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4화 (24/269)

2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4)

월이가 비명을 지를 일은 거의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월이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사무소 안에는 없었고 밖에서도 굉장히 드물다.

“무슨 일이야?!”

태주는 샤워실 앞까지 빠르게 달려가긴 했지만, 차마 여자 샤워실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 문에 대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태주가 당황하고 있을 때 문을 열고 월이가 나왔다.

“수건 좀 갖다 줘봐.”

월이의 목소리는 축 가라앉아있었다. 그리고 머리도 옷도.

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걱정한 것에 비해 너무 별 일 아니었던 데다 머리가 미역처럼 되어 있어 꼴이 좀 웃겼다.

“어쩌다 그렇게 됐냐?”

태주가 웃음을 참으며 질문하자, 월이는 순간 열이 확 올라 고개를 휙 돌리며 째려보았다.

“일단 수건이나 좀 줘봐.”

월이의 말에 태주는 곧장 수건을 챙기러 갔다.

“이게 뭐야, 진짜!”

수건을 받자마자 월이가 짜증 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곤 몸의 물기를 대강 훑었다.

“그렇게 닦아서 되겠냐? 옷도 젖었는데?”

태주의 말에 월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나도 다시 씻으려고. 내 방 가서 옷 챙겨 올 건데 물 다 떨어트리면서 갈 순 없으니까 닦은 거야.”

“그러냐.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젖은 거야?”

“쟤 진짜 이상해.”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기에 태주는 월이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야. 사람보고 이상하다니?”

태주는 황당해서 말했다. 그러고 보면 샤워실 안내해주는 게 너무 오래 걸렸다. 전화가 끝날 때까지 샤워를 시작도 안 했다는 건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이미 물을 한번 크게 맞아 기분이 상한 월이는 인상을 팍 쓴 채로 태주를 째려봤다.

순간적으로 움찔한 태주는 진정하라는 제스처로 양손을 들어 올렸다. 월이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쟤가 샤워기 작동법을 모르잖아!”

태주는 잠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야 그게? 샤워기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태주는 말했지만 월이는 말 그대로라는 듯 완고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야. 쟤 샤워기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더라고. 그래서 내가 직접 들어가서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레버를 확 틀어서 둘 다 흠뻑 젖었어! 시트콤 같은 데서나 보던 일을 내가 당할 줄 어떻게 알았겠어?!”

월이는 덕분에 아침에 씻은 일이 쓸모없는 일이 되었다며 성질을 냈지만, 평소에 비하면 상당히 유한 상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화는 나 있지만 그래도 더 화내기는 포기한 듯한 그런 표정이다.

태주로서는 월이의 저런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조금 신기했다.

“평소대로면 한바탕 뒤집어엎었을 텐데 네 성질에 용케 참았네.”

태주의 말에 월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평소 같았으면 욕설 몇 마디는 날아가거나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었어야 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일반인을 대하는 데 굉장히 조심스러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성격 자체가 어딜 간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째서 기분이 그리 상하지 않았는지 월이 본인도 잘은 모르는 듯했다.

“아니 그냥 뭐랄까, 화가 나긴 나는데 막 내기도 그런… 어린애가 실수한 것 같은 느낌? 화내기도 애매하고 그냥 내가 참고 말지하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약간 백지 같다고 해야 하나?”

“백지? 그게 무슨 말이야?”

태주의 의문에 월이는 잘 모르겠다는 듯 이마를 찌푸렸다.

“말했잖아. 샤워기 쓰는 방법을 몰랐다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맨 처음에 욕실을 알려줬을 때부터 좀 이상했어. 애가 굉장히 허둥대더라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예 모르는 것처럼. 그래서 샤워기는 이쪽이고 샴푸는 저쪽이고 그런 것까지 다 설명해 줬다니까?”

가만히 서서 헤매는 한설이 보기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설명해주다 둘 다 같이 물벼락 맞았지 뭐. 심지어 찬물이라 추워.”

그래도 태주가 걱정했던 심각한 일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월이가 소리를 질렀을 때 태주는 정말 심장이 떨어질 것처럼 놀랐었다.

“저런.”

그렇기에 이제 와서 태주의 반응은 담백했다. 이걸 놀리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월이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구겨졌다.

“자기 일 아니라고 굉장히 반응이 심드렁하네.”

“그럼 뭐 어쩌냐. 내가 젖은 것도 아니고.”

태주의 말에 월이는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너 확실히 평소랑 상태가 좀 다르네.”

아침은 자신이 준비했으니 뭔가 잘못 먹은 것도 아닐 텐데 왜 저럴까 싶은 태주였다.

