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지네의 아이 (1)
깊은 산 속, 소녀가 달리고 있다.
길도 없는 곳에서, 보름달의 달빛만을 의지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소녀가 자란 곳이 산속이기는 했지만, 한밤중에 이렇게 산속을 달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원래대로라면, 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수록 밤에는 산에 잘 가지 않는다.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산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밤의 산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늘 발밑을 살핀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 역시 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속도를 낮출 수도,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소녀를 쫓고 있기 때문이었다.
까드득- 까드드득-!
괴기한 소리가 산에 울려 퍼졌다. 관절이 꺾이는 것 같기도 하고 금속이 마찰하는 것 같기도 한 끔찍하고 또 괴상한 소리였다.
키릭, 키릭. 우드드드득
온몸이 곤두서게 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소녀는 몰랐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이대로 있다간 죽고 말 거라 생각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렬한 두려움이 소녀의 발을 움직이게 했고, 몇 시간에 걸친 뜀박질을 하게 만들었다.
그건 인간의 원초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그런 공포감을 주는 소리다.
한참을 달렸기 때문에 소녀는 이미 지친 지 오래였다. 숨은 가쁘고, 다리는 저려 왔다. 신발 한쪽은 언제 벗겨졌는지 더러워진 양말만 신은 채였고 나머지 한쪽은 신겨져 있긴 했지만 걸레짝보다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소녀가 지쳐 발을 멈추려 할 때마다 뒤에서 위협하는 듯 쉭쉭 대며 울려 퍼지는 소리는, 소녀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육체적으로는 이미 한계였으나, 공포가 소녀를 움직이게 했다.
그러다 소녀는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졌다.
“앗!”
이미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이었다. 그때마다 소녀는 곧바로 다시 일어났다. 멈추면 어떤 결말이 될지 소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소녀는 몇 번을 넘어져도 또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어날 수 없었다. 어딘가 부러지거나 접질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혹사당할 대로 혹사당한 온몸의 근육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게 뻔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마침 잠시간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
소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에 있는 가장 큰 나무 밑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다리를 모아 최대한 웅크리고 앉아 숨을 천천히 쉬었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소녀는 가쁘게 숨을 쉬었다.
“후우….”
한번 멈추고 나니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이게 두려움 때문인지, 혹은 신체가 한계에 달해서 나타나는 반응인지 소녀는 구분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뒤에서 달각거리는 소리가 서서히 따라왔다.
소리는 아직 멀리서 들리고 있었다.
‘다시 뛰쳐나가서 달려야 하나? 하지만 다리가….’
이대로는 더 멀리 갈 수 없었다. 지금 뛰어봤자 금세 따라잡힐 것만 같았다. 소녀는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도박이었다. 지금까지 뛰어서 도망칠 수 있었다는 건, 뛰고 있는 자신보다는 쫓아오는 것이 느리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쉬어도 될 것 같았다.
아직 밤이 쌀쌀한 봄이었기에 엉덩이에 닿은 흙이 차가웠다. 소녀에게는 차가운 흙에서 올라오는 냉기마저 지금은 고마웠다. 온몸에서 올라오는 열을 식혀야 했다.
‘언니가 본다면 감기에 걸린다고 걱정할 텐데…. 언니는 괜찮을까?’
소녀는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도망치지 못한다면 다시는 언니를 보지 못할 거였다. 일단은 살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녀는 문득 자신의 주변에 옅은 안개가 보인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안개가 갑자기 생긴 것인지 혹은 이제야 자신이 주변을 신경 쓸 수 있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계까지 몰아 붙여진 육신이 헛것을 보게 만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었다. 안개가 있다면 숨어 있기에는 차라리 나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소녀는 마음먹었다.
‘다각, 각각’
소녀는 뒤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했다. 천천히 주변을 수색하는 듯한 소리였다. 서서히,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그러나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는 소리다.
‘움직일까?’
다리를 움직여 보려 했지만 아직은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야 바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몸은 아직 말을 잘 듣지 않고 있었다.
소녀는 안개를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달각달각하는 괴상한 소리를 대체 무엇이 내는지는 몰랐지만, 소녀는 숨죽인 채로 그 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계속해서 들리던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멈췄다.
‘들킨 걸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소녀를 더욱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그 상태로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나뭇잎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잠깐일 수 있었지만, 소녀에게는 그 시간이 굉장히 길게만 느껴졌다.
오히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마음이 점점 답답해진다.
소녀는 혹시 자신을 쫓아오던 게 다른 곳으로 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뒤를 보고 싶다. 자신의 뒤에 있는지 없는지, 그게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다.
소녀는 기대고 있던 큰 나무의 뒤를 살짝 보기로 했다.
