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11)
‘당했다.’
경계의 끄트머리까지 도착한 월이가 돌아가려는 찰나에 든 생각이었다.
“이런 미친!”
월이는 다시 바깥으로 나올 때 길을 찾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가는 길목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꺾어 놨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마치 헨젤과 그레텔 같다 말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복선이었던 것일까. 그 흔적은 훼손되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원래 꺾여 있지 않던 나뭇가지들도 잔뜩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월이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열고도 종종 길을 잃곤 하는 길치였다. 그러니 산속에서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미치겠네. 언제 꺾은 거지?”
꽤 공들인 작업이었다.
나올 때는 훼손된 나뭇가지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돌아가려고 뒤를 돌아보니 상태가 이랬다.
의도적인 게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그러니 이건 명백한 함정이었고, 자신과 태주의 합류를 방해하는 행위다.
어쩌면 이미 위험한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월이는 빠득 하고 어금니를 갈았다.
“개짜증나네, 진짜”
계략에 당했다는 것도 짜증이 났고 하필이면 자신이 홀로 떨어져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도 화가 났다.
이대로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월이의 얼굴에 분노가 차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금씩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눈동자가 점점 붉게 물들었다. 머리카락은 잿빛이 되었고 이빨은 더 날카로워졌다.
마침 밤이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아니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
“날 너무 만만하게 봤어.”
이를 가는 소리를 내며 월이는 곧장 주변에 있는 가장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월이의 눈은 어둠 속에서 더욱 또렷해졌고 후각은 더 예민해졌다.
다행히 찾던 물건은 이미 손에 쥐고 있다. 월이는 태주가 있을 법한 장소를 찾았다.
“늦으면 안 되는데….”
제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라며 월이는 달을 등에 지고 뛰어올랐다.
* * *
“우왁!”
비탈길에서 미끄러 떨어지며 태주는 소리를 질렀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탈 때 느껴지는 그런 감각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롤러코스터보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안전장치 없다는 것이 공포감을 더했다.
까드득- 까드득-
말이야 멋있게 했지만 사실 태주가 할 수 있는 일은 도망뿐이다.
“아까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하, 참.”
어처구니없어하는 옥분을 뒤로하고 태주는 지네가 오는 방향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졌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거리는 좁혀졌다.
멀리서 옥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이라도 데리고 나간다면 어디 한번 멈춰 달라고 말해 볼 생각인데.”
태주는 헥헥대느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눈빛만 봐도 절대로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잡히면 좋은 꼴은 못 볼 텐데.”
태주는 그 말을 못들은 채 하며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이미 몇 번이고 지네의 맹공을 피해냈다. 가끔은 지형을 이용해서, 때로는 심리전에 성공하는 것으로 몇 번의 위기를 넘긴 태주였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 체력도 부족했고 더 이상 같은 방법이 지네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은 월이가 도착하지 않으면 이 위기상황을 넘길 방법은 없다.
딱딱딱- 까드득!
“우왁!”
튕겨나듯 뛴 태주의 등 바로 뒤에서 이빨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네의 목적은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별로 없다.
‘월이에 대항할 수 있는 인질이 필요하겠지.’
확실히 지네는 월이보다 느리고 약했다. 한때 신처럼 여겨졌다 해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만큼 힘을 쓸 수 없다.
그러니 인질이 꼭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목숨을 노리지는 않는다는 것이 잡혀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마 다리 하나쯤 자를지도 모르지. 아니, 데리고 나갈 걸 원하고 있으니 자르는 건 팔이려나?’
태주는 자신이 잡혀 있다 해도 월이가 지네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신의 몸은 소중했다.
키이이잇!
지네가 비명 같은 것을 내질렀다.
그것은 목소리라기보다는 마찰음에 가까웠다. 쨍하고 울리는 소리에 태주는 귀가 아파 왔다. 순간적인 강한 이명에 태주가 몸을 비틀거리다 쓰려졌고 내리막으로 빠르게 굴러떨어졌다.
태주의 눈에 나뭇가지들이 휙휙 지나갔고 이젠 정말 끝인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주머니에 시아가 넣어 준 방울이 떠올랐다. 그래, 이게 있었지.
“윽!“
태주의 몸이 나무에 부딪히며 멈췄다.
다른 나무들에 가려졌는지 지네는 보이지 않았고 지금이 이 방울을 쓸 타이밍이었다.
태주는 방울을 저 멀리 던져버리곤 근처 바위 뒤로 숨었다.
방울은 사람이 아닌 것에게는 소리가 들린다 했다. 아마 지금까지 지네는 저 소리를 들었을 거다.
생각대로 된다면 지네는 아마 저 방울을 따라갈 것이다. 그럼 십 분 정도는 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울은 굴러굴러 아래로 떨어졌다.
