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30화 (30/269)

3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10)

“다녀왔습니다!”

월이가 큰 통 세 개를 내려놓으며 외쳤다. 태주는 그 양에 당황했다.

“고생했어. 물을 엄청 많이 길어 왔네?”

“헤헤, 사람이 많아졌으니까요.”

태주의 말에 한설이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태주는 생각보다 많은 물의 양에 놀랐지만, 사람이 넷이라면 이 정도는 필요할 거라는 한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해는 졌고 곧 있으면 달이 보일 것이다.

한설이 나타나자 이전보다는 확실히 태도가 부드러워진 옥분은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며 문을 열었다.

일반적인 한옥과는 다르게 한설이 사는 곳은 한 채였다. 그러니 일반적인 한옥보다는 작다. 하지만 그래도 그 한 칸의 건물은 그리 작지만은 않았다.

벽은 흙으로 되어있었고 지붕에는 기와가 얹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비록 아름다운 건물은 아니었으나 깔끔한 집이다. 깨진 기와도 보이지 않고 벽은 고르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둥이었다.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낸 이 기둥은 꽤 수령이 길었던 나무를 이용한 것 같았다. 오랫동안 이 건물이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던 이유는 아마 좋은 나무가 지탱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옥분은 일행에게 말했다.

“먼저 방에 들어가 계시지요. 저는 식사 준비를 하겠습니다.”

옥분은 한설이 돌아온 이후 태주에게 다시 존댓말을 썼다. 태주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참 한설의 앞에서 이미지관리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저도 돕고 올게요! 들어가서 편하게 있으세요.”

한설은 물을 길어 오고 힘들지도 않은지 곧바로 옥분을 돕기 위해 뛰쳐나갔다.

태주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서며 월이를 불렀다.

“일단 말한 대로 들어가자. 둘이서 할 이야기도 있고.”

태주의 말에 월이는 한설을 보던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딱딱한 것이, 월이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으, 이건 참.”

방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은 방의 모습에 말을 잃었다.

건물의 안쪽은 굉장히 화려했다. 마치 시아의 손목 장식의 색깔들처럼 붉고, 노랗고 푸른색이 이곳저곳에 칠해져 있었다.

태주는 바깥에서 건물의 형태를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월이는 아예 상상조차 못 했는지 미간을 구겼다.

“참…. 화려하네.”

“당집이니까. 여긴.”

그러나 이곳은 보통의 당집과는 달리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큼 컸고, 잘 차려져 있었다. 이불이 있고, 베개가 있고 책이 있으며 초와 촛대가 있었다.

“평범한 당집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넓긴 하네. 정말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잠깐의 감탄 이후 두 사람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는 대화를 시작했다.

“너도 눈치챘지?”

“저 한설의 언니가 사람이 아니라는 거?”

태주의 질문에 월이는 눈치껏 알아듣고는 답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역시 알았구나.”

“그 정도는 알지. 날 뭘로 보는 거야?”

월이는 아무리 자신이라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며 말했다.

“근데 말야, 이번 일에서 우리는 싸우게 될까?”

태주가 뭔가 말하기 전에 월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조금 드문 일이었다. 보통은 태주가 이것저것 설명을 한 뒤에야 질문하곤 하는 월이였다.

“그건 왜 갑자기 물어보는 거야?”

“이 근처 길들 말이야.”

월이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설이가 다니는 길, 지나칠 정도로 잘 닦여 있었거든. 그냥 계속 다니다 보니 생긴 길이라기엔…. 누군가 일부러 세심하게 관리한 티가 났어.”

오히려 정류장 앞의 관리 안 된 아스팔트길보다 이 길이 훨씬 좋았다.

“배려가 보였다는 말이구나.”

태주 역시 옥분과 대화를 하며 느꼈던 점이었다.

“그건 나도 느꼈어. 이 안에서 설이는 굉장히 사랑받으며 자라온 것 같아.”

한설은 바깥에 대해 몰랐던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스스로 나가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설이 역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자, 무서운 지네가 있는 이곳으로 언니를 구하러 되돌아왔고.”

태주의 말에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정말 아꼈다는 말이구나.”

이들은 사실상 모녀관계였다. 언니와 동생으로 서로를 부르지만, 거기서 그치기에 둘은 굉장히 애틋했다.

“옥분 씨가 있다면, 아마 지네는 한설이를 해치려 들지는 않을 거야. 최소한 당장은”

지네의 생각이야 모르겠지만, 지네와 협력관계로 보이는 옥분이다. 그 정도는 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도 지네랑 안 싸운다는 거야? 확실히 말해줘.”

실로 머리 아픈 일이었다. 월이는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싸울 준비는 해야겠지. 지네가 설이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우리를 죽이는데 망설임이 있을까?”