“그럼 그 애는 지금 안에서 뭐한대?”

“샤워기를 정말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길래 따뜻한 물로 틀어주고 나왔어. 말로만 들어봤지 처음 본다나 뭐라나.”

월이는 그렇게 말하며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쥐어 짜냈다.

“그런 주제에 샴푸나 그런 것들 용도는 대충 알더라. 그러니까 뭔지 는 아는데,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소장이 직접 데려온 이유를 알겠어. 정말 이상해.”

월이의 마지막 말은 비난도 비하도 아닌, 그저 느낀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다’는 말이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할 만한 말은 아니었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아 몰라! 나 일단 다시 씻고, 쟤 씻는 것도 확인해야겠어.”

월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입을 것을 챙기러 방으로 들어갔다.

월이와 한설이 금방 나올 것 같지는 않았던지라 태주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태주는 식탁으로 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서 몇 가지를 적었다.

‘상처, 옷, 신발’

옷과 신발만 보아도 산에서 엄청나게 뛰어다니고 굴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의 찰과상 말고는 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이 굉장히 남달랐다. 하다못해 근육통도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수준으로 보였다.

“나였다면 옷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뛸 수 있을까?”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월이라면 모를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다.

산에서 굴렀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단 하루라 해도 평범한 수준의 체력은 아니었다.

“월이 수준으로 신체 능력이 좋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 사이에서는 높은 수준은 되지 않을까.

태주는 다시 수첩에 글을 끄적였다.

‘산’

시아의 말에 따르면 한설이 발견된 곳은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왜 혼자 들어간 걸까?”

월이 말에 따르면 한설은 평범한 수준의 지식이 없었다. 사실이라면 대체 한설은 어디에서 살아왔던 것일까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발견된 남다른 체력을 가진 아이.’

‘지식은 있지만, 경험은 모자란 아이.’

확실히 어딘가 뒤가 구린 느낌이 났다.

애초에 이곳에 온 사람 중 평범한 사람은 거의 없긴 했지만, 한설이라는 사람은 특히나 이상한 정황이 많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도 잘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보였다.

이번 일은 뭔가 얼기설기 얽혀 있는 풀기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았다.

태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골치 아픈 일만 상대하며 살다가는 곧 탈모가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마저 든다.

태주는 또한 시아가 이미 현장에 내려가 있다는 점도 따로 고려했다. 전직 무당인 시아가 직접 나서야 할 일이라면 아마도 신과 주술에 관련된 일일 것이라고 태주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태주는 어느 정도 아귀가 맞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설마… 신역인가?”

하지만 그렇게 보기도 조금은 이상했다.

한설은 소극적이기는 해도 대화가 잘 이어졌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힘든 상황을 겪고 위축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평소에는 꽤 사교적인 성격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오롯이 홀로 고립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 자세한 것은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위이이잉-

“와아! 아하하하하”

방 안에서 헤어드라이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탄성이 들렸다. 즐거워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한설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샤워를 빠르게 마치고 나왔는가 보다 생각하며 태주는 수첩을 접었다.

“앗, 아냐! 나가면 안 돼! 약 바르고 가야지!”

안에서 월이가 다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저쪽은 어느 정도 친해졌나 보다.

잠시 조용해진 뒤, 월이가 문을 열었다.

“그럼 나는 이제 이 구급상자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올게. 내 머리도 좀 말리고.”

“그래, 고생했어.”

한설이 씻는 것을 도와준 월이는 한설의 몸에 약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줬다.

평소의 월이라면 하기 싫다고 투덜거리다 마지못해 했을 텐데, 한설에게 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태주는 평소에도 좀 그렇게 굴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대견하다고는 느꼈다.

월이가 뒤늦게 머리를 말리는 동안, 한설은 식탁에 앉아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드세요. 한설 씨 드시라고 차린 겁니다.”

“저, 정말요? 우와아아! 맛있겠네요! 잘 먹겠습니다.”

한설은 예의를 차릴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드세요.”

태주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한설은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아 한 그릇을 비웠다.

“저…. 한 그릇 더 먹어도 괜찮을까요…?”

한설은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기질 만했지 싶어 태주는 남은 밥을 싹싹 긁어 떠주었다.

한설은 월이가 꺼내 준 학교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좋은 옷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걸레짝이 된 이전의 옷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태주는 확실히 복장의 중요성에 대해 느끼면서 한설을 슥 훑어보았다. 길게 뻗은 팔다리 덕분에 옷이 조금 짧았고, 그 사이로 슬쩍 붉은 타박상이 보였다.

