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8)
“산이 참 높네.”
월이가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말마따나 산은 참 높았고 또 험했다. 날이라도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시아에게 차를 넘긴 셋은 멍하니 산을 보며 누구 하나 먼저 출발하자 소리를 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한설이었다.
“저, 그럼 올라가 볼까요?”
본인만 길을 알고 있으니 앞장서려는 듯했다. 멀미가 다 가신 건지 얼굴은 괜찮아 보였다.
“그래, 빨리 움직이자. 산이라 해가 빨리 질 거야.”
태주의 말에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한설을 뒤따라 걸었다.
그렇게 몇 발자국 옮겼을 때, 갑자기 뒤에서 ‘부르르릉’하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태주야! 잠시 이쪽으로 와봐!”
시아는 후진으로 다가와 갓길에 차를 세우더니, 창문을 열어 태주를 불렀다. 태주는 한설과 월이에게 먼저 가고 있으라 말한 뒤 시아에게 다가갔다.
“왜요? 할 말 있어요?”
“응, 줄 것도 있고.”
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태주에게 주머니에서 방울을 하나 꺼내 건네줬다. 화려한 색실로 장식된 작은 방울이었다.
태주는 받자마자 무심코 흔들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방울 안에 있어야 할 작은 쇳조각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뭔데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태주는 방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물었다.
“너한테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릴 거야. 사람이 아닌 것에게만 소리가 들리지. 월이도 지금은 낮이라 안 들릴 거고.”
“이걸 굳이 왜…?”
“이유는 나도 몰라. 소장이 주라고 하니 줄 뿐. 뭐, 일부러 늦게 준 건 따로 이야기할 게 있어서지만.”
시아는 잠시 말하기 껄끄러운 듯 멈췄다가 말했다.
“원래는 그 애가 안 나와 있길래, 그때 말하려고 했어. 그런데 넘어지는 바람에 이야기하지 못했지.”
시아는 어느새 저 앞으로 걸어간 월이와 한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산 근처에서 저 애 이름을 수소문해 봤어.”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았나 봐요?”
시아는 한설을 보던 눈을 태주에게로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주변을 싹 다 돌아봤지만, 한설과 옥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를 아는 사람은 없었어. 근처 읍사무소에 가서 이 근처 동네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당연히 사람 둘만 있는 동네는 없었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태주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학교에 가 본 적 없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었지만요.”
“아마 사실일 거야. 경계는 만들어진 이후로 단 한 번 외엔 흔들린 흔적이 없거든. 아주 최근이고, 당연히 이번 일이겠지.”
“그건 참… 갑갑했겠네요.”
“글쎄, 그럴까?”
태주의 말에 시아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말했다.
“우리가 보기엔 그럴지 몰라도, 저 애는 그 삶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았을 거야.”
시아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고, 시아는 할 말이 끝난 건지 기어를 바꿨다. 그러다 뭐가 생각난 건지 ‘참!’ 하며 말을 덧붙였다.
“너희 오늘 진짜 고생할 거다.”
“네? 무슨 그런 불길한 말을….”
“그 경계가 큰 마을 하나는 되는 크기였거든. 여기서 출발해서 경계를 넘어가는데, 진짜 죽을 뻔했어.”
시아의 말에 태주는 눈을 감았다.
“정말 가성비라곤 모르는 게 만들었나 보네요.”
“그렇지. 그만큼 강한 것이 만든 경계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경계를 뚫고 저 아이가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을 거야.”
시아는 피곤함에 절어 있는 얼굴상이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아마 자신도 이전에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으니 그럴 것이다.
“이제 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내일 여기서 보자.”
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태주를 떠밀었다.
태주는 가야 할 방향을 보았다. 이미 꽤나 멀리 간 한설과 월이가 잠시 멈춰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월이는 태주가 자신들을 바라보자 손을 흔들었다.
“기다려요. 최악의 경우는 안 만들어서 올 테니까.”
“내가 그래도 네 말은 믿지.”
시아가 떠난 후 태주는 표정을 이리저리 바꿔 보았다. 지나치게 굳어있던 탓이었다. 월이와 한설에게 이런 표정을 보일 수는 없었다.
‘침착하자, 강태주.’
