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2)
늘 그렇듯이 태주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 하루를 시작할 만한 그런 시간대였다.
사무소의 멤버들은 도시 외곽의 한 새까만 4층짜리 오래된 상가 건물에서 살았다. 상가용으로 만들어져 살기에 그리 좋은 건물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개조해서 그런지 나름 아늑한 공간이었다.
1층은 카페처럼 차린 후 고객응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2층은 시아의 개인 공간 겸 창고, 3층은 사무소 직원의 주거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4층은 소장실 겸 소장의 생활공간으로 활용되었다.
태주는 가볍게 샤워를 마친 뒤 주방으로 향했다.
“뭘 해야 하나-”
보통 그나마 이 안에서 가장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태주가 아침 식사를 차렸다. 태주가 밤샘작업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이 차리곤 했지만 드문 일이다.
아침부터 거창한 걸 하긴 귀찮다. 태주는 찬장을 열어 레토르트식품 몇 개를 꺼내 데웠다. 그리고 대충 그릇에 담은 후 월이의 방 앞으로 가 문을 세게 두들겼다.
“야, 일어났냐?”
괜히 방에 들어갔다가 못 볼 꼴 보는 일은 서로 피하고 싶었기에, 태주도 어지간하면 바깥에서 문만 두드렸다.
“일어났어~”
안에서 월이의 비몽사몽한 목소리가 들렸다. 태주는 다시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어 달걀을 꺼냈다.
1인분은 위층에 배달해야 했다. 세 명은 3층에서 식사를 했지만, 소장만은 굳이 식사를 따로 했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덕분에 매일 부딪히는 직원들과는 다르게 소장은 거리감이 조금 있었지만, 그렇다고 소장을 꺼리거나 불편해하지는 않았다.
이곳의 직원들은 모두 소장에게 도움을 받았었고 지금 생활도 소장에게 보조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월급을 받고 있으니 직원과 사장의 관계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하는 일이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다들 알았다.
자신들이 모자라지 않게 생활하는 것은 다 소장이 어디선가 돈을 굴리는 덕이라고 직원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소장의 이해할 수 없는 재력 때문이었다.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도 해 준다. 건물의 3층을 아예 리모델링 해서 기숙사처럼 만들어 주기도 했고 필요한 물건 역시 보통은 사 준다.
물론 최신형의 엑스박스가 반려 당하는 일은 있었지만, 요청한 사람도 반쯤 장난이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소장은 워낙 종잡을 수 없어 대하기 힘든 사람이지만 그래도 소장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였다.
“아, 어제 장을 안 봐왔네.”
아무리 그래도 레토르트만 쓰긴 좀 그랬는지, 태주는 냉장고를 열어 보곤 혀를 한 번 찼다. 부실한 아침이 될 것 같다.
그래도 달걀 몇 개는 있었기에 태주는 대충 팬에 기름을 둘러 부쳤다.
거기에 어제 만들어 둔 국도 있으니 이 정도면 그래도 먹을 만할 정도로는 될 것 같았다.
일 인분 정도만 따로 담아 태주는 계단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주로 계단을 이용했다. 낡은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통해 가는 것이 빨랐다.
쟁반을 든 채 발로 문을 박차고 계단을 오른 태주는, 평소처럼 4층의 문을 열려고 하는데, 뭔가 문에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이건.”
문에 붙어있는 것은 종이 한 장이었다. 또 장난인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글을 읽은 태주는 매우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늘 아침은 둘이서 먹어라. 급한 일이 있으니까 월이 학교에 못 간다고 연락하고. 밥 먹고 나면 도착할 거야.]
보통 소장은 할 일이 없다면 잠만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은 드물었다. 아침 식사를 들고 가서 깨워야 일어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런 사람이 일찍 일어나서 나갔을 리는 없고 아마 밤에 나가서 아직 들어오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내용을 읽자마자 태주는 작게 탄식을 뱉었다.
“아침부터 큰일 났네.”
이건 귀찮거나 어려운 일, 혹은 둘 다인 일을 소장이 물어왔다는 뜻이다.
