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7)
“어우, 정신없네.”
중간에 깬 한설이 처음으로 겪는 차멀미 때문에 헛구역질을 하는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태주가 급하게 창문을 연 덕분인지 다행히 구토하지는 않았다.
“창문을 연 게 효과가 좀 있었을까?”
월이는 활짝 열린 창문으로 냄새를 맡았다. 숲과 나무 냄새, 그리고 약간의 흙냄새가 났다. 도시에서는 맡기 힘든 그런 냄새다.
“글쎄. 다시 자라고 눕힌 게 더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다행이지 뭐.”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태주는 천천히 차를 세웠다.
“여기야?”
월이는 미심쩍인 표정으로 주변을 슥 둘러봤다. 주변에는 허름한 버스정류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휑한 장소다.
둘은 잠든 한설을 내버려 두고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내려서 보니 정류장의 꼴은 더욱 가관이었다. 지저분한 벤치와 비를 전혀 막아줄 것 같지 않은 낡은 지붕이 곧 주저앉을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래도 시간표를 보니 이제 곧 도착하는 버스가 있는 모양이었다.
정류장의 꼴을 본 월이는 태주를 돌아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뭐라 표현할 말은 없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여기가 맞는 거야?”
“누나가 찍어준 주소는 여기가 맞아. 우리가 약속보다 약간 일찍 도착한 것 같으니까. 잠시 기다려보자.”
태주는 월이의 표정을 보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장소를 처음 봤을 때 자신도 월이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도시에서 자란 이들은 잘 모르지만, 이 정도는 시골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다니…”
“아마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훨씬 더 안쪽일걸?”
태주의 말에 월이는 시골은 너무 불편하다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마 시아 누나는 지금 오는 버스에서 내리겠지? 외진 곳이니까 배차 간격이 꽤 길 거야 아마. 시간이 좀 비네.”
“우리나라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니….”
“이런 곳 은근히 많아. 티비만 봐도 많이 나오잖냐.”
월이는 주변을 한번 슥 둘러보고 재미없다는 듯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삐그덕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살살 좀 앉아, 무너지겠다.”
“나 그렇게 무겁지는 않거든?”
월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벤치에 누웠다. 잘도 그런 위험해 보이는 곳에 눕는구나 싶었으나 본인은 편한 모양이었다.
“흐음~ 그래도 시골 오니까 공기는 좋네. 벌레도 의외로 별로 없고.”
월이는 누운 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었다.
“그러게. 아직 날이 좀 쌀쌀해서 그런가?”
태주는 차에 등을 기대며 맞장구를 쳤다. 확실히 산골짜기라면 으레 생각할 법한 날벌레들이 없었다.
그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멀리서 엔진소리가 들렸다. 고요한 산속이라 그런지 버스의 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오! 버스 오나 보다!”
멀리 버스가 보이자 월이는 곧장 일어났다. 태주도 차에서 등을 떼고 월이의 옆에 섰다.
“쟤 안 깨워도 돼?”
월이는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지금은 그냥 자게 두자. 피곤할 거 아냐.”
월이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느긋한 속도의 버스였다.
“타는 거요?”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기사는 앞문을 열고 태주와 월이에게 물었다. 이런 곳에 외지인이 있는 것이 신기한 듯 기사는 호기심에 찬 눈이었다.
“아닙니다.”
버스 기사는 알겠다는 듯 문을 닫고 출발했다.
그새 뒷문에서 시아가 내렸다. 언제나처럼 검은 정장에 손목에는 화려한 색깔의 장신구를 매단 복장이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깔끔하고 당찬 느낌은 아니었다. 큰 산을 조사하느라 많이 걸은 탓이었다.
월이는 반갑게 손을 흔들다 멈칫하고는 물었다.
“어, 언니 눈이 왜 그래…?”
다짜고짜 월이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아의 눈가는 거의 멍이 든 것처럼 퀭했다. 눈빛은 흐렸고 머리도 조금 부스스했다. 시아는 하품을 한번 크게 하고는 말했다.
“피곤해서 그렇지. 아마 좀 자면 나을 거야. 어제 자기 전에 갑자기 소장이 불러서 같이 내려온 이후로 한숨도 못 잤거든.”