“끙,”

월이는 앓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오케이. 그러면 싸울 준비를 하긴 해야겠네.”

“그래. 설령 싸우지 않더라도 준비는 해 두는 게 안전하니까. 그런데 너, 맨손으로 거대한 지네와 싸울 수 있겠어?”

“무리지 그야.”

월이의 무리는 ‘힘’이 아닌 ‘징그러운 것을 만지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물건 같은 건 없잖아. 나무 뽑아 쓰기도 그렇고.”

월이는 불만에 태주는 잠시 고민하다가는 씩 웃었다.

“하나 있었지.”

“있었다고? 그런 게?”

“너, 밥 먹고 어디 좀 갔다 와야 되겠다.”

* * *

저녁식사 내내 한설은 옥분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조잘거렸다.

처음엔 밥을 먹을 땐 떠드는 게 아니라고 주의를 주던 옥분도 한설의 풀죽은 표정에 ‘이번 한 번만이야.’라며 풀어주었다.

덕분에 밥 먹는 내내 아기새마냥 짹짹거린 한설이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태주와 한설은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했다.

별 기대 없었던 식사는 생각보다 상당히 괜찮았다. 월이는 고기가 부족하다고 조금 투덜댔지만, 굉장히 건강한 식단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신선한 채소가 입맛을 더 돋우었던 듯했다.

“식사는 어떠셨나요?”

한설의 질문에 태주는 조금 과장하듯 답했다.

“맛있게 잘 먹었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던데?”

“다행이네요!”

한설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태주 역시도 따라 했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 하늘은 온전히 까맣게 변한 상태였다. 검은 하늘에 하얀 가루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금 월이는 열심히 경계 바깥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터였다. 원래라면 몇 시간씩 걸어야 했을 테지만 지금이라면 아마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지 싶었다.

태주는 잠시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 이후 한설은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태주에게 조심히 말을 걸었다.

“저… 언니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뭔데?”

“그냥… 식사 준비를 하면서 몇 번 더 물어봤거든요. 언니한테 같이 나갈 수 없겠냐고 말이에요.”

“당연히 본인은 나가지 않겠다 했겠지.”

그 태도를 보니 뻔하다.

태주의 말에 한설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서운하다니까요. 그렇게 단칼에 내쳐버릴 줄은 몰랐어요. 안 나간다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다구요.”

한설은 정말로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설은 그 많은 고생 끝에 겨우 언니를 돕겠다고 돌아왔는데, 정작 그 언니라는 사람은 안 나갈 거라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것이었다.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역시 바깥에 혼자 나갈 생각은 없는 거구나?”

“물론이죠. 언니가 억지를 부린다면 저도 억지를 부릴 거예요.”

한설은 씩씩대면서 말했다. 하긴 논리적 설득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냥 목소리 큰 쪽이 이기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태주는 한설이 조금 진정하길 기다렸다가 질문했다.

“네 부탁은 여전히 변함없지?”

“언니를 도와 달라는 거요? 음,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이미 너무 큰 도움을 받았는걸요.”

한설의 정중한 말에 태주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차피 우리도 받아낼 것이 있으니까 돕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무리해서 널 돕기만 하는 거라 생각하면 안 돼.”

“아차, 그랬죠.”

한설도 태주를 따라 배시시 웃었다.

“차라리 안심이네요. 선의로만 포장해서 접근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언니가 말했었거든요.”

“참, 단둘이서 살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네. 어디서 연습이라도 한 거야? 월이 보다도 더 말을 잘하는데.”

“바깥에 나가서 무시당하면 안 된다고 언니가 그랬거든요. 사실 저도 언니도 알고 있긴 했어요. 언젠가 바깥에 나가야 한다는 것 정도는요. 하지만 저는 같이 나갈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이렇게 저만 바깥으로 내보낼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죠.”

한설의 말에 태주는 고민이 많아졌다. 옥분은 한설만 데리고 나가달라 부탁했었다.

“한설아. 그럼 만약 언니 없이 너만 나가야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생각해 본 적 없어요. 하지만 저는 혼자 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든 언니와 함께 나가고 싶어요.”

“그게 네가 바라는 진짜 목표인 거지?”

태주는 그렇게 물었다. 한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방법이 있나요?”

“가능이야 하지. 네가 도와줘야 하겠지만.”

태주는 둘 중 하나가 고집을 꺾어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인가요….”

“그래. 난 거짓말은 잘 안 하거든.”

“다행이네, 요?”

태주의 말을 듣던 한설이 갑작스럽게 몸을 휘청거렸다. 갑작스러웠기에 태주는 당황하며 한설을 부축했다.