해야 할 일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일이 생기는 것은 누구라도 싫기 마련이다.
게다가, 소장이라면 분명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을 알았을 거다.
“미리 좀 알려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이러는 거야? 그럼 뭐 준비라도 해 놓을 텐데.”
태주는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내려갔다. 식탁에 앉아 있던 월이는 태주가 그대로 다시 쟁반을 들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탄식했다.
“그쪽도 없어?”
아주 약간 회색빛이 도는 긴 머리는 아직 물기에 젖어 있었다. 머리 말리는 게 귀찮았나 보다.
“없더라. 오늘은 결석하라는 거 보니, 분명히 쉽게는 안 풀릴 일이겠어. 그나저나 시아 누나도 없냐?”
그러고 보니 쪽지에는 둘이서 먹으라고 되어있었다.
“응. 아 자기들 출석 아니라고 막 이래라 저래라야.”
짜증 나는 것처럼 말했지만, 월이의 표정은 그와 반대다. 개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렇게 학교에 가기 싫을까.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럼 내일 토요일이니까…. 3일이나 쉬네!”
태주는 차라리 학교에 가는 게 더 편할 텐데 뭐가 좋다고 저러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한심하게 쳐다봤다.
“으이그, 좋냐? 하여튼 열났다고 연락은 해줄 테니까 나중에 가서 환자 코스프레나 잘 해.”
“그런 건 내가 또 잘하지!”
이젠 기쁨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실실대며 웃는 월이를 본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학교에서 하고 있는 병약 소녀 코스프레가 그럭저럭 먹히고 있었지만, 성격이 저래서 이게 언제까지 먹힐지 태주는 늘 걱정이었다.
“자랑이다, 진짜…. 일단 밥부터 먹자고. 든든하게 먹어라. 내 생각에는 오늘 점심은 그른 거 같으니까.”
“하 참! 한 끼 안 먹는다고 죽나?”
“저번에 한 끼 굶었다고 배고프다고 징징대던 게 누구시더라?”
월이가 샐쭉한 표정을 짓자 태주는 피식하고 웃었다.
월이는 태주를 보던 시선을 식탁 위로 돌렸다. 졸지에 반찬이 두 배가 된 풍족한 아침 밥상이었다.
“든든하게 먹으라고? 오케이!”
월이는 태주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다 먹어버리겠다는 심보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순식간에 식탁 위의 음식들을 하나씩 지워 버렸다.
“야, 안 체하냐?”
“니가 많이 먹으라매.”
월이의 뻔뻔한 대답에 태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입안에 가득 쑤셔 넣고 있을 줄 알았더니 그 많은 양을 순식간에 삼킨 듯했다.
“든든하게 먹으랬지, 누가 입에 쑤셔 넣으랬냐? 천천히 먹어라, 좀. 그러다 체하겠어.”
“우리 엄마도 이제 내 몸 걱정 안 하는데, 그런 내 몸을 왜 니가 걱정하냐? 흥.”
그렇게 말하면 태주는 또 할 말이 없기는 했다.
월이는 애초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총에 맞아도 몇 분이면 다 나아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다가, 자기 몸에 바람구멍을 낸 사람 몸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낼 아이였다. 음식 좀 빨리 먹는다고 체할 리가 없다.
“에휴, 니 맘대로 해라.”
그렇게 말한 태주는 월이에게 자신의 몫인 계란 중 하나를 넘겨줬다. 계란을 받은 월이는 잠시 놀란 눈으로 계란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오 무야? 돠시 달뤠도 안 쥰다?”
“그런 말은 입에 넣기 전에 했어야지.”
태주는 달걀을 한입에 털어 넣은 월이를 보며, 국을 후룩 마셨다.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굉장히 고단할 예정인 걸 알기에 태주는 밥을 억지로 입안에 떠 넣었다.
* * *
지잉- 징 징 징 지잉-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막 태주가 설거지를 시작하려 할 때,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렸다. 태주의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소장인가?”
“아마도?”