불안함은 전염된다. 마찬가지로 침착함 역시 전염된다. 그러니 자신은 불안함을 보이면 안 되었다. 침착할 수 없더라도 그런 척을 해야 했다. 그것이 이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짊어져야 할 의무다.
태주는 서둘러 앞으로 걸었다.
어느새 얼굴에서 아까의 굳은 표정은 사라진 채였다.
* * *
“여기 진짜 길 맞아?”
길이 닦여있지 않은 산이 처음인 월이가 불평을 했다.
체력과는 별개로 산에서의 걸음걸이를 모르는 탓에 속도가 자꾸 느려졌다.
“으악! 깜짝이야!”
흙을 잘못 밟아 쭉 미끄러질 뻔한 월이가 식겁해서 소리쳤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굴러떨어졌을 곳을 땅을 박차고 뛰어 올라온 월이였다. 그 모습을 본 한설은 작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와, 대단해요! 정말 높이 뛰어오르시네요!”
순수한 감탄이었다. 한설의 칭찬이 부끄러웠는지 월이는 괜히 틱틱거렸다.
“야, 박수치라고 한 일 아니거든. 그나저나 너는 진짜 여기서 어떻게 산 거야?”
“네? 그냥 물 길어오고 밥해서 먹고 공부하고….”
한설은 어설픈 미소로 말끝을 흐렸다.
세 사람은 이미 꽤 오랜 시간을 걸었다. 표지판과 안개는 진작에 넘었고 이제는 비교적 평범한 산속이었다.
아직 한설이 아는 곳은 아니었기에, 지금 한설이 하는 건 길 안내보다 그냥 무아지경으로 도망치다가 남은 흔적을 되짚어 올라는 것에 가깝다. 때문에 세 사람은 조금씩 헤매며 나아가고 있었다.
“하, 진짜 넓네. 이제 몇 시간 안에 해도 질 텐데, 큰일이다.”
태주가 헥헥대며 말했다.
차를 타고 이동한 시간까지 합치면 이미 다섯 시간은 넘었을 것이다.
자신의 체력도 좋다면 좋은 편에 속할 텐데, 멀쩡한 월이를 보며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태주였다.
그때 한설이 아는 길이 나온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앗, 이쪽이었던 것 같아요!”
한설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월이는 혹시나 길을 잃을까 싶어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태주는 그런 월이를 보며 말했다.
“보통은 야생동물이 낸 길이라도 있는 법인데 여긴 어째 그런 것도 없네.”
“응, 저 경계부터는 벌레 소리도 안 들렸어!”
월이조차 못 들었다면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산에서 동물을 하나도 못 만난다는 건 조금 신기한 일이었기에 태주는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서 동물들 본 적 있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고기로는 본 적 있지만요. 아, 새는 가끔 봐요!”
태주는 차라리 그런 동물이라도 있으면 어설픈 길이라도 나 있었을 텐데 싶어 아쉬웠다.
이제 한설이 아는 길인 건지, 자신 있게 앞장서서 걸어나가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태주가 안타까운지 한설은 응원하듯 말했다.
“거의 다 왔어요!”
그렇게 몇 분을 더 올랐을까, 한설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한설의 반응을 제일 먼저 살핀 것은 월이였다. 지금까지 계속 밝은 표정이었던 한설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저, 언니는… 괜찮겠죠?”
“아마 괜찮을 거야.”
월이는 꺾은 나뭇가지를 던지곤 한설의 곁으로 가 어깨를 토닥였다.
“아까 내가 말했잖아! 지네는 널 놓쳤잖아? 그럼 언니도 놓쳤을 테니 죽이지는 못했을 거야!”
그것은 구멍투성이의 이론이었지만 한설의 마음을 달래주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한설은 조금은 안심한 듯 미소 지었다.
“그건 그렇고 매번 한설이라 부르려고 하면 너무 불편한데. 언니는 너를 어떻게 불렀어?”
월이는 한설의 기분이 풀린 것을 보고 다시 발을 옮기며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분위기를 바꾸고자 한 것 같았다.
“네? 그냥 늘 한설이라고 불렀는데요.”
“음, 발음하기가 조금 불편한데에-”
월이는 홀로 한설한설하고 되뇌며 편한 발음을 찾았다.
