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9)
차갑고도 냉정한 시선.
저건 결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표정이 아니다.
월이 역시 낌새가 이상했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이 어떤 의미의 시선인지 두 사람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옥분이 자신들을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한설은 옥분의 이상한 태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안녕하세요.”
태주가 먼저 인사했다. 상대가 자신을 달갑게 여기건 그렇지 않건 상대의 인사를 무시할 순 없었다.
“사무소에서 나온 강태주라합니다. 이쪽은 하월이라고 하고요.”
태주의 인사에도 옥분은 여전히 냉랭한 태도였다.
월이는 그런 옥분을 향해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수틀리면 무력으로 진압이라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태주는 그러지 말라며 뒤에서 등을 쿡 찔렀다.
“사무소라,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외진 곳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어쩐 일로 오신 건지 궁금하군요.”
옥분은 월이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 태도다.
한설이 걱정한 것처럼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건 다행이지만, 옥분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의외다.
“언니, 이분들은 제가 도와 달라 해서 오신 분들이세요.”
옥분의 눈썹이 꿈틀했다.
뭔가 기분에 거슬린 듯, 옥분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한설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손님과 대화 중이니 너는 조금 이따가 이야기하자꾸나.”
그러곤 태주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한설이를 도와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저희 집에서 하룻밤 묵으시지요. 자세한 이야기도 그때 가서 하시고요.”
아무래도 옥분은 한설이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듯 보였다.
“네. 그럼 하루 신세 좀 지겠습니다.”
옥분은 자신의 의중을 눈치챈 태주가 썩 마음에 든 듯 씩 웃고는 한설에게 말했다.
“한설아, 집에 물이 모자라니 물을 길어 오거라.”
“아, 네! 그럴게요.”
태주도 월이에게 한설을 따라가라고 부탁했다.
“혼자 가기는 힘들 테니 네가 좀 도와줘.”
“알았어. 조심해.”
월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자신을 굳이 보내는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한설이 앞장서며 두 사람은 물을 길으러 떠났다.
이제 하늘은 해가 완전히 진 듯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지?”
옥분은 한설이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거리가 되자 곧바로 존대에서 평대로 바꿨다.
“이제 좀 진지한 대화를 하실 생각이 들었습니까?”
“진지한 대화는 원래부터 할 생각이 있었다. 네가 데려온 그 계집애가 자리를 비웠으니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더 좋겠지. 그러니 지금 빨리 대답을 하는 게 좋을 거다. 왜 이리로 왔는지.”
옥분은 냉랭한 태도로 말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저희는 한설이의 부탁을 들어주러 왔습니다.”
태주의 대답에 옥분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안 들어도 알 것 같구나. 옛날에도 너 같은 사람들은 꽤 있었지. 사람을 구하겠다고 괴물을 죽이는 그런 것들 말이야.”
그런 것들과 마주했던 기억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인지, 옥분은 유쾌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꼭 죽이는 건 아닙니다만.”
“필요하다면 하겠지.”
태주의 말에도 옥분은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태주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분이 지네와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는 점은 짐작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고 감출 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이곳에 지네가 있다는 건 알고 계셨던 거군요.”
태주의 떠보기에 옥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위험한 것이지. 그러니 한설이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거라.”
“네? 한설이를요?”
옥분의 대답에 태주는 조금 당황했다. 옥분의 태도는 의외의 연속이었다.
“그래. 보아하니 너도 짐작하고 있는 것 아니냐, 이곳에 있는 지네에 대해서.”
태주는 옥분이 한설을 놓고 가라고 협박을 하거나, 혹은 자신도 함께 데리고 나가달라고 할 줄 알았다.
지네와 협력 관계든 아니든 제시할만한 선택지는 그 둘뿐일 거라 생각했다.
“그 아이가 돌아오면 데리고 떠나. 더 늦어지면 위험해.”
하지만 한설의 말은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예상 밖인 말에 태주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위험한 건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태주의 말을 옥분은 못 들은 척 무시하곤 뒤를 돌았다. 자신의 안위는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다.
태주는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 수를 써야 했다.
“좋습니다, 그럼 제 질문에 만족스럽게 답을 해주신다면 한설이를 데리고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아니면,”
한설의 이름이 나오자 옥분은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면?”
태주의 예상대로였다. 옥분은 한설이의 안전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태주는 옥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뒤는 알아서 상상해 보라는 뜻이었다.
옥분은 심기가 거슬린 듯 말했다.
