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23화 (23/269)

2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3)

복도에 혼자 남은 태주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소장의 차가 도착했다. 도착한 사람이 소장이니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오래된 노란 폭스바겐 경차가 덜덜거리며 건물 앞에 멈췄고, 태주는 건물 밖으로 나와 차 옆에 섰다.

“딱 맞춰 나왔네?”

소장이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

분명히 소장은 밤을 새웠을 텐데도 전혀 피곤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소장은 중요한 순간에는 늘 최고의 컨디션으로 깨어 있었다.

태주는 소장이 사람이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딱 맞춰 오신 거겠죠.”

“뭐 그거나 그거나지. 옆에 얘 데리고 올라가. 슬슬 일어나 있을 테니까.”

소장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조수석에서 뭔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태주는 소리가 난 방향을 흘깃 보았다. 조수석에는 중단발의 검은 머리 여자애가 의자를 완전히 뒤로 눕혀 놓고 잠들어 있었다.

“얘가 그 산에서 굴렀다는…?”

“맞아. 데리고 올라가.”

“네? 얘 아직 자는 거 같은데요?”

잠시 꿈틀거린 것을 제외하고는 소녀는 여전히 누운 채 그대로였다. 소장은 누워 있는 소녀를 한번 힐끗 보고 나서 고개를 한번 젓고는 말했다.

“아냐 지금은 자는 척이야. 문 열고 데려가.”

소장의 말에 소녀는 눈을 슬쩍 떠서 태주의 눈치를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등학생인 월이와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다만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소녀의 온몸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다.

채 다 떼어 내지 못했는지 낙엽이나 잔가지 같은 것들도 온몸 구석에 붙어있었다. 정말로 조난이라도 당한 모양새였다.

태주가 차 문을 열자 땀 냄새가 훅 끼쳐왔다.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린 태주는 바로 표정관리를 했다. 안 그래도 꼴이 안쓰러운데 인상을 찌푸려 애가 위축되게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소녀는 태주의 표정을 보지 못한 듯했다.

태주가 손을 내밀었다. 소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태주의 손을 잡았고 힘에 이끌려 차에서 내렸다.

소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손을 놓았다.

태주가 문을 닫자 소장은 태주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알아서 해결해. 난 주차해놓고 잘 거니까. 그리고 장소는 음, 시아한테 전화해서 합류하면 될 거야.”

결국, 마지막까지 제대로 알려준 것은 없다.

그렇게 소장은 쌩하니 주차를 하러 갔다. 소녀는 가만히 서서 사라지는 차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나마 보호자 역할을 했던 소장이 사라져서인지 소녀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소녀는 감사를 표했다. 태주를 쳐다보고 한 말도 아니었고 아직 감사받을 일을 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마 그 인사는 소장에게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가냘프게 말한 소녀의 인사를 태주는 못 들은 척했다. 대신 태주는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강태주라고 합니다.”

소녀는 자기소개 하는 목소리를 듣고는 흠칫 놀라더니 마주 서 크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 태도는 이상할 정도로 어색했다.

“안녕하세요….”

작은 목소리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경계심이 너무 커서 대화조차 못 할 상황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종종 그런 사람들이 오면 상대를 안심시키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일단은 소장님께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거라 생각되기는 하는데, 혹시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소녀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많이 위축되어 있기는 했지만, 태주의 눈을 피하거나 눈치를 보지는 않았다.

“일단 좀 씻으셔야겠네요. 치료도 해야겠고요. 따라오세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건물 안 엘리베이터를 향해 갔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 이런 곳에 씻을 곳이 있나요?”

소녀가 먼저 침묵을 깼다.

“네? 아 3, 4층에 다 샤워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4층은 아까 그분이 쓰시는 공간이라, 저희가 쓰는 곳인 3층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제가 이런 곳은 처음이라….”

소녀는 말끝이 점점 기어들어 갔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몰라도 고생깨나 했겠다 싶어 태주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침묵이 이어졌다.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것은 월이였다. 아무래도 소장이 말한 것을 챙겨 나온 듯했다.

