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6)
세 사람은 산으로 향할 채비를 한 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오래간만에 운전하겠네.”
태주의 말에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다 같이 한 곳으로 나가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전원 다 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큰일이라는 거겠지.”
태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쉬웠던 적은 없지만, 이번 일은 더더욱 쉽지 않을 거란 말이야.”
“그건 늘 하는 말이잖아.”
월이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그보다 얘는 밤새 산을 뛰어다녔다면서, 조금 자야 하는 거 아니야?”
월이는 한설이 걱정이었는지 태주의 어깨를 치며 물었다. 그 말을 옆에서 듣던 한설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 근육통이 있긴 한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
생각보다 터프한 말을 하며 한설은 웃었다.
태주 역시 걱정을 하던 차였기에, 한설의 말을 듣곤 혀를 내둘렀다.
“저 정도면 월이 너보다 체력이 좋을 수도 있겠는데?”
“아무리 산에서 살았다지만 그만큼 뛰어다니고 괜찮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월이는 한설의 자신만만한 말에도 걱정이 가시지 않는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태주는 월이가 누굴 걱정한다는 게 신기해 피식 웃음을 짓곤, 한설을 앞질러 걸어가 차 뒷문을 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쉬어둬요. 월이는 앞에 앉으면 되니 누워서 눈 좀 붙여요.”
“맞아!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지금 쉬어둬!”
태주의 말에 월이가 표정을 풀며 맞장구쳤다. 이렇게까지 하니 한설도 거절하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한설이 뒷좌석에 눕는 걸 확인한 월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태주가 마지막으로 운전석에 올라탄 후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상 시간을 확인했다.
“세 시간인가. 그렇게 오래 걸릴 거리는 아니지만 어째 중간부터 도로가 좀 상태가 안 좋을 것 같은데.”
“아, 덜컹거리는 거 싫은데.”
태주의 혼잣말에 월이는 작게 투덜거리곤 물었다.
“그래서, 거대 지네에서 생각나는 게 뭐였는데? 차에서 알려준다면서!”
태주는 목적지로 향하는 방향을 힐끗 보고 액셀을 밟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착지는 충청도 쪽 깡촌마을이었다.
“우리가 마침 가는 목적지도 엇비슷한 거 보니 더 확신이 들긴 하네”
“그러니까 확신이 들면 바로바로 말해줘! 맨날 너만 알고 있지 말고.”
월이가 크게 소리치며 말하자 태주가 급히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야야, 쉿! 뒤에 자는 거 같다. 어차피 차 타고 한참을 가야 하니까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고, 천천히.”
어느새 잠이 든 건지 뒤에서 새근새근 소리가 나고 있었다.
월이는 한설을 확인하곤 목소리를 줄였다.
“그럴 줄 알았어. 안 피곤할 리가 없지! 조용히 할 테니까 빨리 말해봐!”
“재촉하기는…. 내가 생각한 건 지네장터로 알려진 이야기야. 오공설화라고도 하지.”
태주는 이만하면 알아듣겠지 싶어 이야기했지만 월이는 아예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지네장터라니?”
“어, 우리 땐 교과서에도 실렸던 내용인데. 교과과정이 다른가?”
당황하긴 했지만, 그리 긴 내용은 아니니 가는 길에 풀기에는 적당한 내용이다. 그리 어려운 내용도 없었고 시간도 넉넉했기에 태주는 느긋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이야기에서 흔히 나오는 인신공양 설화지. 그러니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
옛날옛적에, 어느 한 마을에 한 가난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소녀는 평소에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 날 그 소녀의 부엌에 두꺼비가 들어왔다. 작고 어린 두꺼비였다.
“어머,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닌데….”
소녀는 배고파 보이는 두꺼비를 쫓아내려 했지만, 이내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 너도 먹고살려고 고생하는구나.”
자신이 먹을 것도 나눠주면서, 소녀는 두꺼비를 잘 보살폈다. 두꺼비는 잘 먹으며 날이 갈수록 커졌다.
소녀가 사는 마을에는 해마다 지네에게 마을 처녀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네가 마을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그 소녀가 이번 제물로 선정이 되어 당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울지 마세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걸요.”
소녀는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제 발로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홀로 당집 안에 들어가려는 찰나, 소녀는 두꺼비가 자신을 계속해서 따라오는 것을 봤다.
“아이참, 그렇게 따라오면 위험하다니까….”
처음에는 떼어 놓고 가려던 소녀였지만, 아무리 떼어 놓으려 해도 두꺼비는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왔다.
소녀는 두꺼비가 자신과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 같아, 두꺼비와 함께 당집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지네가 나타나자 두꺼비는 소녀를 지키기 위해 지네와 싸웠다.
지네는 붉은 불을 뿜었고 두꺼비는 푸른 불을 뿜어 싸웠다.
소녀는 그 열기와 독기를 견디지 못해 쓰러졌다.
다음 날, 당집의 문을 연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방 안에 거대한 지네가 있었고, 또 큼지막한 두꺼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여?”
지네도, 두꺼비도 죽어 있었다. 그 가운데 살아 있는 것은 소녀뿐이었다.
소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고 마을에 우환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사악한 지네를 모시는 사당을 없애고 두꺼비를 기리는 사당을 새로 세웠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곳에 있는 장터의 이름을 지네 장터로 바꿨다.
이곳에 있는 장터의 이름이 지네 장터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
“두꺼비가 불을 뿜어? 말도 안 돼! 두꺼비면 물 속성이라고! 지네는 말이 되지만!”