“한설이를 걸고 질문이라. 재미있구나. 꽤 괜찮은 도발이었다. 마침 나도 궁금한 게 있던 차니, 그렇다면 내 질문에도 답변해 주어야 할 게야.”
“좋습니다. 물어보시죠.”
태주는 질문을 우선 양보했다.
“한설이를 데려가면 어찌할 생각이지?”
“어찌 하냐니요?”
태주는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 물었다.
“그러니까…. 너희가 지금까지 우리 아이를 도왔지 않느냐. 그건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너희의 호의가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이후에도 그 아이를 평생 보살펴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거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태주는 인상을 썼다.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나 대답을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글쎄요.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을 겁니다. 저희와 같은 일을 하게 되거나 혹은 우리와 연관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독립시키거나. 어떻게 할지는 한설이가 결정하겠지요.”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후자였으면 좋겠군.”
“저도 이리 살아보니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만, 그건 본인이 선택할 몫이겠죠. 다만 그 어떤 강제도 유도도 없을 겁니다.”
“흠, 그 마지막 말은 꼭 지키길 바라마.”
옥분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의 대답이 어느 정도 원하는 대답이었던 것인지 옥분의 분위기는 한층 누그러졌다.
“그럼 이제 제가 질문할 차례군요. 당신의 정체는 뭡니까?”
태주의 직설적인 질문에 옥분은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었다. 그 모습이 한설과 닮아있었다.
“사람이지.”
옥분은 웃음을 멈추곤 간단하게 답했다. 태주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저 짜게 식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 안 믿을 줄은 알고 있었지. 하지만, 거짓말하지 않는단 말은 안 했잖아?”
옥분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는 인정이었다. 태주는 옥분의 장난에 장난처럼 맞받아쳤다.
“그럼 저도 아까 그 답이 거짓이었다 해야겠군요.”
“그건 아니 될 말이지. 허나 나 자신도 내가 무엇인지 모르니 정확한 대답을 하기는 어렵구나. 사람이었던 적은 있으나 이미 그것은 몇백 년은 된 일이니, 일단 이 정도면 충분할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대답은 되는군요.”
태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생각에 잠긴 듯했다.
“곧 아이들이 올 것 같으니 나머지 이야기는 올라가면서 하자꾸나.”
옥분은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태주는 그런 옥분을 따라갔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전부터 눈치챘던 것 같은데. 혹 지금 상황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더냐.”
옥분의 물음에 태주는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괜찮을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제 추측으로는 당신과 지네가 협력관계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협력이라…. 참으로 정 없는 말이구나.”
“하하, 그런가요? 야생동물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든다고 들었습니다.”
험한 산을 옥분은 편안하게 오르고 있었다. 태주는 그런 옥분을 따라가느라 점점 숨이 차올랐다. 잠시 숨을 고르고 태주는 말을 이었다.
“저희가 알기로는 이곳의 지네는 정말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잘 아는군.”
“그래서 한설을 이곳에서 자라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주는 옥분의 등만 보이기에 표정을 알 수 없었다.
“마치 제물 같다고 생각했지요. 지금도 그렇고요.”
옥분은 제물이라는 소리가 나올 때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걸음을 이어갔다.
그 모습을 태주는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말했다.
“이 경계는… 이런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목장처럼 보이거든요. 사람을 기르는 공간이 아니라 가축을 기르는 공간 말입니다. 나가지 못하게 하고, 외부에서 해치지도 못하게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거두어간다.”
“틀린 말도 아니군. 실제로 그렇게 사용되었던 적도 있었고.”
옥분은 그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기에 태주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면 왜 바깥에 대한 교육을 했단 말입니까. 바깥에 나가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깥에 대한 흥미를 없애는 겁니다. 한설이가 가축 같은 존재라면 그래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아이는 바깥을 재미있어하고 흥미 있어 했죠.”
“그래, 그러니 너도 알았겠지만 나는 그 아이가 바깥에 나가서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르쳤지만 나는 그 아이를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왜죠?”
태주의 물음에 옥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더 질문도 하지 않았다. 태주는 더 답변을 요구할 수 없었다.
저 멀리 작은 한옥이 보였다. 그 집을 보며 옥분이 중얼거렸다.
“마지막 저녁쯤은….”
* * *
태주와 옥분이 대치하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은 평화롭게 물을 길으러 가고 있었다.
물을 뜨러 가는 곳은 확실히 다른 곳과는 달랐다.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물을 뜨는 곳은 약수터처럼 생긴 곳이었다. 물이 돌 틈에서 졸졸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변의 이끼와 높은 나무가 어우러져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와! 정말 예쁜 곳이다!”