피부는 빛을 많이 본 적 없는 듯 새하얬지만, 자세도 바른 편이고, 몸만 보면 월이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덕분에 체육복이 잘 어울리기도 했다.

두 번째 밥공기가 비워지는 것 역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월이가 돌아올 때쯤 이미 한설은 식사를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거야?”

어느새 돌아온 월이는 태주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말했다.

“윽-”

월이가 돌아온 걸 눈치채지 못했던 태주는 놀람과 고통이 뒤섞인 신음소리를 냈다. 아프라고 찌른 것은 아니었겠지만, 월이의 힘을 감당할 맷집이 태주에게는 없었다.

“눈이 불순해.”

“끙, 아니 불순하다니! 다친 곳을 살피고 있었지. 그리고 살살 좀 찔러, 엄청 아팠으니까.”

“아무리 다친 데를 본다지만, 진짜 변태 같았어.”

태주는 월이의 말에 더 대꾸하지 못하고 결국 앓는 소리를 냈다.

“이 정도 다치는 건 괜찮아요. 금방 나으니까요. 생채기 정도가 다라서요.”

한설은 어느새 두 번째 공기도 비운 채 말했다.

참으로 빠른 식사였다. 월이보다 조금 느리기는 했지만, 훨씬 대단했다. 식사 예절에 전혀 어긋나지 않으면서 속도만 빠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한설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태주는 미소로 화답했다.

“맛있다니까 다행이네요.”

옆구리는 여전히 아팠지만 미소 정도는 간신히 띨 수 있었다.

“참! 그런데 방금 먹은 고기는 무슨 고기인가요?”

한설이 햄이 있던 그릇을 가리키며 물었다. 무슨 고기냐고 물을 만한 게 아니었기에 태주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냥 평범한 햄이에요. 특별한 햄은 아닌데요.”

“아, 햄고기인가요?”

“햄, 고기요?”

한설은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햄고기’라는 말에 태주가 말문이 막힌 사이, 월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마 함께 샤워하며 한설의 행동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너 혹시 햄도 처음 봐?”

“네. 저런 건 처음 봐요!”

태주는 내심 경악했다. 집이 엄해 가공육을 못 먹어봤다는 것 같은 태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처음 본 것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정말 처음 먹어봐요?”

태주의 질문에 한설은 천진난만하게 답했다.

“네. 처음 먹어봐요. 그냥 돼지고기나 소고기 같은 건 그래도 많이 먹어봤는데요.”

월이와 태주는 서로 마주봤다. 그리고 서로의 표정을 보고 두 사람은 자신들이 들은 것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세상에 무슨 말도 안 되는 …”

“대체 어떤 곳에서 산 거예요…?”

둘의 반응에 한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는 듯했다.

“그리 이상한 곳은 아니고… 제가 아무래도 좀 시골에서도 외진 곳에서 자랐거든요. 언니랑 둘이서요. 외진 곳에 살다 보니 모르는 게 많아요!”

태주는 그게 분명 조금 외진 수준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래요. 뭐, 이렇게 된 김에 처음부터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무슨 일을 겪으신 건지?”

태주는 먼저 이야기부터 듣기로 했다. 몇 가지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야 있었지만, 한설을 통해 정확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네! 하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러나 한설은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듯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결국, 태주는 질문을 해서 이야기를 끌어내기로 했다.

“그러면 집 이야기 먼저 해줄래요? 아까 언니랑 둘이 산다고 하셨죠?”

태주의 말에 한설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니… 라고는 해도 사실상 저한테는 엄마나 다름없을 정도예요. 어릴 때부터 쭉 언니랑만 살았거든요. 아, 언니 이름은 옥분이라고 해요.”

할머니께서 쓰실 법한 이름이 나와 태주는 당황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언니랑 나이 차이가 좀 나나 보네요?”

“네… 좀 날 거예요.”

한설은 불확실한 말투로 말했다. 태주는 약간 의아했지만, 이야기가 빨리 진행돼야 했기에 질문은 하지 않았다. 들어야 할 것은 많았고, 혹시 필요해지면 나중에 다시 들으면 되는 거였다.

“그렇군요. 그럼 오늘 새벽에 산에서 무슨 일을 겪으신 건가요?”

“음, 이야기하자면 긴데요. 어느 날 갑자기 언니가 사라졌어요. 정말 갑자기요. 이전에도 며칠 정도 어딘가 가는 일은 있었지만 그럴 땐 편지라도 남겨두고 가지 이번처럼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는 적은 없었죠.”

“사라졌다는 게 무슨 말이야?”

월이의 질문에 한설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기는 본인도 잘 모르니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예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거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