스스스슷- 까드득, 까득
지네가 태주가 숨은 바위 뒤로 지나갔다.
태주는 몸을 빼꼼 내밀어 지네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했다.
‘나이스!’
태주는 재빨리, 그리고 조용히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바위를 빙 돌아 오르막을 올랐다.
키이이이이이익!!!!
그렇게 오 분 정도 올랐을까, 지네의 포효가 들려왔다. 속았다는 것을 생각보다 빨리 깨달은 것이다.
“망했네, 이거.”
시간을 벌긴 벌었지만 태주가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훨씬 짧았다. 곧이어 추격전이 다시 시작되었고 태주는 벽으로 몰아세워 졌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지네는 키리릭거리며 태주의 퇴로를 차단했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몸짓에서 화가 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지네는 위협적으로 턱을 한번 여닫아 크게 딱 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를 냈다.
이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태주는 곧 지네에게 제압당할 터였다.
“음, 지금 말로 할 생각은 없죠…?”
혹시나 싶어 태주는 물었다.
지네는 딱- 하고 턱을 크게 열고 닫았다.
“이야, 이거 X된 거 같은데.”
지네는 큰 턱을 여닫으며 태주를 덮치려 했다. 태주는 포기하지 않고 지네의 공격을 피하고자 눈을 부릅떴다.
그 덕분에 태주는 기적을 볼 수 있었다.
깡!!!
금속성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월이가 지네의 옆구리를 쳐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젠장, 믿고 있었다구…”
조금은 장난처럼 태주는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기적과도 같은 타이밍이었다.
월이의 손에는 꺾어 온 도로교통표지판이 있었다. 그것이 이번 월이의 무기였다.
“안 늦었지?”
지네를 한번 크게 타격한 월이는 한쪽 팔을 태주에게 내밀었다. 붉은 눈과 회색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요사스럽게 빛났다.
“조금 빨랐어.”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말을 하면서 태주는 내민 손을 붙잡았다. 월이는 태주를 한 번에 슥 일으켰다.
태주는 발목에 약간의 통증을 느꼈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얼음찜질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쉴 수는 없다.
태주는 통증을 참고 두 다리로 섰다.
“그런데 어떻게 왔냐?”
빠르게 와 준 것은 다행이었으나, 어떻게 왔는지는 의문이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원래 있던 곳에서 꽤 멀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월이가 자신을 못 찾을 거라 생각했던 태주였다.
“소리가 들렸어.”
“소리?”
“응. 방울 소리. 멀리서도 잘 들리더라.”
월이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는 표지판을 양손으로 빙빙 돌려 한번 휙 털어냈다.
표지판에서 지네의 체액이 후두둑 떨어졌다.
월이는 처음 태주의 상태를 확인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지네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일격을 먹이기는 했지만, 지네는 확실히 단단했다. 죽일 생각으로 친 것이 고작해야 앞쪽의 다리 몇 개밖에는 자르지 못했다.
아무리 봐도 치명상은 아니다.
“튼튼하긴 하네.”
월이는 붉은 눈으로 지네를 노려봤다.
누런 체액이 남아있는 표지판의 삼각형 머리 부분을 창날처럼 사용하며, 월이는 다시 곧장 달려들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너, 그거…”
태주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월이가 말을 듣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갔기 때문이었다.
“…조심하라고.”
흥분한 월이와 대화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태주 역시 알고 있었다. 아마 이 싸움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야 할 터였다.
월이가 저렇게까지 화내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태주 역시 직접 본 건 이번이 겨우 두 번째다.
월이는 믿음직했다.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었던가. 그러나 월이 역시 등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쪽 팔에는 마치 창 같은 표지판을 들고 거대한 지네에 맞섰다.
월이의 손에서 부웅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다. 지네의 머리 부분을 노리고 가로로 휘둘러지는 일격이었다.
지네는 재빨리 납작 엎드려 밑으로 피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앞으로 돌진했다.
철봉은 이미 몸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월이는 그 공격을 미처 막지 못했다.
“크윽, 이게!”
월이는 곧바로 봉의 끝부분을 이용해 아래로 찍어 내렸다. 그러나 지네는 이미 몸을 뺀 후였고 봉은 그대로 바닥에 박혔다.
지네는 곧장 바닥에 꽂힌 봉을 물어뜯었다.
상황을 직감한 월이가 곧바로 지네의 머리를 발로 차 때어내려 했으나, 지네는 턱의 힘을 풀지 않았다.
결국, 지네의 의도대로 월이가 들고 있는 표지판의 길이는 사 분의 일가량 줄어들고 말았다.
지네는 조급하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건 일단 달려들고 보는 월이와는 확연히 다른 전략이었다.