“헤헤, 그렇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야!”
아름답긴 하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확실히 번거롭고 귀찮은 곳이다.
월이는 자신이 이곳에서 살면 어땠을지 상상을 하다 소름이 끼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설은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열어 물을 천천히 채웠다.
월이는 그래도 지게와 항아리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통 하나가 다 차자 한설은 두 번째 통에도 물을 채웠다. 월이는 다 찬 물통을 들어보곤 깜짝 놀라 물었다.
“평소에 이런 걸 혼자 옮겼던 거야?”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한설의 튼튼한 체력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월이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냐! 평소에는 하루에 한 통씩 들고 와서 조금씩 채워 놓지. 이렇게 네 통씩 들고 가지는 않아. 그래도 이번엔 손님이 왔으니까.”
물은 쪼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차올랐다. 수돗물처럼 세게 틀 수가 없어서 시간이 걸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물통 네 개가 모두 채워졌다.
“음, 어떻게 들어야 한 번에 옮길 수 있을까?”
월이는 여기를 다시 찾아오는 번거로운 짓은 하고 싶지 않다는 듯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더니 튼튼해 보이는 막대기를 주변에서 들고 와 손잡이를 통과시킨 채 한 번에 들어버렸다.
“하나만 네가 들어. 나머지는 내가 다 들 수 있으니까.”
“와, 대단하다.”
한설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하나도 무거운 물통을 한 번에 세 개씩이나 들어 버리니, 마치 차력쇼처럼 보였다. 그러나 월이의 덩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기에 자세는 좀 불안정했다.
올 때는 내리막이었으니 돌아갈 때는 오르막이었다. 넘어지지 않을 자신이야 있었지만 실수한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 같았기에 월이는 자신이 뒤따라가기로 했다.
“설아.”
“왜?”
이제는 반말이 익숙해진 듯 꽤 자연스럽게 한설은 대답했다.
“언니는 어떤 사람이야?”
“응? 음, 공부를 가르쳐 줄 땐 엄청 무섭고 책 읽어줄 땐 엄청 재미있고 또, 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갑자기 왜?”
“아니, 그냥.”
월이는 말끝을 흐렸다.
월이 역시 직감을 통해 옥분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하지만 옥분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는 별개로 한설과 옥분은 꽤 평범한 가족처럼 보였다. 그래서 월이는 처음에 한설에게 언니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경고할까 생각했지만, 그것을 밝히는 일이 맞는 일인지 고민이 되었다. 그렇기에 월이는 얼버무렸다.
“조금 독특한 분이다 싶어서.”
“음, 그래? 나는 언니 말고 다른 사람은 잘 못 봐서 모르지만.”
한설은 그리 말하며 웃었다. 정말로 즐거운 듯한 웃음이었다.
월이는 그 웃음이 신기했다. 요즘은 중학교만 들어가도 저런 웃음을 짓는 친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교도 안 가봤다고 했지.”
월이는 한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혹시 아동학대는 아닐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 보니, 저 미소를 보니 알 수 있었다.
한설은 행복해 보였다.
“응. 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려면 나는 여기 살 수 없대서 안 간다고 했어.”
만약 한설이 원했다면 바깥에 나갈 수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월이는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진상이 전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결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곳이 아니다.
단 두 사람을 위한 길은 잘 닦여 있었다. 이 길에는 흔한 돌부리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설령 넘어지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을 수 있는 적당한 경사의 길이었다.
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현대의 수도시설보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물을 길으러 간 곳은 분명 아름다웠다. 그것은 그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 아니다.
분명 누군가가 이렇게 되도록 다듬은 것이다.
“무슨 생각해?”
한참을 조용히 월이가 걷고 있으니 한설이 물었다. 월이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글쎄. 그냥 잠깐 무슨 생각이 나서.”
“무슨 생각?”
“일이 다 끝나고 나면 너는 그다음에 어디서 살 거야?”
말을 돌리기 위해 한 질문이기는 했지만 중요한 질문이었다.
월이가 알기로 한설은 제대로 된 신분이 없는 상태이니 사회의 품에 들어가려면 꽤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할 터였다.
물론 이런 문제는 소장이 모두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외 한설의 생활과 환경은 본인이 직접 선택해야 할 것이었다.
“나?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사실 이곳도 나름 정들긴 했지만, 떠나는 건 상관없어. 바깥의 어디라도 좋아. 언니만 있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