“아, 별거 아니에요. 갑자기 조금 졸음이 와서…”

“갑자기? 방금까지는 괜찮았잖아? 원래 이 시간에 잠들곤 하는 거야?”

태주의 질문에 한설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지는 않은데… 오늘은 특히나 졸리네요. 배도 부르고 피곤해서 그럴까요?”

한설은 이젠 거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졸음에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듯했다.

“진짜 평소엔 안 이런데…”

한설은 거의 약이라도 먹은 듯 비몽사몽 했다.

“이런….”

절대 자연스러운 수면이 아니다. 태주는 이게 뭔가 특별한 방법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약이거나 혹은 다른 방법이거나.

그리고 이곳에서 한설을 강제적으로 재울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는 없었다.

“돌겠네.”

태주는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이 구는 한설을 업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거지한다던 옥분이 어느새 밖에 나와 있었다.

“굳이 이렇게 재워야 합니까? 그냥 말로 하셔도 됐을 텐데요.”

“말로는 안 되니 어쩔 수 없었지. 내가 저 아이 고집을 알거든.”

옥분은 한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곤 얼굴을 한번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옥분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분위기에서 풍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고 태주는 생각했다.

한설이 확실히 잠든 것을 확인한 옥분은 태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이제 애를 데리고 당장 바깥으로 나가라.”

“아쉽네요. 그 이야기, 밥 먹기 전에 하셨으면 될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한설의 의사를 파악한 뒤였다. 이제 와서 옥분을 놓고 나간다는 건 안 될 말이다.

“뭐, 일단 얘 내려놓고 이야기나 좀 하시죠. 아까 얘기 끝까지 못 했잖아요?”

태주는 아까의 대화가 마무리되지 않았던 것을 지적했다.

“시간을 끄는구나?”

“아니요. 당신을 설득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한설이를 이렇게 억지로 재운 걸 보면 역시 당신도 한설이와 떨어지는 게 힘든 거겠죠?”

“아니, 더 이상은 대화를 하지 않을 게다. 어서 떠나거라.”

옥분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꽤나 일방적인 태도였다.

“곧 있으면 지네가 온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위험할 텐데.”

“하, 거 참 무서운 협박이네요.”

태주는 대담하게 웃었다.

“하지만 지네 굴에 들어왔으니 위험은 각오한 바 아니겠습니까.”

옥분의 위협에도 태주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도 흙바닥에 이 애를 내려놓고 싶지는 않으실 텐데요.”

옥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당장 위험하다 말해도 태평하게 구는 태주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태평하게 구는 거지?”

쌕쌕대며 걸어가 평상에 한설을 내려놓은 태주는 한숨 돌리고는 말했다.

“일단 지네는 한설을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일부러 놔 준 거잖아요? 처음부터.”

태주의 말에 옥분은 반발하듯 말했다.

“지네는 사람을 잡아먹는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잡아 먹어가며 살아온 괴물이 맞다.”

“그렇다면 사람을 잡아먹는 데는 가히 전문가 수준이라 할 수 있겠군요. 그런 존재가 평범한 여자아이를 놓친다고요?”

“밤이라 어두워 놓쳤을지도 모르지.”

“진심이세요? 그냥 놔 줬다고 하면 될 걸 이제 와서 무슨 변명을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태주는 옥분의 말을 일축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궁색한 변명이었는지 결국 옥분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지네는 한설을 해칠 생각이 없어요. 혹은 그러고 싶더라도 당신 말을 들어줄 정도로는 참을성이 있어요. 어느 쪽이건, 전혀 위험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은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죠. 그 이유가 뭔가요?”

“네 물음에 답할 의무는 없다.”

옥분은 대답하지 않겠다며 딱딱하게 굴었다.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긴 한데요. 한설이 신비와 함께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거겠죠. 지네에 대해서 전혀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그것 말고는 없을 테니까요.”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나.”

“다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다 모르는 것도 아니죠.”

경계는 만들어진 이후로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유지되었다.

그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수준의 일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전적으로 지네가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해도 그게 영원할 리는 없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지네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며 그 어디서도 자신의 힘을 보충할 생각 없이 그저 이 장소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사실, 그쯤 되면 사람 하나 먹기 위해 하는 일치고는 너무 손해가 크다.

그러니까 지네의 목적은 결코 한설을 잡아먹는 데 있지 않다.

“간단한 추론이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이거죠. ‘지네는 죽으려 한다. 혹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벌이고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당신과 지네의 목적은 일치하는 것 같으니, 두 분은 절대로 한설이를 해칠 생각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옥분의 말에 태주는 그저 웃으며 답했다.

“저는 당신도 바깥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꼬우면 공격하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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