이야기를 모두 들은 월이가 처음으로 내뱉은 감상은 이랬다.
월이의 황당한 발언에 태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너 포@몬 너무 많이 한 거 아니냐…?”
“지금 포@몬 무시하는 거야?! 포@몬도 다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거라구. 나름 배울 게 많은데! 아무튼, 그럼 우린 두꺼비를 찾아야 하는 거야?”
월이는 당당하게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를 했다. 태주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런 건 없어.”
“없다고? 분명 그런 거부터 찾아봐야 할 것 같았는데. 평소 같으면.”
“글쎄, 그 두꺼비는 애초부터 영물이었던 것 같으니까. 평소에 키우던 두꺼비가 있으면 모를까, 인제 와서 그런 걸 찾아봐야 있겠냐.”
태주의 핀잔에 월이는 입을 삐죽였다. 모처럼 뭔가 생각해냈는데 바로 틀렸다고 하니 조금 서운했던 탓이다.
“아, 그래-? 두꺼비는 없지만, 지네는 있다 이거지? 거 참 위험하시겠네! 흥.”
“그래서 이번에 내가 너만 믿고 가는 거 아냐. 그 거대 지네가 나오면 대처할 수 있는 게 너밖에 없어, 정말.”
“크흠, 그야 그렇긴 하지. 직접 싸울 일이 생기면 해결할 사람은 나뿐이지!”
태주가 기분을 풀어주려 한껏 띄워주니, 월이는 바로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을 구기곤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그런데 나 혹시 그거 맨손으로 잡아야 해?”
월이가 걱정하는 것은 결국은 그런 부분인 듯했다.
솔직히 걱정할 만한 부분이긴 했다. 작은 벌레도 징그럽다고 싫어하는 월이였기에, 커진 벌레는 쳐다보기도 싫어할 거다.
“글쎄? 직접 만지기 싫으면 어디서 창 같은 거라도 구해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게 있을까?”
“으— 손으로 만지긴 싫은데.”
월이는 그렇게 말하곤 무슨 고민을 하는지 한참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태주 역시 머릿속으로 정리할 게 있었기에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제물을 바치려면 꽤 많은 사람이 필요했을 텐데.’
이야기 속 마을은 분명 작은 마을은 아니다. 작은 마을에서 주기적으로 처녀를 하나씩 바치는 것이 가능했을 리 없다. 큰 마을이거나 혹은 여러 개의 작은 마을이 함께 제물을 정했을 거라고 태주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지네는 그 마을의 사람들이 여럿 몰려가도 물리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무언가여야 했다.
‘게다가 죽은 줄로만 알았더니, 지금까지 살아 있었어. 도대체 그 지네는 얼마나 강한 거야?’
“무슨 생각해?”
“아, 잠시 생각 정리.”
태주는 그런 추측을 월이에게 이야기했다. 지네가 얼마만큼 강력한 존재였는지, 그리고 지금은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에 대한 추측이었다.
“그게 그렇게 강하다고? 그럼 두꺼비한테도 안 지지 않았을까?”
“글쎄. 그런 이유는 나도 모르지. 아무튼, 그 지네는 절대 만만히 보면 안 될 거야.”
월이는 태주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 봤자 벌레지. 특이한 점은 사람 잡아먹는 벌레라는 것뿐이야.”
“그래,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힘에 대해서는 태주보다 월이가 월등하다. 그런 본인이 이길 수 있다니 태주도 더 토를 달지 않았다. 차라리 자신감이 있으니 좋았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이야기엔 또 이상한 점이 있어. 뭐랄까, 결말이 날림이야.”
“응? 결말 딱 있는데, 무슨 말이야. 행복하게 살았다잖아?”
“그렇긴 한데, 심청전 이야기를 생각해 봐. 심청이는 왕비가 되고, 잔치를 열어 아버지를 찾고, 그 아버지도 역시 눈을 뜬다는 식으로 결말이 있어. 하지만 이 설화의 끝은 제대로 정해진 게 없어. 판본에 따라 결말도 다 다르고, 그나마 가장 잘 된 결말이라 해 봐야 ‘원님과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정도거든.”
“옛날이야기가 다 그런 거 아니야?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월이의 말에 태주는 손가락을 핸들에 감았다 쥐며 말했다.
“대부분 그렇긴 하지. 그런데 이 이야기는 조금 더 이상해. 지네와 두꺼비가 죽었다는 게 결말이야. 그 뒤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사료를 찾아봐도 통일성이 없어. 아무리 봐도 급조된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야.”
지역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명확하지 않았다.
확실한 공통점은 지네가 죽고, 당집을 부수고, 두꺼비를 위한 기념물을 하나 새로 만들었다는 점뿐이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지. 그럼 이렇든 저렇든 지네는 사라진 거잖아. 근데 왜 쟤는 지네에 쫓긴 거야?”
“글쎄. 그게 좀 이번 일의 어려운 점이지. 이유를 전혀 모르겠어. 하지만 새로운 지네가 다시 나타난 건 아니야. 최근에 우리 모르게 지네이야기가 대 유행을 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한설이 표현한 것만큼 거대한 지네가 새로이 만들어지려면, 전 국민이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가 되어야 했다. 최근 그런 이야기가 들렸다는 소식은 없으니 그 가능성은 아주 낮다.
결국은 그 지네는 원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맞다 봐야 했다.
그러니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랜 세월을 조용히 살던 지네가 갑작스럽게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