크게 기지개를 켜다 약간 비틀거린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벤치로 향했다.
“그래서 그 여자애는 같이 안 온, 으악!!”
시아가 벤치에 털썩 주저앉음과 동시에 의자가 뒤로 넘어갔고 시아도 함께 벌러덩 넘어갔다. 태주는 깜짝 놀라 시아에게 달려가 부축하여 일으켰다.
“아이… XX…”
시아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개아픈데... 진짜. 왜 이딴 걸 이런 데 두는 거야 진짜.”
거의 울먹이듯 시아는 한탄했다.
월이는 의자가 부서진 게 자기 탓인 것 같아 당황하여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태주의 도움으로 겨우 일어난 시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왜 맨날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진짜. 자고 싶고 힘들고 또 졸리고 집에 가고 싶고….”
평소 고객들에게 보여주는 당차고 도도하고 화려했던 모습은 저 멀리 던진 듯했다.
잠을 자지 못하면 나오는 모습이었기에 익숙하기는 했지만, 태주와 월이 둘 다 달래는 방법을 몰라 서로 얼굴만 마주 봤다.
‘네가 뭐라도 좀 해봐.’
월이의 눈빛이 태주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태주도 눈짓으로 말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해?’
둘 다 저 북받친 서러움을 달래 줄 방법을 몰랐기에 서로 어떻게 해 보라며 떠밀었다.
시아는 점점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월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가 늘 고생이 많아…요…. 어, 언니 아니면 이런 큰일을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사무소의 최고 베테랑인데! 태주 쟤가 아직 혼자 일을 못 하니까, 괜히 우리 중 최고인 언니가 고생이라니까!”
“그래요, 누나. 내가 아직… 야, 누나가 최고인 건 인정.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나보고 일을 못 한다니!”
“니가 일을 잘 했으면 언니가 고생을 했겠어?!”
둘이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다 투닥거리는 게 웃겼는지 시아는 피식 웃었다.
“귀여운 것들.”
약간의 울음기는 묻어나왔지만 그래도 시아의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누나, 새벽부터 고생했어요.”
* * *
시아는 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잠깐 선잠이 든 모양이었다. 태주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고, 월이는 차에 기대고 있다가 한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들어와 옆에 앉았다.
“죄송해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한설은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속이 좋지는 않은지 안색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멀미가 이렇게 심하면 출발하기 전에 말을 하지 그랬어! 아, 아니구나. 멀미를 처음 하는 건가?”
월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설의 어깨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으윽…”
한설은 여전히 속이 메스꺼운지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그래도 안색이 차차 나아지는 것을 보니 다행이었다.
태주는 한설이 일어난 것을 보곤 운전석 문을 열었다.
“누나.”
태주의 부름에 시아가 눈을 슬며시 떴다. 잠시 눈을 붙여서 그런지 꽤 개운해 보였다.
“주인공이 일어나셨구나.”
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복장을 단정하게 고쳤다. 분위기를 한번 환기하면서 주목하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든 버릇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태주와 월이에게는 너무 익숙한 행동이었고 한설은 이 행동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아무런 분위기 변화도 일어나지 않자 홀로 얼굴이 살짝 붉어진 시아는 한번 헛기침을 했다.
“크흠, 일단 난 엄청 피곤하니까 알아낸 정보들을 다 이야기해줄게. 조합은 너희들이 해봐.”
시아의 말에 태주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운전석에 앉았다.
“늘 그렇듯이 경계 안은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야. 우리가 아는 것과는 많이 다를 가능성이 크거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에 직접 들어가는 건 몇 번 해 봤지만, 늘 현실감이 없는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것도 맹신하지는 마.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원래대로라면 그럴 것이다’ 정도니까.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는 거지.”
“언니! 겁 그만 주고 알아낸 거나 빨리 알려줘.”
월이는 잔소리가 길다는 듯 뚱하니 말했다. 그 말에 시아는 못 말린다는 듯 웃고는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해 볼까? 이 경계는 구성 방법만 보면 천 년은 확실히 넘은 것 같아. 내가 본 경계 주술 중 가장 오래된 게 천 년 정도 된 거였는데, 이 경계는 그것보다도 원시적이야.”
