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상자 안의 머리 (18)
해낸 일이 그렇게나 대단한데, 상상 속의 친구와 비교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깎아내린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대체 어디까지 깎아내린 것인지 태주는 잘 짐작이 가지 않았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노력을 들이는 건 분명 불안함 때문이겠죠.”
언제라도 지금의 관계가 망가질지 모른다는 부담감이 정한이 이렇게까지 하도록 만드는 원인일 것이다.
정한이 지금까지 한 행동은 단순히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다.
아마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과 그 부담 때문이리라.
그러나 태주가 보기에 그건 잘못되었다.
정한은 모든 것을 마치 쫓기는 것처럼 하고 있었다.
굳이 받아들일 필요 없는 도깨비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한 것도 사실상 같은 맥락에서의 일이다.
아직도 정한은, 자신이 죽은 이에게 빚을 지고 있다 생각하고 있다.
태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한은 따라 일어나려다 내려다보는 태주의 눈빛을 보고 엉거주춤하게 다시 앉았다.
“첫째, 완벽한 관계라는 건 없어요.”
인간관계라는 것은 위험이 없을 수 없다.
“결국,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으니까요. 무슨 사이비 인연론자가 할 것 같은 이야기라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그 헤어짐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견디지 못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 역시 고통이다.
“둘째,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당신이 챙기기만 해야 할 정도로 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태주는 조금 측은한 눈으로 정한을 바라봤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요?”
태주는 반문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치고는 늘 도움만 주고 본인이 받지는 않던데요.”
태주가 본 바로는 정한이 유지하는 관계는 꽤 일방적인 관계였다.
“자기가 뭔가 요구하면 바로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겁나서 그러는 게 약하다 생각하는 게 아니면 뭔가요?”
정한은 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태주는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이 겪은 일은 언젠가 누구나 겪는 당연한 일입니다. 아주 흔한 문제죠.”
맨 처음의 상실이 정한에게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다. 이 강박은 분명 거기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러나 그건 아무리 말해도 자신들이 바로잡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뭐, 이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결국은 직접 느끼지 않으면 안 될 문제다.
“지금은 그보다는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해 볼까요. 당신은 도깨비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거라 말씀하셨죠?”
정한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태주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정한은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 이번 말은 당신에게 한 게 아닙니다.”
정한은 태주의 말을 듣고서야 주변을 살폈다.
그제야 깨달았다.
“잠시만요, 언제 이렇게 연기가?”
정한은 냄새가 조금씩 강해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주 조금씩, 흰색 연기가 짙어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뒤늦게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지금은 이미 방 안이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들…?”
정한은 경악에 찬 눈으로 태주를 바라봤다. 그러나 태주는 그저 시아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아는 살짝 웃으며 놀리듯 정한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한은 그제야 이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았다. 자신이 이전에 한 것과 같은 일이다.
자신이 도깨비가 말하는 것을 듣는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듯, 도깨비 역시 자신이 말하는 동안 보이지 않게 숨어 있던 것이다.
만약 도깨비가 있었다면, 절대로 정한의 진심을 들을 수 없었을 테니까.
태주는 도깨비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 반쯤 장난을 직접 해 보니까 어떠셨습니까?”
“숨지 않았는데 숨은 것처럼 보이는 건 꽤 재미있군.”
도깨비는 정한에게서 가장 먼 쪽의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도깨비는 씩 웃었다. 그러나 곧 도깨비의 표정은 무표정해졌다.
“하지만 그래, 그렇단 말이지.”
도깨비는 그렇게 말했다.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태주는 그렇게 말을 받았다.
“이 분은 약속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는 했지만, 그걸 보여드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태주의 말에 정한은 항의했다.
“하지만 아직, 아직 하루가 남았잖아요?”
태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글쎄요. 시간을 질질 끌어봐야 의미는 없겠죠. 어차피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태주는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게다가, 내일이 될 때까지 이제 한 시간도 채 안 남았습니다.”
시간은 이미 열한 시가 넘었다.