자신들에게 전화를 걸 사람은 소장 아니면 시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식사가 딱 끝난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서 전화할 만한 인물은 소장밖에 없었다.
태주는 발신자를 확인도 하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무슨 일이긴, 너도 짐작하고 있을 거면서? 늘 하던 그런 일이야. 내가 직접 갈 정도였으니 꽤 급한 일이었고.”
두 사람의 예상대로 전화에선 소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아무것도 짐작하고 있지 않았는데요. 무슨 일이 어떻게 급한 건가요?”
소장은 항상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자기는 다 알고 있어서 설명을 잘 못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몰랐지만 말이다.
태주는 작은 힌트라도 얻으려 했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말고 누나 있으면 좀 바꿔줘요. 설명 좀 듣게.”
차라리 말을 빙빙 돌리면서 사람 놀리는데 재미를 붙인 소장과 대화하기보다는 조금 장황하기는 해도 시아에게 설명을 듣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걔는 일하고 있지. 나는 지금 올라가는 중이고. 아마 너네 내려갈 때까지도 거기 있을 거야.”
태주는 정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최소한 월이와 처음 만날 때 있었던 일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 같은 느낌이 솔솔 들었다.
“우리가 어딜 가요? 쉽게 끝날 일이 아닌 거죠?”
“설명은 지금 내가 데려가는 애가 할 거다. 당사자한테 듣는 게 제일이지. 나중에 나 없이도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려면 내가 안 알려줘도 잘 해야 하지 않겠냐?”
역시나 소장은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아니 그렇게 아무것도 설명 안 해 줄 거면, 그러면 전화는 왜 한 거예요? 뭐 시킬 일 있죠?”
소장은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태주에게 말했다.
“당연히 있지. 지금 데려가고 있는 애가 여자앤데 상태가 안 좋아. 씻을 수 있게 준비해 두고 밥도 남은 거 있을 테니까 좀 차려둬. 밤새 산에서 굴러서 그런지 탈진을 했어.”
“네? 애가 산에서 왜 굴러요? 뭐 어쩌다가 산에서 굴러요?”
태주는 골치가 아파 왔다. 일단 대화에 나온 ‘애’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뒤에 나오는 말이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게 말이다.”
“하…. 진짜 설명 안 해줄 거죠?”
태주가 다시 캐물었음에도 소장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응. 진짜 설명 안 해 줘. 아까도 말했잖아. 자세한 건 이 친구한테 직접 들으라고. 한 10분 안에 도착할 거야. 참, 얘 옷도 난리야. 월이 안 입는 옷, 그 서랍 오른쪽에 숨겨준 세트로 된 옷 준비해 두라고 전해줘.”
소장이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자 태주는 한숨을 푹 쉬었다.
태주를 따라 월이의 표정도 무거워졌다. 전화 너머로 무슨 말을 하는지 언뜻 들었으니, 이번 일도 어려울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월이는 깊게 한숨을 쉬고는 태주에게 물었다.
“나 그냥 학교 가면 안 될까?”
태주는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 연락 이미 마쳐서 안 돼.”
“이런.”
월이도 그저 투정을 부리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더 떼쓰지 않고 입만 삐쭉거렸다.
태주는 월이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며 소장의 말을 전달했다.
“소장이 방금까지 산에서 굴러다니던 여자애 하나 주워 왔으니까 너보고 샤워 좀 시키라더라. 옷도 준비하라고 그러고. 너 서랍 오른쪽 아래에 숨겨둔 그 세트로 된 옷 걔한테 주라는데. 근데 그 세트가 뭐냐?”
월이는 이마를 붙잡고 소리를 지르다 옷이라는 말에 갑자기 조용해졌다.
태주는 조용해진 월이를 쳐다보았다. 월이는 그대로 잠시 가만히 서서 뭐라 말하려는 듯 입을 몇 번 벌리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태주는 좀 민감한 주제인가 싶어 잠시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 소장 지시야?”
한참을 잠자코 있던 월이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월이는 한숨을 푹 쉬며 알겠다고 말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다운된 월이의 모습에 태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