“머리를 노리지 마. 너도 한 번에 잡을 생각을 버려.”
태주는 멀리서 외쳤다.
상대가 그저 앞뒤 없이 달려드는 맹수라면 달려드는 타이밍을 노려 한방에 머리를 칠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노련한 존재다. 그런 빈틈을 보여주지 않을 만큼은 경험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월이는 조금 짧아진 표지판을 들고는 다시 거리를 뒀다.
처음에는 월이의 키보다도 조금 길었던 물건이었지만 이제는 머리에서 무릎까지의 길이밖에는 되지 않았다.
월이는 이제는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 확실한 빈틈이 아니라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지네 역시 굳이 위험을 먼저 감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멀리서도 할 수 있는 공격 방법을 지네는 가지고 있었다.
지네는 잠시 몸을 움츠렸다. 월이는 지네가 달려들 거라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크와아아아악!
지내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화염 방사기 마냥 뿜어져 나왔다.
“위로 뛰어!”
태주였다.
반격할 준비만 하고 있던 월이였고,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태주가 먼저 눈치채고 지시를 내린 거였다.
월이는 황급히 뛰었다.
“거봐!! 거대지네는 역시 불속성 맞잖아!!”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몇 미터 위로 뛰어오른 월이를 본 지네는 그대로 고개를 들어 월이를 향해 불을 쏠 준비를 했다.
“위에 나뭇가지 잡고 나무 몸통을 발로 차!”
월이는 곧바로 머리 위의 굵은 나뭇가지를 붙잡아 나무의 몸통을 발로 찼다.
월이가 있던 자리의 나무가 활활 타올랐다.
“창 던지듯이 던져! 밑으로!”
불을 피해 지네의 몸통 쪽으로 쏘아진 월이에게 태주가 외쳤다.
월이의 바로 밑에는 지네가 있었고 표지판은 땅에 박힐 정도로 세게 던졌다.
불을 뿜기 위해 자세를 크게 바꾼 상태였던 지네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콰직- 끔찍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지네는 포기하지 않았다. 표지판을 던져 빈손이 된 월이에게 지네는 달려들 준비를 했다.
무기가 없이 무방비 상태가 된 지금이 바로 월이에게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도 태주의 예상 대로였다.
태주는 마지막으로 외쳤다.
“한설아, 지금이야!”
태주의 외침을 들은 지네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한설이라는 이름에 빈틈을 보이고 만 것이다.
지네는 순간적으로 주변을 훑어봤고 당연히 한설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네가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월이는 박혀 있던 표지판을 뽑아 지네가 상처 입은 부위를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간단한 속임수였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었기에 지네는 속았다.
승부는 갈렸고 지네는 그저 담담하게 패배를 받아들인 듯 몸을 축 늘어뜨렸다.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월이는 지네의 몸통에 박힌 표지판을 뽑아 들었다. 그곳에서 누런 체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월이는 긴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재와 독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매캐한 냄새에 월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굉장히 불쾌하여 견디기 힘든 냄새다.
월이는 무심코 입술에 튄 액체를 혀로 핥았다.
“우웩.”
“어어, 야 왜그래?”
이상하게 비릿한 맛에 월이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토를 했다. 승리의 여운 따위는 느낄 겨를도 없었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이기고 토해서 다행이었다.
* * *
한바탕 속을 게워낸 월이가 비척비척 일어났다. 마치 좀비 같은 모양새였다.
“아직도 토할 것 같아.”
월이의 눈물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떨어졌다.
태주는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월이의 입안에 뭐가 들어갔는지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그저 조용히 등을 두드려 주기만 했다.
어쨌든 월이는 다시 표지판을 쥐었다. 역겨운 것들이 많이 묻어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맨손보다는 훨씬 나았다.
월이의 눈과 머리는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한번 토하면서 마음이 풀린 것인지 ‘지네’를 ‘지/네’로 만들어 마음이 풀린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확실히 많이 진정이 된 듯 보였다.
지네는 아직 살아 있었다. 몸 일부분이 잘려있었지만,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도망가면 살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이미 힘을 다 써버린 탓인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죽일 거야.”
월이는 지네의 목이라 추정되는 부분에 표지판 끄트머리를 들이밀었다.
“죽이지 마.”
태주의 말에도 월이는 표지판을 치우지 않았다.
“이건 널 죽이려고 했어. 내가 안 왔으면 너는 죽을 수도 있었다고!”
월이는 아직 찔러넣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표지판을 찔러 넣을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태주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월이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멈춰.”
“멈추라고? 왜?”
태주는 표지판을 든 월이의 팔을 살짝 누르며 말했다.
“설이를 도우려면 지네를 죽이면 안 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