“그런….”
“내일이라고, 오늘과 다를 수 있을까요?”
내일도 물론 평일이었다. 태주는 정한의 성격상 결코 친구들을 부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루를 더 드린다면, 당신은 그 광경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그건….”
불가능했다. 주말이라 해도 자신이 없다. 평일에 모두 모일 자신은 당연히 없었다.
“자, 그럼 결국 마지막 수단이군요.”
태주는 말했다. 도깨비를 보며 태주는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는 싸우지 않으면 안 될 모양입니다.”
“안다. 듣고 있었으니.”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한은 눈을 크게 떴다. 태주는 그런 정한에게 말했다.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둘 다 좋은 일은 이제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정한이 채 그 말을 하기도 전에 태주가 말했다.
“안심하세요. 위험하지는 않게 할 테니까요.”
태주의 말대로였다. 도깨비는 정한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무섭기는 하지만, 분명히 얌전하다.
두려워하는, 그러나 동시에 의아해하는 정한의 모습을 보고 태주는 말했다.
“최소한 지금은, 당신에게 달려들지는 않을 겁니다.”
“왜죠?”
“당신에게 시비를 걸기 전에, 먼저 시비를 건 쪽을 해결하자 했거든요. 그게 도리잖아요?”
쌓인 게 있더라도 순서대로 풀자. 그런 태주의 말에 도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깨비는 정한에게 한 깊은 실망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우선하지는 않았다.
정한이 다시 약속을 맺은 것 보다 앞선 관계는 따로 있었다.
끼이익 하고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문이 아닌 뒤편 비상계단의 문에서 난 것이다.
그곳에서 월이가 나왔다.
“왔구나.”
도깨비는 조금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과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너와 쌓인 것부터 해결해야지. 안 그래?”
월이는 말없이 도깨비의 앞에 섰다. 그저 조금 찌푸린 채였다.
둘의 덩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슬쩍 보더라도 도깨비가 세 배는 커 보였다.
그러나 도깨비는 월이를 얕보지 않았다. 꽤 진지한 눈으로, 도깨비는 월이의 힘을 가늠했다.
“원래는 씨름으로 겨루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만….”
도깨비는 난색을 표했다.
상대의 힘이 모자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씨름하기에는 영 걸맞지 않은 덩치다.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 거 같다.
도깨비 쪽에서 몸을 줄이는 것도 논외였다. 그건 상대가 평범한 사람일 때나 할 수 있는 핸디캡 매치다.
“나도 너랑 씨름하기는 좀….”
월이도 마찬가지였다. 땀내 날 것 같은 거대한 털복숭이와 몸을 맞대는 것은 원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팔씨름은 어때?”
월이가 물었지만 도깨비 쪽에서 고개를 저었다.
“난 그거 씨름으로 인정 안 한다.”
“하긴, 애초에 생각해 보니 책상이 못 견디겠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종목에 대해 토론했다.
정한은 저게 뭔가 싶었다. 바로 치고받고 싸울 줄 알았는데, 하는 일은 꽤 바보 같아 보였다.
“좀 우스워 보이지 않습니까?”
시아가 정한에게 물었다.
“아…아뇨.”
정한은 어색하게 말했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시아는 픽 웃었다.
“그런데 그게 도깨비의 본질입니다.”
시아의 말은 너무나도 의외였기에 정한은 시아를 쳐다봤다.
“강한 힘을 가졌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최대한 맞춰 주려 하는 것 그게 도깨비입니다.”
그렇기에 종종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왜일까요?”
시아의 질문에 정한은 무심코 시아를 바라봤다.
“…잘 모르겠어요.”
“그렇겠죠. 당신은 모를 것 같았습니다.”
시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도깨비는 말입니다, 사실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들입니다.”
“사람을… 부러워한다고요?”
“예.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처럼 살고 싶다 뭐 이런 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생각할 법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정확히는 사람과 마음대로 장난을 치는 관계가 되고 싶은 겁니다.”