“올라왔…? 헤엑!! 이게 뭐야? 무슨 일이야?!”

월이는 소녀의 모습에 크게 놀랐는지 호들갑을 떨었다. 그 덕분에 어색함이 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 분이 아까 말한 분이야. 샤워할 수 있게 네가 안내 좀 해 드려.”

태주의 말에 월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소녀에게 가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옷은 다른 거로 드려도 괜찮아요? 제가 입는 학교 체육복인데. 음, 그런데 그 전에 먼저 몸에 붙은 것들 좀 떼야겠다.”

월이는 소녀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평소 월이의 행동과는 달리 좀 더 친절한 태도였다.

또래 친구라 그런지 소녀도 그런 월이의 행동을 좀 더 편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태주는 아까 월이가 침울해 보여 걱정이었는데, 기분이 풀린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아… 제 이름이요?”

월이의 질문에 소녀는 잠시 당황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제 이름은 한설이에요. 이한설이요.”

* * *

월이가 한설을 샤워실로 안내하는 동안 태주는 다시 한번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새로 온 손님을 위한 것이었다.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계란을 새로 부치고, 아껴 둔 통조림 캔 하나를 까서 한 입 사이즈로 썰어 구웠다.

다행히 이전에 밥은 4인분으로 지었기에 충분했다.

금세 식사 준비를 끝낸 태주는 시간이 빈틈을 타 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이 끊기고 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이고, 빨리도 전화했다. 그지?]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시아 역시 소장과 마찬가지로 밤을 새웠을 것이다. 어느 정도 날이 서 있는 것도 당연했다.

[눈 뜨자마자 없는 거 확인했으면 바로 안부 전화를 했어야지?]

태주는 유들유들하게 시아의 불평을 받았다.

“하하, 죄송해요. 아침부터 여기도 시끌시끌해서 정신이 없었어요.”

[뭐? 야 나는 아예 새벽 중에 깨워서 시골로 왔거든. 아침까지 꿀잠 자고 일어난 너랑 같은 줄 아냐?]

시아는 어디에 비교하느냐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휴, 누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서 혹시 저희한테 알려줄 거 없을까요?”

[말 돌리는 거 봐라? 하지만 나도 피곤하니까 지금은 그냥 넘어가 주마. 지금 밤새 산 둘레를 돌았더니 피곤해서 죽겠다 아주.]

“산이라는 건 들었어요. 그런데 무슨 산이에요?”

[산 이름 말하면 아나? 나중에 너도 올 테니까, 있다가 문자로 위치 찍어 줄게. 이쪽 동네 와서 한 바퀴 싹 둘러보고 있는데, 여긴 진짜 쓸데없이 넓다. 경계가 쓸데없이 넓어서 겉에만 쓱 훑는데도 끝이 안 나.]

시아의 한탄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태주는 궁금한 걸 물어보기로 했다.

“네, 산 위치는 나중에 찍어 주세요. 그래서 지금까지 알아낸 거 있어요?”

[이런 건방진 놈을 봤나! 고생한 사람한테 응원 한마디는 못 해줄망정 그렇게 대충 넘길래?]

시아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태주에게 심통 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빈말이라도 하나쯤 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태주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아니, 정말로 지금 꽤 급하다고요. 이미 이번 사건의 주인공께서 오셨는데, 애 상태가 말이 아니에요. 온몸에 상처가 가득에, 어휴…. 좀 피곤해도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요!”

태주는 빨리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 조금 과장 섞어 이야기했다.

[소장이 나는 이곳에 던져두고 사라져서 못 봤는데. 왜, 애가 많이 다쳤어?]

태주의 작전이 먹혔는지, 시아의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조심스러워졌다.

“말도 마세요. 어린 애가 어쩌다가 저리된 건지. 그래도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거 같아서 다행이죠.”

[크게 다친 게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네. 일단 알아낸 게 몇 가지 있긴 한데, 아직 조사가 다 끝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몇 가지만 전해 줄게.]

