 부분에서 체액이 계속 흘러나왔지만, 옥분은 개의치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맞겠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네요.”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

태주가 끼어들었다.

“제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자 당신이 마지막까지 말하지 않으려 했던 부분이었죠.”

태주가 옥분을 보고 나서 가진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대체 당신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그리고 그 지네와 어떤 관계인지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 좀 알 것 같은가?”

옥분은 지네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언가를 포기했기에 좀 더 누그러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두 분의 관계는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한 모를 것 같지만, 당신의 정체 정도는 짐작이 가는군요.”

옥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태주를 쳐다보았다.

“내 정체라….”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이들은 호랑이에게 종속된 귀신이 되지요. 당신과 지네는 그렇다기엔 너무 돈독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본질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 당신은 아마 지네에게 잡아 먹혔던 사람 중 하나겠죠.”

옥분은 긍정하는 듯 답이 없었다.

“다만 지네가 왜 당신의 의견을 들어주는지, 또 당신은 왜 지네를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그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긴 해.”

옥분은 침음성을 삼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이젠 우리 맘대로 하는 거죠. 우리가 이겼으니까.”

그 말을 들은 지네는 사 분의 삼밖에는 남지 않은 몸통을 뒤틀었다.

그 모습을 본 월이 역시 쇠 철봉을 다시 치켜들었다.

“어휴, 안 죽여요. 싸울 것도 아니고. 그만해 둘 다 좀.”

“그치만 저게 먼저…!”

월이는 불만을 표했고 지네 역시 흥분한 듯 보였으나, 지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고로 월이가 일방적으로 주절거렸다.

“저게 다시 위협적으로 나오잖아.”

“아냐. 저건 보호하려 드는 거잖아. 아마 내 말을 듣고 오해했나 보지. 어쨌든 둘 다 잠시 멈춰줘.”

어쨌든 한 괴물과 한 사람은 서로에게 이빨을 들이미는 것을 멈췄다.

태주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뭐, 싸움은 그만하게 한다 쳐도 이대로라면 평생 이러고 있을 거 같으니 적당히 이야기라도 좀 해 주시죠.”

“무슨 이야기 말인가?”

“당신과 지네의 관계라던가, 한설이와의 관계 같은 거 말이에요.”

“굳이 그걸 알 필요가 있나? 너희들 마음대로 하면 될 것을.”

“뭐, 저희가 이겼으니 저희 말대로 해 줘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들을 어떻게 할지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요.”

옥분은 결국 잠시 침묵하더니 포기한 듯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말하마. 우리가 어쩌다 이리된 것인지를.”

* * *

먼 옛날, 그것이 그냥 지네일 때가 있었다. 그저 조금 거대할 뿐 별다를 것 없는 지네였다.

요즘 말로 하면 돌연변이 정도로 불렸을 것이다.

커다란 지네는 사람들의 터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있어 근처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자리를 잡고 보니 우연히 마을이 주변에 있었을 뿐이었다.

큰 지네는 눈에 띄기 쉬웠고,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지네를 발견했다.

자신들이 이전까지 본 적 없던 거대한 지네에 사람들은 놀랐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어느새 지네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소문엔 살이 붙기 마련이었다.

“저 산에 큰 지네가 산대!”

“저 산에 집채만 한 지네가 산대!”

“저 산에 거대한 지네가 사는데, 그게 지네들의 왕이래!”

“저기 거대한 지네는 두려운 존재이니 건드리면 안 된대!”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고 그 소문들 덕분에 사람들은 지네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지네의 신’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우연히도 지네는 신이 되었다.

처음에는 신이 되었다 해도 오래 산다는 것 외에 달라진 게 없었다. 세월이 갈수록 더 크고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지네가 신이 된 이후 처음으로 인간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사건이었다.

지네는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맹수를 물리쳤다.

세월이 많이 흘러 강해진 지네에게 고작 호랑이 한 마리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이전에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본 사람들이 있었다.

“사,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를 지네신이 잡아주었다!!”

지네가 한 일은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고 사람들은 그 지네를 수호신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신에게 많은 것을 빌었다. 마을의 평안, 건강, 풍작, 보호 등 온갖 길흉화복을 사람들은 지네에게 빌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러기 시작한 뒤 마을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신앙은 더욱 두터워졌고 지네는 점점 더 강해졌다. 지네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혜가 생긴 것이다.

오래 살았고, 강해졌고, 지혜로워졌다. 사람들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이 생겼고 그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역할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마을에 들어오는 외부의 것들을 차단한다.’

‘맹수로부터 사람을 지킨다.’

그리하면 자신은 더 오래 강한 존재로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풍년은 지네와 상관없었다. 건강도 지네와는 상관없었다. 당연히 그건 지네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어느 해, 마을에는 흉년이 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몇 년을 농사를 잘 지었다면 망하는 해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마을의 사람들은 이유를 몰랐다. 지네에게 빌었는데도 농사가 잘되지 않는다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이고!!! 아이고오오오!!”

마을 곳곳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못 먹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져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지네가, 지네신이 노한 게 분명합니다!! 우리가 지네신께 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개였다. 그리고 또 소나 돼지 따위였다.

지네는 주니까 받았고 받았으니 먹었다. 그러나 농사는 여전히 잘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했다. 정성이 모자라서 분노한 것이 분명하다고.

“개도 바치고 돼지도 바치고 소까지 바쳤는데, 뭘 더 바치란 말입니까요!”

“가장 귀중한 걸 바쳐야지.”

사람들은 그러면 분명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지네의 터에 사당이 지어졌다. 당집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 집을 만드는 것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서 지네를 모실 공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곳엔 고운 옷을 입은 한 소녀가 앉혀졌다. 처음 가장 귀중한 것을 바쳐야 한다 했던 사람의 딸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살려주셔요!!!”

소녀는 문을 대차게 두드렸지만, 밖에서 잠긴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지네가 내려와서 제물을 받았다.

다음 날 당집에 사람은 없었다.

빈 당집만이 있었다.

사람들은 지네가 공물을 받았다며 기뻐했다. 그리고는 이제 흉년이 끝나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바로 그 해, 풍년이 들었다.

당연히 땅 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력이 쇠하고, 몇 년간 농사는 제대로 되지 않다가, 어느 정도 소모된 지력이 복구되자 다시 풍년이 든 것뿐이었다.

그러나 옛사람들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사람을 바치면 풍년이 들게 해 준다는 믿음만이 남았다.

‘농사가 되지 않으면 마을의 처녀를 바친다. 그러면 풍년이 든다.’

그렇게 지네는 사람을 먹고 사람을 보살피는 그런 신이 되어있었다.

제물을 받으면 풍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마을에서 처음 처녀를 바치자 주장하고 자신의 딸을 바친 남자는 마을의 유지가 되었다.

마을은 점점 크게 발전했고 번창했으며, 그 결과로 지네 역시 강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 마을의 수호신으로, 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있었는지 지네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몇 세대를 이어가며 사람들은 흉작이 들 때마다 처녀 하나씩을 바쳤고 그때마다 지네는 별생각 없이 먹었다.

그러나 시대는 점점 변했고 농사만으로 마을이 잘 될 수는 없었다.

마을의 번창을 위해 처녀를 바치는 날은 많아졌고 자신의 딸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지네에게 바치기 위해 사람을 길러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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