도깨비는 사람에게 장난을 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존재다. 좋은 도깨비 혹은 나쁜 도깨비라는 것은 없다. 어떤 장난을 치는 도깨비인가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도깨비의 장난은 결코 사람이 받아들이기 쉬운 일들이 아니다. 두렵고, 아프고, 골치 아픈 일이다.
그래서 장난 한번 쳤다가 사람이 미쳐버리기 일쑤였고, 때로는 다치거나 죽기도 했다.
도깨비들은 그런 걸 크게 개의치는 않지만, 동시에 그 사실을 알고는 있다.
“좀 더 풀어서 말씀드려 볼까요. 도깨비라는 건 말입니다, 결국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은 겁니다.”
“친구… 가 되고 싶다고요? 저, 저게요?”
당연한 반응이기에 시아는 그저 어깨만을 한번 으쓱한 뒤 말했다.
“뭐, 진지하게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도깨비의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친구 관계의 단편적인 면만 보고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거긴 합니다. 사람은 사람들 상대로 장난을 아무리 쳐도 괜찮으니 말입니다.”
도깨비에게 있어 그것은 굉장히 이상적인 관계일 것이다. 장난을 쳐도 웃으며 받아 주고, 계속 대등한 관계에 있다.
아마 도깨비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방망이로도 이룰 수 없는 마법 같은 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환 씨가 보여주려 한 건 도깨비에게는 정말로 꽤 가치 있는 보물과 같은 겁니다.”
도깨비가 가질 수 없는, 그러나 늘 동경하는 관계다.
“그게 중학생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말일지라도 도깨비에게는 꽤 먹히는 답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도깨비는 십 년을 버텼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렇게 화가 나는 일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도깨비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꽤 중요한 문제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 하지만 당신은 이미 그럴 수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정한이 사람들을 어떻게든 모아봐야 그건 정말로 우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기 힘들다. 그저 깨트리기 두려운 유리 세공품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건 도깨비가 보고 싶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의 생각이 그런 이상, 절대로 도깨비에게는 원하는 걸 보여줄 수 없습니다.”
결국엔 그래서, 답은 하나뿐이다. 시아는 아쉽게 되었다며 한 번 더 연기를 쭉 빨았다.
시아의 말이 끝난 뒤 태주는 이어 말했다.
“지금 저렇게 논의하는 꼴이 장난 같아 보일지 몰라도 저 끝에 정말로 도깨비는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갈 예요.”
“네…?”
너무한 것 아닌가. 그런 말을 하려다 정한은 말을 삼켰다.
그 너무한 상황을 만든 것은 어쩌면 자신이었으니까.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더 오랜 기간을 가둬 두는 것이 어쩌면 도깨비에게는 더 잔혹한 일 아닐까요?”
제대로 거짓말을 한다면, 어떠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도깨비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잘 믿으니 말이다.
방법만 잘 찾으면 도깨비를 마지막 순간까지 속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도깨비에게 못 할 짓이다.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한은 뭔가 말하려 했다.
“그게 싫다면, 지금이라도 친구분들을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텐데요.”
이 시간에, 그럴 수 있다면 어디 한번 해 보라는 태주의 말에 정한은 망설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잠시 집중하지 못하던 사이 무언가가 결정된 것인지 크게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저런, 끝났군요.”
끝났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무엇이 끝난 것인지 정한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알게 되었다.
도깨비의 몸에서 머리가 날아갔다. 마치 로켓처럼, 자연스럽게 하늘로 솟구쳤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그저 머리만 붕 떠 날아갔다. 주인을 잃은 몸만이 무릎을 꿇었다.
쿵, 데굴데굴.
머리는 천장에 한 번 부딪힌 뒤 굴러서 정한의 발밑까지 굴러왔다.
그때와 같았다. 맨 처음 그게 도깨비인지도 모르던 때, 마주친 머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끔찍한 광경을 본 정한은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곤 인상을 찡그리며 월이에게 말했다.
“야, 조심해야지. 천장이 망가졌잖아.”