가벼운 장난 같은 걸 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인지 시아는 곧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내가 지금 돌고 있는 이 산속은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야.]

시아는 진지한 목소리로 당연한 소리를 하자, 태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답했다.

“그야 그렇겠죠. 요즘 사람들은 산에는 못 살죠. 한 백 년 전이면 모를까.”

그 말에 시아는 말을 덧붙였다.

[아니, 사는 건 커녕, 이런 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여긴 길이 아예 없어. 자연인이나 산악회에서는 찾아오려나? 산책하러 갈만한 산은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태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험한 산이라는 뜻이죠?”

[그냥 그런 정도가 아니라 길 자체가 없어. 들어봐, 내가 새벽에 처음 소장한테서 산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도망쳐 나올 거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떠올린 산은 그래도 등산로 정도는 있는 곳이었어. 보통 생각하는 평범한 산에서 조난 당하는 정도를 떠올렸다고. 그냥 조금 깊이 들어간 줄 알았지. 너도 그렇지 않아?]

태주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것이 음성 전화라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대답했다.

“그렇죠. 밤에 산에서 산책을 하다가 뭔가를 만나서 길을 잃은 거라 생각했죠.”

[그래. 그게 문제인 거야.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맨 게 문제가 아니라, 애초부터 이 산은 여자애 혼자 들어갈 일이 없어. 그렇게 말하면 좀 알겠어?]

시아의 잘난 척하는 말투가 괜히 조금 열 받기는 했지만, 태주는 그래도 이번 일이 어떤 식으로 문제가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원래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그리고 마침 그 아이가 뛰쳐나온 곳에서 경계 하나가 발견됐어. 우연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작위적이지. 그 아이는 거기에 어떻게 들어갔고 어떻게 나왔을까. 난 잘 모르겠네.]

시아의 말을 들어보니 어려운 일이겠거니 했던 짐작이 확신으로 변했다.

“소장은 또 이상한 일 물고 왔네요, 진짜.”

[동감이야. 그래도 정말로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 우리한테 일을 던져준다는 점은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하나.]

시아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소장은 늘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는 일을 가져왔다. 그리고 사실은 그래서 더 힘들었다. 대부분 아직 돌이킬 수 있는 상황이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아예 늦어버린 일을 수습하는 것은 보람은 없지만 쉬운 일이었고, 늦기 직전의 일은 돌이키려면 이러다 죽겠다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힘들지만, 보람은 있는 일이었다.

“그 경계, 얼마나 된 물건이에요?”

[지금 분석 중이야. 좀 자세히 봐야 할 것 같아. 굉장히 오래된 연식의 새 물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 잘 감이 안 오거든.]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경계 자체가 아주 오래된 건 아닌 것 같은데, 굉장히 오래된 방법을 이용해 만든 거라 해야 하나. 일단 좀 더 확인해야 할 것 같다.]

나름대로 전문가인 시아가 확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번 경계는 상당히 특이한 물건인 것 같았다.

“거, 참 보람찬 하루가 되겠네요.”

태주는 한탄하듯 말했다. 시아는 동감하는 의미로 큭큭 대며 웃었다. 실제로 보람찬 일이기는 했다. 동시에 죽을 맛이었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 피해자 이름이 뭐냐?]

“이한설이라던데요.”

[한설, 한설이라…]

태주의 말에 시아는 그 이름을 잠시 되뇌더니 말했다.

[그래. 이야기한 거 녹음해서 보내 주고. 듣고 이상한 부분은 나도 생각을 좀 해볼게. 하여간 삭신이 쑤시는데, 정말]

“으아아아아아아악!!!!”

시아의 신세 한탄이 다시 시작되려는 찰나 샤워실에서 큰 비명소리가 들렸다. 월이의 목소리였다.

“잠깐만요,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으니까 나머지는 내려가서 얘기해요!”

[뭐? 야 잠깐만!]

시아가 뭐라고 더 말하려 했던 것 같지만 태주는 곧장 끊었다. 그리고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소리가 난 곳은 샤워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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