“그냥 설이라고 부르면 안 되나?”
“어…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나랑 나이도 비슷할 것 같은데 말 놓자. 어차피 나는 원래 친구 먹으면 다 말 놓는 편이라서.”
월이는 한설의 의사도 묻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월이는 함께 씻은 뒤 이미 친구라고 생각한 것인지 곧장 반말을 하고 있었다.
“치, 친구요?! 좋아요!”
한설은 친구라는 말에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이내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월이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친구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제가 책으로만 봐서….”
한설은 친구가 있어 본 적이 없었으니, 이런 질문은 당연한 일이다.
“응? 글쎄. 친구는 그냥 친구인데….”
월이는 생각지 못한 질문에 당황하며, 친구란 뭘 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그냥, 그냥 다 하면 돼! 별거 아닌 일이라도 같이 있는 게 재밌으면 친구인 거야.”
잠자코 뒤에서 듣고만 있던 태주는 월이의 말에 설핏 웃었다. 꽤 귀여운 말이지만 본질을 꿰뚫는 말이다.
“그런가요? 그냥 다 하면 되는 건가요?”
“어 뭐, 그렇지? 우리 이제 친구니까 말 놔! 친구끼리 존대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월이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한설은 여전히 망설였다. 왜 그런가 월이는 의문을 가졌지만, 한설의 대답은 월이의 상상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이었다.
“저, 반말을 써본 적이 없어요.”
“엥, 정말?! 세상에나 너 정말 불편한 삶을 살았구나?!”
조금만 친해져도 일단 말부터 놓는 월이에겐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월이는 한설이 무조건 반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그러면 오늘부터 하면 되지! 나한테 말 놓는 걸 연습한다고 생각해 봐.”
“연습이요?”
“그래 연습. 이요는 빼고.”
월이의 말에도 여전히 한설은 망설였다.
“빨리해 봐! 빨리!”
“저… 하지만 민폐가 아닐까요?”
한설은 혹시나 자신이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리고 그 말에 월이는 깔깔거리며 크게 웃었다.
“어, 왜 웃어요?”
“아니 웃기잖아. 별 걸 다 걱정하고 말이야.”
“저한테는 나름 큰 고민인걸요.”
“친구 사이엔 민폐 조금 끼쳐도 괜찮아. 나중에 더 잘 해주면 돼.”
한설은 잠시 침묵했다.
“저희 이미 친구인 건가요?”
“싫음 말고.”
“아니, 아니에요. 좋아요!”
“그렇게 말할 거면 존대부터 어떻게 좀 해봐.”
“어… 그건 천천히… 해볼… 게…”
한설이 간신히 말을 놓는 모습에 월이는 만족스러운지 씩 웃었다.
“앞으로 나한테는 존대 금지. 알았지?!”
“아, 알겠…. 어. 그럴… 게.”
그렇게 한설이 말을 조금씩 놓을 쯤, 태주가 끼어들었다.
“그 이야기는 그쯤 하자. 앞에 드디어 길다운 게 보이는 것 같다.”
태주의 말처럼 멀리에 사람이 다니는 길의 모습이 보였다.
태주에겐 처음 보는 길이지만, 그래도 반갑기까지 했다.
“앗! 여기부터는 확실히 아는 길이….”
한설이 말끝을 흐리자 월이와 태주가 한설을 쳐다보았다.
한설은 한 곳을 응시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에는 한 여자가 이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 언니!”
그녀는 깨끗한 한복을 입고 비녀로 머리를 올린 모습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단색의 한복이 깔끔하니 잘 어울렸다. 키는 조금 작았으나 그렇게 어려 보이지만은 않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틀만이구나.”
언니라는 사람은 굉장히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투였다. 한설은 눈물이 핑 돌았다. 반가운 마음과 걱정했던 마음이 한 번에 휘몰아쳤다.
“언니, 어디를 갔었던 거에요?”
“일단은 손님부터 모시자꾸나.”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두 사람 방향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한설이의 언니 되는 사람입니다. 이름은 옥분이라고 합니다.”
전혀 사람을 반기지 않는 눈으로, 옥분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참 누추한 곳에도 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