“최소 천 년? 천 년이 넘는 동안 여기 있었다고요? 말이 안 되는데.”
태주는 깜짝 놀라 말했다.
바깥에서 따로 어떠한 종류의 힘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면, 천년을 넘게 경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구성 방법이 천 년 전이라는 거지, 저게 만들어진 지 천 년이 넘었다는 건 아니야. 그만큼 오래된 것이 만들었다는 거지. 그런데 이상한 점은 방식은 아주 원시적인데, 사용된 매개체는 아주 최근의 물건이라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 월이가 물었다.
“음, 그러니까 경계란 구분을 짓는 거야. 그런데 구분 짓는 건 말로는 쉽지만, 방법이 참 애매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갑자기 역으로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월이가 대답하지 못하는 동안 의외로 먼저 대답한 것은 한설이었다.
“어… 뭐라도, 선을 그어서 표시해 놓으면 되지 않을까요?”
한설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 역시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띠고 말했다. 의외의 장소에서 나온 대답이기는 했으나 정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이야. 하지만 이 큰 산에 선을 그어 놓는 건 어렵겠지?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고. 그러니 정확히 경계임을 나타낼 수 있는 표시가 필요해.”
시아의 설명에 월이가 빠르게 말했다. 방금 한설보다도 대답이 늦어진 것이 약간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그 장승 같은 게 그런 표시 같은 거야?”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았다는 게 뿌듯했는지 월이가 활짝 웃었다.
“그래.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거야. 그건 보호의 의미가 더 크기는 하지만, 여기서부터 확실히 다른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니까. 만약 길을 가다가 사람의 해골이 높이 걸려있는 장대를 본다면 넌 어떻게 할래?”
월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난 일단 그냥 앞으로 가 볼래. 어지간하면 뭐가 나와도 내가 이길걸?!”
시아가 바라는 답은 아니었지만, 늑대인간인 월이에게 먹힐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그저 눈썹을 찌푸리며 이어서 말했다.
“음, 그래. 너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피할 것이고 피하지 않더라도 굉장히 주의를 기울일 거야.”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 역시도 신기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둘의 모습에 어딘가 우쭐해져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시아가 점점 이론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태주가 급하게 질문했다.
잘못하면 이 자리에서 온종일 경계 주술에 대한 이야기만 들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경계의 역할을 하는 게 뭐였던 건데요?”
“아, 원래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그래 이번에 경계의 역할을 하는 건 바로 안개와 표지판이야. 도로교통표지판 말이야. 그게 산 한가운데 박혀있더라고.”
“표지판이요?”
안개에 비하면 도로교통표지판은 너무 현대적인 물건이다.
“그건 또… 오히려 현대니까 가능한 방법이네요.”
표지판은 주술적인 의미는 없지만, 의미가 너무나도 확실하다.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에게 경계와 같은 역할이 될 수 있다.
“응. 독특하지. 나는 상상도 못 한 방법이야.”
간단한 매개체와 안개를 이용한 경계의 구축.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기본만으로 경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라는 뜻이다.
“하여튼 곤란하게 된 셈이야. 이 경계를 펼친 것이 누군지는 몰라도 최소한 도로교통표지판을 이해하는 것이 만들었다는 거니까.”
시아의 말에 태주의 표정이 굳었다. 생각보다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지네가 지성이 있거나, 혹은 지성이 있는 존재가 경계를 펼치는 것을 도왔다는 의미다.
최악의 경우 둘 다일 수도 있었다.
단순히 몸만 큰 야수가 아니라 지성이 있는 존재라는 건 큰 변수였다.
“뭐, 어쨌든 내 일은 여기서 일단 끝. 나는 근처에서 자고 내일 데리러 오도록 하지.”
시아의 퀭한 눈을 보며 태주는 그만 시아를 보내 주기로 했다.
“자, 그럼 등산 수고하시게.”
시아가 놀리듯 말했다.
그 말에 세 사람은 앞으로 가야 할 곳을 돌아봤다.
“으으-”
그곳엔 길이 없었다.
“망했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