몇 번을 망설였을까.
소녀는 살그머니 나무 뒤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가 나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이, 흡”
다각, 다각.
하지만 안도의 순간도 잠시, 어디선가 다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녀는 다급하게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어느새 소녀의 뒤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저 멀리,
스스슷- 다각, 다각.
깊은 어둠 속에서 소녀는 거대한 것을 보았다.
“마, 말도 안 돼….”
그것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는지,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소녀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곧바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지금 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안개가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소녀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뛰었다. 길을 알아서가 아니다. 그저 멈출 틈이 없을 뿐이다. 소녀는 그렇게 그냥 앞으로 뛰었다. 계속 뛰었다.
그때, 갑자기 발밑이 푹 꺼졌다. 그리고 앞에 가파른 경사가 나타났다.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속도를 내서 달리던 중인 사람이 멈출 수 있는 지형이 아니었다.
결국 소녀는 그대로 넘어지며 앞으로 쭉 미끄러지고 말았다.
아주 잠시, 정신을 잃었던 소녀는 곧장 정신을 차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온몸에 타박상은 입었을지언정 어딘가 부러지거나 다른 큰일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녀는 아주 잠시 온몸을 찌르는 통증에 신음했다.
하지만 소녀에게는 다친 곳을 확인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저 팔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움직이는 것만 확인한 뒤에 소녀는 죽을 힘을 다해서 몸을 일으켰다.
“아, 아…”
하지만 이내 몸이 고꾸라졌다. 소녀는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눈을 감고 그대로 잠들고만 싶었다.
타박타박.
그때 발소리와 함께 눈가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소녀는 눈을 뜨고 앞을 응시했다.
“사…람…?”
소녀의 앞에는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소녀는 사람을 보자 순간 안심이 되었는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지쳐버린 머리는 지금이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판단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저 그 사람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것만 떠올랐다.
“저, 제 뒤에, 뭔가…”
하지만 호흡이 가빠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고, 벌써 고생깨나 했구만.”
남자는 소녀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소녀는 남자의 느긋한 말투에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다시 붙들고는 말했다.
“지금 도망을…!”
“그래. 쫓기는 중이었던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이제 괜찮아. 일단 물부터 마실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물 한 병을 건네줬다.
소녀는 물을 보자마자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벌떡 몸을 일으켜 곧바로 물을 받아 마셨다. 물은 마치 뭐라도 탄 듯 달았고, 소녀는 물 한 병을 단숨에 비워냈다.
“방금 네가 건너온 안개가 그들의 경계야. 그 바깥으로 나오는 건 저 쪽에게도 꽤 위험부담이 있어. 그러니 그건 절대로 여기까지 나오지 않을 거야. 아니, 올 수는 있지만 나온 순간 별 볼 일 없어지겠지.”
소녀가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동안 남자는 계속 설명했다. 소녀는 호흡이 가쁜 와중에도 남자의 말은 똑똑히 들렸다.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을 쫓던 그것이 자신을 더는 쫓지 못한다는 것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안심해서인지 물을 다 마시자마자 소녀는 다시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어떻게 할래? 원한다면 난 너를 구해줄 거야. 어떻게 할까?”
남자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녀는 호흡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대답은커녕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호흡을 고르던 와중에 소녀는 뒤에서 달각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소녀는 힘겹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저 멀리 있는 나무 아래에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그것이 지금도 자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소녀는 온몸을 떨었다. 남자는 그렇게 벌벌 떠는 소녀의 머리 위에 툭 손을 얹었다.
“괜찮아. 저건 여기까진 못 와.”
“그… 래도,”
소녀는 간신히 말을 쥐어 짜냈다. 끝까지 말하지는 못했지만, 남자가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짓자 소녀는 다음 말을 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귀찮은 표정을 지은 남자는 팔을 풀며 뚜둑 소리를 내고는 소녀를 그대로 안아 들었다.
“사실 네 대답은 알고 있어. 그러니 지금은 그냥 데려가도록 하지. 차 타고 갈 테니 도착할 때까지는 자고 있어.”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녀를 안아 든 채 길을 걸었다. 소녀는 당황했지만, 저항은 하지 않았다.
소녀가 지금까지 달려 뛰쳐나온 곳과는 달리, 이제는 길이라 할 만한 곳을 걷고 있었다.
혹시 나쁜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지쳐버린 몸이 말을 듣지 않았기에 이 남자가 선인이기를 바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놓아서일까, 소녀는 갑작스레 졸음이 오는 것을 느꼈다.
‘아, 이거 꼼짝없이 잠들겠구나’
순간 멀리서 무언가 ‘키릭’ 하고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소녀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눈치채기도 전에 거의 정신을 잃듯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