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5)
언니가 오지 않는 것이 처음에는 별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언니가 한설에게 말하지 않고 잠시 자리를 비우는 건 이전에도 종종 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단 두 명이서 산속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바쁜 일이다. 물을 스스로 길어 오고 산에서 나물이나 먹을 수 있는 버섯을 캐 온다. 괜찮은 나무를 조금 꺾거나 베어 온다. 가끔은 어디 고기 같은 거라도 구해 온다.
잠시라도 일을 멈추면 당장 내일부터는 뭔가가 부족해질 수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보니, 매번 말하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일이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챌 수 없었다.
“바깥으로 간 건가? 때 되면 오겠지?”
사실 처음에는 조금 좋기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것이 없는 한설에겐 종종 이런 시간은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후후, 이런 날도 있어야지.”
게다가, 언니가 없는 날이면 공부도 조금 쉬어가는 날이 되어서 좋았다.
한설이 사는 곳에는 학교도 없었다. 다른 사람도 없었다. 한설의 스승은 그래서 오직 자기 자신과 자연과 언니뿐이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언니에게 배우는 것이 구할 이상은 되었다.
가르칠 때만은 엄한 선생인 언니였다. 주경야독을 강조하는 언니는 늘 밤에 책을 읽게 시키거나 다른 공부를 시켰다.
그러니까 언니가 없는 오늘은 조금 쉬엄쉬엄 있어도 되는 날이다.
낮에는 일하고 해가 지면 공부한다는 것은 한설에게 익숙한 일이지만, 또 늘 힘든 일이기도 했으니까.
“참, 언니는 어떻게 그 많은 걸 다 배운 건지.”
한설은 언니가 없는 김에 혼자 조금 투덜거려 보았다.
삼 분의 일 정도는 불평이었지만 나머지 삼 분의 이쯤은 존경과 애정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바로 알려주었고 바깥에 어떤 것이 있는지 늘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가끔은 바깥이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나갈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언니, 조금 늦네에….”
기다림은 생각보다 심심했다. 곧 언니가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해가 지는 도중에도 언니는 오지 않았다.
한설은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지형에 익숙하더라도 밤중의 산은 위험하다. 다름 아닌 언니가 늘 강조하던 일이다.
“쪽지는 없었는데.”
지금처럼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날이 없던 건 아니다.
가끔은, 언니는 아예 바깥으로 나가 산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을 구해서 돌아오곤 했다.
바깥에 나가면 원래 하루쯤, 길면 이틀 정도는 지금처럼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 언니는 종이에 글을 써 언제 돌아올 것인지, 무엇이 필요해서 나갔는지를 적어두곤 했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나가는 경우는 없었다.
“하루쯤은 까먹을 수도 있겠지.”
한설은 그렇게 생각하며 홀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에도 할 일이 있었다. 괜히 기다리다가 잠을 못 잔다면, 그건 그거대로 언니에게 혼날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음 날 눈을 뜨고 난 뒤에도 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도 길어 놨고 나무도 충분했다. 먹을 것도 충분했다. 심지어는 청소까지 마쳤다.
그래도 언니는 오지 않았다.
해가 중천을 넘어 다시 밤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언니는 오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한설은 걱정되기 시작했다.
언니에게 문제가 생겼을 리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언니가 누누이 말했던 게 있었다.
“밤의 산은 위험한데….”
어쩌면 내일 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생각보다 바깥에서의 일이 많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고 한설은 생각했다.
오늘까지 노는 건 뭔가 잘못하는 것 같아서 한설은 책을 펴 보기도 했지만, 마음이 불안하니 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결국은 오늘도 공부하지 않고 잠들었다. 어제는 마냥 좋았지만, 오늘은 불안한 마음이었다.
“내일은 올 거야. 분명 그럴 거야.”
입 바깥으로 꺼내고 나니 정말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채 한설은 잠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도 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어쩌면 처음부터 바깥에 나간 게 아닐지도 몰라.
아니면 바깥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친 걸지도 몰라.
그렇다면 자신이 찾아봐야 했다. 이 산의 지리는 대부분 알고 있었다.
한설은 자신이 가봤던 모든 곳을 한 바퀴 돌았다. 이전에 가봤던 곳들 역시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폈다.
혹시 넘어져 빠질 수 있는 곳이 있는지도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나 찾아본 곳 어디에도 언니는 없었다.
“어디로 간 걸까…?”
가본 곳 어디에도 언니가 없다면 사실 이제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안 가본 곳으로 향해야 했다.
“바깥….”
아직 한 번도 향하지 않았던 곳이다.
바깥은 한설에게 미지의 공간이었다. 언니만 가본 적 있는 길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설은 가보지 않은 길로 향했다. 마음이 급했다.
걱정되었다. 혹시 이 길 어딘가에 언니가 쓰러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자신이 산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넘어져 다리를 삐어 움직이지 못했던 것처럼 언니도 그런 상황일지도 몰랐다.
“언니, 다친 건 아니죠?”
한설은 불안한 듯 혼잣말을 했다. 이쪽 길은 자신이 평소 다니던 것과 달리 험했다.
“언니는 이런 곳을 어떻게 왔다 갔다 한 거야?”
모르는 길이라 익숙하지 않아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길 자체가 평소 다니던 길보다 험했다. 이런 곳에서 언니가 쓰러져 있다면 이미 너무 오랫동안 방치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곧 밤이라고 해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마침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다. 같은 밤이라도 다른 날보다는 명확히 밝았다. 이 정도의 밝기라면 처음 보는 길이라도 조심한다면 갈 수 있다.
그런 판단으로 한설은 산속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말로 밤이 찾아오자 한설은 조금 후회하기 시작했다.
가끔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저녁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기 발에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언니!”
크게 외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밤에 산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예 처음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건 아는 길을 잠깐 왔다 갔다 하는 정도였다.
지금처럼 모르는 길을 계속 걷는 짓이 아니었다.
그래도 보름달이 있어 앞이 조금은 보였기에 한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한설은 마주치지 말아야 할 것과 마주치고 말았다.
* * *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요. 뼈가 꺾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뭔가가 슬금슬금 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구요.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소름이 끼치는 소리였어요.”
그 소리를 들은 순간 한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말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그 소름 끼치는 소리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하염없이 달리다 한설은 우연히 소장과 만나게 된 것이다.
“이게 지금까지 제가 겪은 일이에요.”
“어디서부터 질문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이야기네.”
월이의 말대로 한설의 이야기는 굉장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일단 살던 곳부터가 굉장히 특이해. 겪은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월이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설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는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해온 것 같았다. 정말로 소장이 아니었다면 한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언니분이랑 같이 바깥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단 말이죠?”
태주의 질문에 한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성인이 되면 나갈 수 있게 될 거라고 했어요.”
태주와 월이는 각자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한설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눈치를 살폈다. 그것을 먼저 눈치챈 월이가 왜 그러냐고 한설에게 물었다.
“뭐 말하고 싶은 게 더 있어?”
“저기, 저를 도와줄 수 있는 분들이라는 건 들었지만, 혹시 제가 어디까지 부탁드릴 수 있나요?”
“어디까지라니요?”
태주는 되물었다.
“그, 제가 너무 많이 부탁드리면 폐가 될까 봐요.”
한설의 말에 월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는 원래 그런 걸 부탁하라고 있는 곳이야.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우리한테 다 부탁하면 돼!”
“하지만, 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누군가에게 큰 부탁을 할 때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언니에게 들었어요.”
한설의 말에 태주는 피식 웃었다.
주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고, 오는 것이 있어야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긴급상황에까지 적용할 만한 문장은 아니다.
“뭐, 언니라는 분의 말씀이 틀린 건 아니지만, 저희는 원래 그런 일이 생기면 돕는 사람들이에요. 주지 못 할 걸 달라고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얘기하세요.”
태주의 설명에도 한설은 여전히 망설였다. 보다 못한 월이가 말했다.
“일단 부탁해 봐. 언니가 어떤 분인지는 몰라도 꽤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죠…”
잠시 망설이던 한설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 뭔가를 결심한 듯 말했다.
“결정했어요. 제 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 주세요. 그리고 위험한 상황이라면 구해주세요.”
드디어 한설의 의뢰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한설의 의뢰에는 여전히 본인을 구해달라는 말이 빠져 있었다.
“본인은요?”
“네? 전 이미 나온걸요. 도움만 받는 것 같아서 염치없지만 그래도 꼭 부탁드릴게요.”
“뭐, 원래부터 도와드릴 생각이었으니 그건 상관없어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번 일은 돕는 보람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좋았다.
“그런데 혹시 뭐에 쫓기셨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뭐에 쫓겼냐고요?”
한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에 쫓겼는지도 설명하지 않았었다.
탈진했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멀쩡한 몸으로 도망칠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겠지만, 이제부터 진상을 파헤쳐야 했기에 짐작 가는 구석이 없다면 조금 막막한 일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태주는 질문했다. 최소한 힌트 하나만이라도 얻는다면 앞으로의 일이 훨씬 편해질 것이었다.
“제가 그, 보기는 봤는데요… 딱 한 번 뒤를 돌아봤거든요. 눈도 마주쳤고요.”
태주에게는 희소식이었지만, 한설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그게, 그게 뭐였냐 하면요….”
“괜찮습니다. 이곳은 안전하니 편하게 얘기해도 돼요.”
“그게 뭐였냐면요…. 엄청나게 큰 지네였어요.”
“지네요?”
태주는 되물었다.
“정말 엄청나게 컸어요. 진짜 집채만 한 것이었어요.”
거대한 지네라 하면 짚이는 것이 단 하나밖에는 없다.
“거대한 지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